CAFE

[[가히]]두, 그림자 외 3편 / 염창권 외

작성자안해나|작성시간26.06.20|조회수75 목록 댓글 0

두, 그림자

 

염창권

 

 

#

나란히 앞쪽으로 굽어 있는 그림자는

아비일까, 아들일까, 그 두께가 다르다

한쪽은 더 기울었고 땅 쪽에서 가깝다

 

경사면을 지날 때 빗긴 생이 확연하다

그 빗긴 걸 내색하지 않으려고 한 번 더 굽어

뭉툭한 소용돌이가 두툼하게 얹혀 있다

 

뒤따르는 그림자는 그 소동을 피하고자

한 발 뒤 비낀 곳에 덜 굽은 길 내었으나

바닥에 추위와 더위가 사납게 깔려 있다

 

평행인 그 시간을 따라잡지 못하는 동안

벌린 입의 깊은 곳으로 짧아진 숨 넘긴다

두 사람 눈높이에 걸린 공중의 길 참 멀다

 

#

앞날 꿈을 주제로 한 상담심리 워크숍에서

 - 의욕적인 꿈들로 만발하던 그날에 난, 한 노인의 얼굴을 환영처럼 떠올렸다 먼 길을 걸어온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고, 시간의 저변에서 불쑥 솟구쳤으나 낯익었다

  그에겐 닿을 수 없는 깊이감이 있었다

 

#

두 그림자, 헤어질 때 눈시울 또 붉겠다

닿지 못한 시간의 간격이 더 멀어지겠다

두꺼운 어둠 속에서 영영 잃어버리겠다.

 

 

 

라이스페이퍼

 

조성문

 

 

가뭄처럼 마른갑다 이백 넘는 사람 뼈도

흩날리는 꽃잎보다 가배야운 몸피이다

멀리서 스란치마 끄는

하얀 소리 닿는다

 

월남쌈 싸는 동안 앙가슴에 안치는 붓끝

안으로 스며들 드키 고대로 무젖고 싶다

구름짬 얼핏 열린 뒤

볕살 좋아 휘날리고

 

내게 들었다 다시 그대에게 들 때까지

오래 묵은 비백의 글발 유묵으로 받들고서

더 얇게 먹먹해질 즘

켜켜이 배접한다

 

 

 

묽은 화법

 

김삼환

 

 

누구나 말 속에다 가시를 박아놓지

한 가닥 삶의 이면 비법처럼 숨겨놓고

반투명 묽은 화선지 먹물로 스며들지

 

저물어 날 저물어 사라지는 저 노을도

묽은 화법 리듬으로 비화처럼 살다 가지

결 고운 바람 소리를 여백으로 남겨놓고

 

 

 

첫사랑 달개비꽃

 

박연옥

 

 

달개비꽃 마중 나온 시골 버스 정거장

사람은 떠나가고 그림자만 남은 자리

등 뒤에 남은 표정이 마음속 얼룩 같은

 

버리자 버리자 해도 버리지 못한 시간들

한때는 넘치는 사랑 뜨겁던 좌절도

어둠 속 불을 켠 듯한 이름으로 서 있고

 

낮은 집들 사이로 서성이던 생각에

키 작은 뒷모습만 오래도록 남는다

꽃상여 떠난 정거장 약속 같은 달개비꽃

 

 

-《가히》(2025 .겨울호)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