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달개비꽃
박연옥
달개비꽃 마중 나온 시골 버스 정거장
사람은 떠나가고 그림자만 남은 자리
등 뒤에 남은 표정이 마음속 얼룩 같은
버리자 버리자 해도 버리지 못한 시간들
한때는 넘치는 사랑 뜨겁던 좌절도
어둠 속 불을 켠 듯한 이름으로 서 있고
낮은 집들 사이로 서성이던 생각에
키 작은 뒷모습만 오래도록 남는다
꽃상여 떠난 정거장 약속 같은 달개비꽃
봄날이 온다
송정란
봄여름 가을겨울 시절 없이 봄날이 오네
가슴 끝 낭떠러지에 철쭉꽃 피어나고
꽃 꺾어 바칠 이 없어도 봄날이 온다 온다네
벼랑 끝에 섰던 마음 깎아지른 욕됨이었네
흉이 진 삶의 속살 여태 덧나 아려올 때
홑치마 뒤집어쓰고 낙화落花하고만 싶었네
쉼 없이 굽이치는 구절양장 세월을 돌아
뼛속 깊이 사무친 질긴 오욕도 눅눅히 삭아
제 홀로 으르고 달래어 잘 썩힌 거름 같았네
연분홍 치마 입고 떠나간 설운 봄날아*
벼랑 진 가슴골마다 꽃분홍 치마 휘날리네
꽃 지던 자리 지르밟으며 봄날이 온다 왔다네
* 백설희 노래 <봄날은 간다> 차용.
-《가히》(2025, 겨울호)
11월
이애자
높아져 공허한가
하늘이 밑밥을 까네
푸르다고 다 같은가
그렇게 내외하더니
낚였네,
모슬포 바다
햇살 덥석 물었네
가을도 늦가을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저 혼자 출렁출렁
리듬을 타더니
들켰네,
모슬포뿐이
오갈 데가
없단 걸
당귀꽃 꺾이다
윤채영
어젯밤 매운 비에 고개 꺾인 당귀꽃을
버리기에 미안해서 병에 골라 꽂았더니
꼿꼿이 고개 들고서 웃고 있네 갸웃이
꽃 아래 내려앉은 자잘하고 고운 것들
여기가 어디라고 씨앗을 떨구다니…
오늘이 세사世事의 끝임, 던져주네 명언을
-《시와문화》(2025,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