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침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도대체 시간 감각이 없다. 이곳에 갇힌 지 벌써 여드레가 지난 것 같다. 빛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는 음습한 지하감옥은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곳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요한 침묵이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것 같아 몹시 답답하다. 나는 아무래도 광야가 더 맞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피식 웃어본다. 그 넓은 광야에서 홀로 지내며 야생마처럼 지내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곳에 갇히게 되니 생각이 많아진다. 나의 늙으신 부모님 그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에서 뜨거운 눈물이 치밀어 오른다. 뒤늦게 하느님의 은총으로 얻은 자식이라 하시면서 끔찍히도 사랑해 주셨지. 그러면서 늘 입버릇처럼 너는 하느님의 큰일을 할 사람이라고 하셨지. 나도 자연스럽게 나의 삶이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 광야와 감옥의 공통점은 침묵 지난 세월은 참으로 평탄하지 않은 세월이었어. 내가 이곳에 갇히게 된 것은 헤로데 왕이 아내와 이혼하고 동생의 처인 헤로디아와 결혼했을 때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질타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만 하느님의 목소리를 대신 전한 것뿐이었다. 사실 헤로데 왕에겐 충격이었겠지. 왕의 생활을 비판하는 소리를 평생 처음 들어 봤을 테니까. 그는 분명히 하느님조차도 자신의 행위를 판단하지 못할 것이라는 교만한 생각을 갖고 있었을 거야. 그는 나를 즉각 죽이고 싶었을 테지. 다만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 감옥으로 가두었던 것 같아. 광야와 이 감옥의 한가지 공통점은 침묵이라는 것이야. 나는 많은 이들에게 회개를 소리 높여 외치고 살아왔지만 실상은 침묵을 사랑하고 즐기고 싶어. 그 오랜 세월을 광야 가운데서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침묵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어. 늘 고독과 침묵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쌍을 이루고 있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고독한 사람이야. 평생을 고독 속에 살아왔지. 내가 세상에서 활동을 했던 시절 많은 제자들도 따랐고 군중들에게 인기도 있었지만 나는 늘 고독했어. 그 고독은 혼자 있음으로써 오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절대 고독이었다. 나는 늘 나의 행동과 마음을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했어. 나는 한 인간으로 솔직히 인정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었어. 그러나 나의 바람은 늘 물거품이 되어버리곤 했지. 그러나 하느님만은 날 이해하실 것이란 믿음이 나를 버티게 한 힘이었어. 나는 평생을 내가 보는 불의나 죄를 밝혀내고 비판하면서 살아왔어. 아무리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허사였어. 들끓어 오르는 열정과 독설은 분명 내 자신 안의 어떤 힘에 이끌린 것이었어. 내 안에서 말하시는 분이 분명히 하느님이심을 확신했기에 그렇게 용감하게 말할 수 있었던 거야. 나는 부드럽지도 순하지도 않았어. 나도 모르게 불의를 보았을 때 성난 표범처럼 달려들어 그들을 꾸짖고 비판했었으니까. 제자들은 가끔 나에게 조금은 참고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조언을 하곤 했지.
■ 예수는 하느님이 보내신 분 그런데 나는 지금 며칠 전 면회를 한 제자들이 전해준 이야기 때문에 몹시 혼란스럽다. 나는 얼마 전 우리에게 오시기로 한 분이 나자렛 예수인가를 제자들을 시켜 묻게 했다. 그런데 그분의 대답은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걷고 나병환자가 낫고 죽은 이가 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진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은 이는 행복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며칠간 곰곰이 생각했지만 선뜻 이해가 안간단 말이야. 예수의 말씀과 행동은 자비와 사랑에 가득 찬 것이었어. 나는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그분이 하느님이 보내신 분임을 처음 만남부터 직감했어. 하느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다르리라. 분명히 하느님은 그분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룰 것이라 믿는다.
이제 나의 일을 다 마쳤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만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이 든다. 나는 지금 솔직히 두렵고 떨린다. 나의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지난 삶을 돌아보면 한점 후회가 없다. 역시 똑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나는 또다시 외칠 것이다.
[평화신문 2000.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