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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작성자이주익|작성시간11.08.13|조회수4,803 목록 댓글 0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형재(亨齋) 이직(李稷, 1362-1431)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조선에 가장 출세한 선비로 이인민(李仁敏, 1340년-? 고려 시대의 문신)의 아들이고, 고려 충신 이조년(李兆年, 1269-1343. 시문에 뛰어남. 천성이 결백강직)의 손자다. 

 

조선 중기 동방주의자요, 문신이며 정치가인 퇴계 이황(1501-1570)은 “이조년은 난세에 태어나서 수많은 변고와 험난함을 겪으면서도 혼미한 임금을 받들어 지조가 금석 같았고 충직한 깊이가 후세에 우뚝하여 고려 500년 역사의 제1인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조선 중기 정치가요, 성리학 완성자인 이이 이율곡(1536-1584)은 “나로 이조년의 문하라 이르게 해다오”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설도 있다.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뒤의 심정을 읊은 梅雲堂 李兆年이 지은 다정가(多情歌)로 시작되는 고시조 1수는 아래와 같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 이화조(梨花操)

 

하얗게 핀 배꽃에 달은 환히 비치고, 은하수는(돌아서) 자정 무렵을 알리는 때에, 배꽃 한 가지에 어린 봄날의 정서를, 자규(소쩍새)가 알고서 저리 우는 것일까 마는, 다정다감한 나는 그것이 병인 듯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노라.

                                                                                - 현대어 풀이

 

이직은 고려 32대 우왕(禑王)때 16세(1377년)로 문과에 급제했고, 1392년 7월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는데 공을 세워 성산군에 봉해졌다. 대사헌, 중추원사, 대제학,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 1424년 영의정까지 올랐다. 1429년엔 신속육전(新續六典)을 편찬하였다.

 

이율곡은 이조년의 손자요, 대출세가인 이직에 대해서는 “쇠똥에 굴러다니며 사는 쇠똥바퀴”라 했다더군요. 이유는 이직이 고려를 배신하고 이방원에게 붙어 “살생부”를 만든 위인이었기 때문이다.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白鷺)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 들 속조차 검을 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 뿐인가 하노라. - 오로시(烏鷺時). 이직의 작품.

 

고려의 유신으로서 조선의 개국공신이 된 그가 자신의 처세를 변호한 노래이다. 조선왕조에 가담한 자기를 비방하는 무리를 힐책하며 구차하게 변명하고 있다. 겉으론 군자(君子)인체 안존(安存)한 여자인체 하면서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위선자들을 까마귀와 백로의 예를 들어 풍자한 의도가 짙다.

 

그가 지은 시에,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 다르고 속 다른 것, 겉은 검으나 속은 희다.

겉 검다고 속까지 검은 줄 아느냐?

 

감리교회 목사 대부분 겉이 검으나 속은 희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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