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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입니다]김치와 지는 어떻게 다른가요 ?

작성자밝해|작성시간03.07.27|조회수318 목록 댓글 0
김치는 沈菜(침채) > 팀채 > 딤채 > 짐채 > 짐츼 > 짐치 > 김치가 되었다고들 합니다.
사전에는 지가 김치의 방언이라고 되어 있고, 짠-지, 싱건-지는 표제어로 올라 있었습니다.
지가 전라도지방의 사투리라면 짠-지, 싱건-지, 오이지, 갈치젓섞박지, 강지, 배추 짠지, 배추 시래기지, 단무지, 파지, 무 짠지, 무 섞박지, 갓지, 섞박지, 궁중젓국지, 골곰짠지 등등이 전부 사투리라는 것인지 섞갈립니다.
같은 김치종류로서 장아찌(짱아찌), 소박이(소백이), 생채, 깍두기 등등의 이름은 또 어떻고요?
아시는 분은 속 시원하게 가르쳐 주세요.

제가 조사한 바로는
우리글자가 없던 상고시대에는 김치를 ‘저(菹)'라는 한자어로 표기하였고, 이후에 지(漬), 염지(鹽漬), 지염(漬鹽), 침채(沈菜), 침저(沈菹), 침지(沈漬), 엄채(掩菜), 함채(鹹菜)' 등이 같이 표기되었다고 합니다.
김치를 뜻하는 [ 菹 ]란 날 채소를 소금에 절여 차가운 데 두고 숙성시킨 김치무리라고 합니다.
소금에 절인 채소에 소금물을 붓거나 소금을 뿌리면 국물이 많은 김치가 되고, 이것이 숙성되면서 채소 속의 수분이 빠져 나와 채소 자체가 침지(沈漬)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침채(沈菜)'라는 고유의 명칭이 생겼고,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김치라는 말은 "沈菜→팀채→딤채→짐채→김채→김치"와 같이 변화되었다고도 합니다.
김치의 옛말이 「딤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조선 초기 <내훈(內訓)>(1516년)에 처음 '딤채국'이 나오고, <벽온방>(1518년)에는 "무 딤채국을 집안 사람이 다 먹어라."하였으며, 중종 22년 <훈몽자회(訓蒙字會)>(1525년)에서는 '저'를 '딤채→조'라 하였다는데 근거합니다.
한편 조선초기 성종조에 발간된 "분류두공부시언해<杜詩諺解>"권3에 원문의 `동저(冬菹)'를 동디히라 번역한 데서 "디히"가 김치의 고유어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도 지역 특히 전라도에서는 지금도 김치를 `지'라고 하며 황해도와 함경도, 서울말에도 `오이지', `짠지' 등의 `지'가 있는데 알고 보면 이 `지'는 `디히'가 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먹는 김치는, 기후에 따라 추운 북쪽지방과 더운 남쪽지방으로 나뉘는데 북쪽은 싱거우면서 맵지 않고 남쪽은 짜고 매우며 국물없이 담급니다. 중부지방은 간도 중간이고 국물도 적당하고요. 북쪽지방에서는 기온이 낮으므로 소금 간을 싱겁게 하고 양념도 담백하게 하여 채소의 신선함을 그대로 살리는 반면 남쪽지방에서는 짜게 합니다. 소금만으로 짜게 하면 맛이 없으므로 젓국을 많이 쓰며,고기국물을 섞기도 하지요. 따라서 북쪽의 김치는 국물이 많고 담백하며 산뜻하고, 남쪽의 것은 빨갛고 진하며 국물이 거의 없습니다. 중부지방의 것은 고추와 국물을 적당히 써서 약간 붉은빛이 돌고 국물도 적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특색은 지역간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어느 곳에 살든지 각기 자기의 기호대로 김치를 담그게 되었으므로, 서울 안에서도 여러 지방의 김치가 혼합되어 큰 특색이 없어졌습니다.

제 좁은 소견으로는 앞서 말씀 드린 것으로 미루어
"딤채"는 국물이 많고 담백하며 산뜻한 맛을 지닌 북쪽지방의 "김치"이고
"디히"는 국물이 거의 없고 짜고 매우며 빨갛고 진한 남쪽지방의 "지"라고 생각됩니다.
정말 속 시원하게 가르쳐 주실 분 어디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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