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는 학교 후문쪽에 볼일이 있어 좀 바쁜 걸음으로 학교안 도로를 걷고 있었습니다. 제 앞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생긴걸로 보아 우리나라 사람 같지는 않았습니다. 인종분류학상 몽골로이드(우리 식으로 황인)에 속하는 사람들이긴 한데, 우리나라 사람과 약간 다르게 생긴 것으로 보아 일본인 아니면 중국인, 또 그것도 아니면 동남아 어디에 사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그 중 몇 명의 남자는 이른바 양아치처럼 하고 있었습니다. 연예인들의 옷처럼 좀 보기 드문 옷을 입은 사람, 곱슬머리를 길러서 귀 뒤에 꽂은 사람, 신기하게 생긴 선글래스를 끼고 있는 사람... 저는 속으로 '어! 특이하게 생긴 양아치들이네!'하며 그들을 흘끗흘끗 구경했습니다. 그런데 그 양아치(?)들이 저에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너무 쳐다봐서 화났나? 어떡하지?' 하고 있는 순간 벌써 그들 중 한 사람이 저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단어까지 섞어가며 아주 유창한 영어로... 그러나 대강의 뜻은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 본부 건물이 어디냐?'는 것이 그 말의 요지였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영어로 대답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날은 이들의 양아치같은 차림과,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말 한 마디 쓰지 않고 영어로 길을 묻는 그들의 건방진(?) 태도가 왠지 마음에 안들어 영어로 대답을 하기 싫었습니다. 한국인의 자존심이 있지... '우리나라에 왔으면 우리 말을 써야지... 건방지게 영어를...?' 그들이 길을 묻는 태도와 말투에서 저는 '한국에서는 영어면 다 통한다'는 생각을 그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느리고 친절한 말투로 그들의 질문에 이렇게 반문했죠.
"한국말 할 줄 아세요?" --> (우리말로)
이 때, 저의 말은 '한국에 왔으면 한국 말을 쓰셔야지요!'라는 생각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라는 식의 몸동작을 하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그것 참 유감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영어로 말을 했죠.
자루 : Can you speak Korean?
외국인 : Oh~~~! I can't speak Korean. Please English.
저는 연습장에 약도를 그려가면서 떠듬떠듬 영어로 설명해 주었죠. 나중에 그들은 고맙다고 하면서 갔습니다.
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른 때처럼 외국인을 찾아다니며 영어 연습을 했을 때보다 더 좋았습니다. 첫째, 그들에게 한국 사람은 영어보다 우리말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재인식시켜서 좋았고, 둘째,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한국에서는 한국말을!'이라는 저의 생각을 암시적으로 전해서 좋았고, 셋째, 동방예의지국인답게 친절히 길을 가르쳐줘서 좋았습니다.
지금의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안에서 손님인 외국인에게 친절하게 대해준다 함은 우리가 그들의 문화, 언어 등의 모든 비위를 맞춰주는, 즉 간.쓸개 다 빼줘가며 하는 과잉친절을 의미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에서 이런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여행온 외국인들에게 '한국 관광에 있어 불편한 점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그 첫째가 '한국사람들은 너무 영어를 못한다. 그래서 길을 물어도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어 고생이 많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송 사회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영어가 경쟁력인 이 시대에 영어를 잘 해야 한다고...
그러나 제 생각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원래 해외여행 이라는 것은 언어로 인한 불편을 감수하고 하는 것 아닐까요? 왜 다른 나라에 와서까지 여행지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특히 영어)을 사용하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저는 우리나라에 여행온 여행객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그들이 그런 태도를 갖도록 그동안 너무 극진히 간.쓸개 다 빼주며 과잉친절을 베풀어준 우리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남북 정상회담때 북한의 어느 농촌지역에서는 외국 관광객들이 북한의 농촌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된 바 있습니다. 외국 관광객들이 보고, 체험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요? 외국 관광객들이 우리나라의 풍습, 문화, 자연 경관 등을 보고 진심으로 여행의 즐거움을 느낀다면 언어에 대한 불편함이 있더라도 그들은 다시 우리 나라를 찾거나 찾고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 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잘해 외국 관광객들이 언어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해도 풍습, 문화, 자연 경관 등 보고 체험할 것들이 제대로 갖춰줘 있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 나라에 아무런 매력도 갖지 못하며 다시 오고싶어 하는 마음이 없을 것입니다. 경제논리만 가지고 근시안적인 눈으로 모두들 영어 열풍에 휩싸여 있는데 저는 이것이 아쉽습니다. 길거리의 외국인만 보면 말을 걸려던 제가 지금은 이렇게 바뀌어 있답니다.
'세계의 지리'라는 교양 수업시간에 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외국인이 말을 걸거든 절대로 쑥스러워하거나 당황하지 마라.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다. 소국인처럼 행동하지 마라. 그들이 영어로 길을 물었을 때, 영어로 대답할 수 없다고 창피해 하지 마라. 왜냐하면 여기는 한국말을 쓰는 나라,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창피해 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나라에 왔으면서 기본적인 우리 말 하나 할 줄 모르는 그들이다. 그러니 당당하라. 그들이 말을 걸으면 우선은 우리 말로 대답하라. 간.쓸개 다 빼가며 우리가 우리나라 안에서 그들의 비위를 꼭 맞춰줄 필요는 없다. 비위를 맞추는 것은 친절이 아니다. 친절하게는 대하되, 필요하다면 영어로 대답을 해 주되, 여기가 우리 나라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그리고 그들에게 여기가 우리 나라라는 사실을 인식시켜라. 내 생각에는 자신의 언어를 잊고 남의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보다는 자신의 언어를 아름답게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가 훨씬 매력적인 나라이다.]
제가 드린 말씀을 읽고 조선말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면..... 그것은 오해입니다. 저는 세계화 시대에 세계화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한 적은 없습니다. 우리 것을, 적어도 우리 말을 지켜가며 세계화를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모습을 버리고 한 세계화는 과연 누구를 위한 세계화입니까?
5편에 걸친 긴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영어로 대답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날은 이들의 양아치같은 차림과,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말 한 마디 쓰지 않고 영어로 길을 묻는 그들의 건방진(?) 태도가 왠지 마음에 안들어 영어로 대답을 하기 싫었습니다. 한국인의 자존심이 있지... '우리나라에 왔으면 우리 말을 써야지... 건방지게 영어를...?' 그들이 길을 묻는 태도와 말투에서 저는 '한국에서는 영어면 다 통한다'는 생각을 그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느리고 친절한 말투로 그들의 질문에 이렇게 반문했죠.
"한국말 할 줄 아세요?" --> (우리말로)
이 때, 저의 말은 '한국에 왔으면 한국 말을 쓰셔야지요!'라는 생각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라는 식의 몸동작을 하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그것 참 유감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영어로 말을 했죠.
자루 : Can you speak Korean?
외국인 : Oh~~~! I can't speak Korean. Please English.
저는 연습장에 약도를 그려가면서 떠듬떠듬 영어로 설명해 주었죠. 나중에 그들은 고맙다고 하면서 갔습니다.
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른 때처럼 외국인을 찾아다니며 영어 연습을 했을 때보다 더 좋았습니다. 첫째, 그들에게 한국 사람은 영어보다 우리말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재인식시켜서 좋았고, 둘째,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한국에서는 한국말을!'이라는 저의 생각을 암시적으로 전해서 좋았고, 셋째, 동방예의지국인답게 친절히 길을 가르쳐줘서 좋았습니다.
지금의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안에서 손님인 외국인에게 친절하게 대해준다 함은 우리가 그들의 문화, 언어 등의 모든 비위를 맞춰주는, 즉 간.쓸개 다 빼줘가며 하는 과잉친절을 의미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에서 이런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여행온 외국인들에게 '한국 관광에 있어 불편한 점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그 첫째가 '한국사람들은 너무 영어를 못한다. 그래서 길을 물어도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어 고생이 많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송 사회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영어가 경쟁력인 이 시대에 영어를 잘 해야 한다고...
그러나 제 생각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원래 해외여행 이라는 것은 언어로 인한 불편을 감수하고 하는 것 아닐까요? 왜 다른 나라에 와서까지 여행지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특히 영어)을 사용하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저는 우리나라에 여행온 여행객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그들이 그런 태도를 갖도록 그동안 너무 극진히 간.쓸개 다 빼주며 과잉친절을 베풀어준 우리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남북 정상회담때 북한의 어느 농촌지역에서는 외국 관광객들이 북한의 농촌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된 바 있습니다. 외국 관광객들이 보고, 체험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요? 외국 관광객들이 우리나라의 풍습, 문화, 자연 경관 등을 보고 진심으로 여행의 즐거움을 느낀다면 언어에 대한 불편함이 있더라도 그들은 다시 우리 나라를 찾거나 찾고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 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잘해 외국 관광객들이 언어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해도 풍습, 문화, 자연 경관 등 보고 체험할 것들이 제대로 갖춰줘 있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 나라에 아무런 매력도 갖지 못하며 다시 오고싶어 하는 마음이 없을 것입니다. 경제논리만 가지고 근시안적인 눈으로 모두들 영어 열풍에 휩싸여 있는데 저는 이것이 아쉽습니다. 길거리의 외국인만 보면 말을 걸려던 제가 지금은 이렇게 바뀌어 있답니다.
'세계의 지리'라는 교양 수업시간에 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외국인이 말을 걸거든 절대로 쑥스러워하거나 당황하지 마라.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다. 소국인처럼 행동하지 마라. 그들이 영어로 길을 물었을 때, 영어로 대답할 수 없다고 창피해 하지 마라. 왜냐하면 여기는 한국말을 쓰는 나라,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창피해 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나라에 왔으면서 기본적인 우리 말 하나 할 줄 모르는 그들이다. 그러니 당당하라. 그들이 말을 걸으면 우선은 우리 말로 대답하라. 간.쓸개 다 빼가며 우리가 우리나라 안에서 그들의 비위를 꼭 맞춰줄 필요는 없다. 비위를 맞추는 것은 친절이 아니다. 친절하게는 대하되, 필요하다면 영어로 대답을 해 주되, 여기가 우리 나라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그리고 그들에게 여기가 우리 나라라는 사실을 인식시켜라. 내 생각에는 자신의 언어를 잊고 남의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보다는 자신의 언어를 아름답게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가 훨씬 매력적인 나라이다.]
제가 드린 말씀을 읽고 조선말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면..... 그것은 오해입니다. 저는 세계화 시대에 세계화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한 적은 없습니다. 우리 것을, 적어도 우리 말을 지켜가며 세계화를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모습을 버리고 한 세계화는 과연 누구를 위한 세계화입니까?
5편에 걸친 긴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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