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소설을 품다
-목성균의 「누비처네」를 읽고
강현자
목성균의 수필은 한국 현대수필의 흐름 속에서 비교적 분명한 개성을 형성해온 작품 세계로 평가된다. 그의 글은 체험을 바탕으로 일상적이고 평범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단순한 경험의 기록에 머물게 하지 않고 삶의 의미로 확장해내는 힘을 지닌다. 여기에 대상과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더해지면서 그의 수필은 서정성과 서사성이 조화를 이루는 안정된 미학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가 전통적 수필의 미덕을 유지하면서도, 서사의 조직성과 구조화라는 측면에서 소설적 기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설적 서사’란 사건 중심의 발단–전개–절정–결말로 이어지는 구조, 장면화된 서술, 그리고 정서의 축적과 절정의 형성을 포함하는 서사 방식이다. 목성균의 수필은 이러한 요소들을 내면에 끌어들이면서도 수필 고유의 형식을 잃지 않는 데서 그 개성이 드러난다.
이 글에서는 그의 대표작 「누비처네」를 중심으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수필이 어떻게 소설적 서사를 내포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드러나는 서사적 특성과 문학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목성균의 「누비처네」는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수필이지만, 그 내면에는 단순한 회상의 차원을 넘어서는 치밀한 서사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이 작품은 경험의 단편을 나열하지 않고 사건을 중심으로 조직된 하나의 이야기로 전개되며, 이러한 점에서 ‘소설적 서사를 가진 수필’이라는 성격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리하여 이 글은 수필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소설의 기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이 작품의 과거 회상 장면은 발단에서부터 서사의 방향을 분명히 설정한다. 화자는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 속에서 경제적 궁핍과 심리적 위축을 겪으며 전전긍긍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한 상황 제시는 배경 설명에만 그치지 않고, 이후 전개될 사건의 정서적 기반을 형성하는 기능을 한다. 결핍과 불안이라는 조건은 독자로 하여금 화자의 처지에 공감하게 만들며, 동시에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긴장을 유도한다. 이러한 긴장은 전개 단계에서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현실화 된다. 화자의 아버지가 소액환을 보내 누비처네를 마련하게 하고, 이를 계기로 화자는 고향으로 향하게 된다. 이때 ‘누비처네’는 단순한 소재이기에 앞서 가족 간의 정과 체면, 그리고 가족애의 연결을 상징하는 매개로 기능한다. 절정에 이르면 이러한 서사는 장면화된 방식으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추석의 달밤, 누비처네를 입은 화자가 아내와 딸과 함께 근친을 가는 장면은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다. 이 부분에서 서술은 설명을 넘어 구체적인 장면으로 제시되며, 독자는 마치 그 공간 속에 함께 서 있는 듯한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달빛 아래 펼쳐지는 가족의 모습과 그 속에서 드러나는 화자의 정서는 서사의 흐름 속에서 축적된 감정이 한순간에 응집되는 지점으로, 전형적인 소설적 절정의 형식을 보여준다. 특히 이 장면은 그동안 형성되어 온 정서적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결말에 이르러 이러한 서사는 하나의 정서적 인식으로 수렴된다. 화자는 아내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유대의 의미를 새롭게 자각하게 되며, 앞서 전개된 사건들은 이 깨달음을 향해 조직되어 있었음이 드러난다. 이때의 결말은 외부에서 덧붙여진 사유가 아니라, 서사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인식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누비처네」에서 들여온 과거 회상 장면은 발단–전개–절정–결말로 이어지는 완결된 구조를 통해 체험을 하나의 이야기로 조직하고, 장면화된 문체를 통해 서사의 생동감을 이끌며, 궁극적으로는 정서적 인식에 도달하는 서사적 완결성을 이룬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작품은 체험과 사유라는 수필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그 전개 방식에 있어서는 소설적 서사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제시한다.
따라서 「누비처네」는 단순히 이야기성이 가미된 수필이라기보다 체험을 서사적으로 재구성하고 그 과정을 통해 의미를 도출하는, 즉 ‘소설적 서사를 가진 수필’의 한 전형으로 평가할 수 있다.
「누비처네」는 체험을 서사적으로 조직함으로써 수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지만, 세부적인 구성에 있어서는 다소 아쉬운 지점 또한 발견된다. 특히 아내의 성향을 드러내기 위해 삽입된 ‘박중사 마누라’에 관한 일화는 서사의 밀도를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흐름을 완만하게 만들며, 서사의 집중도를 분산시킬 가능성을 드러낸다. 수필이 지닌 함축성과 절제의 미학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대목은 다소 장황하게 느껴질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부분적 한계가 작품 전체의 성취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비처네」는 체험과 사유를 중심으로 하는 수필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그 전개 방식에 있어서는 소설적 서사를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장르적 확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 작품은 수필이 서사를 통해 의미를 보다 효과적으로 조직하고 전달할 수 있음을 입증한다.
이러한 점에서 목성균 수필은 한국 수필문학사에서 하나의 전환적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수필의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표현의 방식을 확장함으로써, 수필과 소설의 경계를 보다 유연하게 재구성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누비처네」의 이러한 성취는 한국 현대수필이 나아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