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닦조기 행사 정동답사입니다..(14:00~17:30)
김경회, 김경란, 소안나, 민명숙, 윤애경, 임유상(6명) 참여하셨습니다.
김경란 선생님 쑥떡 준비해주셔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1. 이야기를 시작하며
정동 지명 유래
정동(貞洞)은 조선 초 한성부 서부 황화방에 속하였던 곳으로 1396년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 씨의 능인 정릉(貞陵)이 도성 안에 조성되면서 생겨났다. 태조는 신덕왕후의 능지를 직접 골랐으며 자주 찾았고 또 그 옆에 흥천사를 세워 명복을 빌었다. 하지만 1408년(태종8년) 5월 24일 태조의 승하와 더불어 정릉은 반년 사이에 도성 밖 사을한(沙乙閑)의 산기슭으로 옮겨지게 된다. 정릉은 성 밖으로 옮겨졌으나 그래도 그 자취는 남아있어 오늘날 이곳을 '정릉동(貞陵洞)' 혹은 '정동(貞洞)'이라 불리게 되었다.
정동 일대가 각국의 외교관과 선교사의 공간으로 변모한 것은 근대 개항기 이후의 일이다. 19세기 말부터 각국 공사관들이 정동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국공사관이 1883년 개설되고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각국의 공관이 들어서면서 정동은 국제교류와 외교의 중심지였고 서양식 교육기관, 종교, 의료시설 등 근대 서양문물이 유입되는 공간으로 변모하게 된다.
2. 정동 전망대에서 보는 덕수궁과 정동일대
아마도 덕수궁 궐내의 모습이 제일 잘 보이는 곳이 정동 전망대일 것이다. 덕수궁 , 중명전, 서울시 신청사, 서울도서관, 구 러시아 공사관, 미국대사관저, 영국대사관과 성공회성당 등 현재 정동의 모습을 보며 옛 정동을 만나보자.
임진왜란 이후 1593년 의주에서 돌아온 선조 임금이 월산대군의 옛 집을 거처로 삼은 데서 정릉동 행궁이 시작 되었고 광해군 때인 1611년에 경운궁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 김 씨가 이곳에 유폐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이곳을 서궁 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태에서 오랫동안 잊혀 진 경운궁 일대가 부활한 것은 1896년 아관파천 이후의 일이다. 이 당시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긴 고종은 장차 환궁할 곳으로 이곳을 지목하여 궁궐을 다시 짓게 하고 경운궁으로 환궁한다.
요즘 들어 아관파천이라는 용어를 러시아 공사관 망명 사건으로 부르자는 등 많은 말로 아관파천을 재조명 하고 있어 좋은 방향으로 왜곡되지 않게 역사가 해석되어지길 바라며 아관파천의 주역 엄귀비 명신여학교(지금의 숙명여대)를 창시한 그 여인의 숨결을 느껴보고자 한다.
또한 고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자랐던 덕혜옹주의 모습과 그를 위해 유치원을 만들었던 준명당 장소를 기억해 보자.
3. 정동교회와 이화학당
정동제일교회는 1885년 아펜젤러 목사가 선교사로 와서 한옥 한 채를 구입해 예배를 봄으로써 시작 되었고 1897년 현재의 자리에 감리교 예배당인 서양식 건물인 정동제일교회가 들어선 것이다. 정동교회는 일제 강점기 항일 활동의 거점으로서 이곳에서 독립선언문이 비밀리에 등사 되었다.
미국 라벤나시의 볼드윈 부인이 이름도 없이 사는 조선의 여성 선교를 위해 기부한 88달러가 씨앗이 되어 파견된 미국 감리교회 여선교사 스크랜튼 부인에 의해 1886년에 설립된 이화학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여성 교육기관 이다. 1887년 배꽃같이 순결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열매를 맺으라는 의미로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을 짓고 고종께서 편액을 하사했다. 이화학당에서 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역이 되었다. 정동 길을 걷다보면 스크랜튼 대부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보구여관 자리 터의 표석에서 곱단이를 비롯해 많은 여학생들의 이름과 우리나라의 여성을 위하여 헌신하는 스크랜튼 대부인과 독립운동을 하던 그 아들 스크랜턴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이화 학당에서 만나는 유관순, 하란사, 김점동, 이화의 여인들 우리가 걷는 정동 길은 여성의 역사가 펼쳐지는 “HERSTORY” 길인 것이다.
이화학당에 속한 심슨기념관은 미국컬럼비아 리버 지회의 홀부룩이 희사한 기금으로 1915년 준공되었고 당시 세상을 떠난 홀부룩의 동생 사라 심슨을 기리는 뜻에서 건물 명칭을 심슨 기념관이라 붙였다.
프랑스 태생의 독일인 이었던 앙트와네트 손탁은 1885년 조선에 부임하던 러시아공사 웨베르를 따라 처음 서울에 와서 탁월한 언어감각과 수완을 발휘하여 당시 궁중과 교류를 하였으며 고종으로부터 가옥을 하사받게 되고 후에 구 가옥을 헐고 양관을 건축하여 손탁호텔을 경영하였다.
4. 왕의 길
선교사가 그린 지도에 보면 왕의 길(King`s Road)이 눈에 띈다. 우리의 왕을 우리가 보호 못하고 외국의 군대에 의해서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었던 이 길, 이제 우리 다시 한 번 그때의 군주의 마음을 헤아려 보며 새롭게 정리되어가는 “왕의 길” “고종파천길”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제 우리는 대한제국의 길로 자리매김 하고자 한다.
구세군은 1865년 영국에서 윌리엄 부스에 의하여 군대식 조직을 갖추고 전도와 사회봉사를 중심으로 선교하는 국제적인 기독교의 한 교파이다.
한국구세군은 1908년 10월 영국에서 허가두 선교사관이 서울에 도착함으로 시작 되었다. 캐나다와 미국 등지에서 모은 헌금으로 1928년 지금의 정동 구세군 중앙회관 을 지어 구세군사관학교로 사용하였다. 이 건물은 우리나라 궁녀들이 머물렀던 장소로 많이 알려져 있다. 전통 왕조가 끝나는 무렵 그 많은 궁궐의 여인들은 또한 어떤 삶을 보내야 했을까?
5. 성공회 성당
각국 서양의 나라가 이곳에 왔을 때 서세 동점의 시기라 할까, 이곳은 영국인들이 개항시기에 이르러 지금까지 변함없이 차지하고 있는 이곳이 어떻게 변모해 가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국공사관과 이웃한 성공회서울대성당은 트롤로프 주교에 의해 건립이 주도된 것으로 1922년 영국인 아더 딕슨의 설계에 따라 영국성공회의 지원과 국내 신자의 헌금으로 착공되어 1926년 준공을 보았고 70여년 후에 영국런던 교외의 렉싱턴도서관에 성공회성당의 설계도 원본이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이 설계도를 바탕으로 증축 승인이 통과되어 1996년 축성식 이후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되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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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 애경 (리라) 작성시간 26.06.09 정동 전망대에 올라 곳곳의 숨결을 간직한 뷰가 한눈에 펼쳐져 시야에 들어왔네요.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 -
답댓글 작성자임유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9 정동 영역 전체적으로 조망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장소 입니다. 각국 공사관 위치와 경운궁의 영역을 비교해 보기에 너무 좋은 장소입니다.
전과 달리 관람시간이 지정되어 있어(13:30~15:30) 주의하셔야 합니다.
바다열차 휴게소에 구세관 박물관과 전망대 리플렛을 비치해 놓았는데 그 리플렛에는 전망대 관람 시간이 평일 13:30~17:30 주말 09:00~17:00로 되어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네요.
선생님이 계셔서 한층 더 좋은 답사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윤인영 작성시간 26.06.09 정말 뜻깊은 닦조기 행사입니다.
참여해주신분 너무 멋지십니다. 고밉습니다. -
작성자임유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9 반기환 선생님의 닦조기 행사가 계속 이어지는데 대하여 기쁩니다. 앞으로도 멋진 닦조기 행사가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회장님의 관심과 격려에 대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