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강해노트 (28-3)
5리, 10리, 구하는 자, 꾸는 자
원저자: 김성수 목사 / 편집자: 카이로스
(마 20:20-24)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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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절: 구하다 = ‘아이테오’ = 빚으로 넘겨주세요.
- 21절: 무엇을 원하느냐? -> (신명기에 ‘복과 저주, 생명과 사망을 두나니, 너희들은 둘 중에 생명을 택하라’ 하셨다.) / 후반: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 좌편은 지옥이다. 이것은 두 아들 중 하나는 지옥에 보내달라는 말이다.
- 22절: ‘마실 수 있느냐?’ => 의문문이 아니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받을 세례(십자가, 성령?)를 너희가 받을 것이다.] (원문에는 세례 얘기가 있는데 한글 개역 성경에는 아예 빠졌다. (막 10장 38,39)에는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라는 표현이 분명히 등장한다.) ->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넘겨줄 빚이다. 너희는 그것을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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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피소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와중에 일어난 얘기이다. 십자가가 무엇을 위해 골고다에 서게 되는가를 확실히 설명해 주시기 위해 이 에피소드가 들어 있다. 예수님의 죽음과 다시 사심은 우리에게 참 생명을 허락하시기 위함이었다. / 그런데 아들을 낳았다고 하는 자가 그 아들들(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와서 무엇을 구한다(‘아이테오’). 십자가를 말씀하시는 주님께 와서 ‘빚 갚으세요’ 하는 것이다. “그 십자가로 우리에게 넘겨주려 하는 것이 이것 아닙니까?”하고 질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 주님께서 “그래, 무엇을 구하느냐? 나는 준비가 되어 있다. 원하는 것을 말해 봐!”라고 답하신다.
그 아들을 낳은 자가 말한다.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주세요.’ -> 한 마디로 높은 자가 되게 해 달라는 말이다. 이게 십자가를 붙들고 하나님께 빚을 요구하는 자들의 요구사항이다. 어떻게 해서든 인간의 가치를 높여주고 자기 확장과 성숙에 도움이 되는 것을 달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똑같은 단어인 ‘아이테오’를 사용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할 진짜 빚의 내용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 내가 그 빚의 내용을 알게 해 주겠다.’ 하시고 ‘내가 마실 잔을 너희도 마실 것이고, 내가 받을 세례를 너희도 받을 것이다. 그게 내가 갚을 빚이다.’ 답하셨다. 개역 성경에는 세례의 부분은 아예 번역도 안 되어 있다. 세례는 성령 세례(?)를 말한다. (토론: 여기서 세례는 십자가를 말하지 않는가? 성령 세례로 보는 데에는 상당히 무리한 측면이 있다. / 註: 잔과 세례는 둘 다 십자가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넘겨줄 빚, 우리에게 ‘구하라’고 하시는 것은 ‘성령 세례’와 ‘새 언약의 잔’, ‘진리의 말씀’이다. (註: 김 목사는 여기서 의도적으로 [새 언약의 잔과 성령 세례]를 연결시켜 설명하려고 한 것 같다.)
(고전 12:13)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진리의 성령에 의해 육이 죽고, 영이 살아났음을 말한다. 바울은 그 진리의 성령을 마셨다고도 표현한다. 위의 물을 마신 아래의 땅을 떠오르게 한다. / 진리가 들어오면 이 ‘호 코스모스’로 진리를 알게 되고, 하늘을 알게 되기 때문에 [육, 세상, ‘호 코스모스’]가 죽고 영으로 산다. 그것을 세례라고 한다. 또 성령을 마신다고도 한다.
(마 26:27-29) 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새)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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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절: 언약=>새언약 | 개역 성경 번역에는 ‘새’가 빠졌다. / 원문에는(τῆς διαθήκης) 정관사 ‘τῆς’가 붙어 있어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생겨난 막연한 언약이 아니라, "구약 선지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예언되어 왔고, 이제 예수의 피로 성취될 바로 ‘그’ 유일무이한 새 언약임을 강력하게 지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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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포도주잔을 나누어 주시면서 그것을 새 언약의 피라고 하신다. 주님께서 마실 잔은 새 언약, 진리이다. 옛 성전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덧입혀지는 형국이다. 그게 새 언약이다. 그런데 그 새 언약의 잔을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마시겠다고 하신다. -> 우리에게 그 새 언약의 ‘물 포도주’가 진리의 성령으로 부어지게 된다.
예수님께서 ‘내가 생수이니 내게로 와서 마셔라’ 하시고, 그 생수를 진리의 성령이라고 말씀하신다. 그게 주님이 마시는 잔이다. 그러면 그 배(코일리아, κοιλία, 자궁, 성전)에서 진리가, 성령이 흘러넘치게 된다.(요 7:38)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넘겨주실 빚은 ‘진리의 말씀’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아들을 낳았다고 하는 자들도 여전히 자기자신의 가치 향성과 자아 확장에만 목적을 두고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반복해서 ‘구하라(아이테오), 찾으라(제테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면 왜 주지 않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줄 것을 가지고 달려갈 준비가 이미 다 되어 있는데 왜 그걸 달라고 하지 않느냐? 왜 밥까지 굶어가며 엉뚱한 빚만 요구하고 있어?
우리가 영생 받기를 더 원할까?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 주시기를 더 원하실까? 우리는 영생이 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우리가 영생을 요구해?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더 원하신다. 막상 하나님이 구하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다 준비해 놓고 계시는데 아무도 구하는 자가 없다.
우리가 마실 것은 진리, 생수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구하라’라는 것은 ‘말씀’, ‘진리’이다. ‘말씀, 진리, 생수 주세요!’ 하면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는 것이다.
(마 21:22)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너희가 기도 안에서 무엇이든지 믿고 ‘빚 갚으세요’ 하면 그것은 다 받게 될 것이다. -> 기도도 결국 진리의 말씀에 관한 것이다. / 원하는 것은 아무것이나 다 구하는 것을 기도라고 하지 않는다. ‘너희가 기도 안에서 무엇이든지 믿고,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셨으니, 그 언약을 확실히 믿고 그것 갚으세요.’ 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주신다는 뜻이다.
(요 4:9-10) 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좀 달라’ 하시는 주님에게 ‘왜 나에게 물울 구합니까?’ 하고 반문했다. 거기서도 ‘아이테오’라는 단어를 썼다. 주님께서 넘겨줄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시기 위해 그런 장치를 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는 ‘네가 나를 알았더라면 나에게 생수를 구했을 것이다’ 답하신다. 거기에 쓰인 단어도 오늘 본문의 ‘아이테오’와 같은 단어이다. -> 아담들이 하나님께 구해야 할 유일한 것은 생수 즉, 진리의 윗물이다.
그렇게 구하면 하나님이 당연히 주신다 / ‘꾸러 온 자, 꾸려고 하는 자, 꾸다’라는 단어가 선물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우리가 구하면 하나님이 당연히 주신다는 것이다. / 신기한 것은 진리는 구하는 자에게는 자기를 계속 열어 주지만, 진리에 관심이 없는 자들에게는 스스로 감춰 버린다. 그래서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나의 경험상 이것은 확실하다.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는 말도 같은 맥락의 말이다. 여기서 ‘꾸다’라고 번역된 ‘다네이조’는 ‘선물’이라는 뜻의 ‘다네이온’에서 온 단어이다. 선물로서의 빚을 달라고(갚아라) 하는 이들에게 거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거절하다(ἀποστρέφω)’라는 단어도 ‘분리, 나눔’이라는 뜻의 ‘아포(ἀπό)’와 ‘반대로 돌리다, 틀다, 바꾸다’라는 뜻의 ‘스트레포(στρέφω)’의 합성어이다.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그 빚(진리)을 달라고(갚아라) 하는 이에게 그것을 분리하여 반대로 뒤틀어서 주지 말라 즉, 똑바로 주라, 그대로 전해 주라는 말이다. ‘꾸려고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가 그 뜻이다. 그러려면 물이 내 안에 있어야 흘려 줄 수 있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레오, 레마’라고 했다.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찾아가셔서 ‘신부가 신랑에게 구해야 할 것’에 대해 설명하시는 그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아들인 약속의 자손 이삭의 신부를 구하러 가는 종의 이야기와 ‘데칼코마니’이다.
아브라함이 종을 보내어(예수님이 이 땅에 종의 모습으로 오셨다) 아들의 신부를 데려오라고 우물가로 보낸다. 그 종에게 우물가로 가서 ‘나에게 물을 좀 대봐!’그렇게 말하라고 시킨다. 그래서 그 종에게 물을 대는 여자가 있으면 그가 ‘약속의 후손’ 이삭의 신부이다. (-> 리브가의 이야기.)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은 그 물이 없었다. (그러니 물을 가진 예수님이 물을 줘야 한다. 이것은 물론 상징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녀에게 물을 대 주시고, 그녀는 그 물을 가지고 동네로 내려가 (동네 사람들에게) 물을 대는 그림이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이다. 그게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그 여자가 구원을 받았나? 못 받았나? 그때 진리를 이해했나? 못 했나?] 이런 것은 성경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 42절은 하나님께 구하여 선물로 받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달라고 하는 자들에게 다른 것 섞지 말고 그대로 넘겨주라는 말이다. 그 말에 대응되는 짝도 한 번 찾아보자.
(신 15:7-8)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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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절: ‘엘로힘’이라는 단어를 파자하면 ‘네 손을 그에게 펴서’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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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가 구약에서 이런 말씀을 읽어도 이것을 단순히 ‘구제 열심히 하라!’는 말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만 보이는 것을 어두움이라고 한다.)
진리가 없어 마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손을 펴서 진리로 꾸어주라, 선물로 넘겨주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가 진짜 부자가 된다.) 그러나 그 진리를 가지지 못한 자는 주지 못한다. 성경은 그자를 악인이라고 부른다.
(시 37:21) 21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안에 가진 것이 없어서 줄 것이 없는 자는 악인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사랑으로 흘려 줄 것은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 그러나 들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딤후 4:2-5)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진리를)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메그로스)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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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 ‘야단쳐라’. 진리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일단 야단맞는 그런 느낌을 받아야 한다.
5절: 고난을 받으며: 진리를 전하는 이에게 있어서 이것(고난)만큼 마음 아픈 것이 없다. 조금 못 먹고 못 입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듣던 이들마저 ‘아, 이제 못 듣겠어. 아 어려워.’ 이러고 떠나면 가슴을 후벼 파는 것같이 아프다. 그래서 우울하다. 그게 고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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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자기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보람을 느끼게 해 주는 가짜 스승을 두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도 하라는 것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하니까 그냥 아무 때나 길거리 돌아다니면서, 십자가 들고 다니면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네 안에 줄 것을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이다. 그래서 구하는 자가 있으면, 꾸러오는 자가 있으면 선물로 빨리 주어버려라, 빚 갚으라는 것이다. 그게 하나님 나라의 운행 원리이다. 계속 흘려주는 것이다. 그게 고난이다.
(벧전 3:14-15)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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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절: 고난받는 것이 복이다. 세상이 다 동의하고 박수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목사님이 복음 전하다가 쫓겨났다고 하는데 그게 복이다. 진리를 전했더니 ‘나가! 못 듣겠어!’ 그러더라는데 그게 복이다.
15절: 거룩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고 다른 걸로 섞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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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전하는 데에는 반드시 고난과 핍박이 따른다. 대다수의 세상은 못 알알아듣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게 복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전하라.
네 안에 마음으로 가지고 있어야 이심(以心)이 전심(傳心)될 것 아닌가? 구약의 선지자들도 ‘아, 싫어요. 안 해요.’ 하며 집비둘기처럼 계속 도망 다녔다. 집비둘기가 ‘요나’이다. 그는 하나님을 끝까지 반대하였다. 하나님이 하라 하시는 것을 끝까지 반대하면서 떼를 짓는 자의 모형이 요나이다.
(롬 13:8)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사랑으로 완료되는 진리의 말씀 외에는 다른 빚 넘겨주고 넘겨받고 그런 것 하지 말라. 진리로만 교제하라. 그렇게 전하다 보면 그것이 자기를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돈 꾸고, 꾸어주고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성도의 교제에는 ‘아가페, 진리’ 말고 딴 얘기 하지 말라는 말이다. 무슨 어플리케이션, 적용, 이런 거 얘기하지 말고, 말씀만, 진리만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사랑의 빚만 지라는 것이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는데 무슨 그것을 ‘어플리케이션’해서 또 얘기해? 그것은 천(千)으로 다 완성되었는데 그런 것 얘기 하지 말고 사랑만 얘기해!’(‘에스카톨로스 코드란테스’) 그렇게 전하다 보면 그게 나를 풍요롭게 한다.
(잠 11:24-25) 24 (내 것을 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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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절: 많이 도와줄수록 더 많이 주겠다는 말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 당장 다 팔아서 ‘올인’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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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설교자의 특권이라면 특권인데, 교육학에서 가르치는 자가 가르침을 받는 자에게 100을 주면 95는 가르치는 자에게 쌓이고, 5는 가르침을 받는 자에게 간다고 한다. 진리를 전하는 것도(설교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진리를 전하면 아흔다섯(95)은 내 안에 풍요로 쌓이고, 5가 상대방에게 전해져서 주는 자가 진리로 풍요로워진다.
설교를 들어도 복습하지 않고 다음 주에 교회에 오면 그 전주의 설교는 제목도 기억 안 난다. 딱 5% 남는다. 그러니까 여러 번 들어야 한다. 그런데 내 것을 자꾸 퍼주면 그게 내 안에서 또렷해지고 더 깊어진다. 내가 더 풍요로워진다.
설교를 들을 사람이 없으면 나에게 계속 들려준다. 그래서 시편 기자들이 그렇게 혼자 중얼거린 것이다. 시편은 다 독백이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자기가 가진 진리를 스스로에게 계속 말해 준 것이 시편이다. 그것을 묵상이라고 한다.
여러분도 다른 일에 너무 바쁘게 살지 말고 스스로에게 그 진리의 복음을 자꾸 들려줘라. 그러면 자신이 풍요로워진다. 주는 만큼 풍요로워지는 하늘의 원리. 그래서 부요하신 하나님이 계속 섬겨주시고 넘겨주시고 흘려주시는 것이다. 그게 하늘의 부자이다. ‘오리, 십리, 구하는 자, 꾸는 자’에 대한 설교가 잘 이해되었기를 바란다.
오늘날 교회는 생각할 시간을 다 뺏아 버린다. 특별새벽기도에 한 달씩 열심히 나오게 하고, 무슨 선교, 무슨 선교 계속 돌려서 생각할 시간을 안 준다. 앉아서 생각하려고 하면 잡념 생긴다고 또 일 시키고, 삽 주고 지하실 파라고 마구 몰아댄다. 여러분은 다른 것 다 멈추고, 스스로에게 자꾸 들려주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것을 기도라고 한다,
마태복음 6장에 나오지만, 시편이 다 기도이다. 그리고 그것 자체를 찬송이라고 한다. 너무 바쁘게 살지 말고, 자기에게 자꾸 들려줘서 ‘나’ 하나 구원하고 가는 것이다. 그 길에 진리가 흘러가는 것뿐이다. /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서는 최고로 부요하신 하나님이 계속 흘려 주신다. 왜? 그게 풍요로운 것이고, 그게 풍요하게 되는 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이 세상은 다르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속 퍼주신다. 모든 존재가 다른 이를 위해서 퍼주는 곳, 거기가 천국이다. 그렇게 다 퍼주는데, 점점 그들이 풍요해진다. 그게 하늘의 부자이다.
다음 주에 ‘에스카톨로스 코드란테스,’ 그 사랑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래의 것으로 위의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이 세상에선 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아듣는 이가 있고, 마음으로 간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됨됨이나, 현실, 환경 이런 것 바라보지 말게 하시고, 그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뜻과 진의를 잘 분별하여, 세상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고 언제든지 내 안에 간직한 그 진리를 다른 이들에게 사랑으로 흘려 줄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