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파트리스 르콩트 (Patrice Leconte)
주연: 쟝 로슈포르, 안나 갈리에나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1990)
이발소의 주인이 되고 싶었던 어릴 때 꿈이 이루어져 행복에 젖는 어느 중년 남의 표정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화제의 히트작. 92년에 제작된 프랑스 영화 중 그 작품성에 있어서 최고의 평가를 얻은 영화이다. 매년 가장 혁신적인 영화에 주어지는 루이 델륙 상을 수상했고, 미국에서도 보기 드문 호평과 흥행 실적을 올렸다.
보통 사람들의 숭고하리만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지며, 애절한 결말은 보는 이의 가슴을 파고 든다. 여자 이발사와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와의 연정과 결혼, 그리고 그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기위한 마지막 선택으로 이어지는 줄거리는 차라리 변죽에 불과하다. 너무나 상징적이고 현학적인 주제 때문에 다소 현실감이 없다는 단점은 있으나, 프랑스 영화 특유의 정서와 영상 감각이 살아있는 영화를 정말 오래 간만에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영화 줄거리 (Synopsis)
앙뜨완(Antoine: 쟝 로슈포르 분)은 12살의 소년이다. 그에게는 비밀스런 즐거움이 있었는데, 아름다운 쉐퍼 부인이 주인인 이발소에 가는 일이다. 그녀가 풍기는 향기와 부드러운 말투에 완전히 매혹당했기에 머리를 기를 새가 없었다. 어느날 저녁 식사때 아버지가 장래에 대해 물었을때 서슴없이 미용사의 남편이 되겠다고 대답했고, 그날 이후 미용사의 남편이 될 꿈을 간직한 채 거의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가 마틸드(Mathilde: 안나 갈리에나 분)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마틸드는 주인이 은퇴하면서 물려준 이발소의 주인이었고 조심스럽고 매력적인 여자였다. 처음에 그녀는 예약 손님이 있다는 이유로 그를 거절했으나 다시 그녀를 찾아갔을 때 그는 청혼했다. 아버지의 말씀인 "강한 신념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고 기필코 마틸드와 결혼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녀 주위를 3주일동안 맴돈 후 다시 찾아갔을때, 뜻밖에도 그녀가 "아직도 원하신다면 결혼할께요."라고 말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의 꿈이 현실화된 것이다. 미용사의 남편이 되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고 어머니와는 인연을 끊었다. 형과 형수와 함께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날, 남자는 아름다운 미용사 신부와 신들린 듯 춤을 춘다. 어릴 적 자신의 소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지만, 앙뚜완에게는 오히려 꿈같은 환상적 세계가 전개되려는 시점이 된다.
취기와도 같은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 남자의 일이란 미용사 아내를 그저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이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기만 했다. 둘만으로 행복한 그들은 아무도, 아무 것도 필요치 않았다. 아이도 없이. 친구도 없이. 남자는 말한다. '그녀의 날씬한 배를 임신과 출산으로 망치고 싶지 않다'고. 남자에게 여자는 여신이었고 이발소라는 장소는 하나의 성전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가 곧 삶이었고 사랑이었던 것이다. 마틸드가 일을 하고 있으면 그는 옆에서 도와주거나, 때쓰는 아이를 달래주기도 하고, 그녀와 단둘이 머물수 있는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곤 했다. 10년동안 사소한 일로 단 한번을 다투었을 뿐인데도 그의 심장은 얼어붙을 정도고, 그녀를 향한 사랑은 강렬하고 깊었다.
어느 날, 앙뜨완과 마틸드는 지금은 은퇴하여 양로원에서 지내고 있는 미용실주인 노인을 만나러 가게되고, 그 곳에서 마틸드는 어둡고 쓸쓸한 삶의 주름을 보게 된다. 앙뜨완을 만나기전 마틸드는 너무나 외롭게 지내왔다. 그녀는 그런 삶의 주름을 알고 있었다. 마틸드는 행복하게 일생을 마치고 싶었다. 지금 앙뜨완과의 완전한 행복속에서 말이다 행여 앙뜨완이 자신보다 먼저 사라진다면, 쓸쓸한 양로원의 노인처럼....
심한 번개와 비가 내리던 날, 둘은 사랑을 나눴다. 그리고 마틸드는 폭우 속으로 사라져 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에게 보낸 한통의 편지만을 남긴 채....
"사랑하는 이에게. 먼저 떠납니다. 사랑을 남기고가려구요. 아니 불행이 오기전에 갑니다. 우리의 숨결과 당신의 체취와 모습, 입맞춤까지 당신이 선물하신 내 생애 절정에서 떠납니다. 언제나 당신만을 사랑했어요. 날 잊지 못하도록 지금 떠납니다."
그녀는 앙뜨완과의 완전한 사랑의행복을 영원히 갖고 싶었다. 그녀는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억수같이 비가 오는 날, 그녀는 그런 소망을 이루었다. 마틸드가 떠나간 빈 미용실을 지키고 있는 앙뜨완, 손님이 들어와 미용사가 어디로 갔느냐는 질문에 금방 돌아 올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마틸드는 앙뜨완의 사랑속에 영원히 정착한 때문이리라! 원제의 의미는 "Le Mari de la coiffeuse 미용사의 남편"이지만, 번역제목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이 잘 어울린다..
영화의 중심에는 세 가지 시선이 있다.
어린 시절 쉐퍼부인을 바라보던 앙뚜완의 시선과 마틸드를 바라보는 성인이 된 앙뚜완의 시선, 그리고 지금 죽은 마틸드를 기다리는 앙뚜완의 시선이다. 감독은 두 미용사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두 이야기, 두 시선을 섞어 놓고 있고 그 상황을 바라보는 현재 혼자 남은 허망한 앙뚜완의 시선을 다시 끼어 넣는다. 그런데 나머지 두 시선은 모두 어린 시절의 순수한 기억에 맹목적으로 복종하고 있기 때문에 마틸드라는 새로운 대상을 향하는 성인이 된 앙뚜완의 성적 욕망의 시선은 차마 숭고하고 신비스럽게 움직이고 있으며 절대적이기까지 하다.
라캉에 따르면 '숭고함'은 욕망하는 대상과의 거리감에서 생긴다. 욕망하지만 닿을 수 없을 것이라는 거리감이 대상에 대한 경이로움을 갖게 하는 것이다. 앙뚜완의 시선들은 대상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시선아래 놓여져 지배당하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의 시선에조차도 대상에 대한 숭배와 신비로움으로 채색된다.
어린 앙뚜완에게 쉐퍼 부인은 소유해야할 대상이기 이전에 바라봄의 대상이며 궁극적으로는 소유할 수 없기에 상상의 대상에 그친다. 한편, 성장한 앙뚜완에게 마틸드는 소유하고픈 욕망의 대상이고 이미 소유한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상상의 대상으로서의 잔영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녀가 없는 현재에서조차 남자는 실재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녀가 있는 듯 여전히 환상에 사로잡혀있다.
1. 환상은 주체가 삶을 영위하는 수단이다. 비록 그것이 허구일지라도 신기루가 없이는 사막을 걷지 못하듯 인간은 추구하는 대상이나 목표 없이 살아가지 못한다. 바라봄과 보여짐의 교차에서 생기는 이미지, 그 매혹 없이 인간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지 못한다....
'환상'은 주체가 현실을 살아가도록 하는 거짓 동력이지 않은가. 앙뚜완의 시선은 대상의 실체를 꿰뚫지 못하고 실체라고 믿는 대상의 이미지에 머물러 있다. 절대적이고 변함없는 남자의 시선은 깨어나지 못하고 이미지 속의 환상의 그녀를 향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상상계에 갇힌 존재이다.
한편, 남자를 만나기 전, 마틸드의 시선은 이발소의 창 밖을 향하거나 그녀가 즐겨 읽는 대중 잡지만을 향해 있었다. 그러나 남자가 나타나면서 그녀의 시선은 남자를 향하게 된다. 이발을 하면서도 미용사 마틸드의 시선은 손님의 머리보다는 남편을 향하며 남편은 마틸드를 향한다. 그들은 서로가 바라봄의 대상인 것이다.
10 년이라는 꿈같은 세월이 지난다. 그녀의 시선에는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여전히 장소는 이발소의 내부이다. 앙뚜완은 아내를 바라본다. 그러나 아내의 시선은 욕망의 대상이었던 남편에게 머물지 않고 밖을 향하고 있다. 그녀가 다시 창 밖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장면은 상상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녀의 시선에는 어느새 무료함(l'ennui)이 담기기 시작한다. 변함없이 둘만의 공간인 이발소 내부에 머무는 남자의 시선과 이발소 밖을 향하기 시작하는 여자의 시선 사이에 긴장감이 일어난다.
다시 라캉의 말을 빌면, 대상을 통해 완벽하게 욕망이 충족되리라 믿는 주체는 여전히 상상계에 머문다. 그러나 이제 획득된 대상에게서 환상을 거둠으로써 주체는 상징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른 대상을 발견하여 욕망의 시선이 옮겨가게 되면 이미 주체는 실재계이 있는 것이다.
2. 내가 보기만 하는 단계가 상상계요, 보여짐을 아는 단계가 상징계요, 바라봄과 보여짐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것이 실재계이다.
앙뚜완과의 10년의 결혼 생활을 통해 그를 소유한 마틸드는 상상계에서 벗어나기 시작해 상징계를 알아차려 버렸고 어느새 실재계의 입구에 서있는 것일까.
어느 날, 마틸드와 앙뚜완은 처음으로 이발소 밖의 외부 공간에 위치하게 된다. 그들은 이발소의 전 가게 주인이 있는 양로원을 방문중이다. 서글픈 햇빛과 산책으로 일과를 보내는 따분한 노인들 사이에 두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처음으로 개입된 외부사람, 이발사 노인네가 그들과 함께 벤치에 앉아있는 삼자구조는 불안해 보인다.
외출에서 돌아온 여자는 말한다. "산다는 게 역겨워요."
10년만에 처음으로 그들 사이에 사소한 다툼이 있었지만 그 날 밤, 곧 두 사람의 화해가 이뤄진다. 그간 피우지 않던 담배를 피우고 여러 향수를 섞어 칵테일처럼 마셔대고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그리고 격정적인 정사를 나눈다. 이제 그들을 도취하게 만드는 것은 서로에게 욕망의 대상이었던 그들 자체가 아니다. 음악과 춤, 그리고 술의 힘을 빌어 취하고 사랑한다. 그날 밤, 그들은 이발소의 '거울' 앞에서 정사를 나눈다. 바라봄의 대상에서 그들 자신이 보여짐의 대상으로서 비춰진 첫 순간이다. 다음날, 취기에서 깨어나는 순간... 눈을 뜬 앙뚜완은 퓌세부인의 죽음을 목도하는 어린 시절의 앙뚜완의 시선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환각을 본다. 늘 바라보기만 하던 앙뚜완이 처음으로 자신이 보여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더 인식하는 순간이 된다.
'바라보기'만 하던 주체가 '보여짐'을 당하는 것은 주체의 객관화가 시작됨을 의미한다. 그의 상상계에 조심스런 파문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상상계에 속해있으면서 상징계를 예감하는 남자의 시선과 그보다 멀리를 내다본 여자의 시선 사이의 어긋남은 결국 비극을 낳는다. 완벽한 충족은 죽음을 의미한다던가. 우리는 종종 연인의 사랑을 확인하고도 끝끝내 자살하고 마는 베르테르나 사랑의 절정에서 사랑을 죽음으로 마무리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비극의 주인공들을 만난다. 그들이 죽음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사랑의 완성은 없었을 것이며 그 사랑은 변해갔을 것이다.
욕망의 충족과 죽음.. 마틸드는 죽음을 택한다. 인식의 주체인 인간 스스로는 '행복한 상상계'에만 머물 수 없는 것인가.
3. 이 세상에서 기다리지 않는 것은 없다.
홀로 남은 남자는 사랑의 절정에 대한 기억으로 살아갈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남자는 손님에게 말한다. "곧 미용사가 올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틸드를 기다린다. 이발사의 남편은 '오늘도 그들이 물결처럼 다시 만나야 할 날들을 생각'하고 있다....
사운드 트랙 (Sound Track)
이마 위에서 사각거리는 가위 소리, 코끝에 스치는 샴푸와 톡쏘는 오데 콜롱의 내음, 잘려진 머리카락 때문에 가끔씩 따끔거리는 목덜미 그리고 머리를 감겨주는 미용사의 손길에서 전해지는 야릇한 쾌감. 그런 감촉들이 하나로 뒤엉켜있는 미용실은 어린 시절,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추억 하나쯤은 남겨놓을만한 공간이 아닐까. 해변 위를 넘실거리는 아랍풍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던 소년의 꿈은 마흔줄에 들어섰어도 여전히 그 미용실 안에 머물러 있다. 어머니가 짜준 털실 수영복 때문에 성에 대해 일찍 눈뜨게 되었고, 장차 커서는 미용사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다는 아이, 앙뜨완. 쉐퍼 부인을 향해 품었던 그의 에로틱한 환상이 마틸드를 만나 마침내 이루어지고....
영화와 사운드트랙 안에서 마이클 나이만 (Michael Nyman)의 스코어와 뚜렷한 경계를 그리는 일련의 아랍 노래들은 두사람이 함께하는 현실의(그러나 현실과는 유리된) 시간과 공간 위에서 앙뜨완의 앞에만 놓여져있다. 음원이 화면 속에 노출되어 두 사람 모두에게 들리지만, 그 이국적인 멜로디에 반응하며 신나게 춤을 추는 것은 오직 앙뜨완이기 때문이다. 마치 음악이 그의 귀에만 들리는 것처럼, 마틸드는 가만히 그를 지켜보거나 손님의 머리를 다듬을 뿐, 그 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추지는 못한다.
그녀에게는 과거가 없기에. 두사람의 관계는 앙뜨완이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혀있듯 마틸드는 그의 현재에 사로잡혀있었고, 마틸드의 현재가 앙뜨완의 과거를 채워주듯 그의 과거는 마틸드의 현재를 채워주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앙뜨완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선율로 채택된 음악은 우리나 마틸드가 익히 아는 낯익은 멜로디가 아닌 이국적이고도 생경한 멜로디였고, 바로 거기에서 완벽한 사랑의 완벽하지 못한 비극은 시작된다.
과거와 현재에 모두 만족하는 앙뜨완에게는 그것은 문제될 것이 없지만, 마틸드쪽에서는 결코 그녀의 반쪽을 채워주는 완벽한 사랑의 모양새는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앙뜨완의 모습은 그녀가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홀로 미용실을 지키고 앉아있던 앙뜨완이 손님을 맞아 틀어놓은 카엘 자이드 (Khael Zaid)의 'Saffak Alik(당신에게 박수를)'에 맞춰 신나게 춤추는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가 사랑한 사람이 마틸드였는지 아니면 그저 환상 속의 한 여인이었는지 조금은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나 그 혼란스러운 느낌의 뒷끝에 자리잡은 마이클 나이만의 스코어는 그의 몸짓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홀로 남은 이의 외로움에 그 속내가 닿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제 앙뜨완에게 마틸드는 현재가 아닌 과거의 일부가 되었으므로..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에서 주로 음악을 맡던 나이만은 빠뜨리스 르꽁트 (Patrice Leconte)와는 이 영화의 전작인 살인 혐의 (Monsieur Hire) 에서 심플한 현악기의 연주로 먼저 호흡을 맞추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주된 스코어의 선율은 메인 테마를 피아노로 연주한 엔딩크레딧의 'Michael Nyman 6'를 제외하고 모두 현악 연주로 채워져 있다. 아랍 노래들이 앙뜨완의 환상과 함께 흐르고 있었다면, 그 음악과 결을 그리는 나이만의 미니멀한 스코어는 두 사람의 사랑이 서로 반응하는 순간과 함께한다.
재미있는 점이라면, 아랍 노래와는 달리, 두사람의 시각권에서 그 스코어의 음원은 모두 벗어나있지만 그들의 내부에서는 공감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외부와는 단절된 채 두사람만의 사랑이 완성되는 이상적인 공간이자, 차가운 현실과는 유리된 온실같은 공간. 은은한 현의 스코어 속에 두사람의 향기와 체취 그리고 숨결이 보존되어 있는 곳. 그곳을 떠나 요양소에서 만나는 늙은 아고뺑이나 미용실을 떠나는 손님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틸드는 '삶은 역겨운 것'이며, 앙뜨완은 '죽음은 향기롭다'고 되뇌인다. 유리된 공간, 유리된 감정 그리고 유리된 상태... 그 속에서 나이만의 스코어는 그 어느 삶보다도 그리고 죽음보다도 은은한 사랑의 향기를 뿜는다.
불어에서는 사랑 - 라무르(l'amour)와 죽음 - 라모르(la mort)의 발음은 처음과 끝이 동일하다. 사랑과 죽음은 서로 닮아있다. 사랑의 절정은 지속되지 않는다.
To Tango Tis Nefelis - Haris Alexi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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