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름 2.0 에 실렸으면 좋겠는 글 (무슨 소리래 -_-)
헤모글로빈의 향연을 즐기라고 말하는 정신 나간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6 년 만에 내 놓은 <킬빌> 은 버트헤드를 떠오르게
만드는 외모와 비디오 가게 점원 출신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감독 만큼이나 흥미 진진하고 독특하다.
지금, <킬빌> 이라는 영화를 평가함에 있어 우리가 지금껏
보아온 장면들의 오마주에 대한 리믹스 자체를 평가히는 것은
사실상 필요하지 않다. 적어도 쿠엔틴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하는 이들의 목적은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탄생시키는 그만의 재주를 보기 위함이고 쿠엔틴
의 영화가 아닌 <킬빌> 이라는 하나의 작품을 보기 위해 향한 이들
역시 감독과 무언의 계약을 마친 상태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전에 자신의 영화를 허황된 쓰레기 혹은 근사한 이야기라고
자평한 바 있고, 영화를 봄에 있어 너무나도 개성이 넘치는 편집과
시나리오에 '쿠엔틴' 이라는 이름을 차마 지워 버릴 수 없다면,
그의 발언을 배제한 채 영화를 볼 수 없을 것이고,
그의 발언에 근거한 나의 결론은 <킬빌> 은 차라리
'근사한 쓰레기'라는 것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비디오 게임을 하는 듯 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조이스틱으로 브라이드를 조종하고 있으며,
쏟아져 나오는 검객들을 모두 해치우는 데 새디스트적인
쾌감을 느낀다. 복수 대상을 찾을 때 마다 등장하는 효과음,
처절한 복수극이 끝날 때 마다 노트에서 이름을 지우는 브라이드의
모습에 닌텐도의 게임에서나 볼 만한 정지 화면의 자막까지.
정말 독특한 분위기가 아닐 수 없다.
감독은 이 새롭고 독특한 편집과 연출 속에 쿠엔틴 票 라 할 만한
잔인한 장면들을 녹여 내어 그가 의도한 '헤모글로빈의 향연'
을 효과적으로 만들어 낸다.
비디오 게임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영화 속
캐릭터의 인상이 그 만큼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렌 이시와 고고의 캐릭터는 말할 것 도 없고,
곳곳에 등장하는 작은 배역들 - 핫토리 한조의 횟집에서 30 년
동안 차만 따랐다는 남성, 코마 상태의 브라이드를 수시로
강간한 '벅' 까지 감독은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캐릭터에 강한 이미지를 부여하는 데 성공한다.
캐릭터를 묘사하는 시간에 있어 다만 예외가 있다면
'오렌 이시' 로, 영화는 그녀를 소개하는 데 엄청난 시간을
소비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정말이지 <영어완전정복> 제작진에게 달려가
'애니메이션을 쓰려면 이렇게 쓰는 거야' 라고 소리치고
싶을 만큼 대단하고, 서서히 실사가 그리워 질 때를 즈음하여
브라이드가 발가락 하나를 움직이기 위해 애쓰는
코믹한 모습을 다시 삼입하여 느슨함을 잠재운다.
감독은 이처럼 관객의 심리 상태를 놀라운 수준으로 읽어 낸다.
지루할 만 하면 웃겨 주고, 스토리가 단순해 질 만 하면 깜짝 놀랄
만 한 사실을 던지며 마무리한다.
후자는 청엽정 전투에 대한 설명에 해당한다.
무려 5 개월의 시간을 들여 지었다는 청엽정 세트에서,
브라이드는 생명을 담보로 한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소피의 팔이 절단되는 것으로 시작되는 그녀의 칼부림은
잘린 팔의 단면조차 익숙해 질 때 까지 다소 진부하게 전개되다
소피의 얼굴을 쓰다듬는 빌의 충격적인 대사로 진부함을 느끼던
관객들을 한번에 흥분시킨다.
그러나 느슨하게 전개되다 강한 포인트로 마무리되는 이 두
시퀀스는 영화의 큰 매력임과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가장 박진감이 넘쳐야 할 청엽정 전투 씬은 미친 듯 퍼져 나가는
피의 향기를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만드는 놀라운 연출력도
있지만 20 분 이라는 시간 동안 진행되는 칼부림의 재미가
반감될 때 쯤이면 드라마는 호흡을 잃고 느려지기 시작한다.
지루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단순히 시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액션 영화에서 일당백 액션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지만,
'실력 있는 대원' 이었다는 짧은 대사만으로
그녀의 일당백을 이해하기에는 리얼리티가 너무나도 부족하다.
이 두 가지 치명적인 결점은 투박하다 못해 조잡하기까지 한
화면과 섞여 불편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물론 정돈되지 못한 화면도 그 나름대로 학생 작품에서나
느낄 법 한 키치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상대적으로 액션 장면의 사실성이 떨어지는 시나리오와 만나면서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혼자서 88 인의 사지를 절단해 버리는 브라이드가
관객에게 - 오락을 하다 게임이 잘 풀릴 때의 쾌감과도 비슷한 -
커다란 대리만족을 주는 것도 사실이며,
어수선한 화면과 다소간에 허망해 보이는 시나리오 역시
쿠엔틴의 매력이라는 말로 포장한다면 오락 영화로서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잔인함의 미학에 극장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무조건 내가 이기는' 비디오 게임을
하는 이 기분을 <킬빌> 이 아닌 어느 영화에서 느낄 것인가.
헤모글로빈의 향연을 즐기라고 말하는 정신 나간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6 년 만에 내 놓은 <킬빌> 은 버트헤드를 떠오르게
만드는 외모와 비디오 가게 점원 출신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감독 만큼이나 흥미 진진하고 독특하다.
지금, <킬빌> 이라는 영화를 평가함에 있어 우리가 지금껏
보아온 장면들의 오마주에 대한 리믹스 자체를 평가히는 것은
사실상 필요하지 않다. 적어도 쿠엔틴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하는 이들의 목적은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탄생시키는 그만의 재주를 보기 위함이고 쿠엔틴
의 영화가 아닌 <킬빌> 이라는 하나의 작품을 보기 위해 향한 이들
역시 감독과 무언의 계약을 마친 상태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전에 자신의 영화를 허황된 쓰레기 혹은 근사한 이야기라고
자평한 바 있고, 영화를 봄에 있어 너무나도 개성이 넘치는 편집과
시나리오에 '쿠엔틴' 이라는 이름을 차마 지워 버릴 수 없다면,
그의 발언을 배제한 채 영화를 볼 수 없을 것이고,
그의 발언에 근거한 나의 결론은 <킬빌> 은 차라리
'근사한 쓰레기'라는 것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비디오 게임을 하는 듯 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조이스틱으로 브라이드를 조종하고 있으며,
쏟아져 나오는 검객들을 모두 해치우는 데 새디스트적인
쾌감을 느낀다. 복수 대상을 찾을 때 마다 등장하는 효과음,
처절한 복수극이 끝날 때 마다 노트에서 이름을 지우는 브라이드의
모습에 닌텐도의 게임에서나 볼 만한 정지 화면의 자막까지.
정말 독특한 분위기가 아닐 수 없다.
감독은 이 새롭고 독특한 편집과 연출 속에 쿠엔틴 票 라 할 만한
잔인한 장면들을 녹여 내어 그가 의도한 '헤모글로빈의 향연'
을 효과적으로 만들어 낸다.
비디오 게임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영화 속
캐릭터의 인상이 그 만큼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렌 이시와 고고의 캐릭터는 말할 것 도 없고,
곳곳에 등장하는 작은 배역들 - 핫토리 한조의 횟집에서 30 년
동안 차만 따랐다는 남성, 코마 상태의 브라이드를 수시로
강간한 '벅' 까지 감독은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캐릭터에 강한 이미지를 부여하는 데 성공한다.
캐릭터를 묘사하는 시간에 있어 다만 예외가 있다면
'오렌 이시' 로, 영화는 그녀를 소개하는 데 엄청난 시간을
소비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정말이지 <영어완전정복> 제작진에게 달려가
'애니메이션을 쓰려면 이렇게 쓰는 거야' 라고 소리치고
싶을 만큼 대단하고, 서서히 실사가 그리워 질 때를 즈음하여
브라이드가 발가락 하나를 움직이기 위해 애쓰는
코믹한 모습을 다시 삼입하여 느슨함을 잠재운다.
감독은 이처럼 관객의 심리 상태를 놀라운 수준으로 읽어 낸다.
지루할 만 하면 웃겨 주고, 스토리가 단순해 질 만 하면 깜짝 놀랄
만 한 사실을 던지며 마무리한다.
후자는 청엽정 전투에 대한 설명에 해당한다.
무려 5 개월의 시간을 들여 지었다는 청엽정 세트에서,
브라이드는 생명을 담보로 한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소피의 팔이 절단되는 것으로 시작되는 그녀의 칼부림은
잘린 팔의 단면조차 익숙해 질 때 까지 다소 진부하게 전개되다
소피의 얼굴을 쓰다듬는 빌의 충격적인 대사로 진부함을 느끼던
관객들을 한번에 흥분시킨다.
그러나 느슨하게 전개되다 강한 포인트로 마무리되는 이 두
시퀀스는 영화의 큰 매력임과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가장 박진감이 넘쳐야 할 청엽정 전투 씬은 미친 듯 퍼져 나가는
피의 향기를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만드는 놀라운 연출력도
있지만 20 분 이라는 시간 동안 진행되는 칼부림의 재미가
반감될 때 쯤이면 드라마는 호흡을 잃고 느려지기 시작한다.
지루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단순히 시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액션 영화에서 일당백 액션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지만,
'실력 있는 대원' 이었다는 짧은 대사만으로
그녀의 일당백을 이해하기에는 리얼리티가 너무나도 부족하다.
이 두 가지 치명적인 결점은 투박하다 못해 조잡하기까지 한
화면과 섞여 불편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물론 정돈되지 못한 화면도 그 나름대로 학생 작품에서나
느낄 법 한 키치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상대적으로 액션 장면의 사실성이 떨어지는 시나리오와 만나면서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혼자서 88 인의 사지를 절단해 버리는 브라이드가
관객에게 - 오락을 하다 게임이 잘 풀릴 때의 쾌감과도 비슷한 -
커다란 대리만족을 주는 것도 사실이며,
어수선한 화면과 다소간에 허망해 보이는 시나리오 역시
쿠엔틴의 매력이라는 말로 포장한다면 오락 영화로서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잔인함의 미학에 극장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무조건 내가 이기는' 비디오 게임을
하는 이 기분을 <킬빌> 이 아닌 어느 영화에서 느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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