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로
평범한 어린시절..
평범하다 못해 숙맥이었던 어린 소년이었던 간디.
수줍음을 많이 타서 다른 사람 앞에서도 이야기도 제대로 못했던 간디.
독실한 힌두교 집안에서 태어난 간디.
그에게 일생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몇번의 갈림길에서
그는 소심함에 맞지 않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그 첫번째가 영국유학이다.
힌두교 신자로써 채식과 금욕을 부모님과 약속하고, 떠난 영국유학이었다.
그리고 그는 약속을 지키고,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귀국했다.
하지만, 그의 어릴 적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첫 변호부터 그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패소한 후, 변호사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의 두번째 운명의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아프리카에서 변호를 맡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프리카에서의 인도사람의 인권이 무시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
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법을 아는 사람으로써
인도사람의 인권을 위해 노력을 다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의 활동은 언론으로 알려져서 그가 인도로 왔을 때는
이미 유명해져 있었다.
인도에 오면 아프리카에서 그를 찾고,
아프리카에 오면 인도에서 그를 찾았다.
자신이 백조인줄 모르고 있던 미운오리새끼처럼..
그의 능력을 발산하면서
그는 백조로 비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늘 겸손하였다.
2. 진정한 혁명가
이후로 그는 영국인의 인도인에 대한 인권탄압에 대해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미 유명한 무폭력 운동이란 방법을 통해서였다.
무폭력 운동으로 시민을 이끌고,
문제점많은 현체제에 대한 투쟁이었다.
무폭력 운동으로는 비협조운동, 시민불복종운동가 대표적이었다.
그는 이제 힌두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의 통합도 꿈꾸었다.
'참'이라고 공통된 목표를 찾아가는 것은 모든 종교의 공통점이라 생각한다.
수천년 이어온 힌두교의 병폐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카스트제도와 불가촉천민제도가 그것이다.
영국의 인도인 인권탄압에 앞서,
인도인 내부에서도 불가촉천민제도에 의해..
인권탄압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3. 간디와 체게바라
글쎄....
책을 읽는내낸 체게바라가 떠올랐다.
최근에 체게바라 열풍이 일어날 만큼
이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안다.
체게바라를 진정한 혁명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의 혁명에는 언제나 피가 있었고, 희생이 있었다.
간디는 그렇지가 않다.
그는 무폭력혁명이었다.
비록 그의 뜻을 거역하는 우발적인 사고가 일어났을지라도..
그리고 인도가 독립한 이후에 내부 분쟁에서 피를 보는 전투가 있었을지도..
그가 추구하는 바는 무폭력이다.
우리는 누가 진정한 혁명가인가를 곰곰히 생각해 봐야한다.
간디는 이런 말을 한다.
"복수는 달콤하지만 용서는 거룩하다"
라고...
아무에게는 쉽지는 않지만,
사진 속 그의 얼굴은 이런 그의 정신이 묻어있는 듯 했다.
4. 인도 독립후...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인도는 독립을 하게 된다.
영국에 대해 같이 뜻을 모아 저항했던 세력들이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종교간의 갈등이었다.
모슐렘교와 힌두교의 분쟁은 결국..
인도에서 떨어져 나가 파키스탄이이 생기는 지경에 이르른다.
종교통합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간디...
힌두교의 단점도 맹렬히 비난하다가..
힌두교의 신자에게 총에 받아 죽게 된다.
5.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비폭력 저항이 있었다.
3.1 운동이 그것이다.
일본 총칼에 맞선 것은..
태극기 하나 든 맨손이었다.
그들에게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
그런 총칼에 수달동안 이어진 비폭력저항운동이었던 것이다.
그런 정신이 오늘날..
촛불시위의 아름다운 시위로 표출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6. 마하트마 간디
마하트마는 위대한 영혼, 성자라는 뜻이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간디에 붙여준 이름이다.
모든 사람이 걸맞는 이름이라 생각할 것이다.
7. 나에게...
그는 나에게 삶의 한 지표를 보여주었다.
"평범한 삶 고차원의 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