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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2. .사랑의 이론1. 사랑 (3)

작성자거울|작성시간08.10.30|조회수76 목록 댓글 0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2. 사랑의 이론 1. 사랑 - 인간의 실재의 문제에 대한 해답 (1) 인간 -모든 시대, 모든 문화의- 은 동일한 문제 곧 어떻게 분리 상태를 극복하는가, 어떻게 결합하는가, 어떻게 자신의 개체적 생명을 초월해서 합일을 찾아내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동굴 속에 사는 원시인에게도 양떼를 돌보는 유목민에게도, 이집트의 농부에게도, 페니키아의 상인에게도, 로마의 병사에게도, 중세의 수도사에게도, 일본의 사무라이에게도, 현대의 사무원이나 직공에게도 동일한 문제가 있다. 문제는 동일하다. 이 문제는 동일한 근원, 곧 인간의 상황 인간의 실존의 조건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답은 여러 가지다. 이 문제는 동물 숭배에 의해 인간의 희생 또는 군사적 정복에 의해, 사치에의 탐닉에 의해 금욕적인 단념에 의해, 강제 노동에 의해, 예술 창조에 의해 신의 사랑에 의해 인간의 사랑에 의해 대답될 수 있다. 많은 대답 -이 대답의 기록이 인간의 역사다-이 있지만 무수하지는 않다. 반대로 중심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에 속하는 보잘 것 없는 차이를 무시한다면 제시된 대답의 수는 매우 한정되어 있고 또한 이러한 대답은 여러 가지 문화권에서 살고 있는 인간에 의해서만 제시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한다. 종교와 철학의 역사는 이러한 대답의 역사이고 이러한 대답이 한정되는 동시에 다양화되는 역사이다. 이러한 대답은 어느 정도로는 개인이 도달한 개성화의 정도에 달려 있다. 유아의 경우 나라고 하는 것은 발달되기는 했지만 아직은 보잘 것 없다. 유아는 여전히 어머니와의 일체감을 느끼고 어머니가 있는 한 분리감을 느끼지 않는다. 유아의 고독감은 어머니의 육체적 현존, 곧 어머니의 가슴과 어머니의 피부에 의해 달래진다. 어린애는 분리와 개성의 감각이 발달됨에 따라 어머니의 육체적 현존만으로는 이미 충분하지 못하고 다른 방식으로 분리 상태를 극복하려는 욕구가 생긴다. 마찬가지로 인류는 그 유아기에는 역시 자연과의 일체감을 느낀다. 토양, 동물, 식물은 아직도 인간의 세계이다. 인간은 동물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며 이것은 동물 가면을 쓴다든가, 토템으로 삼고 있는 동물 또는 동물신을 숭배한다든가 하는 일에 표현된다. 그러나 인류가 이러한 원초적 결합으로부터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인류는 자연의 세계로부터 더욱더 분리되고, 분리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려는 욕구도 더욱더 강렬해진다. 온갖 종류의 진탕 마시고 떠드는 상태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러한 상태는 때로는 마약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자동적으로 유발된 황홀경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원시 민족의 여러 가지 의식은 이러한 유형의 해결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잠시 동안의 광희의 상태에서는 외부 세계는 사라지고 동시에 외부 세계와의 분리감도 사라진다. 이러한 의식은 공동으로 거행되므로 집단과의 융합을 경험하게 되고 이 경험이 이러한 해결을 더욱 효과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러한 도취적 해결에는 성적 경험이 밀접히 관련되거나 혼합된다. 성적 오르가슴은 황홀경에 의해 발생되는 상태 또는 어떤 마약의 효과와 비슷한 상태를 발생시킬 수 있다. 공동체의 성적 난행의 의식은 많은 원시적 의식의 일부였다. 도취적 경험을 한 다음에는 사람들은 얼마 동안은 분리감으로 몹시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다. 천천히 불안의 긴장이 고조되었다가 의식을 되풀이해 거행함으로써 다시금 감소되는 것이다. 이러한 도취 상태가 부족의 공통된 관습으로 되고 있는 한 이러한 상태에서 불안감이나 죄책감은 생기지 않는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올바르고 또한 미덕이기도 하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방법이고 무당이나 사제에 의해 인정되고 요구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책감이나 수치감을 느껴야 할 까닭이 없다. 동일한 해결책이라도 이러한 공동 관습을 과거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 문화권에서 살고 있는 개인에 의해 선택될 때에는 전혀 달라진다. 비도취적 문화권에 살고 있는 개인이 선택하는 형태는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이다. 사회적으로 정형화된 해결에 참여하는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이러한 사람들은 죄책감과 후회감으로 괴로워한다. 알코올이나 마약으로 피난해서 분리상태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만 도취 상태가 지나간 다음에는 그들은 더욱 분리감을 느끼게 되며, 더욱 자주, 더욱 강렬하게 알코올이나 마약에 의존하게 된다. 성적 도취를 해결로 삼는 경우는 이와는 약간 다르다. 성적 도취는 어느 정도는 분리감을 극복하는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형태이며 고립문제에 대한 부분적 해답이다.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 분리 상태를 해결하지 못하는 많은 개인의 경우, 성적 오르가슴의 추구는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과 별로 다르지 않은 기능을 떠맡게 된다. 이것은 분리에 의해 생긴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절망적 노력이며 결과적으로는 분리감을 더욱 증대시킨다. 사랑이 없는 성행위는 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두 인간 사이의 간격을 좁혀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취적 합일의 모든 형태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강렬하고 오히려 난폭하다는 것, 둘째는 퍼어서낼리티 전체에, 몸과 마음에 일어난다는 것, 셋째는 일시적이고 주기적이라는 것이다. 이와는 정반대되는 것이 과거나 현재에 있어서 사람들이 가장 자주 해결책으로 채택하고 있는 합일의 형태, 곧 집단 -그 관습, 관례, 신앙- 과의 일치에 바탕을 둔 합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상당한 발전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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