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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로 태어나는 꿈 / 이수명

작성자거울|작성시간06.04.23|조회수45 목록 댓글 0
 

사물로 태어나는 꿈 / 이수명 반복 설정을 해 놓고 바흐의 평균율을 들을 때가 있다. 어김없이 나 는 특별한 순간을 가지게 된다. 시간을 간직하는 체험이다. 어떤 음악 은, 예컨대 말러의 음악은, 그 중에서도 특히 몇 개의 교향곡은 공간의 이동과 시간의 확산을 가져온다. 그리고 무한히 확산하는 것을 지켜보 게 한다. 나를 영원하게도, 늙어 버리게도 하는 시간이 꺼져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막막함 자체다. 파도가 무인도에 나를 데려다 놓고 멀어져 가는 것 같다. 이에 비해 평균율은 못에 비친 가지와 잎들이 물 속에서 흘러가는 듯 보여도, 흘러가 버리지 않고 언제까지나 나무라는 근원에 몸을 맡긴 채 물 위에 떠노는 느낌을 준다. 흘러가 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실은 인간 이 경험하기 힘든 경지다. 우리는 시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어떤 우연 에 가담하지 않아도 미세하게 삶의 형태와 위치는 변모한다. 깨닫지 못 할 뿐이다. 고인 물이 썩는다고 할 때, 이 썩음은,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인지 평균율의 체험은 시들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나뭇잎처럼, 어떤 근원의 애정에 속한 채, 떠놀게 하기 때문이다. 이때 나는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고 느낀다. 시간의 간직은 시간의 정지와 다르다. 간직은 흘러가 버리지 않되, 정지처럼 죽은 것이 아니다. 살아 있고, 윤이 나며, 동시에 정적인 세계다. 인간과 사물은 시간을 달리 체험한다. 인간은 시간을 간직할 줄 모른 다. 간직할 줄 모르기에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지치도록 썰매 놀이를 하던 즐거웠던 어렸을 때로, 타인에게 최초의 고백을 하고, 또 같은 것을 돌려받던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가 보려고 하여도 그 순간이 매번 다른 각도에 있거나, 아니면 아예 달라져 있거나 한다. 더구나 방문할 때마다 흔적을 남기고 오기에 다음 번에는 더 찾기가 힘 들다. 이에 비하여 사물은, 사물의 일생은 시간을 간직함으로써 존재한다. 시간에 포위되거나, 시간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머금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정지해 있지만 호흡하고 살아 있다. 자신의 호흡을 의식 하지 못하는, 가장 편안한 호흡을 하면서 형태나, 무게나, 밀도를 포옹 한 자세로 살아 있다. 나이 따위는 먹지 않는다. 연륜이란 얼마나 불필 요한 관용인가.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사물들은 항상 가장 빛나는 순간에 존재한다. 어느 곳에서도, 그 무엇으로도 빛나는 것이 그들의 인생이며, 순간 순간 그들은 수줍고 행복하다. 봉투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혹은 봉투에서 나오려고 하는. 혹은 급하게 서둘러 꽂혀졌지만 아주 오래 이 미완의 상태가 지속되는 편지는 수줍다. 수줍어하면서도 보내지 못한 편지이든, 받은 편지이든, 어떤 한 순간에서 부드럽게 유영하는 그 자태에는 행복 이 실려 있다. 이 편지가 결국 열려서 읽히게 될지는 편지 자신도 관심 이 없어 보인다. 열리지 못한다 한들, 또 열렸지만 그 내용이 미납 요금 에 대한 재촉을 한 것이라 한들 편지의 육체가, 그 영혼의 형식이 동요 하겠는가. 둥글면서도 견고한 의장을 하고 있는 핸드백은 뛰어난 착지의 순간의 체조 선수처럼 우아한 자태를 하고 있다. 착지의 순간은 완성의 순간이 다. 이 순간을 조각하기 위해 체조 선수는 살아 왔다. 체조 선수는 이 자세로 자신이 얼마나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완성에 머물러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핸드백에게 가장 편안한 이 상태에서 핸드백은 순간과 영 원을 함께 살고 있다. 짓고 허물고를 되풀이하는 인간의 삶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핸드백은 오늘 외출을 하려고 하지 않는데 여행 가방은 여행의 준비 를 모두 마쳤다. 넥타이와 양말과 필요한 옷가지가 정돈되고, 기다림과 설레임과 가벼운 흥분까지 정돈된 상태, 모든 것이 마무리된 순간의 고 요함과 평화, 이것은 실제 길을 떠나는 여행과는 다른 것이다. 새로운 질서를 몸 안에 체현한 여행 가방의 빛나는 순간은 이후의 번잡한 여행 의 여로에 의해서도 흩어지지 않는다. 시간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병에 꽂힌 꽃은 마르고 시들어 가지만 화병은 시들지 않는다. 시간 에 포위되어 있는 꽃을 품고 화병은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꽃의 열 기, 꽃의 탐구, 꽃의 한숨을 담아 내면서, 그 수런거림에 물들지 않고, 꽃에 대한 지식이나 연민으로 자신을 높이지도 않고, 무한정 이렇게 꽃 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상태가 지속되는 듯이 그윽하게 서서 무슨 생 각에 잠져 있을까? 내가 읽을 수 있는 것은 다만 화병의 수줍음이다. 수줍음은 광채를 띤다. 광채만은 화병도 가릴 수 없는 것이다. 이보다는 좀더 소박하게, 뚜껑이 벗겨지는 상자는 세계에 대한 자신 의 신뢰를 최초로 내보이고 있다. 그것은 감출 일도 드러낼 일도 아니 지만 어느 순간 포착된 것이다. 이 순간은 아마 상자의 인생에서 가장 사소한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짧은 사소한 순간에도 상자는 자신의 부피와 용도를, 자신에 대한 가장 커다란 존중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릇에 오면 행복한 마침표가 된다. 그릇은 하나의 커 다란 점이다. 그 점은 우주를 쉬게 한다. 휴식과 양식으로써 그의 존재 는 불 밝혀진다. 무엇이 담기든 양식이 되는 그 상징은 그러나 자신을 우러를 비의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릇은 일상의 현실을 결코 떠나 본 적이 없다. 언제까지나 단지 그릇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릇은 그 릇되는 법이 없다. 집 안에 있는 사물들이 먼지를 뒤집어썼다가 먼지가 닦이는, 이곳에 놓여 있다가 저곳으로 옮겨지는 순환은 사물들 특유의 유머 감각을 낳 는다. 쌓여 있는 책 중의 한 권을 빼낼 때 근처의 책들이 우르르 넘어 지는 거라든지, 닦아 놓은 유리창이 안개나 성에를 번갈아 불러들이다 가 그것에 싫증나면 두부 장사 아저씨의 딸랑거리는 소리에 춤을 춘다 든지, 내가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마다 빙빙 몸을 꼬는 전화줄들은 얼 마나 장난기가 넘치는가? 성훈이가 태어난 지 세 달이 지나게 되었을 때 나는 아이가 사물에 관심을 갖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시계나 CD나 책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좋아하며 웃을 때, 아이가 사물들의 신비로움과 관계 맺기를 시작하는 것에 나까지 설레었다. 그리고 사물들의 무늬에 반응을 하여, 주변에 놓인 물건들의 문양에 몰두한다든지, 업힌 등에서도 고개를 뒤 로 빼고 내 티셔츠의 무늬를 탐구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세계의 양 식을 이해하려는 아이의 태도는 자못 진지했다. 무늬는 사물이 완성되 어 있는 아름다운 증표임을 아이는 알고 있는 것일까? 마그리트는 그의 「꿈의 열쇠」라는 글미에서 계란을 아카시아로, 구 두를 달로, 모자를 눈으로, 촛불을 천장으로, 컵을 뇌우로, 망치를 사막 으로, 여섯 개의 사물에 각각 재미있는 이름을 붙였다. 사물들끼리의 소 통은 명쾌하고 감각적이고 자발적이고 광범위하다. 그들은 순식간에 우 리가 예기치 못하는 다른 대상으로 전환된다. 교환 가치가 같기 때문이 다.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물들은 공통 분모를 갖고 있으며, 이것은 사물들 간의 소통과 전이라는 독특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낸다. 그 세계는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비록 우리가 읽어 내기 힘들지만 그 세계는 우리 옆에 있다. 나는 물건을 자주 바꾸는 세련된 사람이 아니다. 예를 들면 나는 시 를 쓸 때 샤프로 쓰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지우개로 지우는데, 샤 프와 지우개 모두 오래된 것들이다. 샤프는 십 년은 된 것 같다. 잃어버 리기 전에는 특별한 불편이 없는 한 물건을 버리지 않는다. 때로 청소 년기에 신던 운동화라든가, 유행이 몇 번은 바뀌도록 초연하게 나와 함 께한 안경테라든가 그런 것들이 생각난다. 그 이미지, 분위기, 함께한 세월 같은 것이 선연히 나의 일부가 되어 지나온 한때를 되돌려 주곤 하는 것이다. 나는 물건으로써 나를 기억해 낸다. 더불어 물건과 함께 내 곁을 스 치고 지나간 사람들을 회상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입고 계시던 털조끼, 그것은 고등학생이던 내가 짜 드린 것이었다. 유품을 정 리할 때 우연히 남겨진, 주인을 잃은 털조끼가 색깔도 바래지 않은 채 오래도록 장롱 서랍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모습, 아버지의 부재를 나 는 그것으로써 실감했다. 그리고 털조끼를 볼 때마다 털조끼가 시간이 라는 것을,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몸서리치도록 깨닫곤 했다. 평균율은 내가 사물로 태어나는 꿈을 꾸게 한다. 나는 누군가가 잃어 버린 휴대용 라디오, 우산, 편지, 메모, 모자 같은 사물이다. 나는 시간 의 현현이다. 나는 그를 뚫어지게 응시한다. 그렇지만 그는 무엇을 어디 에 잃었는지 알지 못하는 채 나를 스쳐 지나간다. - 『현대문학』2001년 1월호에 실린 이수명의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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