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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門

들어가기를 구하면 다 들어갈 수 있는가, 아니면 구하여도 못 들어가는가? / 장경철 교수

작성자거울|작성시간05.11.09|조회수52 목록 댓글 0
 

들어가기를 구하면 다 들어갈 수 있는가, 아니면 구하여도 못 들어가는가? / 장경철 교수 마태복음 7 :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로마서 10 :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에 이르는 길은 쉬운 길인가, 어려운 길인가?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한다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마 7:21). 구원에 이르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닌 듯이 보인다. 주님은 좁은 문과 넓은 문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너희가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눅 13:24) 부자의 경우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4)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마 19:25) 반면에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구원에 이르는 쉬운 길을 가르쳐 주고 있다.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함께 요엘서를 인용하면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행 2:21)고 선포한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구원의 길을 선포한다. "구원을 받기 위하여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할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을 얻기 위하여 유대인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롬 10:13) 이는 한 분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 되시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기 때문이다(롬 10:12). 사도들의 선포대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는다고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예수님의 경고대로 "주여, 주여" 한다고 다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가? 구원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서 구하기만 하면 다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격 기준은 엄격하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한다면 다 구원을 얻을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주님의 뜻에 조금만 어긋나도 구원을 얻을 수 없는데, 단 한 번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단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자동적으로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든지, 모든 것을 불사르게 내어주든지, 무엇을 하든지 혈과 육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결코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할 수 없다. "사람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으며"(요 3:3), 오직 하늘로부터 내려온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로마서 10장 13절에서 바울이 한 말은 과장이며 허풍인가? 바울이 13절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다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할 때 그 구절의 뜻은 10장 8-17절의 문맥에서 살펴져야 한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구원의 흐름을 서술하고 있다. 구원이 진행되기 위하여 먼저 "보내심"(파송)이 있고, 다음에 "전파하는 자"가 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롬 10:15) 복음의 전파 뒤에 말씀의 들음이 있고, 들음은 믿음으로 이어진다. 말씀의 들음은 믿음을 거쳐서 입술의 부르심으로 표출된다. 주님을 부르는 것은 입술의 행위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믿음이 동반되지 않는 입술의 부름(call upon)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이렇게 볼 때, 주님의 말씀대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는데, 이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에 마술적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주의 구원 사역에 동역자가 되기 때문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믿음에서 나오며,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롬 10:17). 바로 여기에 우리가 행해야 할 하나님의 뜻(마 7:21)이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요 6:28)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요 6:29). 주님을 부르는 것은 믿음의 표현이며, 믿음은 결국 하나님의 파송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주의 이름을 믿음으로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행위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믿음으로 주의 이름을 부름(call upon)으로써 그분과 연합하는 길뿐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3:13) 주님의 구원의 행위 속에 들어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주님을 부르는 것이 겸손한 믿음의 열매가 될 때 우리는 구원을 얻는다. 반면에 주님을 향한 부름이 인간 의로움의 몸부림이 될 때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길은 막힐 수밖에 없다. 우리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눅 18:9-14)에서 이러한 실례를 본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었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바리새인은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특히 이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금식하는 사람이며 십일조 하는 사람입니다"(눅 18:11-12). 세리의 기도는 바리새인의 기도와 매우 다르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 이 비유에서 바리새인과 세리는 다 "하나님이여!"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둘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둘이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으나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못한 자가 되었다. 이는 바리새인이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를 높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을 높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세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었다. 이는 세리가 자신의 비천함을 고백한 동시에 자신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주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자신의 자격 없음을 고백하는 사람이 들어가는 역설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낮은 자세로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 나라의 문은 언제나 좁은 문이다. 좁은 문은 서 있는 채로 뻣뻣하게 들어갈 수 없는 문이다. 자신의 자세를 낮추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의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없다. 시편 기자의 고백대로, "여호와께서는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시는 분"(시 116: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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