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진짜 이유 / 최준식 교수 글을 끝내면서 지금까지 우리는 종교가 무엇인가에 대해 오랜 시간을 탐구해보았다.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우리는 종교란 인간이 자기의식이 생긴 뒤 그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종교라고 불리는 인간의 독특한 범주의 행위는 세상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 그것을 원초의 패턴이라 부르든 일차적인 주형이라 부르든, 혹은 궁극의 의식이라 하든 원초적인 소리라 하든 그 '기본 형상'에 도달-아니 '도달'이라는 말도 적합한 게 아니다-하기 위해 하는 인간의 행위를 통칭해서 부르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따라서 무슨 종교를 갖든 그것은 아무 상관 없다. 그리고 어떤 종교가 더 진리성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도 의미가 없다. 위의 시각만 갖고 있다면 어떤 종교적인 길을 가든 그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위의 시각을 갖지 않는다면 특정한 종교를 아무리 열심히 믿는다 해도 그것은 적절한 것이 아니다. 방향이 애초부터 틀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불교는 이러한 시각에 충실한 종교로 생각된다. 게다가 불교는 종교로서는 갖추기 힘든 자기 부정(혹은 초월) 기제(self negating 혹은 trascending mechanism)까지 갖추고 있는 대단히 훌륭한 가르침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의 인생이 자아 초월에서 완성된다면 종교 역시 스스로를 초월할 때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종교의 본령은 그 종교마저 초월할 때 완성되는 것이다. 종교라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위대하게 보일지라도 우리 인간들을 위에서 제시한 궁극의 경지로만 끌고 가면 그 다음에는 버려야 할 대상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면을 붓다는 뗏목의 비유로 일찌감치 설파해 놓았다. 반면에 유신론적인 종교들은 교리 상 그 종교마저 넘어서는 것을 대단히 힘들게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유신론적인 종교에서는 종교가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이 종교를 위해서 있는 형국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종교를 어떻게 택해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는 각 개인에게 달려 있다. 이렇게 훌륭한 가르침인 불교를 택하더라도 유신론적 종교를 믿는 것처럼 종교 자체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신앙이라 할 수 있고 유신론을 믿어도 그 도그마에서 자유롭다면 제대로 신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자아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는 것으로 이 생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어떤 종교이든 그를 궁극의 세계로 인도해줄 것이다. 최준식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한국학과 교수, 국제한국학회장, 한국문화표현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콜라독립을 넘어서》《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유네스코가 보호하는 우리 문화유산 열두 가지》(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