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의 바람직한 관계 / 김종욱 4. 근대 서양의 자연관 서양의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은 로만 가톨릭으로부터의 이탈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 교황권에 의거한 봉건 국가로부터 군주권이나 개인적 시민권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 국가로의 이행이며, 종교적으로는 가톨릭이라는 보편적 교회(ecclesia universa)의 권위로부터 개인적 신앙(fides individualis)과 성서에 호소하는 개신교로의 전환 과정이다. 그러나 그 어떤 방향으로의 선회라 하더라도 한 가지 공통되는 점은, 근대의 시작인 르네쌍스가 보편적 신성(神性, divinitas)에 대한 인성(人性, humanitas)과 개성(個性, individualitas)의 중시를 그 특징으로 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바로 개인의 등장으로 귀착된다. 그런데 개인(individual)이라는 말이 원래 ‘나눌 수(divide) 없는(in) 것’, 그래서 ‘침해되거나 파괴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볼 때, 개인의 등장 이면에는 ‘분할적 사고’가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근대 과학의 기계론에서 부활된 원자(atom) 개념 역시 ‘나눌 수(tom) 없는(a)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근대 유럽인들이 얼마나 분할과 분석과 분리를 통해서 사태의 진상에 접근하고자 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분리적 사고의 발단에 데카르트(Descartes)가 있다. 사상적 혼란기에 직면하여 진리의 확고 부동한 기초를 찾고자 했던 데카르트는 일단 모든 것을 의심해 보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그렇게 확고 부동하고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을 다 의심해 보아도 의심되지 않는 것이겠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가 모든 것을 의심하고 생각하는 동안, 그렇게 의심하고 생각하는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결코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이처럼 내가 있음이 확실하지만, 그것은 오직 내가 생각하는 동안만이라고 한다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진리의 토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내가 사유하는 한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나 또는 자아의 본질은 사유(cogitatio)이고, 인간은 ‘사유하는 자(res cogitans)’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물체의 본질은 연장(延長, extensio)이다. 왜냐하면 물체에서 색깔과 소리와 맛 등은 떼어낼 수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크기를 지니고 공간 속에 퍼져 있다는 연장성만큼은 떼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체는 ‘연장된 것(res extensa)’이라고 정의된다. 그런데 데카르트가 보기에 사유와 연장은 전혀 다른 것이다. 사유란 하나의 통일체로서, 크기와 형태를 지니지 않아 분할 불가능한 것이지만, 연장은 장소를 차지하여 언제라도 분할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사유와 연장이 판이한 것이라면, 사유를 본질로 하는 것(자아-정신-인간)과 연장을 본질로 하는 것(세계-물질-자연)은,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독립적인 것(실체, substantia)’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아와 세계, 정신과 물질, 인간과 자연이 실체적으로 분리된다. 중세에는 신의 형상을 지닌 인간이 그렇지 못한 자연에 비해 분명 우월한 존재이고 그래서 인간과 자연은 서로 분리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모두 피조물로서 창조주의 섭리 속에서 연결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인간이 자신의 사유를 통해 스스로 확고 부동한 토대를 마련함에 따라, 신의 그러한 연결 고리는 느슨해지고, 인간과 자연의 괴리는 메울 수 없는 간격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이러한 데카르트적 분리(Cartesian division)는 동시대 내지는 그후의 철학과 과학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니, 철학에서는 인간의 주체성의 강화로, 과학에서는 자연의 객관성의 강화로 각각 나타났다. 먼저 철학 분야에서는 데카르트의 인간-자연 관계가 칸트(Kant)의 주관-객관 관계로 전이되었다. 인식이 대상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인식에 따른다고 하여 소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시도한 칸트는, 인간은 경험적으로 주어진 자료에 감성과 오성의 선험적 형식들을 투입하여 구성함으로써 인식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자연이란, 인간에 의해 구성된 세계이고, 선험적 자아에 나타나는 ‘현상의 총체’이며, 주관에 의한 ‘경험의 대상 전체’이다. 이런 대상 세계로서의 자연이 철저히 인과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수동적 ‘필연(Notwendigkeit)’의 영역인 데 반해, 선험적 자아로서의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르는 자율적인 ‘자유(Freiheit)’의 영역이다. 그런데 칸트식의 이러한 인간의 의식은 어디까지나 ‘현상(Erscheinung)’ 세계에만 국한될 뿐 ‘사물 자체(Ding an sich)’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지만, 칸트의 선험적 의식이 헤겔의 절대적 의식으로 고양됨에 따라, 사물 자체도 ‘사유의 산물(Gedankending)’로 간주되고, 자연의 전개는 정신의 자기 형성 과정과 동일시되었다. 헤겔(Hegel)에 있어서 자연이란, 이념(Idee)이 타자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며, 신과도 같은 절대 정신(absoluter Geist)이 ‘자기를 밖으로 드러낸 것(外化, Enta촸βerung)’이다. 이것은 철학적 기독교의 범신론적 변주라고 할만한 것이다. 이에 불만을 품은 마르크스(Marx)는 헤겔식의 변증법을 물구나무 세워, 자연이란 정신이 아니라 육체적 노동이 외화(外化)된 것으로서, 인간의 사용가치의 원천이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세계의 참다운 실재를 정신적인 것으로 보는 유심론자(spiritualist)가, 의식이 자연에 앞서고 자연은 의식에 의해 파악된 것으로서만 존재한다고 주장하거나, 세계의 진정한 실재를 물질적인 것으로 보는 유물론자(materialist)가, 자연이 의식에 앞서며 자연은 의식의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하거나 간에, 양자는 모두 자연을 인간의 의식과 대립시키고, 인간이 자연의 정신적 혹은 물질적 원리를 파악하여 자연을 자신의 필요에 맞게 변화시킴으로써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보는 점에서는 정확하게 일치한다. 다시 말해 유심론자에 의해 인간이 정신적 사유의 주체로 규정되건, 유물론자에 의해 인간이 물질적 노동의 주체로 규정되건, 인간이 주체(Subjekt)가 되어 객체(Object)인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보는 점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데카르트적 분리에서 야기된 이러한 ‘자연의 객체화’는 과학 분야에서는 자연의 객관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전개되었다. 데카르트가 자연 사물을 창조주의 피조물(ens creatum)이 아니라 단순히 ‘연장된 것(res extensa)’으로 본 것은, 연장(extensio)이라고 하는 기하학적이고 수학적인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자연계에서 영적이고도 신비적인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자연에 숨겨진 의도나 목적은 없고, 자연은 각 부품들간의 인과관계의 연쇄로 이루어진 기계와도 같다고 보는 ‘기계론(mechanism)’이 출현하게 된다. 기계론에서는 물질적 구성요소인 ‘미립자들’과 그것들 간의 인과관계로서의 ‘운동’이라는 두 가지만으로 모든 자연 현상을 설명한다. 따라서 설사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더라도, 일단 세계가 성립된 이후에는, 신은 그것에 개입하지 않고, 그들간의 기계적 역학 관계에 따라 작동해 가도록, 그저 기하학적으로 설계만 하였다고 보게 된다. 이러한 신은 자신의 피조물의 역사에 구체적으로 개입하는 창조주가 아니라, ‘기하학적 정신(esprit ge쳍me쳓rique)’에 따른 기계의 설계자이기 때문에, 신앙보다는 수학과 과학을 통해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 곧 신의 섭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찬양하는 지름길로 여겨진다. 이제 학문의 척도는 철학(고대)이나 신학(중세)이 아니라 수학과 물리학이 되며, 어떤 것이 과학적인가의 척도는 그것이 얼마나 수학적으로 계량 가능한가에 달려 있게 된다. 이처럼 기계론을 통해 자연이 수학적으로 계량화됨으로써, 자연의 객관성 강화가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등장한 과학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기술과 결합되었다. 원래 과학(science)은 자연의 원리에 대한 ‘이론적 활동(theoria)’이나 ‘관조하는 앎(scientia)’을 뜻하는 것으로서 일종의 객관적인 것이라면, 기술(technic)은 인간이 자신의 생존과 생활을 위해 ‘도구를 사용(techne)’하여 자연을 이용하려는 의지나 능력(ars)을 뜻하는 것으로서 일종의 주체적인 것이다. 이렇게 상이한 과학과 기술이 통합되는 것은 그 발단의 단서를 합리주의에 두고 있다. 서구 근대 사상의 근간을 이룬 합리주의(合理主義, rationalism)란, 모든 것은 이성과 합치되어 존재하고 있으므로 세계에 내재된 이성적(수학적) 질서를 인간의 이성을 통해 밝혀낼 수 있다는 입장을 말한다. 그런데 세계에 이성적 질서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은, 세계가 점차 좀더 나은 상태로 발전해간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합리주의는 진보에 대한 일종의 낙관적인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믿음이 정치적으로는 계몽주의로, 경제적으로는 산업주의로 나타난다. 이성의 확대와 보급을 통해 정치적 진보를 주장하는 것이 계몽주의(Enlightenment)라면, 산업화와 생산성의 증대를 통해 경제적 진보를 주장하는 것은 산업주의(industrialism)이다. 합리주의에 뿌리를 둔 산업주의는, 자연계의 이성적 질서인 자연법칙을 인간의 이성을 통해 밝혀내고, 생산성을 효율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목적을 위해 과학과 기술이 결합되고, 그렇게 결합된 과학 기술을 통해 자연이 인간의 이용 대상으로서 도구화된다. 아울러 산업주의는 생산성의 실현 방식과 관련하여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누어진다. 생산 효율을 늘리기 위해서는 생산 수단을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시장을 자본의 수급 논리에 맡겨야 한다고 보는 것이 자본주의(capitalism)라면,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산 수단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시장을 국가 계획의 통제하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산주의(communism)이다. 그렇다면 흔히 상반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서로 배다른 자식이 아니라, 산업주의의 이란성 쌍생아라고 할 수 있다. 그 런데 이처럼 합리주의가 산업주의로 변이됨에 따라, 합리주의적 인간형인 ‘지혜인(homo sapiens)’은 산업주의적 인간형인 ‘생산인(homo faber)’으로 바뀐다. 또한 산업주의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기준으로 삼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변질시킨다.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을 지닌 진보된 사회가 고급의 문화나 문명이라면, 그런 기술적 능력을 지니지 못한 낙후된 자연 상태는 저급한 미개의 야만이 된다. 근대적 생산성의 창출에 유리한 구조를 지닌 사려 깊고 적극적이며 생산적인 인간이 남성적인 것이라면, 그런 구조를 지니지 못해 생산성의 증대에 별로 기여하지 못하는 경박하고 소극적이며 소비적인 인간은 여성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과학 기술을 통해 생산성의 향상에 성공한 근대적 산업 국가가 제국주의 지배국이 되는 데 반해, 과학 기술의 부재로 생산성의 향상에 열악한 전근대적 농업 국가는 식민지 피지배국이 되고 만다. 인간과 자연, 정신과 물질(육체) 간의 데카르트적 분리가 주체와 객체의 분리를 거쳐, 문명과 야만, 남성과 여성, 식민국과 식민지의 분리로 귀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리는 단순한 구분에 그치지 않는다. 각 항의 전자(인간·정신·문명·남성·식민국)와 후자(자연·물질(육체)·야만·여성·식민지)의 분리는 후자에 대한 전자의 우위에 기초하여 전자에 의한 후자의 지배로 이어진다. 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근대적 경향에 반발하여 여러 가지 사조들이 생겨났다. 문명과 야만의 구분에 대한 반박으로는 문화상대주의(cultural relativism)가, 남성의 여성 차별에 대한 공격으로는 페미니즘(feminism)이,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저항으로는 반제국주의 운동(anti-imperialist movement)이, 그리고 서구의 합리주의적 근대성(modernity) 전반으로부터의 탈출(post) 경향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 각각 출현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다기(多岐)한 분출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조를 촉발시킨 이면의 근저에는 인간과 자연의 분리와 인간의 자연 지배가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과 인간의 바람직한 관계를 모색하는 생태철학이야말로 단순한 환경보호 운동의 차원을 넘어 서구적 사유 방식 전체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 작업이 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