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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의 바람직한 관계 / 김종욱 5. 불교의 자연관 (1)

작성자거울|작성시간08.02.17|조회수160 목록 댓글 0
 

자연과 인간의 바람직한 관계 / 김종욱 5. 불교의 자연관 (1) 불교의 자연 개념을 논하기에 앞서, 자연(自然)이라는 표현이 한역불교에서 실제로 사용된 경우들을 살펴 보기로 하자. 원래 자연(自然)이라는 말 자체는 중국 도가 사상에서 도의 본성을 가리키는 핵심 용어로서 ‘제 스스로 그러함’을 뜻하는데, 이것은 “억지로 만들거나(造) 일부러 하지(爲) 않으면서 만물이 스스로 서로를 다스려 질서를 잡는 것(無造無爲 萬物自相治理)”을 의미했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제 스스로 그러함’으로서의 이런 자연을 ‘저절로 그렇게 됨’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항상 장로를 공경하는 자에게는 네 가지 복이 저절로 자라난다.” (常敬長老者 四福自然增, 《법구경》 〈술천품〉)거나, 인위적 노력에 의하지 않고 “저절로 생기는 부처님의 지혜” (自然智, 《법화경》 〈비유품〉, 〈법사품〉)라고 하거나, 불국정토에서는 온갖 좋은 것들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생겨나고” “저절로 앞에 나타난다”(自然化生, 自然在前, 《무량수경》)거나 하는 것들이 좋은 예이다. 그런데 이때의 자연은 팔리어 sayam.이나 산스크리트 svayam.에 대한 번역어로서 단순히 ‘저절로’라는 수식어에 불과할 뿐, 소위 자연관을 논할 때의 그 자연 개념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본성으로서의 자연’과 ‘전체로서의 자연’이라는 온전한 자연 개념을 불교적인 사유 속에서 검토해 보기 위해서는, 그 단서를 단순 역어로서의 자연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야만 한다. 그곳이 바로 다르마이다. 인도 철학 사상에서 다르마만큼 복합적이고도 핵심적인 의미를 가진 개념도 없을 것이다. 대충 열거해 보아도 법령·판결·관례·규범·질서·법칙·이법·의무·권리·정의·도리·도덕·선행· 진상·진리·교리·교설·본성·본질·요소·사물·사건·존재 등 20여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떠받치다’ ‘유지하다’ ‘지탱하다’는 뜻의 dhr.에서 유래한 다르마(dharma)는 크게 보면 ‘어떤 것을 떠받쳐 유지시켜 주는 것’ 또는 ‘어떤 것에 의해 지탱되어 유지되는 것’이라는 뜻이며, 이를 좀더 세분하면 다음과 같은 네 부류로 나뉜다. 첫째, 인간 사회를 떠받쳐 유지시켜 주는 것이라는 의미에서는 사회의 ‘질서’와 ‘규범’과 ‘법령’, 카스트 제도상의 ‘의무’, 인생의 네 가지 주기(a?쳑ama)에 관한 ‘관례’ 등을 뜻한다. 이것은 브라흐만교도 내지는 힌두교도로서 지켜야 할 ‘정의’이자 ‘도덕’으로서, 불교의 등장 이전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인도 사회에서도 존중되고 있는 힌두 다르마이다. 둘째, 우주 만물을 떠받쳐 유지시켜 주는 것이라는 뜻에서는 우주의 ‘이법’이나 ‘법칙’, 만물의 ‘본성’이나 ‘진상’ 또는 ‘진리’ 등을 의미한다. 이것은 종래의 협소한 용법이 불교의 등장으로 인해 훨씬 확장되었음을 보여 준다. 브라흐만이나 힌두의 다르마가 카스트적 규제를 포함하는 지극히 인디아적인 법임에 반해, 이런 불교의 다르마는 카스트 제도를 넘어선 만유 보편의 법이다. 전자가 신들의 계시로서 영원 불변한 부동법(不動法, sana?-dharma)을 가리킨다면, 후자는 무수한 조건에 따라 생성 소멸하는 인연법(因緣法, prat沖tya-dharma)을 가리킨다. 따라서 “연기를 보면 곧 법을 보는 것이요, 법을 보면 곧 연기를 보는 것이다.” (若見緣起便見法 若見法便見緣起, 《중아함》 〈상적유경〉)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 만물의 원리 내지 본성으로서의 다르마(法)란 내용적으로는 바로 ‘연기(prat沖tyasa?utpada)’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이런 만물의 법칙에 의해 지탱되어 유지되는 것이라는 뜻에서는 그런 이법에 의해 형성된 ‘사물’이나 ‘존재자’ 혹은 그 존재자의 구성 ‘요소’ 등을 의미한다. 이것은 ‘연기’라는 본성적 원리에 따라 ‘연기한 것(prat沖tyasamutpanna, 緣已生)’을 가리킨다. 불교에서 일체법이나 제법(諸法, sarva-dharma)이라는 말로 함축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존재자들이다. 넷째, 그런 만물의 법칙에 관해 가르치는 것이라는 뜻에서는 ‘교설’ ‘교리’ ‘경전’ 등을 의미한다. 불교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불법(佛法, buddha-dharma)이라 하고, 그런 가르침을 삼보의 하나로서 법보(法寶, dharma-ratna)라고 할 때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상과 같은 다르마의 여러 의미들 중 두번째와 세번째 의미가 불교적 자연 개념의 단서가 된다. 왜냐하면 우주 만물의 이법이나 본성을 ‘연기’로 보는 것은 ‘본성으로서의 자연’에 해당하며, 연기를 본성적 원리로 하여 ‘연기한’ 일체의 존재자들은 ‘전체로서의 자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교에서 ‘본성으로서의 자연’과 ‘전체로서의 자연’은 각각 법성과 법계로 표현될 수도 있다. 법성(法性, dharmata?)이란 법의 본성을 말하는데, 이 때의 법은 실제로는 제법, 즉 모든 ‘연기한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제법의 본성으로서의 법성이란, 연기한 제법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성격, 또는 연기한 모든 존재자를 그렇게 존재하게 하는 원리를 의미한다. 그것은 바로 ‘연기(緣起)’이다. 이 연기라는 원리는 현실 세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연기한 것’들을 추상화한 하나의 이법이기 때문에, ‘연기한 것(prat沖tyasamutpanna, 緣生)’을 추상명사로 만들어, 연생성(緣生性, prat沖tyasamutpannatva)을 법성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연기(prat沖tyasamutpa?a)란 수많은 조건들(prat沖tya)이 함께(sam) 결합하여 일어난다(utpa?a)는 ‘상호의존적 발생’을 의미한다. 일체의 현상이 이런 상호의존성(idappaccayata?)의 원리에 따라 성립된다고 할 경우, 영원 불변하게 고정된 것은 있을 수 없고(無常), 혼자만의 동일성을 유지하는 자아도 있을 수 없으며(無我), 자기만의 존재로 지속되는 독립적인 실체도 있을 수 없게 된다(無自性, 空). 서양인에게서 자연의 본성이 제작성(고대)과 창조성(중세)과 기계적 인과성[근대]이고, 도가에서는 무위자연성(無爲自然性)인데 비해, 불교에서는 이처럼 무상성(anityata?)과 무아성(ana?matva)과 공성(s쳕?yata?)을 특징으로 하는 상호의존성, 즉 연생성이 자연의 본성(법성)인 것이다. 이러한 연생성으로서의 법성이야말로 모든 존재자의 있는 그대로의 실태를 보여주는 것이므로, 제법실상(諸法實相, dharmata?)이라고도 한다. 또한 상호의존적 발생이라는 이러한 ‘현상의 규칙성(dhammaniya?a)’은 여래가 출현하든 출현하지 않든 간에 이미 있어 온 일종의 법주성(法住性, dhammat.t.hitata?)으로서 (《상윳타니카야》 2. 25), 그러한 법을 깨달은 자가 곧 붓다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법성은 붓다가 될 수 있는 근본적 가능성인 불성(佛性, buddhatva)을 가리키기도 한다. 법계(法界, dharma-dha?u)라고 할 때, 그 계(dha?u)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야기하다’ ‘놓다’는 뜻의 dha貶【? 유래한 dha?u는 ‘야기하는 근원(因, 性)’과 그런 근원에 의해 ‘야기되어 놓여진 것(分齊, 가지런히 나누어 가짐)’이라는 두 가지 뜻을 지닌다. 전자의 뜻으로 해석할 경우, 모든 존재자의 현상을 야기하는 근원으로서의 연생성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법계는 곧 법성과 같은 의미가 된다. 하지만 후자의 뜻으로 해석할 경우, 연기라는 원리 하에 마치 하나의 가족이나 종족처럼 공존하며 모여 있는 것을 뜻한다는 점에서, 법계는 곧 ‘연기한 제법(prat沖tyasamutpanna? dharma?.)’, 즉 일체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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