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오전 답사는 합정역 인근의 절두산순교성지와 양화진 외국인 묘지. 아침 먹고 이례적으로 카페에서 일정을 시작했다. 모닝커피와 함께 해설을 맡아주신 선생님의 사전 강의로 답사를 시작했다.
그 명칭조차 소름 끼치는(목을 자른다는) 절두산 순교성지에서는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숙연해진다.
순교기념성당에서 들려오는 미사의 찬송가가 가슴을 울렸다.
1866년에 시작된 병인박해는 한국 천주교 최대, 최후의 박해이다. 무려 1만 명 가까운 희생자가 나온 참혹한 피의 광기였다.
병인박해의 참혹함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이 잘려 한강에 던져졌다. 그래서 생긴 이름 절두산.
그곳에 순교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66년 순교자기념관이 건립되었다. 기념관에는 성당, 박물관, 경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순교자 박물관에는 소장품전 <조화> 전시가 있어서 작품들을 함께 둘러 봤다.
불과 25세에 순교한 김대건 신부상에서 느껴지는 소박한 친근함.
너무나도 인간적인 최종태 작가의 성모상.
그가 만든 길상사 관음보살상은 성모 마리아를 닮았고, 성모상은 보살상이 기반이 되어 나왔다. 최종태 작가는 가톨릭에 입문하기 전 오랜 기간 불교 공부에 매진했었기에……
강 건너 저 곳에도 평화가 오기를…..
절두산 성지 옆에는 한국기독교 선교기념관과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교회가 있다.
양화진에 구교와 신교가 나란히 100주년 기념물을~~ ^^
양화진 외국인 묘지
절두산 성지 옆에는 조선 말 고종 때부터 이 땅에 와서 살다가 세상을 떠난 외국인들의 묘지가 있다.
대개 선교를 위해 왔던 그들은 종교뿐만 아니라, 근대 여명기의 이 땅에 교육, 의료, 언론 등에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이다
여성교육을 위해 이화학당을 세운 스크랜톤, 대한매일신보의 어니스트 베델, 연희전문학교(현재 연세대학교)를 세운 언더우드, 이화여대 설립에 공이 큰 아펜젤러와 그의 가족들, 세브란스 의대를 세운 더글러스 B. 에비슨, 한국의 은인으로 추앙받을 만큼 한국을 사랑했던 호머 헐버트 박사, 대한제국 국가를 작곡한 프란츠 에케르트 등이 잠들어 있다.
머나면 이국 땅에 와서 살다가 잠든 그들의 묘소에서는 단순한 무덤 그 이상의 감동이 와 닿는다. 다만 안타까운 건, 한강을 바라보는 언덕 위에 한적하게 잠들었을 묘지인데, 지금은 강변북로 등을 달리는 차들의 끊임없는 소음에 노출되어 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성당보다도 한국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다는 헐버트 박사의 유언
깍여나간 배델의 비문
어니스트 베델(배설 裵說 1872~1909) 영국인으로 처음에는 러일전쟁 관련 취재를 위해 입국했지만, 일제의 한국에 대한 침략상에 분개하여 '대한매일신보'를 양기탁과 함께 창간했다.
일제의 침략상을 강하게 비판하고 저항하다, 1909년 한국에서 향년 37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묘비의 비문을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썼던 장지연이 썼는데, 베델을 늘 눈엣가시로 여기던 일제는 이 비문을 깍아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해방 이후 1964년에 언론인들이 뜻을 모아 성금으로 그 묘비 옆에 비석을 세워 훼손된 비문을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