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마지막 답사지, 퇴사원으로 이동합니다. "進思盡忠 退思補過" 말마따나, 물러난 임란생이, 관직에 머물렀을 때의 과오를 반성하고 고칠 방안을 궁구하는 의미로 지은 원림이었던 셈인데, 우림 팀으로서는 두번째로 들르는 셈입니다^^
들어서자마자, 정면 좌우측에는 꽤 큼지막한 글씨로, "種樹者必培其根, 種德者必養其心"가 적혀 있네요^^;; 와서 찾아보니, 왕양명 선생의 전습록에 나오는 구절인데, 이를테면, 나무를 심는 자는 반드시 그 뿌리를 북돋워줘야 하고, 덕을 쌓는 자는 반드시 마음을 길러야 한다는 ...


완향루는 퇴사원에서 원림 주인 가족이 머물던 장소입니다... 내내 비는 오지 않았지만, 뭔가 습기도 가셨지만, 그렇다고 메마르지 않은, 오히려 선선한 공기가 마당에 가득합니다...

가이드와 의논했드랬습니다. 역시 퇴사초당에서 단체사진을 부탁드렸으면 하는^^;; 가이드의 의견과 딱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제 의견을 존중해주셨네요^^;; 여튼, 그렇게 먼저 한 컷 찍고, 시간을 정해 각자 소요하기로 했습니다~ 각자 원림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하실 듯하여^^;;


쨍쨍하고 화창한 날씨의 원림도, 내리쬐는 햇볕으로부터 기운껏 더 활기차게 돌아다닐 기운을 얻어 빠릿빠릿 다녀보는 것도 좋을텐데, 오늘같이 오후 느즈막히 비온 직후처럼 기온도 적당히 식혀졌고, 적당한 습도로 갈증없이 다닐 수 있었던 이런 분위기 속의 원림도 또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우생량헌(菰雨生涼軒)에 발길이 머뭅니다. 팽옥린(彭玉麟)이 항저우 서호의 삼담인월(三潭印月)에 남긴 주련 글귀,
涼風生菰葉,細雨落平波
서늘한 바람은 줄풀 잎사귀 사이로 불어오고, 가는 비는 잔잔한 물결 위로 떨어지네.
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그 뜻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남송 시인 강기(姜夔)의 염노교(念奴嬌)에서 뜻을 취했다고 하네요... 어쩌면 비갠(?) 퉁리의 저녁을 거닐고 저녁먹고, 다시 운핫길 따라 산책하는 우리가 느껴봄직한 딱 그 심상 같기도 합니다^^
念奴嬌 其一 姜夔
염노교 1편 강기
予客武陵,湖北極憲治在焉。
내가 떠돌다 무릉(武陵)에 머물 적에, 호북(湖北) 안찰사(極憲) 관아가 그곳에 있었다.
古城野水,喬木參天。
옛 성곽에는 물이 거칠게 흐르고, 나무들은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었다.
予與二三友日蕩舟其間,薄荷花而飲。
내가 두어명의 벗들과 더불어 날마다 배를 띄우고, 연꽃을 헤치며 술을 마셨다.
意象幽閒,不類人境。
마음이 그윽하고 한가하여, 마치 인간 세상 같지 않았다.
秋水且乾涸,荷葉出地尋丈,因列坐其下。
바야흐로 가을이 되어 호숫물이 말라붙자, 연잎이 땅 위로 한 길이나 솟아올라, 우리는 마침내 그 아래에 줄지어 앉았다.
上不見日,清風徐來,綠雲自動。
위로는 태양이 보이지 않고, 맑은 바람이 천천히 불어오며, 푸른 연잎 구름이 스스로 움직였다.
間於疏處窺見遊客畫船,亦一樂也。
간혹 잎사귀가 성긴 곳 사이로 노니는 화려한 배를 엿보는 것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朅來吳興,數得相羊荷花中。
그 후 이곳 오흥(吳興)으로 돌아와서도, 여러 차례 연꽃 사이를 서성이고 거닐 수 있었다.
又夜泛西湖,光景奇絕。
또 어느 밤에는 서호에 배를 띄웠으니, 그 풍광과 경치가 기이하고 절묘했다.
故以此句寫之 。
옛 일을 회상하며 이 구절로 그것을 그려본다.
鬧紅一舸,記來時、嘗與鴛鴦為情侶。
붉은 연꽃 요란한 곳에 작은 배 한 척, 지난 날 그 곳에 올 적, 일찍이 원앙새와 짝이 되었던 일을 기억하노라.
三十六陝未到,水佩風裳無數。
서른여섯 파산 연못에는 아직 못 가봤으나, 물의 패옥과 바람의 치마를 입은 연꽃들이 무수히 늘어섰도다.
翠葉吹涼,玉容銷酒,更灑菰蒲雨。
푸른 연잎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빼어난 연꽃 얼굴은 술기운 깨듯 맑은데, 다시금 고목과 부들 위로 우두두 비 쏟아지네.
嫣然搖動,冷香飛上詩句。
방긋 웃으며 아스라이 흔들리더니, 그 차가운 향기 날아와 내 싯구 위에 올랐네.
日暮青蓋亭,情人不見,爭忍凌波去。
해는 저물어 푸른 일산 연잎 가득한 정자인데, 그리운 님은 보이지 않아, 어찌 물결을 차마 밟고 떠나가리.
只恐舞衣寒易落,愁入西風南浦。
다만 걱정은, 춤추는 연꽃 옷이 차가워져 쉬이 떨어질까, 가을 서풍 부는 남포에선 수심이 깊어지네.
高柳垂陰,老魚吹浪,留我花間住。
높다란 버드나무는 그늘을 드리우고, 나이든 물고기는 거품을 뿜으니, 이에 나는 머물며 이 꽃 사이에 살아가네.
田田多少,幾回沙際歸路。
둥글고 푸른 연잎은 얼마나 많은지,
그 사이 모래사장 저편엔 길이 몇 번을 돌아가는지.



이제 퇴사원에서의 길지는 않았지만, 나름 알차게 답사를 마치고, 우리는 걸어서 식당까지 퉁리 시내를 걸어봅니다... 저번 답사때, 이 희대(戱臺) 앞에선, 아주머니 수십명의 군무가 마침 있어서, 꽤 눈길을 끌었습니다만, 지금은 한산한 저녁 풍경 그 자체네요^^

이제 우리는 퉁리에서의 저녁을 위해 청엔탕 팅유안스방차이(承恩堂庭院私房菜)를 향합니다. 11년전 남원다사에서 맛난 저녁을 먹었던 기억이 있었고, 퉁리에서의 식사는 좋은 예감을 떠올리게 했는데, 이번에는, 그야말로 최대한 현지인 맛집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찾은 청엔탕은 평도 좋았고, 넘 화려하지 않지만, 가정식에 충실한 메뉴가 후기에 적혀 있어서, 여기다 싶었네요^^;; 퇴사원과도 가까웠구요~
꽤 퇴사원에서 가까운 식당이었던 터라, 금방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아쉽게도 우리가 그룹이라, 본채의 그 300 내력의 고택에서의 식사는 무리였겠지만, 여튼 그 주방에서 내오는 맛깔나는 중국 가정식 한 상 차림을 만끽할 수 있었네요^^;;


식당에서 나오다보니, 익숙한 이름의 글귀가 시작되어, 꽤나 긴 분량으로 벽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네요^^;; 한 무제 때의 시인 사마상여의 상림부였습니다@@ 역쉬 퉁리의 스케일 !!!
亡是公聽然而笑曰:
亡是公이 웃으며 말하길,
「楚則失矣,齊亦未為得也。
초(楚)나라 이야기는 틀렸고, 제(齊)나라 이야기도 맞다고 할 수 없습니다.
夫使諸侯納貢者,非為財幣,所以述職也;
제후들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함은 재물과 화폐를 탐해서가 아니요, 직분을 서술하여 보고토록 함이며,
封疆畫界者,非為守禦,所以禁淫也。
강토를 봉하고 경계를 획정함은 적을 막고 방어하려 함이 아니요, 방탕하고 음란함을 금하려 함입니다.
今齊列為東藩,而外私肅慎,捐國踰限,越海而田,其於義固未可也。
이제 제나라는 동쪽의 울타리 제후국으로 늘어섰거늘, 밖으로 사사로이 숙신(肅愼)과 통교하고 계선(界線)을 넘었으며; 나라를 버려두고 한계를 뛰어넘어, 바다를 건너가 사냥하였으니, 그것이 의리(義)에 있어 진실로 불가한 일입니다.
且二君之論,不務明君臣之義,正諸侯之禮,徒事爭於遊戲之樂,苑囿之大,欲以奢侈相勝,荒淫相越,此不可以揚名發譽,而適足以貶君自損也。」
그대들 이야기는, 군신의 의리(義)를 밝히는 데 힘쓰지 않고 제후의 예법(禮)을 바르게 하지 아니한 채, 한갓 유희의 즐거움과 원유(苑囿)의 거대함을 다투는 일에만 매달렸을 뿐, 사치로써 서로를 이기고자 하고 방탕함으로써 서로를 뛰어넘고자 하니, 이는 명성을 날리고 명예를 드러낼 수 있는 길이 아니요, 도리어 군주를 깎아내리고 자신을 손상시키기에 족할 따름입니다.
원래 작품이 워낙 길어서, 사진에 찍힌 부분만 올립니다^^;;; 전문은 따로 올리겠습니다.@@ 상림원은 기록에 나오는 가장 초창기 황실 원림이었던 셈인데, 그 규모가 남북 20km, 동서 60km 이상 되었다고 하네요^^;;




마침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한 낭만의 퉁리 운하 수변은 아름다웠습니다 !!! 숙소를 여기 잡았다면, 이 풍경을 다 가져올 수 있었겠지만, 우리는 숙소를 쑤저우 핑장루 근처에 잡았습니다^^;;; 오늘 하루 조심조심하면서 무사히 답사를 마무리~ 하기엔 아직 샨탕지에 저녁 답사, 우리 답사에서 가장 많은 인파를 경험했던 샨탕지에 도보 답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