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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중국강남수향고진답사 2026 (11) - (2026.5.25) 루즈고진 (2) - 만성미행, 소택

작성자칸텔리|작성시간26.06.12|조회수71 목록 댓글 0

이제 본격적으로 루즈 도보 답사를 시작합니다... 부두 바로 옆에는 만성미행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만청시대 쌀가게? 기념관인 셈인데, 우리만큼이나 고단한 근대를 겪었던 중국의 작가들도, 그 시대의 혹독한 신고식을 처절하게 그려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바로 여기 만성미행에도 그 소설 하나가 걸려 있었네요...  예성타오 선생의 "多收了三五斗(세 말 다섯 되를 더 거뒀어.)"입니다... 내용이 다소 길어서, 따로 게시판에 올리겠습니다^^;; 여튼, 그 소설에 담겨 있는 밑바닥 서민이 내미는 쌀 얼마로 내비치는 소름끼치는 가난에 무관심한 상인들과 손님들, 마치 서로 다른 나라 사람인 것 같은, 그렇게 매일매일 흘러가는 시간...

그렇게 덤으로 만성미행을 후다닥 둘러보고는, 우리는 본격적으로 도보 답사를 시작하기 전에, 잠깐 가이드의 찰진 설명을 들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만성미행에 관련된 소설을 짧게라도 해설 부탁했드랬습니다^^ 

뭔가 만성미행에서의 고단했던 중국 근대사의 한 겹 스토리텔링의 탓인지, 루즈 수향마을의 돌, 나무, 지붕도 그런 삶의 고단함이 괜히 묻어납니다..

앞에 보이는 저 멀리 다리 아래로 우리가 방금 유람선을 타고 들어왔더랬습니다...

저 멀리 중안교(众安桥)가 보입니다. 우리는 좀 더 북쪽으로 산책하면서 소택을 향합니다...

 

녹단(甪端)이 점지했다는 복받은 땅, 요 다음 들르는 저우좡의, 왠지 모를 부티와는 상반된, 이렇게 얘기하면 그럴지 모르지만, 왠지 모를 빈티 ??? 여튼 오히려 그래서 더 친근감이 느껴지는 마을 속을 걷습니다~

왕도 기념관(王韜紀念館)을 잠시 들릅니다~

 

만청 때의 개화를 주창하던 변법, 그 최전선에서 열씨미 서구의 문물을 열씨미 번역해서 주고 받았던 사상가, 그 때 우리나라에서는 박규수, 오경석 선생의 노력이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던 바로 그 시기입니다... 

 

절대적으로 동서양간 문물의 격차를 이해하고, 어떻게 변화해야 살아남을까를 고민했었던 지식인이었습니다... 이렇게 짧게 들르는 통에 많이 얘기나누지는 못했고, 또 까먹은 것들도 나중에 복기해보면, 놏쳤다는 걸 그때는 몰랐고^^;; 여튼 그렇게 전시관 이곳저곳을 둘러봅니다...

 

순환일보(循环日报)는 1874년 홍콩에서 창간된 중국 최초의 근대신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참새마냥 방앗간을 그렇게 들른 우리는,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저 앞, 환옥교(环玉桥)를 건너갑니다. 건너가면, 바로 왼쪽 골목 언저리에 소택이 있습니다...

저 앞에 보이는 다리는 화풍교(和丰桥)입니다^^ 여기는, 이를테면 전통 건축물과 근대건축물 지구의 경계쯤 됩니다~ 다리 뒤편으로 빌딩이라 부르는 게 더 자연스러울 외관의 건물이 보입니다~

현대 홍콩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베를린 영화제의 히로인 샤오팡팡의 소택을 둘러봅니다... 루즈 수향마을에 남아 있는 가장 잘 보존된 만청시대 전통 주택 건축물이라네요^^

 

이분입니다^^ 아역스타로 전성기를 일찌기 찍었지만, 중년에 초심으로 미국유학에 학위까지 딴 당찬 홍콩 배우였다고 하네요^^;; 한 세대 전 명배우이지만, 새삼 영화 포스터를 둘러보면서, 유사 옛 추억에 잠겨봅니다^^ 마치 우리나라 옛 단성사 기념관을 보는 듯한^^;;

양쪽에 걸린 주련 싯귀가 뭔가 시건을 끌어서 찾아봐야겠다 싶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두보의 싯귀였었네요^^;;

 

忆昔二首 其二 - 杜甫

옛일을 기억하며 - 두보

 

忆昔开元全盛日,小邑犹藏万家室。
옛 개원(開元)의 태평성대를 기억하니, 작은 고을에도 만 가구씩 살았었다네.
稻米流脂粟米白,公私仓廪俱丰实。
쌀은 기름지고 조는 하얗더니, 나라와 백성 창고 모두 다 넉넉했다네.
九州道路无豺虎,远行不劳吉日出。
천하의 길바닥엔 도적 하나 없고, 먼 길 떠나도 길일)을 고를 필요 없었네.
齐纨鲁缟车班班,男耕女桑不相失。
비단 실은 수레들은 길에 가득 늘어섰고, 남자는 밭 갈고 여자는 길쌈하며 제 본분을 지켰었네.
宫中圣人奏云门,天下朋友皆胶漆
궁중의 성군께선 태평성대 음악 연주하시니, 천하의 벗들은 아교와 옻칠 사이처럼 돈독했다네.
百馀年间未灾变,叔孙礼乐萧何律。
백여 년 세월 동안 재앙 한 번 없었으니, 숙손통의 예악(禮樂)과 소하의 법률(律) 덕분이었네.
岂闻一绢直万钱,有田种谷今流血。
비단 한 필 값이 만 전(萬錢) 될 줄 어찌 알았으랴, 농토에 곡식 심던 이들은 이제 피를 흘리네.
洛阳宫殿烧焚尽,宗庙新除狐兔穴。
낙양의 궁전들은 모두 잿더미가 되었고, 종묘의 새 길도 여우와 토끼 굴 뿐이네.
伤心不忍问耆旧,复恐初从乱离说。
마음 아파 고을 노인들에게 옛일 차마 못 묻겠고, 난리통 시작된 이야기 다시 들을까 두렵기만 하네.
小臣鲁钝无所能,朝廷记识蒙禄秩。
이 보잘것없는 신하는 우둔하여 아는 것 없으나, 조정에서 알아주어 녹봉을 받았다네.
周宣中兴望我皇,洒血江汉身衰疾。

주( 周 )선왕(宣王)처럼 우리 임금 중흥(中興)하길 바라며, 강한(江漢) 땅에서 피눈물 흘리지만, 이 몸은 늙고 병들어버렸네.

 

咏怀古迹五首  其五 - 杜甫

옛 자취의 회한을 읊다 - 두보


诸葛大名垂宇宙,宗臣遗像肃清高。
제갈량의 높은 이름 온 세상에 떨쳤고, 종묘의 영정은 숙연하고 고결하네.
三分割据纡筹策,万古云霄一羽毛
천하를 셋으로 나눌 계책 품었으니, 만고의 높은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 같았다네.
伯仲之间见伊吕,指挥若定失萧曹。
그 기량은 이윤과 강태공에 견줄 만하고, 지휘하는 솜씨는 소하와 조참을 무색케 했네.
福移汉祚难恢复,志决身歼军务劳。

천운이 한나라를 떠나 회복하기 어려웠건만, 결연한 뜻에 군무에 힘쓰다 몸 바쳐 쓰러졌다네.

1958년 샤오팡팡 11살때 주연으로 활약했던 "고아유랑기"의 호연으로, 중국의 "셜리 템플"이라는 애칭이 생길 정도였다고 하네요^^

1960년 개봉된 무협영화, 청성십구협(青城十九侠)에도 주연을 맡았습니다. 이 무렵부터, 성인연기에 도전하여 왕성한 작품활동의 했다고 하네요^^ 유리에 비친 우리들까지 영화 포스터의 일원이 된듯한 ㅎㅎㅎ

거대한 엽전같아 보이는@@ 이제 우리는 소택 답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다음 목적지, 심택을 향합니다.. 그리고 보성사 뒷편에 넓은 잔디밭 사이로 육구몽묘를 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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