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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중국강남수향고진답사 2026 (12) - (2026.5.25) 루즈고진 (3) - 심택, 육구몽묘

작성자칸텔리|작성시간26.06.13|조회수71 목록 댓글 1

이제 우리는 심택으로 이동합니다. 보성사 바로 옆이기도 하고, 또한 루즈 수향마을 매표소 바로(?) 옆이기도 해서, 사실상 심택+보성사,육구몽묘 답사로 루즈 수향마을 답사는 마무리됩니다...

 

오전에는 무두 수향마을에서 더위에 지치고, 루즈 수향마을에서는 꽤 긴 도보 동선에 일행 놓치지 않고 다니느라 지치고, 이래저래 삼일간 이어지고 있는 답사의 고비일 듯합니다@@ 그래도, 모두들 내색않고 잘 다녀주셔서 감사드려요^^;;;

거리 사이로 운하가 보입니다. 그 안에는 짬짬이 청소를 하고 있는 인부의 부지런한 손놀림이 깨끗한 운핫길을 만들었겠다 싶었네요... 아닌게 아니라, 이번 답사에서는, 중국 하면 떠올릴법했던, 쓰레기, 오물이 수롯가에 고여 있거나 하는 모습을 거의 못 본 거 같네요^^ 혹 보신 분 계신가요 ??@@

진리교(进利桥) 앞에서 우리는 오른쪽으로 꺽으면, 심택, 보성사, 그리고 매표소가 나옵니다...

심택은, 근대 중국의 혁명가였던 심백한의 고거입니다... 와세다 대학 유학 때 동맹회에 가입하여 반청 운동에 동참한 운동가이기도 했고, 집안 사정으로 귀국후에는, 지역 교육 활동에 헌신한 교육가이기도 했습니다. 기업가이기도 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심씨 가문의 재력이 심반진이라 불릴 정도로 루즈 수향마을에서는 꽤나 재력가였었습니다~

 

현재 저택도 원래 규모에서 서쪽만 복원되었다고 하구요, 현재 개방되어 있는 구역은, 영화, 드라마 촬영지로도 종종 활용되고 있다고 하네요^^

가문에서 배출한 인물들을 전시해놓은 패널 앞에서 가이드의 찬찬하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를 귀기울여 듣습니다^^ 이번 답사에서 가이드의 설명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감사~~

낙선당은 심택의 본청입니다. 편액 그 아래에는, 

 

和气祥光,请声美行,

화목한 기운에는 상서로운 빛이 나고, 청렴한 이름은 아름다운 행실에서 비롯되느니,

 

尊德乐义,合泽戴仁
덕을 높이고 의를 즐김으로써, 은혜를 입어, 인을 받들게 되나니.

 

소망을 담은 주련이 걸려 있습니다...

마침 택내에는 작품전시회가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 둘러보면서 눈의 띄였던 몇점 스케치합니다^^

이제 슬슬 단체사진 얘기에 자동으로 반응하기 시작하시는 회원분들~ ㅎㅎ 다음 답사지를 들르고 나면, 저우좡으로 저녁먹으러 갑니다^^

이제 우리는 보성사를 향합니다. 기실 이 절은 복원된 곳이라, 사찰을 둘러보는 일정을 염두에 두지 않았었지만, 육구몽 선생의 묘를 여기서 찾아봐야 했고, 또 나중에 알고보니, 엽성도 선생의 묘도 이 안에 안장되어 있다고 하네요^^

 

또, 사진 정리하면서 알게 된, 당대의 조각가 양혜지의 구존 소조 나한상이 있는 곳입니다^^ 가이드의 안내가 아니었으면, 못 보고 그냥 지나칠 뻔 했네요^^;;; 그 규모가 강남 4대 사찰로 손꼽힐 규모였다고 합니다~~

여기, 소조 나한상입니다^^ 바위 사이로 아홉 분의 나한을 모두 담았나 싶었는데, 빠뜨린 분 없이 다 담겼네요^^ 다행@@

뒤편의 육구몽선생의 묘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품휘에 의하면, 초당, 성당, 중당, 만당으로 당시를 구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초당, 즉 당나라 개국 이후 100년정도 기간동안, 그 전 시대인 남북조 시대, 특히 남조에서의 귀족적, 염세적 시풍을 서서히 남성적이고 현실적인 시풍으로 쇄신해가는 당나라 건국 초기에 걸맞는 이 시기에 당태종 포함해서, 낙빈왕, 심전기, 진자앙, 장구령 등등 시인이 자주 언급된구요, 소위 정관지치의 태평성대가 이 시기에 해당합니다@@

 

성당, 당시의 최전성기에 걸맞게, 이백, 두보, 왕유, 맹호연, 잠삼, 왕창령 등 시대를 뛰어넘는 절대적 성취를 이룬 시인들을 다수 볼 수 있는 그야말로 황금기입니다... 특히 당 현종 초반 극성기, 개원지치를 구가하던 수많은 시인들의 걸작들이 끊임없이 배출되던 중국 문학의 극성기였던 셈입니다...

 

중당, 안사의 난으로 혼란스러운 사회, 전 시대의 문학적 성취의 여운이 쌓여, 더욱 계승 또는 심화, 사회비판 등 더욱 다양한 시작이 이루어지던 시기입니다. 한유, 유종원, 맹교, 가도, 백거이, 장적, 유우석 등 원숙하면서도 유려한 시들이 쏟아지던 시기입니다.

 

만당, 점점 몰락해가는 당나라 중심의 세계질서는, 흡사 남북조의 시풍을 연상케 할 정도의 유미적, 낭만적, 염세적인 시작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입니다. 이상은, 온정균, 두목, 두순학, 피일휴, 그리고 이 곳 루즈 출신으로 평생을 은둔의 시인으로 살아간 육구몽이 있습니다.

 

벼슬길이 한미해, 일찌기 낙향하여 루즈의 옛이름 보리(甫裏)로 내려와 은거하여, 세간에는 보리선생이라고 둘렀다고 합니다... 세상의 눈을 피해 숨었지만, 그가 남긴 시에는, 세상이 저버린 민중의 삶에 그 눈길을 살펴 같이 그 온기를 느끼고 시에 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은 많은 은일시가 있습니다...

그렇게 벼르고 별렀던 곳이라, 많은 분들이 한숨을 쉬시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침참하게 단체사진을 한 장 얻을 수 있었네요^^ 감사감사~~

 

많은 얘기를 까먹고, 몇몇 대목을 잘못 얘기한 것도 있어보였고, @@ 하지만, 이렇게 같이 시를 얘기하는 자리도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묘역을 둘러보고 나니, 저편에는 앞서 먼저 들렀던 만성미행의 소설 속 배경이 되었던 쌀집에서의 에피소드를 묘사했던 엽성도 선생의 묘역도 같이 있었네요... 그 옆에는 기념관도 있습니다... 원래 여기는 필수 일정으로는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가이드의 제안으로, 앞서 왕도 기념관과 함께 엽성도 기념관도 같이 들러볼 수 있게 되었네요^^ 감사감사~~

엽성도 선생은, 중국 근대문학사에 다소 무지한 우리로서는 노신말고는 다 생소한 작가이긴 했지만, 꽤나 대표작가 반열에 오른 저명한 작가이셨던 가봐요@@ 실제로 이번에 처음 접한 만성미행의 바로 그 소설 "쌀둔 세다섯 말 더 거뒀다네(多收了三五斗)"의 필력에 감탄했더랬는데, 다작으로도 꽤 유명하고, 90세 넘게 이어진 창작과 더불어, 활발한 정치 활동으로도 꽤 눈길이 갔습니다..

 

이 기념관은 그가 교편생활을 했던 제5고등초등학교(第五高小) 자리에 조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문학가 뿐 만 아니라,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全國人民代表大會常務委員會委員), 전국 정협 상무위원회 위원(全國政協常務委員會委員), 전국 정협 부주석(全國政協副主席)에도 올랐던 관료로서의 그의 생애도 눈길이 갑니다.

이제 답사의 고비였던 세째날의 오후 답사를 무난히 마무리하고, 우리는 버스로 되돌아가 저우좡에서의 저녁을 먹으러 출발합니다^^ 모두들 수고많으셨어요!!!

 

되돌아가는 길에는 앞서 유람선으로 지나쳤던 많은 풍경을 반대방향에서 도보로 반추하게 됩니다. 영안교(永安桥)가 저 앞에 보이네요^^

가이드에 의하면, 루즈에 오면 다들 녹단 앞에서 단체사진을 담는다고 합니다^^;;

 

사실, 자료집으로 정리할 당시 녹단이 어찌하여 이 땅의 풍광에 반해 숨어들었는지까지만 찾았더랬는데, 후기를 쓰면서 좀 더 알아보니, 그 전에 진시황 때 이 동물을 키우던 관리들이 계속 죽어나가자, 이를 참지 못한 녹단이 우리를 탈출하여 남쪽으로 도망갔는데, 바로 이 보리를 지나가다가 말고 아득하고, 향기롭고 수려하고, 평온하고 영험한 기운이 넘치는 이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여 이 곳에 깃들었다고 하네요^^

 

그런 영험한 땅을 답사하고 우리는 이제 수향마을 일번지, 저우좡으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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