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찾아서 스크래치 해오기는 했는데..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네요.
좋은 정보 올리려고 찾아오긴 했는데 만약 문제가 될 것 같으면 미리 알려주시면 삭제하겠습니다.
당사자들 분들께 실례가 될지도 몰라서요..
출처는 청문어학원이라는 곳입니다.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통역과]
<김경민>
합격수기라는 글의 성격상 약간은 자랑처럼 들릴 것 같아 민망하고 쓰기가 많이 망설여집니다. 그렇지만 이 글을 통해 오랫동안 격려하고 가르쳐주신 이창용 선생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해드릴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난 7월부터 번역을 지도해주신 양시래 선생님, 스터디를 통해 함께 공부한 언니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국내파입니다. 학부에서는 국제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교 2학년 2학기에 캐나다로 1년 동안 교환학생을 다녀온 것이 의미 있는 해외 경험의 전부입니다. 올해 처음 시험을 보기는 했지만 대학교 2학년을 전후로 방학 때마다 이창용 선생님의 통대 수업을 들어왔고, 작년 11월을 제외하고는 작년 7월부터 올해 11월까지 계속 수강했습니다. 햇수로는 4년, 수강 개월로 따지면 2년 정도 학원을 다닌 셈입니다.
올해 3월부터 6월까지는 학교와 학원 수업을 병행해야 해서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이창용 선생님의 화-목 이대반 수업을 같이 들었는데, 학교 공부에 치이다 보니 복습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본격적으로 통대 입시만을 준비한 것은 올해 7월부터인데 8월 중순쯤에 이창용 선생님께서 짜주신 스터디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차 시험을 치기 전까지 1주일에 3번, 1차 시험 이후에는 거의 매일 스터디 세션마다 영한 1개와 한영2개를 발표했습니다. 스터디원들과 자료를 공유함으로써 다양한 분야의 이슈를 접할 수 있었고, 제 퍼포먼스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받을 수 있어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정규수업과 모의고사, 스터디를 통해 접하는 자료만 해도 너무 많아서 전부 다 소화한 적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7월에는 일주일에 한 번 양시래 선생님의 번역 수업까지 같이 들으면서 정말 주체할 수 없이 자료가 쌓여갔습니다. 복습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상 수업과 스터디 시간에 최대한 많은 내용을 소화하려 애썼습니다. LC 같은 경우에는 이창용 선생님께서 주신 자료 이외에는 특별히 따로 구해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독해는 통역반과 번역반의 수업 자료 이외에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이나,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말콤 글래드웰의 책들처럼 문장이 평이하면서도 명료한 글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저만의 특별한 공부 방법이 있다거나 다른 사람들보다 학습량이 특히 많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처음 수업을 들었을 때의 저와 지금의 저를 비교해보았을 때 달라진 점은 이창용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늘 강조하시듯 ‘아이디어’를 덩어리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원문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양질의 통역을 하기 위한 이상적인 전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한국어를 들어도 100%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원문을 들을 때 마음을 비우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내가 들은 것과 듣지 못한 것을 구분해서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말이 되도록’ 하는 것에 마음을 많이 썼습니다. 발표를 하고 났을 때 혀를 깨물고 싶은 기분이 들 때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스스로 작아지는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시험이 가까워올수록 의도적으로 제가 잘했던 퍼포먼스만을 되새기면서 평상심을 유지하려 애썼습니다.
1차 시험을 보았을 때에는 시험 시간 내내 너무 헤맸고, 번역과 에세이 시험에서는 예상치 못한 주제의 문제들이 나와서 많이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면접관들 앞에서 한영 통역을 할 때에는 제가 살면서 영어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말을 영어로 해야 해서 몹시 곤혹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면접 시험을 보고 나왔을 때 같은 문제로 다시 시험을 본다고 해도 (제가 뭐라 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의 저로서는 그 이상을 할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과와 관계없이 후회는 없었습니다. 시험에는 항상 모르는 것들이 나오게 마련이기 때문에 꾸준히 공부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최종적으로 스스로의 한국어 혹은 영어 선택을 믿어야 하고, 또 믿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해온 공부보다는 앞으로 해야 할 공부가 훨씬 많겠지만,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서 현재로서는 매우 기쁩니다. 통대 시험을 준비하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것인데 언어를 배우는 데는 정말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점이 이 공부의 매력이기도 하고, 통번역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항상 겸손한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이창용&양시래 선생님, 함께 공부한 스터디원들에게 감사드리며, 통대 시험을 준비하시는 수험생 분들께도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통역과]
<탁성은>
*들어가기에 앞서
한 주만 더 지나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돌이켜보니 불과 6개월 전만 하더라도, foreclosure조차 몰랐던 탓에, 스크립트를 확인하기 전까진 몇 번씩 들어도 뉴스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때가 떠오릅니다. 어느 날엔 영한통역을 하는데, decent를 dissent로 들었지 않겠어요? 전혀 다른 두 단어를 혼동했으니 과연 얼마나 엉뚱한 통역을 했을지 상상이 될 겁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집니다.
그런데, 합격 수기를 쓸 수 있게 된 지금도 어휘력이나 청취력 등 여전히 여러 면에서 부족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합격 수기를 쓰는 게 참 망설여졌습니다.
하지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더욱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1997년도에는 중국어과 학생으로 처음 이문동 땅을 밟았다가, 14년 만에 통번역 대학원생으로 다시금 이문동 땅을 밟을 수 있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1. 출발선
소위 ‘국내파’라고들 하잖아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어릴 때 학업 환경이나 대학 전공도 그렇고, 일찍이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만한 환경은 가져보질 못했습니다. 단기 어학연수의 기회조차 가지질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영어를 시험 과목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로서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사실, 세 차례나 병치레를 하느라 휴학을 했던 터라, 전공과목부터 제대로 따라가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력이 없더라도 적어도 아침에는 눈이라도 뜨고 있자는 생각에 EBS모닝스페셜을 틀어놓기 시작했는데, 그 덕분에 영어의 매력에 젖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이후로, 하루에 30분이라도 비교적 꾸준하게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통대 입시를 준비하기 전까지는 정치, 경제 등 시사적인 내용에 관심이 별로 없었던 데다, 영어의 언어적인 면에서의 특징에 더욱 흥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 9월 무렵에, 영어를 좋아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말고 좀 더 전문적으로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교육 분야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TESOL을 전공하거나 교육대학원 영어교육과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산점이 있다기에 그해 12월에 토익에 응시했는데, 955점이 나왔습니다. 처음엔 들뜨기도 했지만, EBS귀트영과 입트영을 청취하면서,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제 실력에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프로그램 모두 진행자가 통번역대학원 출신이어서 막연했지만, 통역사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이 서서히 자리하기 시작했습니다.
2. 이창용 선생님의 ‘통대 입시 특강’
귀트영과 입트영을 두 달여에 걸쳐서야, 겨우 한 달 분을 끝내던 정도의 속도로, 혼자서 공부를 하던 중 5월 말 경에 통대 입시 특강 소식을 접했습니다.
두 시간 가량 이어졌던 특강은 오히려 영어 실력보다는 통역사가 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가에 더 초점이 있었습니다. 막연하게나마 동경해오던 통역에 대한 매력을 한껏 키워준 특강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많이 늦었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지만, 도전하고픈 마음이 더 컸습니다.
특강을 다 듣고 난 후, 통대 입시가 학원을 다니지 않고 혼자서 준비하기엔 아주 벅찬 도전이라는 것 역시 깨닫고서, 6월부터 학원 수강을 시작했습니다.
3. 수업 내용 복습 위주의 학습
6월 한 달은 정말이지 “괴물들과 함께 수업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괴물이라고 해서, 나쁜 의미가 아니라, 실력 면에서 모두들 너무나 대단해 보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50%도 채 못 알아들은 것을 거의 다 이해하고 영한통역을 하는 분들이나, 저는 우리말 내용도 기억하기 벅찬 상태인데 한영통역을 해내는 분들을 보면서, 길을 잘못 들어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제 실력이 너무 보잘것없어 보였습니다. 태어나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제 자신이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좌절감도 많이 느꼈습니다.
이런 탓에, 감히 스터디를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터디 파트너에게 시너지 효과는커녕 혹 짐이 될까 걱정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즐거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전엔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할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업 내용을 ‘제대로’ 복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물론, 언젠가는 스터디를 하긴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엔 2차 시험 직전에 한 차례를 제외하곤 따로 스터디를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수업 내용만 소화하는 것도 벅찼습니다. 수업 시간엔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설명해낼 수 있을 만큼’ 이해하지 못한 것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거의 매일, 때론 수일 전에 끝난 자료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선생님께 죄송할 정도로 자주 질문을 했었던 게 생각납니다.
복습은 수업 자료 상단에, 거쳐야 할 단계들을 순서대로 나열해서 적어 놓고 완수하면 V표 체크를 해두는 식으로 점검해나가며 복습했습니다.
가령, 영한통역 자료의 경우엔,
전체 청취( )->영한통역 1차 시도( )->스크립트 분석 및 부분적인 재청취( )->전체 청취( )->영한 통역 2차 시도->영영 시도( )
한영통역의 경우엔,
문단별 우리말 소리 내어 읽고<녹음> 한영 통역 1차 시도( )->문단별 우리말 녹음 내용 듣고 한영 통역 2차 시도( )->통역 예문 분석 및 통암기 2회( )
R/C자료의 경우엔,
지하철(학원에서 도서관까지 1시간가량 소요)에서 정독하며 질문할 내용 체크하기( )->해설 자료 및 답변 내용 바탕으로 정독 후, 속독 연습하기( )
와 같이 단계적으로 복습함으로써, 하나라도 대충 넘어가지 않도록 유념했고, 이미 공부한 것에 대해선 ‘기억 안 나면 어떡하지?’와 같은 걱정을 모두 떨쳐내며 확실하게 미련을 버리도록 했습니다.
복습을 제대로 해나간다는 게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이창용 선생님이 선정하신 자료들에 담긴 여러 정보들과 다방면의 지식들이 제 사고 방식이나 생활 속에 하나하나 유용한 형태로 네트워크를 이뤄가는 게 즐거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앞서 말한 것 외에, 한영 통역 자료의 경우에는, 스터디를 하지 않고 혼자서 공부하는 것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쓰기도 했습니다. 제 목소리를 직접 녹음하고 녹음한 파일을 식사 시간이나 길을 걸을 때 등 자투리 시간에 쉐도잉 하듯이 들어보며 표현 암기하는 방식으로 제 부족한 점을 메워나갔습니다.
이렇게 하게 된 계기는, 한 번은 이창용 선생님이 같이 점심 먹는 도중에 낭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셨을 때 무척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마침 그 때 제 영어에 경상도 억양이 종종 섞여 나온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AAT와 같은 영어 억양 관련 서적을 참고해서, 전체 내용을 큰소리로 최대한 정확하고 자연스럽게 읽으려고 노력하면서, 만족스러울 때까지 몇 차례 반복해서 녹음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개당 1시간씩 걸리기도 했는데, 점점 요령이 생기면서 시험일이 가까워올 무렵엔 20여분 만에 녹음이 끝나기도 했습니다.
1차 시험 합격 발표 전까지 이렇게 녹음을 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100여개나 되더군요. 이렇게 녹음해둔 파일들을 2차 시험 전까지 매일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쉐도잉하며 표현을 암기했는데, 녹음할 땐 많이 번거롭고 목도 자주 아팠지만, 억양을 조금이나마 더 개선하고 안정된 어조로 말하는데 적잖이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번역의 경우엔, 시험을 한 달 여 앞두고 양시래 선생님 수업을 듣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시간 안에 써내지도 못할 뿐더러, 특히 한영번역의 경우, 어휘력이 너무 달려서 또 다른 복병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복습 시간에 양시래 선생님의 설명을 다시 되뇌며, 우리말과 예시 번역을 철저하게 비교분석 해나가면서, 역시 즐거운 가운데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미비한 번역 실력에 한탄할 때도 많았지만, 양시래 선생님이 내주신 예시 번역문의 간명함과 명료함에 감탄하며 하나 둘 번역 방식들을 흡수해나가다 보면, 한탄하던 마음은 금세 달아나곤 했습니다.
4. 후기 <마음과 몸 관리의 중요성>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한 편에선, 제가 제 실력보다는 운이 무척 좋았던 덕에 합격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1차 시험의 경우, 정말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 밖에 못했습니다. 2차 시험의 경우에는, 평소 수업 시간에 공부했던 것보다 수월한 내용이 나온 데다, 당황스럽게 하거나 긴장감을 유발하는 상황이 적잖이 있었지만 제 특유의 임기응변으로 충분히 대처할 만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소위 ‘운’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잘 따르기 위해선 평소에 마음과 몸 관리를 제대로 꾸준히 하는 게 참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공부하는 내용이 동일하고, 분량도 다르지 않으며, 투자하는 시간 역시 똑같더라도, 마음과 몸이 어떤 상태이냐에 따라 실제적인 흡수력과 익힌 것의 장기기억 가능성, 활용 능력 등에 큰 차이가 생긴다는 것, 사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자꾸만 암기하고 있는 표현 개수, 통역 훈련 횟수 등 ‘눈에 보이는 것’에만 너무 목을 매게 됩니다. 시간에 쫓긴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초조해지면, 공부만 하느라 막상 몸 관리에는 소홀하기 쉽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 상태를 돌아보는 것은 아예 뒷전으로 미루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험 당일 날 같이 무척 긴장되는 날에도 탈나지 않고, 장시간 동안 시험을 치러도 체력이 거뜬하도록 준비해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는 실력 발휘 면에서 분명 차이가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긴장하지 않으면, 합격할 거야!’라든가, ‘내가 모르는 게 적게 나오면 합격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준비해온 사람과, ‘긴장하게 되면, 이렇게 대처해야지...당황하게 되면 저렇게 대처해야지!’ 혹은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이 나오면, 이런 식으로 덤벼보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준비해온 사람 간에도 준비 방식은 물론 실전 대처 능력에서도 적잖은 차이를 보일 것입니다.
사실, 저도 종종 좌절감에 빠져 우울해하기도 하고, 꾸준히 해오던 운동도 이따금 빼먹곤 했는데, 시험을 두 달여 남겨 놓은 어느 날, ‘합격 프로젝트-마음 다지기’라고 이름 붙인 일기를 쓰다가 확실한 생각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날은, 한영통역 시간에 정말이지 한 마디도 제대로 떼질 못해서 “실제 시험장 가서 그러면 그냥 바로 끊어버립니다!”라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던 날이었습니다. 시험이 코앞인 상황에서 이런 말을 듣고 나니, 정말 아무 것도 못하겠더군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며 생각을 정리하다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쓰게 되었습니다.
...남은 67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공부 분량만 놓고 보더라도, 내가 합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이제 내 목표는 합격에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물론, 최선을 다할 것이며, 그래야 한다. 그러나 합격하기까지 남은 시간, 합격을 향해 보내는 시간 자체도 내 인생의 중요한 단편이지 않은가? 합격만이, 합격하는 그 순간만이 의미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러기에 지금의 시간들을 내 인생의 한 단편이자, 내 인생 전체의 축소판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이젠, 내 인생의 어떤 한 큰 분기점이 될 수 있는 일종의 ‘싸움의 날’을 향해 달려가는 내 마음자세와 대처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인 것 같다.
피할 수 없고, 패할 가능성이 다분한 큰 싸움을 앞두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것인가? 열세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떤 모습으로 싸우고 싶은가?
더 나아가 내 인생 전체를 놓고 생각해 볼 때, 늘 승리할 수만은 없고, 늘 준비되고 갖춰진 상태에서 싸움에 임하는 것만도 아니며,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싸움에 나가야 하고,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훈련했더라도 승리를 확실할 만큼 전력이 신장되지 않은 채 결전의 날에 맞닥뜨려야 하기도 하는,
이 인생이라는 싸움의 장에서 맞이한 지금의 이 시간을 과연 나는 어떻게 보내는 것이 합당한가?...
이렇게 자문자답해본 시간을 가지고 나서야, 비로소 이창용 선생님이 늘 하시던 말씀대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 영어가 던지는 ‘도전을 즐겁게’ 받아들이며 새롭게 익힌 것들을 ‘뿌듯한 마음으로 소화’해내는 mind-set이 중요하다. 그러면 실전에서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임할 수 있다.”
이제는 이창용 선생님이 식사 자리에서 이따금
“통역사들은 교만해지는 것을 아주 경계해야해. 조금만 방심하면 우쭐대기 쉬워. 직업 특성상 너무 따지기 좋아하고 쪼잔해지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해. 무엇보다 즐겁게 공부하는 게 가장 중요해.”
라고 충고해주신 것을 마음속에 잘 붙들어, 여전히 마음 관리에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부족한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계속 열심히 공부해야겠습니다.
“Prepare plans by consultation, And make war by wise guidance.”
(Proverbs 20:18 <NASV>)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통역과]
<한새롬>
합격수기를 쓰라는 선생님의 문자를 받고 이렇게 몇 글자 적습니다.
우선 제 소개를 짤막하게 하자면, 영문과 학부를 나왔고 해외파입니다. 외국에서 몇 년 살았냐는 질문보다 한국에서 얼마나 살았냐는 질문에 더 빨리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좀 오래 살았습니다. 또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국제학 수업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영어강의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영어적인 면에서는 어떻게 보면 통대 준비하는 데 있어서 유리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말에 있어서는 굉장히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올해 3월에 처음 이창용 선생님 수업을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긴장된 상태였는데…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저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우선 영어 자체도 생각한 것보다 어려웠고, 그 음성파일을 듣고 바로 통역을 한다는 게, 그것도 굉장히 맛깔스럽게 한국말로 표현을 하는 게 너무 대단해 보였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뭔가… 나는 왜 여기에 있나 ㅠㅠㅠ.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 따로 부탁까지 드렸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번 달은 발표 안 시키시면 안 될까요?”
첫 몇 달 동안은 학원자료 위주로 공부함과 동시에 스터디 파트너를 구해 일주일에 3번씩 스터디를 했습니다. 통역도 통역이지만 우선은 메모리 연습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통역 따로 메모리 연습 따로 했습니다. 메모리 연습은 기사를 읽어주면 paraphrasing을 하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메모리도 이해력도 많이 는 것 같습니다.
저와 제 스터디 파트너는 둘 다 해외파인지라, 그리고 시사적 지식이 조금 부족해서 따로 시사공부를 했습니다. 주제를 정해서 (예를 들자면, 성범죄, 천안함 사태, 사대강, 기타 등등) 그것에 대한 한국어 기사 몇 개, 영어 기사 몇 개를 읽고 내용정리와 표현정리를 하는 식으로 공부했습니다. 좀 힘들긴 했지만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첫 몇 달 동안은 메모리와 통역 위주로 하다가 7월부터 양시래 선생님의 번역반을 들었습니다. 통역을 하니 번역은 그냥 하겠지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번역이 어떻게 보면 통역보다 까다롭습니다. 통역공부 할 때보다 훨씬 꼼꼼해야 하고 정확해야 해서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번역공부 자체가 통역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되더라고요. 번역을 계속 하다 보면, 통역할 때 어떤 식으로 풀어서 얘기해야 할지 정리가 잘 되더라고요. 저는 7월 한달 번역반을 듣고, 사정상 수업은 못 듣고 번역 공부를 따로 스파와 꾸준히 했습니다. 나중에 시험날짜가 다가와서 번역 주말반도 듣고, 양선생님께 따로 자료도 부탁해가면서 공부했습니다.
1차 준비: 처음에 모의시험(2010학년도 기출문제)을 봤는데 생각보다 잘 나왔더라고요. 그 이후 한 달간은 10위 안에는 꼭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1차 준비를 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word smart 외우는 정도? 그런데 그게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 성적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흙흙 ㅠㅠㅠ 너무 불안한 나머지 이창용 선생님께 외대 말고 이대 시험을 보면 어떨까 상의까지 했습니다. 1차 통과도 못하겠구나 싶더라고요.
그 이후, 모의시험 위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웹하드에 있는 음성파일도 다 다운받아 계속 들었습니다. 계속 듣고 문제도 다시 풀어보고. 저는 reading은 그나마 괜찮았는데 listening에서 많이 틀렸더라고요. 그래서 listening 위주로 공부를 했습니다. 계속 듣다 보니 listening 문제를 푸는 노하우가 조금은 생기더라고요.
올해 1차 영어가 많이 어려웠습니다. listening은 솔직히 생각이 나지는 않습니다. 그냥 무난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reading 지문이 터무니없이 길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풀면 다 못 풀 정도였습니다. 처음에는 지문을 꼼꼼히 다 읽고 풀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는 문제 먼저 읽고 거기에 해당되는 부분을 훑어보고 풀었습니다.
내년엔 1차가 없어진다는 소문이 돌던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덧붙이겠습니다. 저는 솔직히 10월부터는 외대 합격을 아예 기대도 안 했습니다. 1차에서 그냥 떨어질 게 너무 뻔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식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되게 편해지더라고요. 그냥 이번에 붙으면 감사한 거고, 안 붙으면 1년 더하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차 시험 볼 때도 긴장을 하나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래서 제가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mind control이 얼마나 힘든지 알지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2차: 2차는 필기가 까다로웠습니다. 특히 번역은 생각보다 지문이 길었습니다. 저는 한영 먼저 했는데 (아무래도 영한보단 한영하는 속도가 빨라서요…) 그래서 너무 다행이었습니다… 영한 지문이 길었는데, 감독관이 5분 남았다고 했을 당시 저는 아직도 5줄이 남은 상태였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다행히 미친 속도로 한번 쭉 읽고 미친 듯이 번역했더니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한영: 심형래와 D-War에 대한 주제 / 영한: 스티브 잡스가 adobe와 apple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서한)
논술은 2010년의 가장 큰 행사였던 G20 정상회의가 주제였고, 에세이는 출산율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논술에서 좀 감점될 것 같기는 했지만 에세이는 무난하게 썼던 것 같습니다.
통역은 생각보다 쉬웠습니다. 주제도 그렇고, 글 자체가 이해만 하면 통역하기 쉬운 유형이었습니다.
- 영한: 왜 정부가 예술에 투자를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글
1) 예술가들도 다른 직종과 같이 시장에 의해 수입이 결정되어야 함 (수요/공급)
2) 정치인들의 예술적 취향이 별로이다 (대중문화나 자신이 선호하는 분야에만 투자할 것이다)
3) 더 중요한 것에 투자를 해야 한다 (주택, 의료보험 등등)
- 한영: 고령화와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생겨난 연금제도의 문제점
- 연금제도에 대해 사람들은 오해를 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지금 연금을 내면 그 돈이 그대로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은 오산이다. 지금 내는 돈은 지금의 노인들에게 주어지고, 나중에 당신이 은퇴해서 받는 돈은 그 때 노동시장에 있는 사람들이 내는 돈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고령화 현상 때문에 노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저출산 현상 때문에 노동시장은 점점 줄어가고 있다. 이것이 연금제도의 문제점이고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이다.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통역과]
<고윤희>
공부방법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대학을 마치고 (2009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본격적으로 통역 공부를 시작한 건 2010년 1월부터였고 학원도 1월부터 수강했습니다. 처음 3개월 동안은 여러 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저와 맞는 클래스를 찾았고, 3월부터 이창용 선생님 반을 수강했습니다. 5월에서 8월까지 3개월 동안은 혼자 한국어 공부를 했고 8월부터 10월까지 이창용 선생님 반을 수강했습니다. 9월부터 이창용 선생님이 짜주신 스터디 팀과 함께 시험 보는 날까지 매일 만나서 공부했습니다. 스터디원 3명과 함께 매일 아침 9시부터 한-영, 영-한 2개씩 연습했고 스피치 학원에 등록해서 부족한 한국어 연습을 했습니다. 스피치 학원에서는 일주일에 2시간씩 한-한 공부를 했고 한국어 공부를 위해서 중학교, 고등학교 필독도서를 찾아 매일 한 권씩 읽을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신문을 읽는 대신 뉴스 스크립트를 영어와 한국어 버전으로 찾아 소리내서 읽어보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에 관한 뉴스 스크립트를 한국어 버전으로 읽어보고 똑 같은 내용의 뉴스 스크립트를 영어 버전으로 찾아 다시 한번 읽어보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단어도 외우고 한국어-영어의 단어 쓰임새를 공부 할 수 있었습니다. 단어는 이창용 선생님 수업자료에서 모르는 단어 위주로 공부를 했고, 리스닝은 수업자료와 스터디원들이 직접 읽어주는 방법으로 여러 가지 소리에 익숙해 지려고 노력 했습니다.
시험
시험은 오후시간으로 배정 받았습니다.
첫날 영-한 시험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골절된 뼈) 이어서 조금은 압도 되었고, 읽어주시는 교수님의 발음도 영국발음 이었기 때문에 사실 조금 놀랐습니다. 하지만 차분하게 끝까지 듣고 차근차근 결론까지 말씀 드렸습니다. 개인적인 질문은 하나도 안 하셨습니다.
둘째 날 한-영 시험을 위해서 전 날 잠이 들 때까지 미드를 계속 시청했고 시험장에서는 쉬운 영어소설을 소리 내서 읽었습니다. 한국어 내용 (역 멘토링) 을 들으면서 내용의 포인트를 잡으려고 노력했고 다 듣고 최대한 빠르게 쉬운 영어로 대답했습니다. 결론 부분에서 빼 놓은 부분이 있어서 교수님께서 더 생각 나는 게 없는지 물어 보셨고 다시 한번 결론 부분을 말씀 드렸습니다. 개인적인 질문을 영어로 몇 가지 물어 보셨습니다. 제가 해외파이다 보니 한국어 공부는 어떻게 했는지, 본인의 한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 인지 그런 내용의 질문들이었습니다.
후기
우선 항상 저를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항상 서포트 해주시는 부모님 그리고 시험 때문에 날카로운 내 성격 다 이해해준 언니, 바른이 고맙고 사랑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고 즐겁게 가르쳐 주신 이창용 선생님, 만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누구보다 힘이 되어준 소중한 내 스터디 파트너 소정언니, 유리언니, 지연이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또 사랑합니다. 대학원가서 더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통역사 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통역과]
<김민지>
<들어가며>
저는 국내파이고 대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약 1년 간 어학연수를 다녀온 경험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영어를 접해서 그 후로 계속 영어를 좋아했고 늘 영어공부를 했고, 학부는 영문학과입니다. 대학생 때 영어 토론 동아리, 회화 동아리, 통역 자원봉사 등등의 활동을 꾸준히 했고 실제로 통대 준비를 결심한 것은 어학연수를 가서 5개월 정도를 보냈을 때인데, 당시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영어 공부가 좋아서 계속 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저희 아버지가 ‘통역사라는 직업도 있더라. 네가 영어 공부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고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다 관심이 커져 실제로 2년 후 본격적인 준비를 하기 전까지 통번역대학원을 늘 마음에 두었습니다.
<준비과정>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나서 대학교 수업과 학원을 병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학교 공부가 더 중요하고 다른 기회들도 기웃거려 통대 준비에 매진할 수는 없었지만 틈틈이 은천성 선생님 수업을 따라가면서 공부 방법과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통대 준비는 올해 2월에 시작했는데, 그렇게 시작하기 약 6개월 전부터 오바마 연설문 외우기 스터디와 한한, 영영 스터디 두 개를 했습니다. 당시에도 학업과 병행해야 해서 여유가 많지는 않았지만 정말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 전에 틈틈이 스터디와 공부를 해두지 않았더라면, 이번 해에 붙지 못했을 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학업과 병행해서 집중력이 분산되는 것 같아 걱정도 됐지만, 풀타임으로 통대 공부를 하는 건 아니었으니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다른 생각도 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도 적게 받고 활동도 많이 해서 좀 더 공부를 즐겁게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모든 학기가 끝나고 풀타임으로 통대 공부를 했던 4개월보다 학교와 병행하며 공부했던 기간에 통역 공부 자체에 더 많은 매력을 느꼈고, 훨씬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공부했습니다. 지금 그 때 외운 오바마 연설문을 세어 보니 풀타임으로 공부해서 시험보기 전까지 외운 연설문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습니다.
<실전>
1) 스터디
본격적인 공부는 이번 연도 2월부터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공부를 손에서 놓지는 않았지만 그리 열심히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외국인들과 어울리고 영어를 계속 쓰기는 했습니다. 마지막 학기가 3월부터 6월까지 있어서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이대 통대에 들어간다는 목표가 굳어졌기 때문에 학업보다 통대 준비에 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학교 시간표 때문에 학원을 많이 빠져야 했고 발표도 거의 못했지만 집에서 수업을 듣고 2월부터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 친구를 구해 매일 아침 8시에 만나 한한, 영영을 꾸준히 했습니다. 제 스터디 파트너는 저보다 훨씬 부지런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라 배울 점도 많았고 서로 의지도 되고 같이 공부 방법을 모색해 가다 보니 혼자 하면 힘들었을 부분이 해소되는 점이 컸습니다. 스터디가 굉장히 좋았던 부분은 스스로에게 맞는 공부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2월 달에 은선생님 강의를 수강했다가 3월 달부터 6월 달까지(정확히 기억은 안 납니다)는 쉬고 스터디 파트너와 함께 우리가 찾은 방법으로, 또 스스로의 방법을 찾아 도서관에서 공부했습니다. 학원을 쉰 이유는 생각보다 기본이 약하다고 생각했고 학원에서 복습할 양이 쏟아져 나오면서 따라가는 데에 급급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 스터디 파트너와 저는 수동적으로 수업에 따라가기 보다 수업을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이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결론적으로는 매일 스터디 하는 자료 (한한, 영영 각각 한 명이 두 개씩, 즉 다 모이면 하루에 총 8개의 자료)로 예습, 복습, 스터디 까지 다 할 수 있는 공부로 통대 준비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약 석 달 동안 학원 자료에 의지하지 않고 각자 찾은 자료로 공부하면서, 어떤 자료가 도움이 될 지를 제일 먼저 고민하게 되었고, 어떤 부분이 취약한 지도 생각해보았으며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 나에게 맞는 방향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 때는 처음 시작했을 때라 매일 매일이 고민의 날이었고 끝없이 방황하고 있다는 느낌이 컸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여러 시도를 통해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한한과 영영 요약은 정말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역시 매일 아침 스터디 때 빼먹지 않고 했기에 도움이 될 수 있었는데, 처음에는 감도 오지 않고 뭐가 잘하는 건지,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 지 알지도 못한 채 닥치는 데로 했지만 여러 번 거듭하다 보니 글을 읽을 때 구성과 의미, 주제를 잡아 내는 것에 더 익숙해 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크리틱도 최대한 스스로에게 한다는 마음으로 했고, 정답을 못 찾거나 의견차를 줄이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이를 통해 상대방은 나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학원을 다니지 않고 학교 수업만 듣고 나머지 시간을 혼자 공부 하다 4학년 2학기가 끝나자 다시 학원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학원에 나가면서는 매일 하던 스터디를 일주일에 두 세 번 정도로 줄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거의 2010년의 중반에 들어섰을 때였고 그 때부터는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학원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은선생님의 이대통대반에서 나오는 자료를 복습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는 발표가 부담스러워서 발표는 하지 않았고 집에 와서 다시 혼자서 음성파일을 듣고 통역하려고 했지만 꾸준히 하지는 못했습니다. 꾸준히 했다면 더 도움이 됐을 것 같습니다. 혼자 복습하는 게 벅차지자 그 때부터 복습 암기 스터디 파트너를 구했고 언니랑 수업시간 한 시간 전에 만나서 외운 것을 서로 체크해주곤 했습니다. 저는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수다도 떨고 의지도 해가며 공부하는 것을 선호해서 이런 스터디가 부담스럽거나 시간이 아깝지 않았고 오히려 기분도 좋아지고 보람도 느꼈습니다.
2) 공부 방법
저는 은천성 선생님께서 알려주시는 대로 쉬운 영어를 달달 외우고 각 분야에 필요한 단어나 표현을 암기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한 건 아니었고 처음에는 좀 더 영어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더 기울였고(암기도 계속하면서) 그렇게 영어에 어느 정도 노출이 된 후에 집중할 부분을 좁힐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길이 보이지 않아 너무 막막했는데 계속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계속 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되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목표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가끔씩은 공부 방법을 수정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시험 보기 전 한 달 동안은 쉬운 영어만 암기했습니다. 그 때는 스터디를 할 심적 여유도 없었고 굳이 한영, 영한 스터디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한영, 영한을 해도 자기 언어로만 나오는 것인데 그 시간에 현지인이 쓰는 영어와, 신문에서 쓰는 제대로 된 우리말을 외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간이 없기 때문에 저에게 필요한 것을 보충하는 데 더 중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스트레스가 커져 집중도 힘들고 불안하기만 했는데 지금까지 은선생님 반을 수강하면서 모았던 자료들, 특히 2교시의 한영부분(한국어와 영어가 같이 있는 부분) 중 쉬운 영어(회화체나 쉽게 풀어 놓은 글)와 최근에 외운 오바마 연설문 10개 정도를 추려서 세 다발로 묶은 다음에 그것만 반복해서 외웠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다른 욕심 다 버리고 이것만 외워서 가도 괜찮을 거야.’라며 불안을 잠재우기도 했고 실제로 여러 번 반복해서 외우다 보니 기억도 잘 나서 힘든 시간을 그나마 잘 보낼 수 있었습니다.
3) 학원 수업
저는 은천성 선생님 외대 통대반, 이대 통대반, 시사청취, 독해번역반 수업 / 이창용 선생님 이대통대 준비반 / 양시래 선생님 실전번역반 이렇게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은선생님반이 제 성격과 잘 맞아 꾸준히 들었는데, 다른 수업도 정말 큰 도움이 되었고 다양한 공부 방법을 터득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가능하면 여러 수업을 들어보고 그 중에서 가장 잘 맞는 수업을 고르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이창용 선생님 수업은 방학 때 한달 동안 들었는데 수업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고 좀 더 입을 열기 쉬운 분위기였습니다. 또 즉석으로 말하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말하는 연습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통역과 번역 중에 고민하다 한 달 전에 1지망을 결국 번역으로 넣기로 결정해서 급하게 양시래 선생님의 번역반도 수강했습니다. 양시래 선생님 수업은 직접 번역할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자신의 실력을 테스트해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꼼꼼한 설명과 일주일에 한 번 해주시는 크리틱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4) 시험 당일
시험을 앞두고 2주일 정도는 정말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도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상상이 안되고, 나만 빼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절망감이 저를 압도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외우고, 오늘의 금언도 새겨 듣고, 간단한 자기 위로의 일기도 쓰고, 공부 하는 것 보다 최대한 편안한 기분만 유지하려고 애쓰다 보니 그 악몽 같던 시간도 가고 시험 당일이 되었습니다. 한 시간 가량을 기다렸고 따뜻한 물을 보온통에 가져간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귤이나 비스킷 같은 것도 챙겨갔지만 먹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아서 그대로 다시 들고 왔습니다. 시험장에 들어가니 인터뷰하시는 세 분이 앞에 계셨고, 조교 한 분이 옆 쪽에 계셨습니다. 기다릴 때가 훨씬 긴장이 되는데 ‘붙어도 안 간다!’라는 말도 안 되는 정신 나간(?) 생각을 머릿속에 계속해서 주입했고 시험장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심정으로 떨지 않고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만 했습니다. 저는 잘 긴장하는 성격이라 붙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나의 영어를 테스트하고 온다는 마음으로, 거의 초탈(?)한 기분으로 다녀왔는데 차라리 그게 나은 것 같았습니다. 내용은 인간의 ‘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뼈가 부러졌을 때의 얘기가 주로 나왔고, 뼈의 사용에 따라 더 발달하기도, 덜 발달하기도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그 예로 무중력 상태의 우주여행사와 한 쪽 팔만 사용하는 테니스 선수가 나왔습니다. 100퍼센트 다 잡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잡은 내용을 최대한 매끈하게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은 선생님이 결론부터 얘기하라고 강조하시지만, 제 실력이 아직 부족해서 이 글을 듣고 결론을 내기가 어려워서 들은 대로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어려운 용어는 생각도 나지 않아 쓰지도 못했고 (예를 들면 ‘골절’이라는 단어도 쓰지 못하고 그냥 ‘뼈가 부러지다’를 반복해서 썼습니다.) 최대한 쉽게 풀어서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알 수 있게 설명한다는 느낌으로 말했습니다. 가끔 고개를 끄덕여주셨고 마지막에 중간에 계신 분이 내용에 관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두 번째 날인 한영 시험 때는 더 심하게 떨렸고 들어가서는 정말 생각할 여유 조차 없이 영어를 뱉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가운데 계셨던 교수님만 같은 교수님이고 양 옆으로 남자 외국인 교수님과 다른 여자분이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테이블과의 간격이 좁아서 한마디 내뱉기도 무거운 분위기였습니다. 물론 교수님들께서는 웃어주시고 들어가면 ‘어제 잠은 잘 주무셨어요?’라며 물어보시면서 분위기를 딱딱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십니다. 내용은 회사에서 멘토 관계가 바뀌고 있다. 신기술이나 정보 획득에 빠른 젊은 세대가 선임자에게 그것을 가르쳐주는 역-멘토링의 관계가 생겨나고 있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영어는 외웠던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제가 평소에 진짜 편안하게 쓰는 영어만 나왔습니다. 하지만 문법 구조가 깨지지는 않았고 아주 평이한 문장으로 내용도 평이하게만 전달했고, 어려운 단어나 표현은 다 생략했습니다. 끝나자 마자 가운데 계신 분이 ‘Is this only about American companies?’라고 비슷하게 물으셨는데 저는 이 글 자체에 대해서 물으시는 줄 알고 딱히 American companies라는 단어가 나오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다라는 식으로 얘기를 이어나가다가, 아차 싶어서 나의 의견을 묻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다들 그렇다고 약간 어색하게 웃으셔서 저도 웃어버리고 다시 제 의견은 어떠어떠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에 외국인 교수님이 어려운 질문인데, ‘여기서 멘토란 무엇을 가르쳐주는 것이냐’는 질문을 했고, 저는 mentor라는 단어를 썼기 때문에 회사 일에 관련된 모든 것을 포함하여 관계적 측면 등을 아우르는 넓은 의미를 가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시험치기 전에는 너무너무 떨렸지만 시험칠 때에는 일부러 떨리는 척도 안하고 당당하게 들어가서 틀리든 말든 큰 소리로 대답하고 최대한 웃고 대화하듯이 하고 나왔습니다.
<끝내며>
시험장에서의 분위기가 유한 것도 아니지만 딱딱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교수님들은 최대한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일단 시험 채점에 들어가면 진지하게 들으시고 계속 받아 적으셔서 말 한마디 내뱉기가 부담스러웠습니다.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에 그런 모습에 당황한다거나 위축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통역과]
<우성희>
각자 공부하는 스타일도 다르고, 강약점이 다 달라서 '어떻게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하기가 참 어려운데, 제 수기가 조금이라도 여러분들 통대 준비하시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 믿고(^^;;;) 솔직하게 써내려 가겠습니다.
[은천성 선생님 수업]
발표 무조건 하세요! ^^ 물론 발표하고 나면 은 선생님의 무자비한 크리틱(critique)이 돌아와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지겠지만, 그것들이 모여서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전 한국어가 어색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었는데요, 그것에 자극 받아 매일매일 신문을 소리내어 읽고, 뉴스 쉐도잉을 하며 고급 한국어를 입에 붙이는 연습을 했었습니다. 크리틱보다 더 시험에 도 되는 것은 앞에 나가서 마이크를 들었을 때의 그 심장이 터질 것 같고 호흡곤란이 오면서 머리가 하얘지는 가운데 발표해야 하는 경험 그 자체입니다. 학원에서 그렇게 탄탄하게 다져지고 나니, 담력이 많이 늘어서 시험 당일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룹 스터디]
은 선생님의 가르침과 수업 중 발표, 크리틱도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스터디에서도 많은 걸 얻을 수 있었습니다. 스터디 그룹도 2명이 하는 그룹, 4명이 하는 그룹, 스카이프로 하는 화상 스터디 이렇게 세 그룹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그룹과 스터디한 이유는 각 파트너마다, 각 그룹마다 제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4명 그룹은 1대 1로 했을 때보다 훨씬 강도 높은 현장감과 긴장감속에서 연습할 수 있었고, 화상파트너와는 직접 밖에서 만나기 번거로운 시간(아침 일찍 혹은 저녁 늦게)에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많이들 하시는 한영, 영한 순차 외에, 전 한한도 했었는데, 기억력(memory span)과 논리력 향상, 그리고 고급 한국어 구사에 도움이 됐기 때문에 추천하고 싶은 연습입니다.
[개인 공부]
은 선생님도 강조하셨지만 스터디만으로는 자기 실력을 향상시킬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스터디 후에는 꼭 복습을 했습니다. 새로 배운 단어나 표현, 외우면 유용할 것 같은 문장 등은 flash card를 만들어서 전철에서 외웠습니다. 보통 이런 식으로 외운 단어나 표현들은 지문 이해(comprehension)를 위한 단어들입니다. 단시간에 외운 단어들은 절대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험 2주전엔, 말할 때 필요한 영어 표현/단어들만 따로 모아서 총정리를 했습니다. 총정리 하면서 동사에 가장 집중했습니다. 동사를 같은 의미 군으로 모았습니다. 예를 들어 "증가했다"라는 의미의 여러 표현 increased, rose, went up, augmented 등등이지요. 전 아예 과거형으로 정리했습니다. 왜냐면 이 표현은 말할 때 대부분 과거형으로 많이 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시면 아시겠지만 표현을 무지 단순하고 쉬운 단어들로 정리했습니다. 어려운 단어들은 절대 시험 날 그 긴장감 속에 튀어나올 리 없거든요. 명사도 의미군으로 모으다 보니 테마별로 정리가 되더군요. 세금관련, 환경관련, 교육관련 등등이요. 통역사전도 테마별로 정리되어있지만 저 같은 경우엔 2달밖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 두꺼운 사전을 다 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쌩으로! ㅎㅎ) 외우는 것보다는 여러 지문을 접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배운 것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능동적으로 정리하는 게 훨씬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시험 일정 잡히고 난 후]
시험 날,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는데, 전 오전반으로 잡혔습니다. 저한테는 최악의 조건이었습니다. 왜냐면 전 늦게 일어나고 아침을 안 먹는 데 제 바이오리듬이 고착돼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그 날부터 시험 날까지 (약 2주간) 일찍 자고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침 먹고, 가벼운 운동하고, 9시에는 화상 스터디를 했습니다. 시험 시작시간이 9시여서 그때에 맞춰 뇌가 돌아가도록 뇌를 길들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제 바이오 리듬을 시험 당일 최상으로 맞출 수 있게 노력했습니다.
[시험 전날]
스터디 파트너들과 하던 대로, 순차 연습하고, 밥 잘먹고, 2주간 자던 그 시간에 잤습니다. 시험 전날이라고 뭔가 다른 것을 하면서 부산을 떨면, 이제껏 유지해 오던 pace에 방해가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영한시험 당일]
2주간 했던 것처럼 6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으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거 먹으면 목구멍에 걸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이럴 줄 알고 전 바나나와 두유를 사다 놨었습니다. 그걸로 간단하게 먹고 책가방에는 대기실에서 비상 열량 보충용으로 초콜릿과 물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순차 연습 딱 2번만 하고 학교 가는 길에는 미리 다운받아 놓았던 mp3파일(영어뉴스 등)을 들었습니다. 리스닝 워밍업을 위해서랄까요.. ^^;; 대기실에 입실하니 곧 핸드폰과 전자사전을 압수해 가더군요. 제 순서를 확인해보니 거의 끝에서 세 번 째였습니다. 2시간 반 정도 기다렸는데 그동안 전 따로 뭘 더 들여다보거나 혼자 연습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긴장만 더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도 전 긴장을 풀고 집중력을 높이려고 노력했습니다. 다행히 대기실이 건물 끝이라서 창 밖으로 플라타너스가 보이더군요. 파란 나뭇잎을 보니까 기분도 상쾌해지고 차분해졌습니다. 그런데 나뭇잎을 보는 것도 2시간은 못합니다. ㅎㅎ^^;; 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기분 좋은 상상을 했습니다. 이미지 트레이닝이죠. "문을 열고 들어간다. 교수님 세분이 앉아 계신다. 교수님 모두 성격 좋아 보이신다. ice breaking을 위해 몇 가지 가벼운 질문을 하신다. 교수님과 눈을 마주치며 웃어가며 여유 있게 대답한다. 지문을 읽어주실 차례다. 바른 자세로 앉아 호흡을 가다듬는다. 지문을 읽어주시는데 처음부터 너무 잘 들린다.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쏙쏙 된다. 논리도 명확하고 주요 디테일로 다 들린다. 숫자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는다. 지문이 끝나고 내가 할 차례다. 가운데 약간 위를 보고 또박또박 말한다. 논리 중심으로, 내가 잡은 디테일은 다 말하되 확실치 않은 것은 버린다. 교수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해주신다." 이런 식으로 내가 시험장에 들어가서 어떻게 할 것이고 어떻게 될 것인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혼자 무지 행복해 했습니다. 이런 이미지 트레이닝은 제가 고등학교 스포츠 팀에 있었을 때 코치님이 항상 중요한 경기 전에 시켰던 트레이닝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이미지 트레이닝 중에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한다"라고 상상을 하면, 실제 경기에서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무의식중에 제가 상상한 대로 몸이 움직이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날도 그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상상한 것과 거의 일치한 것입니다. 교수님 세분 모두 인자해 보이시고 따뜻하게 맞이해 주셔서 마음 편하게 시험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교수님의 자리와 제 자리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가까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문을 읽어주시는 교수님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첫 두 문장은 완전히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너무 괘념치 않고 차분히 계속 들었습니다. "On the other hand"가 들리더군요. 그래서 다 듣고 나니 제가 놓친 두 문장을 충분히 논리적으로 추론해 낼 수 있었습니다. 내용은 비즈니스 전략의 두 가지 종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바깥에서 안으로 보는 전략 vs. 안에서 밖으로 보는 전략, 그리고 각 전략의 장단점과 바깥에서 안으로 보는 전략이 성공한 예. 이런 구성이었습니다. 가운데 교수님 머리꼭지를 바라보고 발표했습니다. (떨려서 눈은 정말 못 맞추겠더군요) 대신 목소리를 크게 내고, 표정은 밝게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한다는 생각으로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가벼운 제스처도 해가면서 발표하게 되더군요. (영어로 말할 때 손을 쓰는 건 제 버릇이긴 합니다만…) 큰 줄기는 다 잡았는데 디테일에서 불확실한 것들이 좀 있었습니다. 이런 건 아까워도 무조건 버리고 확실히 들은 것만 이야기 했습니다. 발표하는 중간중간 교수님들께서 머리를 끄덕여 주셨습니다. 마치고 나서 교수님들을 보니 세분이 모두 방긋 웃고 계셔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한 교수님이 슈퍼마켓 이름이 기억나느냐고 (그런 디테일까지!) 물으시는데 기억나지 않아서 "기억나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방을 나왔습니다.
궁금해하시는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전화로 "괜찮게 쳤다"고만 알리고 전 영한시험을 싹 잊었습니다. 다음날 있을 한영시험에 대비해야 했으니까요. 단어 정리해 놓은 것 찬찬히 읽어보고, 순차 연습하고, 일찍 잤습니다.
[한영시험 당일]
이날도 전날과 똑같이 6시에 일어나 순차 연습 2개하고 학교로 갔습니다. 대기실에서도 공부는 하지 않고 마음을 가볍게, 차분하게 가지려고 노력하고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쳤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오히려 덜 떨어야 하는데 이날 더 떨리는 것입니다. 그것도 몇 배로! 시험장에 들어서서 되도록 떨지 않으려고 했는데, 긴장감은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어제 잘했는데 오늘 망쳐서 떨어지면 아까워서 어떡하지" 이런 걱정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지문의 내용은 흡연률을 낮추기 위해 담뱃값을 인상하는 것에 대한 어떤 반대 의견이었습니다. 떨리는 것을 추스르기 위해 오히려 목소리를 더 크게 내고 발음을 또박또박 천천히 했습니다. 전날과 다르게 이날은 교수님들께서 고개도 별로 끄덕이시지 않고 밝게 웃지도 않으셔서 극도로 불안해 졌습니다. 제가 마치자마자 한 교수님께서 영어로 물으셨습니다. Why would people in the low-income bracket keep smoking despite the hike in cigarette price? 여기서 전 제 의견을 물으시는 건지 지문에서 연사의 의견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물으시는 건지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in your opinion"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제 발표가 끝난 직후에 물으셔서, 전 연사의 입장에 대한 것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이 내용은 전혀 다뤄지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아니면 제가 완전히 놓친 것일 수도 있구요) 그래서 "I can't remember."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교수님께서 "In your opinion, is the cigarette price hike a right solution to the rising smoking rate?"라고 물으셨습니다. 이번엔 제 의견을 물으시는 것이니 자유롭게 대답했습니다. "담뱃값 인상만으로는 부족하다. 담배의 위험성에 대한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보건소 등에서 담배를 끊을 수 있는 여러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 뭐 이런 대답이었습니다. 제 대답이 만족스러우셨는지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왜 통역대학원에 지원했는지 물으셔서 이건 미리 준비했던 대답을 술술 말했습니다. 긴장이 풀려서이었는지 농담까지 해가면서요. ^^
[마지막 한마디]
각자 공부하는 스타일이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공부방법 그대로 꾸준히 열심히 하세요. 통역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듣는 사람(즉, 교수님)이 본문 내용을 전혀 모르는 동네 아줌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마음도 좀 편해지고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술술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가장 중요한 건: 당일 긴장하지 마세요! 시험에 임할 때 "이거 떨어지면 안 되는데…" 이런 마음보다는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보자. 내가 실력이 안되면 한해 더 쌓아서 내년에 보면 되는 거고!" 이런 마음가짐으로 임하시길…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요. ^^;; 긍정적인 사고, 즐거운 상상 많이많이 하시고요! 제 수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기를 바랍니다. 파이팅!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통역과]
<차현정>
통번역의 꿈을 꾸며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졸업하고 바로 입시준비를 시작해 입학하기까지 약 3년이 걸렸습니다. 통번역공부가 평생공부라는 생각을 해볼 때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준비를 하면서 힘든 시간은 여지 없이 찾아오고 3년이란 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졌습니다. 많은 면에서 부족 하지만, 그 길을 조금 일찍 다녀온 사람으로서 공부를 하면서 느낀 점, 효과적이었던 공부방법, 시험당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출발선>
저는 국내대학에서 신문방송&영어영문을 복수 전공했고, 해외경험은 1년 어학연수를 다녀왔습니다. 대학시절 학교 영어동아리를 하면서 영어를 말하고 듣는데 나름의 자신이 있었습니다. 여느 학생들처럼 그런 헛된 자신감은 통번역 공부를 시작하면서 바로 사라졌습니다. ^^;
입시를 준비하는 거의 모든 학생들의 출발선은 다릅니다. 그래서 같은 시기에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개개인마다 실력차이가 나는데,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서 괴로워하지 마시기를. 발표를 가장 꺼리게 만들었던 요인이 ‘비교당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출발점이 다르고 실력이 다름을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경쟁자와의 비교는 긍정적인 자극용으로만 사용하시길 당부하고 싶습니다.
<공부방법>
약 3년 동안 여러 공부방법을 시도해보았습니다. 공부 첫해엔 합격 수기에서 남들이 효과를 봤다는 여러 공부방법을 다 해야만 할 것 같았고,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제 실력을 메우기 위해선 하루에 모든 면을 커버하고 싶었습니다. 신문보기, 듣기, 독해, 수업, 수업복습, 쉬운 영어암기, 필사, 새도잉, 스터디. 그래서 시간을 촘촘히 나눠서 조금씩 모든 면을 커버하려 했습니다. 그 결과 실력이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고 시간과 노력은 많이 투자하는데 비해 결과물이 너무 초라한 듯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공부가 차곡차곡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쌓이는 것 같습니다. 여러 공부방법을 해본 결과 이듬해엔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을 찾을 수 있었고 그 부분에 집중적으로 시간을 할애 했습니다. 수업을 제외하고 개인 공부를 할 때 독해, 듣기, 쉬운 영어 암기, 스터디는 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 외 신문보기, 필사, 새도잉 등은 필요에 따라 빈도를 정하여 꾸준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독해/듣기*
처음엔 독해와 듣기는 각각 다른 공부라고 생각해서, 듣기에 너무 치중하면 독해가 무너지지 않을까 고민했었는데, 결국 독해와 듣기는 연결되어있고 독해가 늘면 듣기 실력도 덩달아 성장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눈으로 봤을 때 잘 읽히지 않고 분석이 안 되는 글은 듣는다고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청/다독, 정청/정독의 문제는 개인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해보고 본인이 집중력이 좋고 많은 양을 커버하고 싶다면 다청/다독을, 문장분석하고 표현정리를 꼼꼼히 해야 본인 것이 된다고 느껴지면 정청/정독을 선택하면 될 듯합니다. 저는 오디오파일을 받아쓰기 하며 꼼꼼히 듣는 것을 선호했고, 학원과 집을 오갈 때 공부한 내용이나 수업복습 파일을 계속 들어서 귀에 익숙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방법이 좀 익숙해 지면서 다청을 시도했는데 듣기실력이 크게 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독해의 경우도 정독을 선택해서 분석하며 읽기를 했습니다. 글의 종류는 저자의 주장이나 의견이 뚜렷한 글을 선택해서 처음에는 글의 구조와 저자의 주장 정도만 생각하며 빨리 읽고, 다시 읽으면서 글의 전체적인 구조, 핵심단어, 주장 등을 각기 다른 펜으로 표시하면서 꼼꼼히 살폈습니다. 그 다음엔 전체적인 요약을 한글로 쓰고 정리했습니다. 제 경우엔 이렇게 글을 분석하며 읽고 한글로 정리한 것이 영한을 할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것은 어디까지나 저에게 맞는 방식이며, 다청과 다독이 훨씬 효과적인 분도 있습니다.
*쉬운 영어암기/수업복습*
쉬운 영어암기와 수업 복습은 영어표현력과 fluency, 영어와 대응되는 한글표현력을 기르는데 필 수 적이었습니다. 특히 첫해엔 영어암기를 정말 많이 했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월~금까지 Dear Abby, This I believe, 미 주례연설문, AP뉴스를 요일별로 암기했는데 처음엔 양이 버거웠지만 점차 익숙해졌습니다. 은 선생님 이대통대반과 시사청취를 수강하면서 수업내용 중 표현을 영어-한글 대응해서 암기하고 스터디를 통해 체크했습니다. 그 밖에 스터디자료도 꼼꼼히 복습하고 파트너와 체크하고 넘어갔습니다. 암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반복인 것 같습니다. 봤던 자료를 세 번 정도 돌려서 복습을 했는데 효과가 있었습니다. 시험을 앞두고 얼마간은 VOA 헤드라인 기사를 뽑아서 암기했습니다. 모든 암기와 수업복습은 혼자 의지로 잘 되지 않아서 스터디 파트너와 함께 외웠습니다.
*스터디*
저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스터디를 많이 하는 편이었습니다. 혼자서 꾸준히 해나갈 자신이 없어서 의무감에라도 꾸준히 지탱할 수 있는 스터디를 하는 편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한한/영영/암기, 이 후엔 영한/한영/암기/사이트 위주로 변경했습니다. 처음 기초를 쌓고 실력을 기르기에는 한한/영영/암기가 필수적이고 계속하면 이상적이지만, 첫해 시험을 보고 난 후 영한/한영 스터디를 병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습니다. 한영은 사실 영어로 번역된 한글자료가 없는 경우가 많고 선생님 말씀처럼 국내파 둘이서 틀린 영어로 떠들 확률이 높기 때문에 한영을 한번 할 때 영한을 두 번 하는 식으로 영한에 더 중점을 두었습니다. 영어를 이해하고 한글로 내뱉는 과정을 연습하는 것인데, 영영/한한만 연습하고 시험장에 가서 당황하면 영어단어가 한글로 떠오르지 않을 수 도 있기 때문에 사전에 영한을 특히 많이 연습하고 가기를 추천합니다. 영한스터디 할 때 파트너가 영어로 들려주면 글의 포인트를 기억하며 듣고, 파트너에게 통역할 때는 핵심주장-이유-예 순서로 말하려고 노력했습니다(선생님이 항상 강조하시기도 하고, 파트너가 들었을 때도 가장 잘 이해하는 순서 같습니다.) 하지만 글의 특성상, 핵심을 찾기 어려울 때는 이해한 순서대로 내용을 말하고 확실히 듣지 못한 부분은 버리는 것이 안전합니다. 몇 개 들은 단어로 끼워 맞추다 잘못 통역해버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 시험 한달 전에 시작한 그룹 스터디는 평소 잘못된 통역습관을 지적 받고 고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실력을 늘리는 시간이라기 보다는 시험 상황을 재현해 익숙하게 만들어서 시험당일에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정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수업내용 중 중요표현을 정리해서 시험을 앞두고 맘이 잡히지 않을 때 브레인 스토밍을 한 것도 효과적이었습니다.
<시험당일-영한>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 스터디 파트너와 만나 쉬운 내용의 영한을 한 개씩 했습니다. 긴장된 머리와 입을 풀어주고,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배정된 방에서 저는 끝에서 두 번째로 시험을 보게 되어있어서 약 한 시간 반을 대기했습니다. 번호에 따라 대기시간이 길면 읽을거리나 듣기자료(과거에 들어서 익숙한 오디오)를 준비해가면 좋습니다. 너무 오래 대기를 하다 보니 긴장이 풀리는 증상(?)까지 나타나서, 순서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기도를 하면서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 명상을 했습니다. 순서가 되고 시험장에 들어가니 긴 책상에 교수님 세분이 앞에서 맞아주셨고 왼쪽 옆에 시간을 재는 분이 있었습니다. 한 교수님께서 시험방식을 설명하셨고, “들은 내용을 가능한 많이 이야기 해달라”는 주문을 하셨습니다. 그리곤 바로 시험에 들어갔습니다. 평소 파트너가 읽어 줄 때보다 좀 더 빠른 속도여서, 평상시에도 좀 빠른 속도에 익숙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용은 기업의 마케팅기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Outside In' Strategy for the C-suite: Put Your Customers Ahead of Your Capabilities/Published: September 29, 2010 in Knowledge@Wharton ) 끝까지 듣고 나서 이야기의 포인트를 잡았기에 잘 이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지막 부분이 확실히 이해되지 않았는데 그 부분을 버릴지 말지 그 짧은 시간 고민했습니다. “기업의 마케팅기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라는 말로 통역을 시작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한 순서로 이야기 했고, 교수님들께서 고개를 끄덕거려 주셔서 제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민했던 마지막 부분으로 갈 때쯤 그 모호하게 이해했던 부분에 대한 감이 왔고, 시험 전에 교수님께서 가능한 많이 전달해달라고 하셨기에 마지막에 말을 넣었습니다. 시험장을 나와서 한글을 서툴게 표현한 것이 맘에 걸렸는데 그래도 내용은 전달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시험당일-한영>
시험 전 준비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한영을 하나씩 연습하고 들어갔습니다. 전날 시험에서 많은 긴장을 하고 에너지를 써버렸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지친 모습이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왠지 모르게 힘이 빠져있었습니다. 한영 시험은 흡연율의 증가와 대책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평이한 주제가 나와서 되려 당황했습니다. 쉬운 내용이었고, 어디서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문제였는데 그만 처음부터 문법을 실수해버렸습니다. 말하는 순간 이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고쳐 말할까 그 짧은 순간 고민했습니다. 내용도 평이한데 다시 고쳐 말하면 더 실수가 부각될 것 같아서 재빨리 다음말로 넘어갔습니다. 그때부터는 제가 어떻게 통역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고삐가 풀려서 숨차게 말했습니다. 사실 그러면 안 되는걸 알면서도, 자제가 안됐습니다. 그렇게 숨가쁘게 한영 통역이 끝났는데, 교수님들께서 영어로 4개의 질문을 하셨습니다. 지문에 대한 제 생각을 물어보는 질문이었습니다. 실수를 만회할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가능한 망설임 없이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나, 아니라면 이유가 뭔가?’ ‘지문에 나온 해법 말고 다른 방안이 있다면?’ ‘왜 저소득층에 흡연율이 높을까?’ 등의 질문이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통역 때 했던 문법 실수가 너무 확연했고, 내용이 평이해서 다른 학생들은 잘봤을거란 생각으로 괴로웠지만, 시험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위로를 삼았습니다. 통역과 인터뷰 모두 평가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의 말>
다른 분들의 합격 수기를 보면서, 나는 짧게 요점만 써야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 줄인다고 줄였는데도 꽤 긴 수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재미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 계속 자신과 싸우셔야 합니다. 놀고 싶은 욕구, 더 자고 싶은 욕구를 모두 이겨내고 자신 안에 살고 있는 의구심과도 협상을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때마다 동기를 부여해야 합니다. 같이 공부를 시작했던 많은 언니 친구들이 입학에 성공하고 혼자 남았다 생각했을 때, 그래도 끈을 놓지 않고 새로운 동기를 가지며 공부한 것이 합격이라는 선물을 가져오게 한 것 같습니다. 지난 3년 동안 함께 공부하며 웃으며 위로하며 많은 도움을 준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엄하게 때로는 선생님표 개그로 재밋게, 항상 정신 바짝 차리게 해주시는 은천성 선생님! 감사합니다. 늘 선생님 말씀 새기며 공부하고 성장해서 좋은 통역사&사람 되겠습니다. 처음 스터디의 세계로 이끌어준 미경언니,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준 수경언니, 똑 부러지는 주영언니 많은 조언 고마워, 따뜻한 말 소연언니, 씩씩한 에너자이저 유리언니, 우리 동갑내기 귀염둥이들 소영, 혜림, 빵빵 터지게 해주는 멋쟁이 제씨-하정오빠, 마음씨 착한 우리 지희언니, 큰언니 하영언니, 쿨~한 소화언니, 재밋는 대구여인 누리언니, 조용히 챙겨주는 윤정언니, 똑똑이 만물박사 정아언니, 군인 여원^^, 따뜻한 이웃 은애언니, 성실&따뜻&엉뚱 수정언니, 깜찍이 지현언니, 유경언니, 마지막 한달의 은인 귀요미언니, 승원언니, 동기인연이 된 성원언니, 소녀 같은 보경언니, 멋진 지혜언니, 따뜻한 이웃 단비언니, 그리고 나의 멘토 민정언니, 언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많은 도움과 힘이 됐어, 고마워^_^*. 상연언니, 관중선배, 수현이, 유나, 선경이, 응원해줘서 고맙고, 끝으로 사랑하는 우리 가족, 늘 같은 자리에서 든든하게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번역과]
<이지민>
처음 공부를 시작하며, 다른 합격자들의 합격수기를 읽으며 힘냈었는데, 저의 합격수기 또한
이제 용기를 내려고 하는 다른 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 통번역 대학원 지원 동기 및 학원선택
전 원래 번역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왕 하는 공부 좀 더 넓고 포괄적으로 하자라는 마음에 회사를 그만두고 통번역 대학원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순수 토종 국내파인 저는 올해 1월 학원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는, 이곳이 이렇게 치열한 곳인 줄 몰랐습니다.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모두가 너무 열심히,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에 어떻게 공부를 하는 것이 효율적인지조차 모르는 초짜였던 저는 다소 기가 죽었습니다.
여러 군데 학원에서 청강을 해 보았지만 딱 제가 원하는 수업이 없었던 차에, 이창용 선생님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당시 제 눈엔 정말 신기루를 만난 것 같았습니다. 공부방법에서부터 작은 팁까지 주시는 선생님과 아담한 사이즈의 클래스도 맘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학원에 마음을 붙이고 선생님만 믿고 따라갔습니다. 특히 선생님께서는 잘하는 학생이든 못하는 학생이든 그 학생이 전보다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셔서 좋았습니다. 절대적 기준이 아닌, 학생 별로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말씀해주셨는데 그 점이 ‘나 자신을 경쟁자로 생각하고 항상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자’는 저의 모토와 잘 맞아 더욱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수업에는 번역이 없어서 다소 불안하던 차에 양시래 선생님의 번역 수업을 추천해주셨고, 그 후 4개월 정도 번역 수업을 들었습니다. 양시래 선생님 번역 수업은 정말 내가 한참 모자라는구나 하고 제 자신을 채찍질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고, 뉘앙스 차이까지 집어주시는 선생님의 수업은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었습니다.
2. 공부방법
통역이든 번역이든 가장 중요한 건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즉, 가장 중요한 것은 input 을 늘려서 최대한 영어다운 영어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네이티브를 제외하고는 의도적으로 많이 읽고 들어서 영어에 최대한 노출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서 내뱉게 되는 output은 전 가능한 한 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어설픈 번역과 통역은 결국 콩글리쉬가 되게 마련이기 때문에 외우는 방법이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공부를 할 때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즐겁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의 경우는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워서 그렇기도 했지만, 지치지 않도록 여러 가지 공부 방법을 섞어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루에 리스닝을 3시간 하고, 스피킹을 2시간 하는 등 나만의 계획을 짜서 규칙적으로 공부하긴 했지만, 공부가 잘 안될 때는 하루종일 미드나 영화 혹은 원서만 본 적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늘 강조하셨지만, 언어는 능률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조건 붙들고 늘고 있는 것이 아닌 효율적인 공부, 즐거운 공부가 결국 지나고 보면 더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절대량에 도달할 때까지는 정말 많은 양의 영어에 노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 지금도 제가 그 수준에 도달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영어 공부는 정말 평생 해야 한다는 말도 실감이 납니다. 물론 기본을 닦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학원 수강생들이 어려운 문장보다도 쉬운 문장을 만드는 데서 애를 먹는 모습을 보며, 기초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어느 정도 기초가 잘 닦였다고 생각하면 그 다음부터는 정말 의도적으로 노출수위를 높여야 합니다.
지금 돌아보면, 리스닝과 스피킹에 투자한 시간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 후회가 됩니다.
여름이 지나면서 학원에서 모의고사 준비를 해 주시는 데, 그 때부터는 그 쪽에 전념하느라 input에 대한 투자가 아무래도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그 전까지 최대한 input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년부턴 외대의 경우 1차가 없어진다곤 하지만, 무언가 다른 방법을 도입하지 않을까 하는데, 그럴수록 기본적인 영어실력이 더욱 중요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어떤 유형으로 나오든, 실력만 확실하다면 합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스터디
저는 스터디를 일부러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막판에 수강생들을 엮어서 스터디 조를 짜 주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저의 실력이 스터디를 할 때가 아니라고 자체적으로 판단했습니다. 물론 스터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습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지적 받을 수 있고, 나도 모르게 실수하는 부분을 다른 스터디 파트너를 통해 고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얻는 이득보다는 전 제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설프게 서로 지적하느라 시간 낭비하는 것보다 그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이건 본인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전 그저 무조건 남들이 하니까 스터디를 해야겠다 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복습과 암기
스터디를 안 하는 대신 저는 복습에 좀 더 치중했습니다. 보통 언어라는 것은 한 가지 표현을 10번 정도는 봐야 내 것이 된다고 합니다. 특히 한영의 경우, 통역이든 번역이든 자꾸 반복해서 외우고 말하지 않는 한, 내일 보면 또 까먹고, 일주일 지나면 또 까먹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 수업시간에 했던 내용을 일주일, 한 달, 두 달 간격으로 보고 또 보고 해서 확실히 내 표현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다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미련한 방법 같아도 그렇게 해서 내 것이 되지 않는 한, 말하려고 해도 쓰려고 해도 기억이 나지 않게 마련입니다.
3. 시험
학원에서 보는 모의고사 성적이 어느 정도 나왔다고 스스로 생각했고 막판에 점점 더 오르는 추세였기 때문에 다소 자만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외대 1차 시험에서 떨어지고 사실 믿기지 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곧 추스리고 남아 있는 시험에 집중하자 하고, 이대 번역 시험을 보러 갔는데, 워낙 조금 뽑기도 하고, 번역 하나만으로 사람을 뽑는 데 내가 될 리가 없다는 마음에 정말 편안하게 시험을 봤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편안한 번역을 하고 합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제는 평이하게 나왔습니다. 영한은 혁명가의 유형을 나누며 각각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었고, 내용상에서 크게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은 없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다 읽은 후 차분히 시작을 했습니다. 시간이 모자라진 않았고, 중간에 모르는 단어가 하나 나와서 그냥 번역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크게 감점 요인이 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영보다 영한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아, 최대한 한글답게 풀려고 했습니다. ‘내가 번역한 것을 읽는 사람은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내 글만 갖고 다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는 생각으로 어색한 표현은 최대한 지향했습니다. 한영의 경우 불확실성에 관한 지문으로 내용은 다소 평이했는데, 처음 시작부분이 다소 불안했습니다. 상황에 대한 묘사였는데 어설프게 그대로 번역했다가는 콩글리쉬가 될 것 같아, 토시 그대로가 아닌 상황을 통째로 번역하자는 마음으로 다소 의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본문에 충실하게 번역을 했습니다. 이대는 자기소개서도 제출하게 되어 있는데, 그것이 시험 합격 여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는 몰라도, 왠지 번역과는 이런 부분도 소홀히 하면 안되겠다 싶어서 공들여 작성했습니다. 전 원래 번역을 하고 싶었던 터라 소신대로 썼는데, 보통 번역과는 통역과를 가려다 못 간 학생들이 많이 합격하기에 이런 부분은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번역과를 들어가서 전과를 할 수도 있고, 또 번역과에 들어가서 더 적성에 잘 맞을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것 하나 꼼꼼히 신경을 쓰는 자세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4. 마치며
아직도 제가 합격한 것에 대해 얼떨떨하지만, 어쨌든 짧은 시간 내에 이룬 성과라 감사한 마음입니다. 함께 즐겁고 서로 격려하는 분위기에 공부할 수 있었던 것도 저에겐 참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If you set your goals ridiculously high and it’s a failure, you will have failed above everyone else’s success”
이 말은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한 말로 수업시간에 지문에 나왔습니다. 당시 저 말이 너무 와 닿아서 전 저 문구를 크게 출력을 해서 공부하는 책상에 붙여 놓았습니다.
흔들릴 때 나를 잡아주고 힘을 줄 수 있는 그런 나만의 문구를 하나 만드는 것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열심히 하는 자를 이기는 건 즐기는 자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평생 할 공부라면 즐기면서 하는 것이 건강에도 좋습니다. 체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니까요.
끝으로 선생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번역과]
<이하영>
시험 시간은 모두 1시간 40분으로 영한, 한영 함께 보기 때문에 시간 분배는 자신이 알아서 하면 됩니다. 저는 한영, 영한 번역에 각각 30분 정도 분배해 쓰고, 나머지 40분은 계속 반복해 읽으면서 퇴고했습니다. 번역 지문을 찾아보려 했더니 영한은 찾았는데 한영은 도무지 모르겠어요. 영한은 The New York Times에 "Innovation: It Isn't a Matter of Left or Right"이라는 제목으로 10월 30일에 게재됐고 한영은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 적겠습니다.
(영한)
* 일부 소소하게 바꾸신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안 나서 원문 그대로 올립니다. 단어 몇 개 빼거나 더하신 것 같습니다.
In my research, I analyzed 300 of the most influential innovations in science, commerce and technology and put the innovators of each breakthrough into one of four quadrants. First, there is the classic solo entrepreneur, protecting innovations in order to benefit from them financially; then the amateur individual, exploring and inventing for the love of it. Then there are the private corporations collaborating on ideas while simultaneously competing with one another. And then there is the "fourth quadrant": the space of collaborative, nonproprietary innovation, exemplified in recent years by the Internet and the Web, two groundbreaking innovations not owned by anyone.
The conventional wisdom, of course, is that market forces drive innovation, with businesses propelled to new ideas by the promise of financial reward. And yet even in the heyday of industrial and consumer capitalism over the last two centuries, the fourth quadrant turns out to have generated more world-changing ideas than the competitive sphere of the marketplace. Batteries, bifocals, neonatal incubators, birth control pills -- all originated either in amateur labs or in academic environments.
The fourth quadrant, however, is not locked in a zero-sum conflict with markets.
The Internet is the ultimate example of how fourth-quadrant innovation actually supports market developments: a platform built by a loosely affiliated group of public-sector and university visionaries that has become one of the most powerful engines of wealth creation in modern times.
Why has the fourth quadrant been so innovative, despite the lack of traditional economic rewards? The answer, I believe, has to do with the increased connectivity that comes from these open environments. Ideas are free to flow from mind to mind, and to be refined and modified without complex business development deals or patent lawyers. The incentives for innovation are lower, but so are the barriers.
작년에도 시험을 봤었는데 시간이 나름 넉넉한데도 불구하고 연습지에 먼저 쓰고 답지에 옮겨 썼더니 퇴고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올해는 답지가 조금 많이 지저분해질 걸 각오하고 연습지 없이 답안을 작성했습니다. 우선 시험지를 받고 지문을 읽으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그 순간 딱 맞는 표현이 떠올랐던 부분만 연습지에 적어 뒀습니다. 한국어로 옮기기가 난감한 부분은 딱히 없었습니다. quadrant, bifocal, affiliated(이 단어는 시험 볼 때 생각이 안 났어요.) 세 단어를 몰랐는데 keyword인 quadrant는 전체적인 문단을 여러 번 읽어보고 문맥상으로 '영역' 정도면 무난할 것 같아서 과감하게 영역으로 통일했습니다. bifocal은 여러 예 중의 하나라 깨끗하게 뺐고, affiliated는 '일부' 정도로 옮겼습니다. 문장이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은 다행히 없어서 내용을 뺀 건 없었습니다. 시간에 여유가 있다고 처음부터 너무 단어를 고르면 정작 뒷부분에서는 시간 부족으로 제대로 못한다는 생각에, 처음 쓸 때는 바로바로 무난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으면 좀 어색하더라도 의미에 맞게만 끝까지 쭉 썼습니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넉넉히 남은 걸 확인하고 한글을 매끄럽게 빼기가 어려운 부분들과 읽어서 어색한 부분들을 손봤습니다.
(한영)
한국이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승리를 거둘 때마다 한국인들은 열광한다. 한국인들에게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경쟁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뿐 아니라 한국에서는 경쟁에서 밀려나면 패자가 되고, 일단 패자가 되면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가 힘들기 때문에, 더더욱 경쟁에서 이기려고 애쓴다. 경쟁에서 이기지 못했을 때의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험에 가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그러한 불확실성을 줄이려고 한다. 부모들은 이런 상황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출산율은 OECD 국가들 중 최저수준이다.
대략 이런 요지의 내용이었습니다. 한영도 영한과 비슷하게 일단 쭉 써 놓고 세세한 부분을 고쳤습니다. 한영에서는, 똑같은 내용은 아니었지만, 전반적인 내용이 수업 시간 한영에서 여러 번 다뤘던 주제여서 부담은 적었습니다. 수업시간에 한영 발표할 때도 은천성 선생님께서 한글 읽어주실 때 외웠던 표현들이 보통 떠오르고, 그 표현들이 비슷하게 들어맞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번역도 비슷한 방식으로, 한글 읽었을 때 떠오르는 표현들이 외웠던 표현이겠거니 하고 썼습니다. 생각나지 않던 표현들이 세 가지 정도 있었는데 하나는 첫 문장에 나오던 '열광한다'가 crazy 밖에 생각이 안 났고, 수업 중에 선생님께서 crazy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기억이 잘 안 나서 구차하지만 nearly crazy로 갔습니다. 두 번째는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노력의 한 가지로 '보험에 가입한다'라는 게 있었는데 buy premium이 생각났지만 확신을 할 수 없었고 많은 예들 중 하나라 뺐습니다. 세 번째는 '물려준다'였는데 이것도 순간 'inherit'이란 단어가 생각났는데 'inherit' 용법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서 일단 써 놓고 나중에 고치자 했었는데 다른 거 퇴고하면서 깜빡 잊어버렸습니다. 문법에도 맞지 않는 콩클리시였고, 이것 때문에 번역은 확실히 떨어졌겠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하나 정도는 봐 주신 듯 합니다. 그것 외에는 확실히 틀렸구나 하는 부분은 시험보고 나와서 확인해 본 바로는 없었습니다.
(공부 시작)
저는 학원 수학강사를 하다가 2007년 강사 일을 그만두고, 과외를 시작하면서 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첫 해는 사실 그 동안 일 하느라 지쳐 있었기 때문에, 공부를 했다기보다 그냥 학원만 왔다 갔다 하는 정도였고, 공부 시작하기 전 2, 3년은 영어와는 거의 담을 쌓고 살았었기 때문에 영어도 굉장히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영어권 국가로 어학연수는커녕, 여행도 한 번 다녀온 적도 없었고, 딱히 영어 자체를 좋아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 당시에 영어를 잘 해 두면 인터넷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이 많을 테니 사는 데 재밌겠구나 하는 호기심 절반, 이 쪽 일을 하면 나이 들어서도 일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현실적인 마음 절반으로 시작했던 공부였습니다. 이렇게 오래일 줄은 사실 몰랐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고 각오는 했었습니다.
2007년은 거의 반쯤 노는 기분으로 학원만 다녔고 뭘 공부해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다행히 그 때 장홍석 선생님 덕분에 영어 표현을 암기하는 즐거움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해 12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은 선생님 영어공부길라잡이반 수업을 들으면서 청취는 어떻게 하는지, 영어는 어떻게 공부하는 게 효과적인지, 필사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등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해 5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계속 은 선생님 수업만 줄기차게 들었습니다.^^ 저는 시험도 물론 중요했지만,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배우고, 기본을 다지는 데 중점을 맞춰 주셔서, 은 선생님 수업방식이 저와 너무 잘 맞았고, 다른 수업에 대한 고민 없이 계속 수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공부 방법에 대해 너무 몰라서, LC도 처음엔 너무 안 하고, 수업자료만 줄기차게 외웠던 게 아쉬웠던 부분이긴 하지만, 그 외에는 최대한 선생님께서 시키시는 것들을 하려고 노력했고, 그 덕에 처음 시작할 때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어가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이 방식으로 계속 노력한다면 더 좋아질 거라고 확신합니다.
(일일 학습 내용)
저는 통역을 목표로 공부했었기 때문에, 번역만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까 싶지만, 제 공부 과정을 그냥 쓰겠습니다. 사실상 은 선생님의 수업을 처음 들었던 2008년에는 수업 자료의 암기도 너무 벅차서, 선생님께서 LC를 강조하셨지만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2009년엔 시험을 보고 나서야 LC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아, LC 시간을 많이 늘려야겠다고 생각해m 시사청취도 듣고 했지만, 꼼꼼히 듣기보다 LC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위안을 얻으려고 했었던 게 아닌가 싶어 조금 아쉽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암기도 가능하면 LC를 하면서 할 수 있는 것들로만 하자 싶어서, 선생님 LC 자료 복습을 최우선순위로 두고, 혼자 공부하는 article도 꼭 LC 파일이 있는 것들로만 골라서 했습니다.
그 이외에는 약간의 변동과 게으름이 있겠지만, 2008년 초부터 선생님 수업자료 암기, 백악관 주례연설 암기를 계속 했었고, 2008년 여름부터 일주일에 최소 3개 정도, Abby 영영 후 암기, 신문 사설 한한 스터디를 했습니다. 국어 실력 보완을 위해서, 2009년부터는 최소 월/수/금 3일은 신문을 읽으면서 필요한 표현 등을 외웠고, 주간지는 2년 간 시사IN의 전 기사를 읽었습니다. 국제 정세나 전반적 배경지식을 쌓기 위해서는, 뉴스위크 한글판 전 기사를 마찬가지로 2년 동안 읽었습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정치나 경제 쪽으로는 워낙 관심이 없었던지라, 뉴스위크를 읽어서도 이해가 안 되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다른 경제서적이나 전문서적을 사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영어표현은 관련 기사를 AP 등 통신사나 VOA에서 찾아서 공부한 후 암기했습니다. 영자신문이나 뉴스위크, 이코노미스트 영어판은 사도 어차피 잘 보지 않기 때문에, 꼭 읽고 싶은 기사가 있을 때만 인터넷에서 찾아서 프린트해서 봤습니다.
(스터디)
초반엔 워낙 모르는 게 많아서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야 한다는 생각에 스터디는 최소한으로 잡고 암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2008년엔 연설문 암기, 수업자료 암기 스터디와 여름부터 Abby 영영, 신문 사설 한한 스터디를 했는데 하루에 1시간을 넘지 않는 정도로 해서 제 공부 시간을 우선했습니다.
2009년엔 수업자료 암기 스터디를 빼고,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더 늘리려고 했습니다.
2010년엔 스터디를 많이 다양하게 한 편이었습니다. Abby에 VOA 기사 하나를 영영하고, 신문 사설 한한 스터디는, 1월부터 시험 보기 전 주까지 계속 했습니다. 연초에는 사이트와 다른 연설문 암기를 약 3개월 했고, 중순부터는 New Yorker나 Slate, Wharton School 중 LC 파일이 있는 자료를 영한 요약하는 스터디를 시험 전까지, 8월부터는 시험 대비로 영한 한영을 육성으로 하는 스터디를 역시 시험 전까지 했습니다. 또 마지막 한 달은 영영했던 자료들을 모아 스터디 파트너와 브레인 스토밍하면서, 분야별로 표현 정리하고, 시험 보기 전까지 계속 그 자료를 중심으로 복습했습니다.
(발표)
발표는 2008년에는 거의 연설문 암기만 했습니다. 부족한 실력으로 앞에 나가서 해봐야 자괴감만 들기 때문에 복습에만 치중했습니다. 2009년부터는 가능하면 나가서 발표하려고 했는데, 저는 크리틱에 크게 상처받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편이어서 재미있었습니다. 발표할 때마다 나름의 기준으로 내용의 몇 %를 잡았는지, 내용을 잘 못 잡은 건 몇 가지였는지, 선생님의 반복된 크리틱을 받지는 않았는지 등을 생각해 다음 발표 때에는 이번보다 잘 하자라고 동기부여의 기회가 됐던 것 같습니다.
(공부 계획)
저는 일을 하긴 했지만, 저녁부터 밤까지 할 수 있는 일이라, 낮에는 수업도 듣고 제 공부도 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그래도 일단 집에 들어가면 쉬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깊게 박혀서인지, 집에서는 어지간해서는 공부를 안 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한 시간이라도 공부할 수 있겠다 싶으면, 일단 학원에 가자'를 공부하는 동안의 모토로 삼았습니다. 일단 학원에 가면, 들였던 차비, 시간이 아까우니, 가능하면 할 수 있는 시간까지 최대한 공부하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공부를 하면서 슬럼프는 다행히 거의 겪지 않았는데, 제가 해 본 방법 중 제일 좋은 방법은,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은 날은 아무리 하기 싫고 공부가 안 되더라도, 처음 마음먹었던 시간만큼 공부하는 겁니다. 효율이 떨어져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했습니다. 흔히들, 오늘 컨디션이 별로 안 좋거나 능률이 떨어지니까, 내일 컨디션 회복되면 집중해서 하자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게 다음날 컨디션이 돌아오라는 법이 없고, 보통은 리듬이 깨져서 더 나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니, 그냥 하던 거 하자는 거죠. 그 대신 몸 상태가 많이 나빠질 것 같은 날은 집에 가서 푹 쉬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주기적으로 내 실력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공부 방법에 변화를 주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 크리틱을 반복해서 받는 부분 중 말하는 속도가 느리다든지, 뜸들이는 시간이 길든지 하는, 상대적으로 빨리 고칠 수 있는 부분이라면, 그 부분을 고칠 때까지 집중해서 연습했습니다. 반면, 영어 표현이나 한국어 표현이 어색하다는 등의 문제들은, 장기적으로 그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공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한 다음, 스터디 파트너의 평가나 한 달이나 두 달 전 발표했던 강의파일을 들어보고 변화 정도를 점검했습니다. 변화 정도에 따라서 효과가 없다고 생각되는 방법은 다른 방법으로 대체해서, 좋았다고 생각되는 방법들은 시간을 늘린다거나 했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단기적인 성과들이 소소하게 생겨나서 장기적인 문제점들이 빨리 개선되지 않더라도 크게 지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무리)
나름 학원에서 오래 통대를 준비하고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통대 준비가 마냥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투자하는 시간만큼 그 결과를 돌려주는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또 매일매일 새로운 내용을 배워야 하는 만큼, 시험의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배우는 것 자체를 즐기신다면, 하루하루가 즐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작은 신중하게 하시되, 일단 시작하셨다면 즐겁게 공부하시길 빕니다.^^
마지막으로 은 선생님, 그리고 함께 공부하며 힘이 되어줬던 모두들, 감사합니다.^^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번역과]
<정유정>
1. 배경
제가 처음에 이 공부를 시작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의 경우, 어떤 전공 공부를 하다가 통번역 공부를 시작했을까 이었습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제 동기나 배경을 말씀드리면, 저는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다른 공부를 하거나 일을 했던 건 아니었고 바로 학원을 다니면서 입시준비를 했습니다. 아르바이트나 다른 일은 하지 않고 2009-2010년에 걸쳐 2년 동안 공부했습니다. 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좋아했고, 나중에 직업을 갖더라도 영어관련 직업을 갖고 싶어서였습니다.
2. 공부했던 과정
저는 학원수업을 안 들으면 공부를 하지 않는 성격 탓에, 2년 내내 수업을 들었습니다. 2009년에는 은천성 선생님의 영어공부길라잡이반 2개월+외대준비반 8개월을 수강했습니다. 수업 외에 스터디는 수업내용 복습한 것을 확인하는 것 위주로 1개만 했었습니다. 영어를 좋아하긴 했지만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2009년 1년 동안에는 선생님이 시키신 것만 열심히 하고 모두 소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시기에 좋은 단어, 표현, 문장을 많이 암기했습니다. 이때 철저히 암기한 것들이 기억에 오래 남았고, 좋은 표현이 나오면 바로바로 암기하려고 하는 좋은 습관도 형성됐습니다. 생각 없이 툭 튀어나올 수 있을 때까지 오바마 연설문을 암기하고, 수업자료를 달달 외우는데 집중했습니다.
2010년에는 이창용 선생님의 실전통대반을 10개월, 양시래 선생님의 번역반을 3개월 수강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그 전년도에 외웠던 것을 실제로 통역과 번역연습을 하면서 써보는 데 집중했습니다. 물론 이때도 수업내용을 철저히 복습하고 좋은 표현을 암기했습니다. 이창용 선생님께서 주신 자료들은 양도 많고 다양한 분야를 다루기 때문에, 영어에 노출하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는 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스터디도 늘려서, 영영과 한한 연습을 하는 스터디, 영한과 한영 연습을 하는 스터디, 연설문 암기 스터디, 주말에 추가로 영한, 한영을 연습하는 그룹 스터디를 했습니다. 시험 전에는 양시래 선생님 실전번역반을 수강하면서, 직접 써보고 꼼꼼한 크리틱을 받고 좋은 표현을 암기해놨던 것이 실제 번역시험에서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3. 시험당일
시험당일에 방석 혹은 담요, 시계를 꼭 가져가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저는 차가운 데에 앉으면 집중이 잘 안 되는데 하필 시험 날 잊어버리고 방석을 안 가져가서 차가운 의자에서 시험을 봤는데 조금 힘들었습니다. ㅠ 게다가 시계도 안 챙겨가서 너무 걱정했는데, 다행히 앞자리에 학원수업을 같이 들으신 분이 조그만 탁상시계를 가져오셔서 함께 봐도 된다고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시계는 번역할 때 시간배정을 해야하기 때문에 정말 필수입니다, 꼭 꼭 챙겨가세요!
시험 볼 때 연습지와 답지를 함께 나눠줍니다. 연습지에 막 쓰고 답지에 좀 단정하게 옮겨 썼으면 좋겠지만, 저는 학원에서 실전번역연습을 할 때도 시간이 항상 모자랐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답지에 썼습니다. 그래서 줄로 직직 긋고 쓰는 등 수정을 많이 해서 답지는 좀 지저분한 편이었습니다. 나중에 시험보고 나와서 답지가 지저분해서 혹시 점수를 깍지 않을까 많이 걱정했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 번역을 빨리 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면 답지에 바로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 나쁜 습관 중에 하나가 번역을 할 때 본문 전체를 읽어보지 않고 바로 앞줄부터 번역을 시작하는 건데요, 이렇게 하면 전체 글의 분위기나 톤을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먼저 본문을 한 번 쭉 읽어보고 번역을 시작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시험보신 분들이 시험지문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평이했던 편이라고 하셨을 때, 사실 전 좀 어렵게 느껴진 편이라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게다가 전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패닉상태가 와서 내용파악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시험 때도 두 세 개 가량 모르는 단어가 있어서 당황했습니다. 그래도 문맥으로 애써 파악하면서 틀리지 않게 해석하려고 노력했고, 한 단어는 아예 생략하고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답안을 전체적으로 볼 때 논리적으로 연결되는지를 살펴보고, 접속사나 문장을 추가로 써넣기도 했습니다.
저는 답지에 바로 썼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좀 빡빡했습니다. 처음에 한 단어를 잘못 이해하는 바람에 한 문단을 다시 번역해야해서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ㅠ 그래서 나중에 다 쓰고 검토를 할 때, 딴 것보다 스펠링 틀린 것은 없는지 확인하는데 중점을 뒀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번역을 정확히 할 수 없는 부분은 다른 문장과 연결시켜서 자연스럽게 논리적으로 맞게끔 돌아가는 번역을 했고, 오역을 하거나 내용을 심하게 과장되게 번역하거나 하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신경 썼습니다.
[서울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통역번역학과]
<김지혜>
[배경]
저는 대학 때는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공부했고 어학 연수와 대학원을 인도로 가면서 그곳에서 영어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유학기간 동안 아르바이트로 통역을 접하게 됐고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소위 영어권을 한번도 가보지 못해. 발음이나 자연스러운 표현 면에서 많이 부족하고 현지화된 영어 표현들을 배운 것이 있어서 그런 것들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공부 방법도 모르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도 몰라서 이리저리 헤맸습니다. 후반에 가서야 이제야 공부방법을 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부터 서울외대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이대는 모의시험 삼아 보았습니다. 이대시험에서 깨지고 힘들었지만 오히려 어떻게 해야할 지 감을 잡을 수 있어서 저는 좋았습니다.
[공부]
3월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막연하게 영어를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한국어도 큰 문제였습니다. 귀국 후에 친구들이 한국어 실력이 많이 줄었다고 하기는 했지만 제 한국어가 이렇게 심각한 수준인 줄은 수업 때 발표를 해본 후에야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머리 속으로는 알겠는데 도저히 표현이 생각이 안 나서 통역이 중구난방이었습니다. 영어와 한국어 모두 어중간해서 그게 제일 큰 고민이었습니다만 그나마 알아들은 것도 한국어로 표현이 제대로 안 돼서 고민했습니다. 한국어는 지금도 제게는 큰 문제입니다. 3-5월까지 마음먹은 대로 공부는 잘 안되고 그래서 공부 반 스트레스 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6월 내내 식중독으로 시작해 위궤양에 폐렴, 간염 등으로 수업을 아예 못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계속 CNN, BBC 등을 틀어놓고 들었습니다. TV를 틀어놓고 보다가 자가다 했습니다. 공부는 못해도 귀에 익숙해 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사실 유학 초에 썼던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6월 한 달을 보내고 나서 공부에 대한 자세가 바뀌었습니다. 초기에는 잘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고 다들 저보다 잘 하기는 것 같아서 심리적으로 부담이 많이 됐습니다. 제가 나이가 많기도 하고 해서 더 심적으로 힘들었습니다만, 후반에 가서는 은천성 선생님 말씀대로 "내공이 쌓여야 된다"고 생각하고, 내년을 기약하며 편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습니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니 오히려 공부능률이 올랐습니다.
8월쯤이 되서야 겨우 겨우 선생님 수업을 따라갈 수 있게 됐습니다. 그 전에는 복습도 제대로 해가지 못했습니다만, 이제 복습은 해 갈 수 있었습니다. 수업자료를 다시 한 번 듣고, 완전하지는 않아도 단어와 표현을 외우고 LC강화를 해 갈 수 있었습니다. 다만 연설발표는 너무 힘들고 안 돼서, 발표는 포기했습니다. 그렇지만 표현 위주로나마 외우고 집에서 혼자 연습을 하기는 했습니다. 9월부터는 한국어 신문을 읽고 신문을 베끼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내년을 기약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시사흐름과 취약한 한국어 어휘나 늘리자는 마음이었습니다. 메모리 스팬은 연습을 하다가 말다가 해서 별로 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할 걸 하고 제일 후회하는 부분입니다. 입으로 하는 공부인데 저는 손으로 쓰면서 외우는 게 더 빠르다는 걸을 알고 이때부터는 되도록 손으로 쓰고 외웠습니다.
LC는 수업자료를 MP3에 담아두고 되풀이해서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CNN, BBC, VOA등에서 흥미로운 주제들을 찾아서 제 맘대로 들었습니다. 긴 내용들은 1분 단위로 끊어서 연습을 했습니다. 쉐도잉이 좋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쉐도잉은 저와는 맞지 않아 하지 않았습니다. 성격이 급해서 잘 달리는 편인데 쉐도잉을 하다보면 오히려 발음을 뭉개는 경우가 있어서 차라리 나중에 지문을 보고 강세를 찾고 제대로 읽는 연습을 했습니다. 발음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강세와 스트레스를 찾아보고 따라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발음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잘못된 습관을 굳혀진 부분들이 아직도 고쳐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시험을 보면서도 아, 이거 발음 잘못 했다고 생각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말 무의식중에 나오는 발음을 고치려면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읽기와 쓰기는 대학원 때 많이 훈련이 됐다고 생각을 해서 따로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공부가 지겨울 때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시리즈로 다시 읽거나 대학원 자료를 다시 읽거나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코노미스트는 수업 자료만 읽었고 뉴스위크는 후반에 가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영자 신문도 후반에 가서야 조금씩 읽고 재미있는 기사는 필사를 했습니다.
저는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스터디 외에는 따로 스터디를 하지 않았습니다. 초반에 욕심을 내서 했다가 오히려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혼자서 하자고 생각을 했습니다. 욕심을 내지 않고 했으면 더 나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메모리 스팬의 경우는 파트너가 있으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스터디에서는 오마바 연설문을 조금씩 외우고 Dear Abby와 AP를 듣고 표현 공부를 했습니다. 스터디 분위기가 편했기 때문에 공부하다 지쳤을 때도 좋았습니다.
[시험]
서울 외대 시험에서 일차에서 원고지가 나와서 당황했습니다. 한국어는 듣고 대의를 요약해서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첫 문제는 당황해서 절반쯤 썼는데 두 번째 문제가 나왔습니다. 일단 두 번째 문제를 빨리 쓰고 다시 첫 문제로 돌아가 마무리졌습니다. 일차의 영어 듣기에서는 작년 합격수기에서 본 대로 들은 것을 하나라도 더 적으려고 했습니다. 읽기에서는 대명사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내용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고자 했습니다. 일차를 보고 나서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차에 붙으면 내년에 공부할 때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할 텐데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혹시 일차에 붙을 경우를 생각해 자꾸 달아나려는 마음을 붙잡고 LC공부와 한국신문을 읽었습니다.
다행히 일차에 붙고 이차 시험을 보러가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모의고사라고 생각을 하려 해도 마음이 두근거려서 아예 그 전날 우황청심원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올빼미형이라 평소에는 새벽3,4시까지 깨있지만 그 날은 12시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약효덕분인지 어느새 비몽사몽간에 잠이 들었습니다. 첫 시험이 필기인데 손이 떨려서 글씨를 더 못쓸까봐 또 우황청심원을 마시고 핫팩도 손에 들고 손을 따뜻하게 했습니다.
이차 필기 시험은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갔습니다. 시험감독께서 9분마다 시간을 알려주시면서 "이제 다음 문제로 슬슬 넘어가셔야 합니다"라고 해서 더 초조했습니다. 작년 후기에서 읽은 대로, 시간이 되면 멈추고 다음 문제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후에 시간이 남아서 보충과 검토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영한의 경우 전반적으로 어렵지는 않았지만 중간중간 내용이 까다로운 부분들도 있었습니다. 한영의 경우 머리가 핑핑 돌아가서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굉장히 단순하게 작문을 한 거 같아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단어 표현이 있는 부분은 할 수 있으면 그냥 문맥상 뜻이 맞게끔 돌아갔습니다.
구술 시험 때는 제 인도 경험에 대해 물어보셨습니다. 인도는 호불호가 뚜렷이 갈리는 데 어떠냐고 물어보셔서 저는 그 중간이라고, 싫었다가 다시 좋아졌다가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외국인 교수님께서 갑자기 언제 뭄바이를 떠났냐고 물어오셔서 제가 잘못 이해했나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실수하느니 제대로 물어보자 해서 죄송하지만 다시 말씀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넘어간 후, 한국인 교수님께서 파이낸스 상식을 물어보겠다고 하셨는데, 저는 파이낸스 쪽은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3문제 모두 "죄송합니다. 모르겠습니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음 상식은 연평도와 스마트 그리드를 물어보셨습니다. 이 문제들은 나름대로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올바르게 대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IT쪽 아는 분께 여쭤보니 스마트 그리드는 대강은 맞았지만 조금은 잘못 설명한 듯 합니다. 그리고 나서 영한을 했는데, 갑자기 외국인 교수님이 요즘 남북문제가 심각한데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도 좋지 않다. 이 국가들의 문제를 연계해서 설명할 수 있겠냐 하셨습니다. 제가 대학원전공이 정치학이어서 이런 질문을 하신 듯 합니다. ICBM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핵보유국의 국제사회 인정, 핵억지력 등을 말씀드렸습니다. "무엇보다 양국간 ICBM이 없기 때문에 관계가 잘 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마무리졌습니다. 중간에 버벅거렸지만 어떻게든 마무리졌습니다.
영한은,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자유시장주의가 조금이라도 들어가게 됐는데, 이것을 계기로 민주주의, 자유주의 변화가 북한 사회에 올 수 있는지의 여부를 물었고, 그 주체가 한국이 돼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의를 잡아서 말하려고 노력했고, 기억이 안 나는 부분은 버리고 결론으로 마무리졌습니다. 한영은 한국 기업들의 인도 시장 진출이었습니다. "메모리 스팬이 좋지 않으니 이것도 대의만 전하자"했습니다만, 제가 생각할 때 사족을 붙인 부분이 한 군데, 발음이 틀린 부분이 한 군데 있었습니다. 틀렸을 때 "아~!"하고 속으로 탄식을 했지만 멈추지 않고 그냥 나머지를 마무리졌습니다. 은 선생님께서 평소 "backtracking은 나쁘다"고 하셨기 때문이고, 또 "한 번 뱉은 말은 끝까지 마무리져라"라고 하신 걸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한영을 하면서 속으로 울 뻔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나오는데 일단 일년간의 공부가 끝났다고 생각하니 속이 후련했습니다. 실수한 것들이 생각났지만, "내년에 또 하면 되지. 좋은 경험했다. 이제 공부 방향을 어떻게 하는 지 알겠다. 시험 때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을 한 셈이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실제로 합격 발표가 났을 때도 안 됐을 거라 믿고 있었기 때문에, 확인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합격여부를 떠나서 마무리짓는 것이 중요하고 또 불합격이라도 정확히 알아야 다음 단계로 넘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해 확인을 했습니다. 어떻게 잘 봐 주셔서 합격한 것 같습니다. 수업을 들을 때 선생님께서 해주신 critique를 잊지 않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생님 그동안 수업 시간에 정말 너무 감사했습니다.
[서울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통역번역학과]
<성기윤>
[프로필] 서울소재 대학 건축공학과 졸업/해외체류 총 20개월/직장인
저는 2년간 입시 준비를 했고, 회사를 쭉 다니다가 올 8월부터 풀타임 학생으로 변신했습니다. 집중력이 약하고 꾸준함이 부족하기 때문에 입시준비만 하면서 1년을 버틸 자신이 없었습니다. 평일에는 3-4시간 공부했고, 주말을 충분히 활용했습니다. 공부하다가 '이번에는 잘하면 합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올 8월에는 '퇴사'라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1. 실패한 1년
09년도에 길라잡이 반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 수업 분위기가 상당히 좋았고, 그래서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어떤 수업을 들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사청취를 듣고, 통대입시반은 여러 선생님의 강의를 주로 주말을 통해 들었습니다. 실패하고 나서 왜 떨어졌을지 많이 생각했습니다. 실력착각이 가장 큰 패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년에는 한국외대를 치렀는데, 모의고사를 보면 항상 등수/성적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공부할 때 잘 안 들리면, 심지어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 가 보다' 할 정도로 심하게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시험을 코앞에 둔 10월에 내가 내 실력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땐 이미 늦어서 그냥 스스로 최면을 걸 수밖에 없었고, 결과는 불합격이었습니다. 다른 패인으로는 주말낭비 (쉬어줘야 된다는 생각), 체력낭비 (무리한 새벽수업), 복습시간 부족 (양을 늘리려다 한 개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함), 조급증, 나에게 맞는 수업 찾지 못함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구경꾼이 된 듯한 느낌이 드는 수업을 계속 수강) 순이었습니다.
2. 또 다른 1년
올해 다시 시작할 때는, 무엇보다 내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냉정하게 자기 분석을 하고, 그에 맞게 대책을 세워나갔습니다. 또 합격/불합격을 떠나서 평생 공부할 수 있도록 공부에서 재미를 찾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했습니다.
1) 영한: 내 참 실력의 위치를 깨닫고는 아직 수업에 가서 들을 단계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온라인 강의를 들었습니다. 대신 수업 시간이라고 가정하고, 발표하고 녹음했습니다. 선생님 크리틱을 듣고, 발표한 학생과 제 것을 비교해 봤습니다. 한국어로 적당한 표현이 뭐가 있을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리딩은 따로 하지 않고, 수업자료 (특히 4,5,6번)를 독해하듯이 꼼꼼하게 분석했습니다. 온라인 수업의 장점은 모든 내용을 내가 다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두 번이나 세 번까지 반복해서 듣고 대의라도 파악하려고 애썼습니다. 처음에는 6개중 1-2개 할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 4-5까지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그 때 오프라인 수업에 참여하고 크리틱을 받았습니다.
2) 한영: 한영에 너무 겁을 내서 6월까지는 외우는 데만 투자했습니다. 처음부터 과감히 도전했더라면 차도(?)가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외워서인지, 6-7월쯤엔 '저건 나도 해 볼 만 하겠다' 싶은 것들이 늘었습니다. 그래도 실전 연습이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없을수록 처음부터 치고 나가는 것이 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3) 영어 공부 노트: 내 진짜 실력을 깨닫고 나니 '내가 이거밖에 안 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들었습니다. 마음만 급하다가 결국은 망한 작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야 할 길이 멀수록 차분하게 가자'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게 작은 수첩을 하나 사서, 매일의 공부 목표/분량을 적었습니다. 또 공부하면서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항상 노트에 무엇이 문제일지 적으면서 생각했습니다. 항상 해법을 찾는 것은 아니었지만, 문제점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지문을 들을 때 그 부분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 까 싶습니다.
4) 주말 공부: 주말에 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스터디를 일부러 주말로 잡았습니다. 주중에는 온라인 수업에 집중했고, 토/일은 스터디 준비에 90%이상 할애했습니다. 사람마다 공부가 잘 안 되는 시간이 있기 마련인데, 저는 그 시간이 주말이었고, 주말에 스터디를 배치해서 시간을 알뜰하게 쓸 수 있었습니다.
5) 스터디: 스파 1명과 스터디 1 개만 3월부터 11월까지 쭉 같이 했습니다. '꼼꼼한 수업 복습'을 목표로 했습니다. 프린트 자료와 파란 LC교재를 거의 외우다시피 복습해서 번갈아 가면서 암기한 내용을 확인했고, 이전 수업시간에 나왔던 중복되는 표현은 함께 확인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5월부터는 한한/영영 요약을 추가했고, 8월부터는 실전연습을 추가했습니다. 일요일에 스터디를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저와 제 스파는 3월부터 11월까지 딱 2번 빠지고 할 정도로 성실하게 했습니다. 3월에 시작해서 6월까지는 공부 외 잡담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집중해서 공부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7-8월쯤에는 둘 다 실력이 향상된 것을 느꼈습니다.
6) 체력관리: 체력관리는 정말 중요합니다. 운동을 하면 지칠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운동을 해야 더 에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저는 따로 운동할 시간이 없어서, 틈나는 대로 걸어 다녔습니다. 주로 퇴근할 때나 학원 끝나고 집에 올 때, 20-30분이라도 걸으려고 애썼습니다. 조금씩이라도 운동하는 것이 후반부로 갈수록 큰 힘이 됩니다.
3. 서울외대 시험
서울외대 특징: 시험을 보면서 학교가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은천성 선생님이 수업 자료를 골라오시는 취향(?)과 학교 성향이 상당히 비슷합니다. 서울외대 시험을 치르신다면, 시험장에 가시기 전까지 수업 자료들을 (특히 최근 자료) 열심히 복습하고 가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시험유형별 정리]
- 1차 시험-
한국어 듣기는 3문제 출제되고 한 문제 당 10분씩입니다. 3-4분이 되는 지문을 읽어주고, 나머지 시간 동안 요약하면 됩니다. 답안은 300자 이내로 원고지에 작성합니다. 영한은 듣기와 리딩 두 가지로 봅니다. 답은 주로 단답형이고, 문장으로 쓰는 문제도 있습니다. 문제는 꼬여있거나 어렵지 않습니다.
- 2차 시험-
1) 번역- 오전에 한영/영한 각각 2개 지문씩 번역하고, 시간이 꽤 촉박합니다. (볼펜, 연필, 수정 펜 사용 가능)
2) ICE-BREAKING
유형- 자기 소개를 하라고 하신 후, 수험생의 답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몇 가지 추가질문 하십니다.
실전- '자기 소개'는 예상하지 않아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가급적 빨리 말을 꺼내야 한다는 생각에 '요즘엔 시험만을 생각해서, 나를 소개하기가 어렵다'라고 물꼬를 텄습니다. 그러자 한 교수님이 일한 경력이 있는데, 어떤 일을 했는지, 왜 이 공부를 하려고 하는지 편하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설명 중에 ‘일하면서, 이 분야에 내가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공부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는데, 이 부분에서 교수님들이 고개를 깊게 끄덕이셨습니다. 통역을 공부하게 된 계기를 미리 준비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제 경우 건설회사를 다니다가 통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설명했는데 모두 흥미롭게 들으셨습니다.
준비- Ice-breaking 하면서 시험 전반의 흐름 및 분위기가 형성되기 때문에, 반드시 준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출한 응시원서 내용을 근거로 몇 가지 예상 질문을 뽑아서 준비하면 충분할 겁니다.
3) 시사상식
유형- 총 다섯 문제가 나왔고, 약자와 용어 두 가지 유형입니다.
실전- 시작하기 전에 몰라도 괜찮으니,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다행히 모두 맞췄습니다. 정답도 중요하지만, 망설임 없이 시작하고 빠르고 정확하게 대답하는 것이 관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뽑은 예상문제 내에서 다 출제됐기 때문에, 끝나기가 무섭게 대답했고, 한국어로 먼저 말하고 풀어서 말했습니다. 문제: WMD, BIS, Tea Party movement, Smart grid, Cap and trade
준비- 평상시에 약자가 나올 때마다, 쉬운 것도 풀어서 연습했습니다. 방식은 수업시간에 배운 그대로 했습니다. (WHO-->World Health Organization-->세계 보건기구) 지문에 나올 때마다 또 신문에 새로운 국제적인 사건이 터질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약자들을 유의해서 보고 외웠습니다. 11월에는 합격수기에 나왔던 용어들과, 최근 시사 용어를 정리했는데(A4 두 장), 이 범위에서 다 출제됐습니다.
4) 한영
유형- 한국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국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공여국으로 탈바꿈했다. 이때 배운 교훈을 다른 나라에 전파하고 있고, 다양하게 봉사활동도 열심히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실전- 운 좋게도 연습했었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편하게 시험 볼 수 있었습니다. 첫 문장은 외웠던 것을 그대로 뱉었습니다. 끝으로 가면서 욕심내지 않고, 본문을 떠올리며 했습니다. 번복하거나 버벅거리지 않도록 적당한 속도를 유지했습니다. 다른 학교 시험 볼 때는, 집중력이 떨어질까 우려돼서 아이컨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시험은 제가 조금 편하게 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아이컨택이라기 보다는 감독관님들 표정을 한번 쫙 스캔한 셈입니다.
준비- 다른 어떤 학교보다 서울외대 시험은 은 선생님 스타일입니다. 많은 자료를 소화하려고 욕심내기보다는, 수업시간에 했던 한영 자료들을 차분하게 반복 복습한 것이 유효할 듯 합니다.
5) 영한
유형- 아일랜드 구제 금융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실전-내용자체는 어렵지 않았는데, 예상하지 않았던 주제가 나왔다는 생각에 조금 당황해서 만족스럽게 하진 못했습니다. 아쉬웠던 부분은 EU finance ministers가 여러 번 나왔는데 갑자기 한국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걸 생각하느라 1-2문장을 놓친 데다가, 결국 재무장관이란 말을 뱉지 못했습니다. 또 EU, IMF 가 나왔는데, 수업시간에 한대로 풀어주지 못했다는 점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준비-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서울외대 준비하실 때는 시험 2-3주 전 국제 시사 내용을 열심히 알아두시라는 점입니다. 주로 그 때 있었던 주요 이슈를 문제로 출제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절대로 시험 문제를 예상하지 말자 는 겁니다. ① 만약 예상한 문제가 나온다 하더라고 내용이 완전히 똑같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저거 내가 했던 건데!'하는 생각을 하다가 오히려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내용을 왜곡할 수도 있습니다. ② 예상치 못한 내용이 나왔을 경우 당황하면 잘 처리하던 내용들까지 놓칠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갖고 몰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시험 보면서 새삼 깨달았습니다.
6) 시험을 마치고
저는 작년에 서울외대 시험을 보면서 너무나 창피해서 그냥 뛰쳐나오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그래도 영어 잘한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1년을 공부했는데 '이게 정말 나니?' 라는 자괴감에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올해 시험을 치르고서는, '1년 동안 인간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만족했습니다.
4. 마무리
제 올해 목표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재미있게 마지막 시험이 끝날 때까지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지칠 때도 많았지만, 재미를 느끼며 공부한 한 해였습니다. 공부의 재미는 다른 게 아니었습니다. 어느 순간 조금 나아진 내 모습을 느낄 때의 그 놀라움이 계속 열심히 공부할 수 있게끔 했습니다. 이대나 한국 외대 시험이 끝나고 나면 긴장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시험에서 못했던 부분이 계속 떠올라 공부에 집중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처음에 세운 목표를 생각하며 '지금까지 달렸는데 마지막 3주 내가 못 참을 소냐'하며 억지로 공부(공부라기보다 앉아 있었는데)했는데, 그게 그나마 좋은 결과를 이끌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험을 준비하시는 모든 분들! 건강하게 재미있게 열심히 공부하셔서 모두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시기 바랍니다!
[서울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통역번역학과]
<이유진>
[1차 시험]
1차 시험에서 한국어는 연설문 종류의 글을 듣고 원고지 모양의 시험지에 요약해서 적는 방식이었습니다. 요약이 정해진 분량을 넘어가면 감점요인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3개인가? 그런 식으로 한 지문씩 듣고 정해진 시간 안에 요약해서 적었습니다. 총 50분이 주어졌습니다. 중요한 내용을 파악해서 바로 적어 내려가야 시간 안에 다 적을 수 있었습니다. 들으면서 노트 테이킹 할 수 있는 종이를 받았고, 지금은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요점이 정확했고, 난해하지 않았습니다.
영어 시험은 듣기, 읽기 모두 문장으로 적는 주관식이었습니다. 후기에서 디테일을 많이 물어 본다는 이야기를 읽었지만 정말 그렇게 디테일 한 사항들을 물어 볼 줄 몰라서 많이 당황했습니다. 리스닝 시험에서 종이에 필기 할 수 있어서 저는 웬만한 내용은 다 받아 적었습니다. 문제가 끝나면 필기를 보고 재빨리 문장으로 완성해야 할 만큼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문법이 맞는지 생각 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평소에 쓰는 습관이 그대로 나왔을 거라 짐작됩니다. 그 때문에 시험이 다 끝났을 때는 제 영어 실력이 벌거벗겨진 느낌이라 부끄러웠습니다. 문제는 지문 하나를 듣고 문제 2-3개에 답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가난한 국가에서 몇 명의 아이들이 왜 사망하는지, 지문에서 나온 사물의 정확한 이름을 묻는 것과 같이 제가 대충 그 사물만 적어놓고, 아이들이 많이 사망한다는 정도만 적어놨다가 낭패감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많은 아이들 (a number of kids)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한다는 식으로 꼭 빈칸 없이 완전한 문장으로 다 채워 썼습니다.
리딩은 지문을 읽고 유추해서 적거나 답을 찾아서 지문을 그대로 적는 식이었습니다. 2년 전에는 패러프레이징 하라는 이야기도 있었다는데 제가 칠 때는 그런 요구사항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해서 가능하면 조금씩 바꿔서 제 식으로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나중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똑같이 적었습니다. 리스닝에서 많이 당황해서 그런지 리딩 문제 풀 때는 지문이 눈에 안 들어와서 손가락 깨물면서 초조한 마음에 반복해서 읽고 또 읽고 하느라 너무 정신이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아 망했다' '아 망했다' 이런 생각만 들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보낸 시간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도 절대 빈칸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답을 다 찾아 적고 나니 마지막 문제 답 쓰고 마침표 찍자마자 종이 쳤습니다.
[2차 시험]
(번역)
번역 시험은 영한 2개, 한영 2개였고, 50분간 시험 쳤습니다. A4용지 3분의 1보다 긴 정도였습니다. 후기에 읽어보니까 지문마다 시간을 분배하고 치셨다길래 저도 한 지문 당 10분씩 정해 놓고 시간이 되면 다 못해도 넘어갔습니다. 나머지 10분 동안 다 못한 부분들을 번역하고 표현들 다듬고 문법도 다시 보니까 넉넉하게 다 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 치기 전에 지문 하나를 다 비워놓으면 감점이 크다고 하시면서 한 두 문장이라도 적어달라고 교수님들께서 부탁하셨습니다. 내용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크게 실수하지 않는 한 번역에서는 변별력이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통역 )
1차 시험 발표 나고 2차 시험 칠 때까지 너무 긴장돼서 잠도 못자고 시험 당일에 배탈이 나서 너무 지친 탓에 시험 전날 밤까지만 해도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리더니 교수님들을 만나러 들어갈 때는 떨 힘이 없었습니다. 오후로 시험 시간이 배정돼서 번역 시험 후 점심시간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기실로 들어갔습니다.
교수님들은 한국인 3분 원어민 1분이 계셨습니다. 처음에 ice-breaking도 하고 fluency 체크도 할 겸 원어민 교수님이 먼저 대화를 나누겠다 하셨습니다. 외국에서 공부 한 적이 있느냐, 있으면 그 경험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하셨고, 두 번째 질문에서는 스스로가 생각 할 때 자기가 통번역사가 되려면 얼마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겠느냐고 물으셔서 좋은 통번역사가 되려면 평생을 걸릴 것 같고, 평생을 계속 노력해야 할 거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교수님들이 웃으셨습니다. 다음은 한국인 교수님 한 분이 영어 약자를 물어 보셨습니다. NLL과 WIPO를 물어보셨고 대답했습니다. 다음은 다른 분께서 지식을 물어보신다고 어떤 것에 대한 설명을 읽어 주시고 그게 무엇에 대한 설명인지 물어보셨습니다. cap and trade 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교수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셨고, 다음은 영영을 했습니다. 원어민 교수님께서 지문을 읽어 주셨고, 내용이 모토로라가 한국 스마트 폰 시장에서 경쟁을 시작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났지만 요약해서 생각나는 내용만 전달했습니다. 한영은 우리나라가 경제 위기에서 어떤 OECD 국가들보다도 가장 먼저 벗어났지만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그 노력에 관한 세부 사항들이 있었는데, 세부 사항들은 기억이 안 났습니다. 앞 부분은 이야기했고, 디테일은 1개 정도만 비슷하게 대답하고는 기억을 더듬다가 죄송하지만 기억이 안 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끝났으니까 나가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하철로 가는 길에 제가 했던 어처구니없는 실수들이 떠올라서 스스로가 작아지다 못해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못 먹고 있다가 집에 가는 길에 밥 사먹고 집에 들어가서 실수들 생각 안 하려고 이불 뒤집어쓰고 잤습니다.
[공부 방법]
2007년에 시험 준비 한 적이 있었고, 한 동안 공부를 못하다가 올해 10월부터 은천성 선생님 강의를 다시 들었습니다. 예전에 공부 할 때에 비해서 영어실력 자체는 늘었지만 정치, 경제, 국제 관계에 대한 용어를 몰라서 힘들었습니다. 특히 경제 관련 용어나 배경 지식이 없으니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한국어도 이해하면 쉬운 영어로라도 바꿔 보겠는데 이해를 못해서 영어로 못 옮겨 난감했습니다. 그래도 욕심만 내거나 좌절하면 없는 시간을 더 허비할 것 같아서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철저히 복습하고, 숙제도 다 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2007년에 시험 치고 나서 그 해 배운 내용을 뉴스위크처럼 분야별로 다 정리를 했었는데, 2차반 수업들을 때는 그 때 정리했던 내용들이 조금 기억나는 부분도 있어서 처음보다는 수업 듣기가 편해졌습니다.
1차 시험이 끝나고 월요일부터 바로 2차 준비를 했습니다. 스터디 파트너와 수업 시간에 했던 내용을 가지고 한영 영한을 하고 스터디 한 내용은 그 자리에서 암기하고 암기한 내용을 확인하고 집에 갔습니다. 평소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들을 그날그날 복습할 때 단어장 같이 문장이나, 구문들을 정리해 놨었는데, 지하철을 탈 때나 버스를 기다리거나 할 때 항상 들고 다니면서 외웠습니다. 또 매일 한국어, 영자 신문을 다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기사는 신문에서 읽은 표현들을 정리했습니다. 영어는 시사적인 용어가 많이 부족했고, 한국어는 해외파도 아닌데 모든 면에서 전달력이나 단어 선택이 너무 부족해서 스터디 후 집에 가서는 씻기 전에 큰소리로 신문을 또박또박 읽었습니다. 시험 준비하는 동안 영어로 이야기 할 기회가 잘 없어서 주말에 공부하기 싫을 때는 보이스 채팅으로 영어로 수다 떨었고, 미드를 보면서 자막과 실제 배우의 말을 비교하거나 배우가 말하기 전에 어떤 표현을 쓸 거라는 예측을 먼저하고 듣기도 했고, 좋은 표현이 나오면 따라서 중얼거렸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은 온라인으로 30분씩 원어민 회화 수업을 들었습니다.
요약하자면, 공부 할 때는 너무 많은 내용을 공부하려고 하거나 이 방법 저 방법으로 바꾸는 것보다는 항상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수업에 충실하고 공부하는 내용을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주는 암기나, 리스닝 등을 조금씩 꾸준히 해 주는 것이 가장 어렵지만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공부 할 생각입니다.
[중앙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생 수기 - 한영과]
<최진우>
안녕하세요. 이번에 중앙대학교를 합격한 최진우라고 합니다. 우선 간략히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경찰행정학과 출신으로 대학교 교육까지 영어적 환경에 많이 노출되지 않은 순수한 국내파였습니다. 2년여의 카츄샤로 근무하는 기간 동안 영어를 배웠고 배운 영어를 놓치고 싶지 않아 그 후 조금씩 영어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막연한 기대감과 부푼 꿈을 안고 외국인들과 같이 영어로 대화하며 영어를 계속 사용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다 군대에 있을 때 자주 가본 미국대사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미국대사관에 근무하기 위해는 상당한 수준의 영어를 구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런 저런 준비를 하면서 이창용 선생님을 3년 전 종로 입문반에서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그리고 해외 체류 경험은 3주 미국여행 해본게 전부입니다.
저는 입문반에서부터 실력을 조금씩 쌓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입문반을 들어갔을 때 그 놀라움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주변에서 영어를 잘한다는 말을 듣고 저는 정말 제가 영어를 잘한다는 착각 속에 살다가 입문반에서부터 내가 우물안 개구리 였구나라는 인상을 받게됐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공부를 하고 그 해 8월 부터는 강남 실전반 수업을 듣게 됐습니다. 그냥 막연히 듣고 공부도 막연히 했습니다. 왜냐하면 졸업학년이 아니라 시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다음 해(2009)부터 본격적인 입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1년의 경험이 있던지라 제가 학원에서 제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여전히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도 욕심이 계속 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스트레스만 많이 받고 실력은 이창용 선생님의 말대로 달팽이 걷는 속도처럼 쌓이게 되더군요. 사실대로 말하면 2009년 실전반을 들으면서 뉴스는 제대로 들을 수 있었지만 실전듣기와 뉴욕타임즈는 거의 1년 내내 제대로 잡은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통역시간 역시 많이 떨리기도 하고 실제로 해본 적이 없어서 얼버무리다 끝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외대 서울외대 중앙대 모두 1차에서 낙방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얻을 수 있던 점은 떨어지고 나니 제 실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마음이 후련하고 다시 한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 공부를 하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도 하지 말고 실력을 파악해서 문제점을 찾고 공부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2010년 어떤 식으로 공부했는지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듣기는 뉴스, 실전&뉴욕타임스 그리고 연초까지 했던 테드를 위주로 꼼꼼하게 살펴봤습니다. 뉴스를 들을 때 속도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상태여서 그리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안들리는 단어라던가 익숙하지 않은 발음과 액센트를 접했을 때는 20~30번 계속해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뉴스는 듣기 용만이 아니라 말하기 용으로도 사용하라는 것을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한 챕터 듣기를 끝내고 혼자서 중얼거리며 어떤 내용이었는지 한국어로 내뱉고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 뉴스에 나온 표현 혹은 자기만의 표현으로 영어로 다시 요약하는 습관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보니 실전통역 시간에 나도 모르게 뉴스를 통해 배운 표현들도 나오고 상당히 자연스럽게 영어적 표현을 쓰게 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실전듣기는 내용이 문어체에 가깝고 구어체가 아닌 하나의 글을 듣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공부해야할 지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 고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기초가 너무 부족한 걸 알았기 때문에 주어와 동사를 찾는데 주력했습니다. 수업시간에 꼼꼼히 듣고 혼자서도 주어, 동사를 찾는 연습을 초반에 주력해서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귀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내용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논리를 찾아내는 듣기를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점이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는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글을 읽고 그로부터 이해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많은 주제의 기사에 노출이 되면 익숙한 내용이 나왔을 때는 훨씬 잘 들리고 귀에 팍팍 꽂히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해력이 조금씩 늘어가는데 빠른 속도는 아니고 천천히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실전 듣기는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의 이해력을 키우는데 상당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짧게 잡다가 점점 길이를 늘려서 1분 혹은 1분 이상씩 잡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들은 내용을 다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한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는 연습도 꼭 병행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마다 많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주로 단어 공부와 속도잡는 연습을 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실전듣기에 대한 이해력이 증진되면서 뉴욕타임스 성우의 목소리도 서서히 잡히게 됐습니다. 뉴욕타임스 역시 처음에는 한 단락씩 잡아가다가 두 단락, 세 단락 이렇게 늘려가면서 메모리 스팬을 기르는 연습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내심을 가지고 들릴 때까지 이해될 때까지 듣는 연습입니다.
테드는 듣는 연습뿐만 아니라 영어권 국가의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말을 하는지 어떤 구어체 표현을 쓰는지에 주력을 맞춰서 공부를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국내파 학생들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가 바로 통역을 할 때 문어체 표현들이 불쑥 튀어나오고 우리는 그게 잘못됐다는 것을 모른다는 겁니다. 테드를 공부하면서 저는 통역시간에 연사들이라면 어떻게 말을 할까 생각을 하면서 통역을 했습니다. 듣기와 논리력을 키움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하지만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하시는 분들에게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리딩 관련 공부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올 해는 리딩 공부를 하는 게 정말 즐거웠습니다. 예전에는 단어, 숙어 의미 하나하나 찾는데 주력하느라 정작 어떤 이야기에 관한 글인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게 부지기수였는데 올해는 단어 숙어 보다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 더 주력했습니다. 우선, 처음에는 힘들지만 처음 글을 읽을 때 사전을 찾지 않고 그냥 쭉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와 표현을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내용이었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두 번째 읽을 때는 사전을 찾아가면서 모르는 단어와 표현을 찾고 내용파악에 주력했습니다. 물론 단어와 숙어가 중요하긴 하지만 굳이 다 외우려고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고 글을 이해하고 작가의 논점이 무엇인지 어떤 말을 전달하고자 하는지를 파악하려고 했습니다. 자료는 주로 이창용 선생님이 주시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완전히 숙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느 정도의 이해력이 생기면서 8월부터는 스터디 준비를 위해 이리저리 다니면서 글을 읽었습니다. 스터디를 위한 글 한 개를 찾기 위해 보통 10개 정도의 글을 읽으니 이것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글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 사전의 도움 없이 글을 읽는 모습을 보고 한편으로는 많이 뿌듯했습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주제의 글을 읽고 다양한 주제에 최대한 노출을 시켜야 한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통역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른 시간들 보다도 저는 통역시간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표현 하나 하나 배워가는 과정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일부러 맨 앞자리에 앉아서 선생님과 브레인 스토밍을 할 때 발표를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내가 알고 있는 표현이 이 상황에서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는 지 알아보려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다른 시간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보면 얻게 되는 것도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오면 내용을 다 숙지 못했더라도 어떻게 해서라도 끝맺음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아무리 서론 본론을 잘 말해도 끝맺음이 없으면 맥 빠진 통역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우선, 수업시간에 한 통역을 혼자 공부하면서 여러 번 내뱉어 봤습니다. 알고 있는 표현 다른 표현까지 써가면서 다양하게 말하는 연습을 하고 큰 목소리로 말하는 연습도 하고 심지어는 녹음까지 하면서 손발 오그라들게 하는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연습을 했습니다. 국내파의 가장 큰 약점인 영어를 영어답게 말하기 위해서는 항상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만의 표현들을 언제라도 쓸 수 있도록 습관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너무 뜬 구름 잡는 얘기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모르면 선생님이 알려주신 표현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끊임없이 말하는 연습을 병행해야 합니다. 듣기 공부를 하건 읽기를 하건 쓰기를 하건 간에 통역연습은 병행해서 같이 해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잘 안 되는게 통역입니다. 그렇다고 기죽지 말고 기회가 오면 피하지 말고 발표를 하면서 순발력도 기르고 좀 더 많은 환경에 노출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미국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제가 평소에 고민하던 것들 예를 들면 이런 표현을 어떻게 영어로 말하지 하는 것들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간단하게 표현되는 것들이 너무 많더군요. 그리고 그것들을 알게 됨으로써 얻는 희열감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드네요. 특히, 통역을 할 때 전치사에 주의를 하고 이 주어와 이 동사가 어울리는지 이 동사와 이 목적어가 함께 쓸 수 있는지 이 상황에서 이 동사를 쓸 수 있는 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했습니다. 이와 같은 고민은 나중에 전문 통역가가 되더라도 해야 하는 고민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습관을 들여놔야 합니다.
참고로, 저는 8월까지 혼자 공부를 하다가 선생님이 만들어 주신 스터디 파트너들과 일주일에 한번씩 스터디를 했습니다. 스터디가 상당한 도움이 되더군요. 자료를 찾으면서 읽었던 글들의 수도 엄청 많고 통역자료 준비를 하면서 다시 보고 배우게 되는 표현들이 많아서 저에게는 매우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중앙대학교 1차와 2차 시험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중앙대학교 1차 시험이 상당히 난이도가 높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시험입니다. 시험은 거의 3시간에 걸쳐서 한번의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진행됩니다.
우선, 1교시에는 듣기 시험을 치릅니다. 영어와 한국어 두 개를 보는데 영어는 들으면서 필기를 하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한국어로 쓰고 한국어는 들으면서 마찬가지로 필기를 하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영어로 요약하는 형식입니다.
영어질문의 첫 번째는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킹 사이트를 통해 사람들이 이전보다 훨씬 많은 대화와 의사소통을 하지만 그로 인해 사생활이 침해된다는 내용이 나왔고 다소 문안한 내용이었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얘기를 하면서 미얀마 경제발전 방향과 그에 대한 모범사례를 중국에서 찾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미국관련 내용인데 두 번째 질문과 마찬가지로 다소 시사적인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각 문제당 두 개의 질문이 출제 됩니다. 들으면서 써야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집중력이 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익숙치가 않기 때문에 중간 중간에 놓치는 내용도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텍스트나 질문 그리고 시험의 형태를 보면 통역사로서의 자질을 정확하게 파악 할 수 있는 시험이라 개인적으로 많은 믿음이 다른 대학원 보다 많은 믿음이 갔습니다.
한국어 텍스트의 내용은 청목회와 관련해 로비활동을 합법화 하자 아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다르기 때문에 합법화를 하게 될 경우 여전히 약자들만 더 많은 피해를 보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어를 듣고 영어로 요약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질문 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줬습니다. 한국어로 듣고 영어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평소에 쓰기나 통역 연습이 밑바탕이 되지 않았더라면 상당히 난감해질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창용 선생님 통역시간에 로비관련 글을 통역하고 연습을 충분히 해봤기 때문에 문안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듣기 시험이 끝난 후 15분의 휴식을 가지고 영한 2개 한영 2개의 번역과 에세이를 쓰게 됩니다. 영한 번역은 정확히 기억이 잘 안 납니다. 한영 번역은 첫 번째가 실업과 경제관련 기사였고 대체로 문안하게 쓸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글이 다소 까다로웠는데 카메라 렌즈와 우리 눈의 각막을 비교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 이런 글이었습니다. 내용이 까다롭고 생소해서 어려울 수 도 있었지만 저는 이런 글 일수록 더욱 평이하게 써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쉬운단어와 표현을 써가면 글이 지루하지 않게 3형식으로 마무리 해가며 글을 썼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의 방향이라는 에세이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운이 좋게 양시래 선생님의 번역 수업을 들으면서 받은 자료들을 꼼꼼히 분석했고 그 자료들 중에 대북관련 글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에세이를 쓰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2차 시험입니다.
중앙대학교 2차 역시 상당히 난이도가 있는 질문들이었고 시험도 다른 곳과는 달랐습니다.
우선, 1차에서 사람을 적게 뽑기 때문에 많은 경쟁자들이 없었습니다. 시험의 형식은 면접관(한국교수2명 외국교수1명)이 앉아있고 바로 진행됩니다. 외국교수가 영어 텍스트를 두 번에 걸쳐서 읽어줍니다. 한번은 짧게 읽어주는데 이걸 또 받아써서 한국어로 세 문장으로 요약을 해서 발표를 합니다. 두 번째 역시 이어서 글을 읽어주는 데 처음보다는 길게 읽어 줍니다. 잘은 기억은 안 나지만 이번에도 요약을 해서 세 문장으로 영어로 발표하는 것이었던 거 같습니다. 참고로 저는 한 5문장 정도 말한 거 같습니다.
두 번째로 한국인 교수님이 긴 한국어 텍스트를 읽어줍니다 이것 역시 짧게 요약해서 3문장 ~4문장 한국어로 발표를 합니다. 대체로 한국어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한영 통역 시험에서는 한국어를 짧게 읽어주면 영어로 발표하고 이어서 끝까지 읽어주면 다시 영어로 발표하는 형식이었습니다. 관련 글은 현재 한국정부가 아시아의 중앙 도시를 건립할 계획이며 이는 아시아 인들 사이에서 문화적 교류와 의사소통을 증진시킴으로써 좀 더 개선되고 나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시사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에 들으면서 처음 접하는 내용이라 많이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영어를 배제하고 한국어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많은 문장을 들었지만 제가 발표한 영어는 4~5문장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어를 말하면서 문법이 깨지지 않았고 지루하게 길게 말을 하지 않아서 교수님들이 만족스러워하시는 표정을 보여줬습니다. 경험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막상 한영발표를 하게되면 자기가 들은 내용에 비해 상당히 적은 양의 영어를 말하고 나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어답게 말했는지 말한 것 중에 비문은 없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사소한 문법적 실수도 그냥 넘어가지 말고 고치려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