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심판
이제는 네게 끝이 이르렀나니
내가 내 진노를 네게 발하여
네 행위를 국문하고
너의 모든 가증한 일을 보응하리라
내가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겔7:3,4)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안에 살았어도
더 참아 보지 못하시는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 흠이 없었던 욥이
고난을 당하고
회개해야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며
죄 없이 행한다고 해서
바른 믿음의 사람인줄 안다면
후에 큰 두려운 날이 이를 것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죄입니다.
이기와 탐욕, 정욕과 교만이 있습니다.
그에게서 난 행위는
모두 그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의 예배, 기도, 봉사, 헌신 등은
죄의 바탕 위에서 행해지므로
겉으로는 옳아 보이나
그 실재는 가증함과 교만이 있습니다.
가증함이란
그의 속마음과 행위가 다르기 때문이며
탐욕과 교만으로 행하면서
그 행위를 옳게 보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같은 가증함을
인정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행위는
적어도 진실에 바탕을 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함이 없이
참 마음으로 예배하는 자가
어찌 없겠으며
그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바라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자기 내면의 진면목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경들은 자기 행위를 옳게 하면
그것을 그대로 의로운 것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지은 죄가 없으면
욥이 그랬던 것처럼
아무런 죄가 없다고 인정하며
거룩해 보이면
거룩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모든 행위는
죄의 본질을 가진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자들은
여전히 거룩함을 힘쓰고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충성하기 마련입니다.
모든 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행위로써 선을 추구하고
의로운 삶을 살려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바탕은
하나님을 떠난 죄의 본질 위에서
선과 의를 추구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증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섬기는
그리스도인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죄 용서받고 의인으로
인정받는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문자적인 믿음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를 섬기며 그의 뜻대로 살려하지만
그들의 실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다가
멸망을 맞게 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왜 그러는 것일까요?
성경에 기록된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자신에 대한 죽음을 거쳐
믿음에 이른 자들이지만,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에 대한 죽음과 부활에
이른 적도 없이
그들이 가진 믿음의 열매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오류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인
자기 목숨을 잃거나
자기를 미워하거나,
자기를 부인하거나,
자기에 대한 죽음인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만을 따르는 과정이 없이
단지 예수 믿겠다는 고백만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에 대한 죽음인
십자가를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죄의 본성이 처리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죄의 생명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안에 살기 때문에
가증함이라는 삶의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곧 내면의 죄의 생명이 처리됨이 없이
그리스도를 믿고 행하기 때문에
실제 내면의 욕구과
겉의 행위가 달라서 가증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의 생명을 가지고서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클수록,
말씀에 대한 헌신이 깊을수록,
믿음과 그 삶에 대한 충성됨이
강할 수록
가증한 일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이 그들을 아껴보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않고
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래 그리스도인이란
그 사실을 깨닫고
자기 생명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자신에 대한 십자가 죽음을 선포하고
오직 그리스도로 살기 위해
그를 따르는 자를 일컫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의미 속에는
자기 생명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무슨 일을 만나도
그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죄인인 자기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한다는 의지가 포함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그와 다릅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에서
가증한 모습을 보는 것은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만
자기 열심과 의지로 믿기 때문에
죄의 생명에서 난
탐욕과 교만이 그대로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여전히 자기 중심적이서 이기적이며 어려움이나 손해를 싫어하며,
비신자들과 다름없이 불의하며,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아니하고
비양심적이며
자기 유익을 위해 투쟁하듯 하며,
작은 선에도 생색을 내고
실적과 성과를 통해 자기 영광을 구하며
그것으로 기뻐하고 즐거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표지는
단지 일요일이나 그들이 정한 날과
시간에 예배하며 기도하고
원하는 때에 성경을 보거나
연구하는 일일 뿐입니다.
그러나 비신자들을 대하는
그들의 인격은 형편없습니다.
물론 그들끼리 싸우는 일은
비일비재한 일입니다.
오늘날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했던 것과 같은
저주와 멸망은 없습니다.
있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심판을
자기 것으로 받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씀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그것으로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도
알거나 깨닫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지 않으면
그들은 심판받은 자입니다.
오직 영원한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자칭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다 해도 말입니다.
믿을 수 있는 자는
복음을 들었을 때
자기 생명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그리스도로 살기 위해
곧 응하는 자입니다.
들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임을
직감하며
자기 사랑을 멈추고
자기 죽음의 십자가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물론, 복음의 상이성 때문에
받아들이기에 시간을 요하는
부분은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곧 자신에 대해 죽는 편을 택하고
그리스도로 사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종교적 행위를 그치고
그리스도만을 따르는 삶으로
전환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기 생명에 바탕을 둔
믿음 생활에 대한 오랜 회의를
품어 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렇게 믿는 것이
맞는 것인가?하는
의심의 상황들이 있었을 것이며
그것으로 마음이 편치 않는
순간들을 경험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참된 믿음을
마음으로부터 원할 때에
복음을 듣게 되면
곧 붙잡게 되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는 소유를 다 잃고
사랑하는 자들을 버리고,
자기 목숨마저 미워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곧 믿을 자들은 그 말씀을 옳게
여기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의 말씀에 응한 자들은
하나같이 마음이
가난하게 된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적인 신앙에
마음이 상해 왔고
참된 믿음을 마음으로부터
원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에
곧 응하여 믿는 자들은
후에 그 믿음에 근거하여
자기를 잃고 구원에 이를 것이고
믿지 않는 자들은
이미 그것으로 심판을 받은 것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 복음을 듣게 되는 시기는
하나님이 결정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아직 듣지 않은 자가 아니라,
듣고도 응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9)
듣고 참 믿음에 거하십시오.
듣는 자는 살아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