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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작성자인조에|작성시간16.09.29|조회수112 목록 댓글 0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23:26)


평생을 하나님과 벗하며

말씀에 관한 높은 지식을 쌓고

거기서 비롯된 경건과 정결한 삶의

모든 노력과 열심을 기울였던

바리새인들에게 소경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지나친 표현인 것처럼 보인다.


바리새인은 당대에서 가장 존경받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신앙인으로서

흠을 찾아내기 어려운 자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소경이라는 표현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가 비난받을만한

언사일 수 있다.


존경받은 신앙인이 소경이라는

그리스도의 뭇매를 맞게 된 것은

겉만 깨끗하게 하고

자기 안의 더러움을 보지 못할 뿐아니라

그것을 깨끗하게 할 시도도

행할 수 없었던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너희의 의가 바리새인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을 볼 수 없다(마5:20)고 말씀했다.

이는 천국이 바리새인의 경건과 열심

너머에 있다는 의미로서

사람이 행할 수 있는 신앙인의 최고 경지에 이른 사람을 바리새인으로

꼽았다는 의미이다.

만일 그들보다 더 옳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국에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모든 사람은 바르게 살려는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기 안에서 바르지 못한 면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최고의 선과 진정한 의를

발휘하며 살기 위해 배우기를 원하고

보다 낫고 깨끗하며 죄없이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단지 현실의 뒷바침과 개인의 역량이

따르지 않아 각기 다르거나 원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역량도 삶의 배경도

순조로와서 하나님을 향한 삶에

정진하여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바리새인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들을 소경이라 말하고

겉만 깨끗이 하고 안의 어떠함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 지적했다.


소경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인가 하는

물음을 가지고 그에 따라

자신을 단장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만 고민하고

자신들의 내면을 보지 못한 것이다.

사람의 진정한 삶의 문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의 물음보다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의 문제점을 보고

그것을 먼저 해결하는 데에 있다.


바리새인은 가장 의로운 삶을 정진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위해

기도와 정결한 삶에 힘썼다.

잠시만 방심하면 죄의 행위와 마음 속

정욕이 회오리 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자신들의 죽고 사는 문제였다.

말씀 안에 살면 흥하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와 멸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라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삶의 자세에 따라

흥망성쇠가 거듭된 교훈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바리새인의 하나님 신앙은

매우 정교하면서도 고차원적이며

말씀에 최우선을 두는 최선의 삶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눈에 그들은

소경이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내면의 상태가

어떠함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행하신 일에

감사하며 그를 위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이다.

그런 것이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불러 3년을 동행하며 천국 복음을

가르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의

의미를 너무 모른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그리스도의 지적처럼

자신들의 내면을 깨끗이 하는 일보다

바리새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외적 삶에 열심이다.

물론,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 받았으니

그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은 여전할 뿐 아니라,

바리새인들과 같은 소경 상태이다.


그래도 당시의 유대인들은

성경도 알고, 하나님 지식도 있었다.

그리고 영적 삶에 대한 전통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상황은

예수를 믿고 주로 영접하자마자

곧 그를 위해 사는 일에 열심을 낸다.


바리새인들과 같은 자들도 소경이었는데,

그들의 전통과 삶과 지식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하나 만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으면서

그들을 얕잡아 보면서 어리석게 여기며

그들보다 불의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는 얼마나 가볍고 무모한 삶인지 모른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의 삶의 방식을 따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심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의 교회들은

기도하는 삶 위주에서 제자훈련으로,

거기서 가정교회나 셀교회로,

그리고 예배와 찬양과 기도와 전도나

선교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두고

그에 매진하는 삶을 강조한다.

교회의 부흥이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세상의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정작 그리스도께서 지적하셨던

내면의 삶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하다.

겉만 깨끗하게 하는 삶에만

전념했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리스도는 먼저 안을 깨끗히 하지 않으면

그처럼 열심히 행하는 겉의 삶도

깨끗할 수 없다 하셨다.

이 말씀의 의미는 당신의 내면이 깨끗지 않다면 그리스도를 향한

외적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라.

외적 삶을 향한 당신의 눈을 돌려

내면을 향해야 한다.


당신의 믿음이 겉으로는 온전해 보이지만

사실 스스로도 바로 서지 못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무얼 바르게 행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당신의 내면의 상태의 문제이다.  


사람의 눈은 내면의 탐욕을 불러낸다.

입은 그것을 말하고 표현하며,

행위는 그 탐욕을 실행한다.

그것이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내면의

더러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지 못한다면

외적 거룩한 행위는 별 의미가 없음을 알라.

그것은 거룩해 보이나

내면이 깨끗한 상태가 아니라면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위해 이름만 같은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에 해당함을 알라.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라는 말을 보자.

말하면 기분 좋고, 사랑이 생겨나고,

좋은 관계가 형성되고,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부풀게 한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 물질과 사람에 대한

탐욕과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자기 좋을대로 살고자 하는

방탕이 존재한다면

그 말은 더러운 말에 해당한다.


세상과 자신에 대한 사랑이 정리되지

않은 가운데 '주님, 사랑합니다'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내면의 더러움을 궤뚫어 보시는

주님께서 그 말을 그대로 받으시겠는가?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는

그의 말씀을 들으라.


사람은 노력에 따라 겉은 깨끗이 할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은 볼 수도 없고

더군다나 깨끗이 할 수도 없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무엇인가?

우리의 눈을, 행위를 향한 관심에서 돌이켜

내면의 탐욕과 그릇된 삶의 동기를

보게 하여 그것을 버리고 포기케 한다.

그리고 자기 죽음이라는 십자가 앞에서

자기 목숨조차도 버리게 하신다.

그러므로써 하나님을 생명으로 받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같은

삶의 과정을 거쳐서 성령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그것도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3년의

기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를 영접하자 마자 구원에 이르니,

그의 내면이 깨끗해질 시간적 여유조차 없다.

그들에게 자신들의 내면을 깨끗이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다.


또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거나

자기 죽음의 십자가를 지는 과정도 없다.

그의 내면을 깨끗케 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은 적도 없다.


그러면서도 그런 과정을 거쳤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르게 된 구원에

관한 말씀만을 자기 것으로 삼고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을 하니,

답답하기 그지 없다.

그리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거짓 그리스도인으로 평생을 헌신하며

살아가니 딱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내면을 깨끗이 하려면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깨끗해진 내면을 소유한 자들의

지도를 받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다시 시작하라.

이제와서 멀다고 포기할 일이 아니다.

멀더라도 돌아가야 한다.

내면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보일 때 깨끗이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존재를 그리스도께 드리고

따라가야 한다.

그러면 그의 일하심을 경험할 것이다.


내면을 깨끗이 하는 일은

정결한 마음을 갖기를 힘쓰고

욕심을 버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행해 왔던 외적 삶이다.

내면을 깨끗케 하는 일은

당신이 생명에서 나는 것을 버려가는 일이며

그로 비롯되는 말과 행위가

나타나지 않는 일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도 어렵다.

그것을 경험한 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런 후에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되었을 때

그리스도의 긍휼을 구할 수 있으며

그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되다.

당신이 스스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지고

그리스도가 전부가 될 때

당신의 내면이 비로소 깨끗해질 것이며

외적 삶은 그 때부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은혜에서

비롯된 행함이며 곧 그의 행하심이다.


1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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