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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과 참된 믿음

작성자인조에|작성시간16.11.08|조회수75 목록 댓글 0

거짓과 참된 믿음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23:25)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아직도 많은 비밀과 속내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 정도 선에서 모든 것이 마무리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럼에도 한 시가 멀다 하고

새로이 들려오는 소식들에

일상이 붕괴되어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덮여져 있었던 일들이 한 순간에

걷혀지고 은밀한 것들이 드러나니

충격과 분노에 빠지게 된다.


사람은 두 얼굴로 살아간다.

본성적 삶과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한

가장된 삶이다.

그것은 자기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옳게 보이려는 삶이다.

많은 사람들의 실수는 가장된 삶을 보고

상대를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할 것 없이

그의 본성적 삶이 드러나면

이번 일처럼 충격과 분노에 빠질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주변의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의 본성적 내면의 삶을 보게 된다면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종교 지도자

바리새인들에게 겉은 깨끗해도

그 속은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다고

말씀하셨다.


특히 존경받고 높임받는 사람들에게서

그 속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면

우리는 아마 정신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당신이 존경하고 믿고 따르는

훌륭한 사람들 속에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을 높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람은 누구든 다르지 않다.

오히려 만인의 존경을 받는 사람일수록

그의 속내를 알게 되면

더욱 견딜 수 없는 실망감을

갖게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탐욕과 방탕을 가지고 살아간다.

단지 그것을 알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과

여전히 이중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규정하셨다.

만일 어느 누구를 존경하고 높인다면

사실상 죄인을 높이는 일이다.

그 사람만큼은 예외일 것이다라는

사람은 없다.

만일 그렇게 알고 있다면

당신은 스스로 속고 있든지

유린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훌륭한 목회자요

종교인을 높이고 자랑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람을 높이는 것은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며,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볼 수 없다.

물론 이는 노인이나 지도자를 공경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그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그 속에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다.

천사의 옷을 입은 사람도 그러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람도

그러하다.

따라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높일 수 없고,

혹 다른 사람의 높임을 받는다 해도

그것을 부담스러워 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다른 이름은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다.

만일 일부러 낮추는 것이라면

그는 자기를 가장하는 것으로서 교만이다.

따라서 교만은 자기를 가장하여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겸손은 자기를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개선시키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오직 그리스도를 구하는 자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을 남보다 낫거나 의롭다고 여긴다면

그는 무지하며 거짓된 믿음의 소유자다.

또한 자기 의지로써

스스로 낮추고 겸손하려는 것도

자기를 가장하는 거짓이다. 

두 경우 모두, 그들의 내면이 드러나면

모두가 놀라게 될 것이다. 


자기를 죄인으로 아는 자는

스스로 높이거나 낮추지 않는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그리스도를 믿고 주로 영접한 자는

죄인인 자신에 대해 관심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전부로 여기게 된다.

자기 안에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상적인 믿음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사람을 높이거나 멸시하게 된다.

또한 현재보다 나은 삶, 더 높은 삶을 목표로 삼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을 개선시키려 한다.

성경 공부나 기도 등 할 수 있는

최선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죄인은 개선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희망이란 없다.

언제든 겉과 속이 다른 죄인일 뿐이다.


절망적 죄인은 노력하지 않는다.

죄인은 자신을 개선시키려 하지 않는다.

오직 십자가 우편의 강도처럼

그리스도의 긍휼을 구할 뿐이다.

따라서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하는 자의

믿음은 사실상 거짓이다.

거짓된 믿음은 무성한 삶의 시도만

있을 뿐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저주 뿐이다.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소유한 자는

스스로 높아지려고도 하지 않고

겸손하려 하지도 않는다.

자신을 가장하지 않는다.

보는대로 듣는대로 반응할 뿐이다.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무엇으로든 자신을

가장하려 한다면 천국을 볼 수 없다.

거짓된 겸손과 경건을 가진 자는

누구든지 아직 믿는 자가 아니다.


참된 믿음을 원하는가?

거짓된 자신을 미워하고 버려라.

오직 그리스도의 긍휼을 구하고

그를 생명삼고 자신에게 집착하지 말라.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거짓된 사람들의 속셈이 드러나는

소식을 듣게 된다.

돈을 사랑하는 기업인들과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의 비리를 듣게 된다.

지금은 그 당사자가 아니어도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 해도

결국은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나는 아니다 할 사람이 있겠는가?

실제로 깨끗하고 정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그런 거짓된

타락한 아담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누구나 존경하는 사람에게서

그 위장막을 벗겨낸다면

사람들은 그의 안의 것들을 들여다 보고

실신하게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만큼 기대하고 따랐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서 선을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나는 불신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거짓된 본성을 고발하는 것이다.


사람에겐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그 거짓된 존재로부터 구원이 필요하다.

내면의 악을 감추고 겉으로 옳게 보이려는

거짓된 삶에서 해방되기 위해,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긍휼을 구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믿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거짓된 믿음의

소유자일 것이다.

그의 거짓은 반드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사람을 신뢰하고 기대한다면

자기 존재의 죽음인 십자가를 거치지 않은

거짓된 지도자들에게서

실망과 충격을 당하게 될 것이다.


당신에게 자기 존재의 죽음이라는

십자가가 없다면

당신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실망과 아픔을 주고 있거나,

주게 될 것이다.

만일 자기 관리가 능하여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해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거짓된 믿음을 버리기를 바란다.


사람의 거짓된 생명은 가식을 만들어 내고

그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불행과 아픔, 고통을 당한다.

비록 믿음을 가지고 신앙적 삶을 영위해도

자기 존재로부터의 해방을 받지 않았다면

자신의 실망스런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적어도 자신에 대해 정직하다면 말이다.


참 믿음은 자신을 개선하려 않는다.

죄인의 생명을 가진 자는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할 일은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로 살기를 구할 뿐이다.

그로 살기를 포기치 않는다면

그가 오셔서 땅에 속한 생명을

하늘에 속한 생명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다.

그 때, 믿음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16.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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