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깨닫는 것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사5:20)
원리, 즉 근본 이치를 터득하는
중요성은 말할 수 없이 중요합니다.
원리를 모르면
알아도 모르는 것과 같으며
그 삶은 껍데기나 부스러기 같을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복음의 이치를 깨닫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복음을 깨닫지 못한다면
예수를 믿어도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 속한 모든 원리는
개인의 열정과 관심으로 알아질 수 있지만
복음의 이치만큼은
결코 사람의 노력이나 애씀으로
깨달음에 이를 수 없습니다.
복음을 깨닫지 못하면
수고와 헌신과 열정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행하는 것을
믿음의 삶으로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을 모른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어쩌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복음을 깨닫는 것은
누구라도 꺼려하는
좁은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대부분은 헛된 믿음 가운데에
머물러 있음을 알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복음으로 행하게 되면
복음을 처음 접하거나 잘 모르는 사람도
그의 행위를 보고서
반론을 제기하는 일이 없이
옳다고 말할 것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겉만 보기 때문에
누군가 선하게 행하면 선한 자로 알고
의롭게 행하면 의로운 자로 알며,
하나님과 교회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면
그가 믿음 좋은 사람인 것으로 알고
칭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어렵고 곤경에 처한 자를 도우면
사랑을 행하는 것이라고 의심없이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다른 종교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정상적인 믿음으로 볼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것은
복음으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복음을 모르는 사람도
칭찬하고 인정해 준다면
그것은 복음의 삶이 아닌 까닭입니다.
복음을 깨닫지 못한다면
악을 선하다 말하며
선을 악하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악을 악하다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데에 동의했습니다.
그것은 로마 군병들마저도
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를 믿지 않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행하는 선은
모든 사람들이 옳다고 말할 것입니다.
타고난 모든 사람들은 겉만 보고
속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평생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았으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려 힘썼던
바리새인들을 향해
그리스도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고 따랐던
그들에게 먼저 안을 깨끗이 하지 않으면
겉도 깨끗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겉만 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선한 일에 대해서는
칭찬하며 존경하고 높이게 됩니다.
보이는 대로 판단합니다.
선해 보이면 선하다 말하고
악해 보이면 악하다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행하는 것을 악하게 보십니다.
죄인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자기 앞에 나오는 모든 자의
죽음을 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선은 죽은 행위이며
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자신의 선이나 의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만일 자신의 선한 행위를 기뻐하거나
하나님 앞에서 의를 행한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오히려 악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람은 그냥 살아도 죄인의 생명으로써
죄의 삶을 살기 마련인데,
그가 선이나 의를 행하고
자신을 의로운 자로 알게 된다면
그것은 더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그것을 지적하여
악이라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경건한 예배와
사랑하는 삶을 힘쓴다면
누구나 의로운 일이라고 판단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믿기 때문에
그 행하는 모든 일이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며
자신들이 행하는 선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악한 일입니다.
죄인이 행하는 선이나 의는
반드시 악한 열매를 맺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그것을 지적하여
악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죄인은 선과 의를 힘쓸수록
자신을 의인으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도록 행세하려 하기 때문에
교만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 교만이 자신처럼 행하지 않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되므로
내면을 간파하시는 하나님께는
악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일은
그의 은혜와 행하심에 감사하며
그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버려 자기 생명대로 살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스도가 자신의 생명이 되기까지는
의의 삶을 힘쓰지 않고
그의 긍휼을 바라며
기다리는 삶일 것입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선을 악하다 말하며,
모든 사람이 옳게 여기는 의로운 일을
불의하다고 말한다면
과연 누가 그에게 반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예배를 드리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여
자신의 삶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오직 그의 일에 헌신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그런 행사를 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나하면 죄인이 선을 추구할 수록
그 결과는 악한 열매가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원리는 죄인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이는 믿는 자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게 살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자신에 대한 죽음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의 서신서에 나오는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은
이미 그런 과정들을 거친 자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정상적이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됩니다.
그리스도처럼 선을 선하다 말하며
악을 악하다 말한다면 그리스도인이겠지만,
만일 악을 선하다 말하며
선을 악하다 말한다면
그는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누군가가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그 은혜에 감사하여
예배를 비롯한 교회 생활에 열심을 내며
이웃을 사랑하기에 힘쓴다면
그는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는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고 말할 사람입니다.
굳이 그의 말을 들어보지 않아도
그의 삶이 그리스도인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악을 멀리하고 선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누구나에게 선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본래 죄인이라면
그것은 오판일 것입니다.
죄인은 무엇인가에 열심을 내면 낼수록
그가 자기 사랑이 강하며
욕심이나 탐욕이 크다는 사실을
반증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교회나 믿음,
그리고 선하고 의로운 일에 열심을 낸다면
그로써 그는 더 많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유난히 선에 집착하고
바르게 사는 일에 힘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삶의 실제는 말할 것도 없이
문제 투성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본래 선하고 의로운 사람은
힘쓰거나 노력지 않아도
그런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집착하고 열심을 내는 것은
자신이 그렇지 못하며
다른 의도를 가졌다는 것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해 주는 것입니다.
만일 한 사람이 복음을 깨닫게 된다면
그의 삶은 그렇지 않았을 때 보다
매우 단순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원리를 모르면
늘 지엽적인 것에 마음을 두고
바쁘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이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은
자기 죽음과 부활이 관건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개의 그리스도인들은
그것만을 제외하고 행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믿음의 말씀을 듣게 된다면
당신의 행함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죽음이 곧 그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긍휼을 구하거나
그래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당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자부하더라도
비신자들과 다름이 없는 멸망의 길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아, 비통한 일입니다.
당신은 돌아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