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초대교회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특히 개척 목회를 시작할 때엔
교회의 원형을 생각하며
교회다운 교회를 꿈꾸었다.
목회를 시작하는 자가
그런 교회를 꿈꾸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땐
누구나 순수하다.
그래서 계획도 남다르다.
뭐든 순수하고 관심가질 만한
주제를 들고 목회에 임하게 된다.
특히 꿈이 크고 원대할수록
선교에 비전을 세우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마련이다.
마치 초대교회를 연상시키듯 말이다.
나눔과 헌신, 선교 등은
목회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단골 메뉴다.
그리고 초대교회를 떠올리며
바르고 순수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교회를 실현코자 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시작되는 교회가 있다면
정말 미안한 지적이지만
교회가 아니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사람의 바램 위에
세워진 사람의 교회이지
하나님의 교회일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를 시작하게 되면
여기저기 지인들로부터 도움이
답지하게 된다.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해석하지만 사실상 사람의 일이다.
아무 것도 없이 시작된 목회에
여러 도움의 손길들이
장래 하나님의 축복이 크게 나타날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교회가 서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해서가 아니라
그의 긍휼과 은혜일 뿐이다.
아닌 줄 알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니
그의 긍휼로써 공급되는 것일 뿐이다.
초대교회는 사람의 계획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참된 교회는 오직 하나님이 세우시며
자기를 잃고 오직 그리스도를
생명삼은 자를 통해
세워지는 것이 교회이다.
모든 시작과 과정이
사람의 계획과 꿈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과 복음에
바탕을 두고 자기를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로 살고자 하는 자들을
부르심으로 형성되는 교회이다.
교회는 건물을 세우고
믿을 사람을 모으는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자들이
복음을 듣고 옳게 여겨
그 말씀의 바탕에서
전혀 다른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말씀 앞에서 모이는 모임을 의미한다.
물론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르심과
일하심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 과정 중에
순수치 못한 사람들이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유입되는 경우도 많다.
그들로 인해 교회는 잠시 어려움을
당할 수 있겠지만
교회의 순수성은 더욱 견고히
세워지게 될 것이다.
초대교회는 대개가 아는 것처럼
소유가 많든 적든 서로 나누며
필요를 채워주는 사랑 넘치는 공동체를
연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런 모습이 초대교회의 모습의
하나였지만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교회들이
교회의 정체성도 갖추지 않은 채
초대교회의 모습을 겉으로만
따라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뿌리가 다른 일이다.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에 의해
움직여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라고 말하지만
대개는 그 의미조차 모른다.
열심히 기도하여
자기 생각에 옳은 길을 따르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주신 생각이
아님을 밝혀 둔다.
그들이 들었다는 하나님의 음성은
자기 의식 속에서 나온 것이든지
육신을 다스리는 귀신의 음성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바탕을 두지 않는 교회에는
말씀하시지 않으신다.
초대교회의 원형은
벳세다 들판에서 처럼,
갈릴리 호수 주변에서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들려주고
그들의 믿음의 삶을
촉구하는 그리스도의 말씀 중심의
모임을 의미한다.
그곳에는 찬송 소리도 없고
대표기도 소리나 통성기도,
어떤 의식도 없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면 족했다.
먹는 음식도 풍성함이 없었다.
가장 흔한게 먹는 보리떡과 물고기
정도의 음식이었다.
그것도 굶주림이 이어졌을 때에
공급된 것이었다.
풍성함과 편안함, 행복감,
은혜스런 찬송, 거룩을 향한 기도,
결단과 헌신을 촉구하는 외침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의 말씀을 듣고
거룩이 무엇임을 들으며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을
듣는 자들이 곧 교회이었다.
그리고 그 교회는 그리스도의
열 두 제자와 그 외 몇몇의 무리
정도에 불과했으며
그마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있기 전에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다.
외형적으로 볼 때에
하나님의 교회는 망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믿는 제자들 안에 임하셔서
그들 안에서 일하시며
제 2의 사역을 시작하셨다.
곧 우리가 말하는 초대교회의
출발이었다.
초대 교회는 그리스도를 생명 삼고
오직 그의 나타나심으로 행하는
제자와 그로부터 말씀을 듣고
참된 믿음에 응하여
자기 존재로부터 벗어나
오직 그리스도로 살고자 하는 자들의
모임이다.
서로 사랑하고 나누며
복음 전파를 위해 기도하는 일은
참된 믿음을 받아들인 자들이
행하는 삶의 일부이다.
복음의 내용도 모르는 자들이
초대교회를 재현한다고 해서
따라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많은 교회들과 목회자들이
초대교회를 재현하기를 힘썼다.
그러나 모양만 따라해서
될 일이 아니다.
자신에 대해 죽고 오직 그리스도로
살고자 하는 믿음의 내용이 없이는
결코 재현될 수 없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은혜스럽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도 아니다.
교회가 그런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다.
오히려 참된 교회는
사람의 수치와 죄가 드러나고
감추려하는 은밀한 부끄러움이 드러나
그것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긍휼을 구하게 되며
자기를 사랑하도록 되어 있는 자들이
거짓된 가식이 벗겨져
벌거벗은 모습으로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그의 긍휼을
구하는 처절한 모습을 담고 있다.
진정한 교회의 모습의 원형은
어쩌면 자기 수치가 드러난 채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하는
골고다 언덕 위와 같은 모습이다.
그런 죽음이 밭이 된 곳에서만
거듭남의 영광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초대교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답고 편안하고 은혜롭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아니다.
그런 환경과 분위를 재현하려고
힘쓰는 것은 참된 교회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세상에 속한
교회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과 같다.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죽음 후에만 거듭남이 찾아온다.
그것을 위해 교회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참된 교회이다.
타고난 사람이 죽어 나가고
그 위에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나타나 그 영광을 보이는 곳이
교회이다.
버리거나 포기하기 싫어하며
안녕과 행복을 바라는 사람의 기대가
무참히 깨어지는 곳이
그리스도의 말씀이 있는 교회이다.
나는 다른 모든 목회자들처럼
참된 교회를 꿈꿨었다.
그러나 십자가를 깨닫고 난 후에야
그것이 참된 교회가 아닌
세상적인 교회였음을 알았다.
그리고 참된 교회를 향한다.
자기 존재의 죽음이 있고
수치와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자기를 벗고 그리스도로 살고자 하는
자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있는
그런 교회이다.
그런 곳에서만이 거듭남의
영광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꺼려하는
곳일 수도 있다.
그리스도가 죽는 현장에서
그를 바라보는 제자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영원한 영광을 위해
자기 죽음을 마땅히 받아들일 자들만이
그런 교회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그의 긍휼하심을 얻고
하늘의 영광을 입게 될 것이다.
그곳이 거룩한 교회이다.
참된 교회는 처절하다.
그러나 그곳에만 영광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므로
추한 인간의 모습이 드러난 곳에
참된 평안과 기쁨과 즐거움이
존재한다.
그곳이 초대교회의 모습이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있는 곳에는
언제든지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그런 초대교회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