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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기 교수에게 물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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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에 자양분이 된 숨겨진 습관은?
-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결과나 영향을 미리 예측하는 습관이 있다. 일을 하기 전에 전체적인 프레임을 생각해 보고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미리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그 다음에 행동으로 옮긴다. 미리미리 준비하니까 그 일을 성공적으로 끝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고 시간에 쫓겨 하려고 들면 오히려 아무것도 못하게 될 때가 있다.
- 2
- 내게 힘을 주는 경구나 명언은?
-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성(至誠). 내가 졸업한 용산고등학교의 교훈이다. 교문을 들어서면 지성이라는 교훈 탑이 있다. 학교를 다닐 때에는 그 의미를 모르고 다녔는데 졸업하고 인생을 살면서 그게 내 인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다른 하나는 관용(寬容)이다. 관용이라는 게 남을 이해하려는 것,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이고 독단을 피하는 것이다. 관용이 익어갈수록 내가 남에 대해 거슬리는 마음이 줄어드니까 내 자신이 편해지고 안정이 된다.
- 3
- 슬럼프에 빠지면 어떻게 극복하는지?
- 일단은 행동을 멈추고 생각을 한다. 한 템포를 죽이고 전체적인 기승전결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서 그려보고 재조합을 한 다음에 다시 새로운 행동 전략을 세워서 행동으로 다시 옮긴다. 단기간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잠을 많이 잔다. 충분히 자고 나면 많은 일이 해결돼 있다. 일이 저절로 해결돼 있다는 뜻이 아니고 내 마음속의 갈등이나 불안이 많이 정리되어 있다는 뜻이다. 시간을 갖고 나면 슬럼프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거리에 와 있다.
- 4
- 스무 살 때와 지금 내가 달라진 점은?
- 스무 살 때는 의사를 하지 말고 다른 분야를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의사하기를 너무 잘했다고 생각한다. 장래에 대한 갈등이 정리되었다는 점이 달라진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관용도 달라진 점이다. 스무 살 때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굉장한 반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받아들인다.
- 5
- 내가 겪은 가장 아픈 실수와 교훈을 들려준다면
- 의대 본과 1학년 때 대학을 그만 다니려고 했던 것이다. 다른 쪽으로 과를 알아보고 방황하며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느라고 공부도 소홀했다. 하지만 그런 방황의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갈등 없이 의사의 일을 수행하게 된 것도 같다.
- 6
-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 내게는 인생에 영향을 미친 세 분의 은사가 있다. 한 분은 이호영 명예교수님(연세의대 정신과학교실 주임교수 및 아주대 총장 역임)이다. 이호영 교수님께 정신과 임상의 거의 모든 것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계준 명예교수님(연세의대 정신과학교실 주임교수 및 세브란스 정신건강병원 병원장 역임)께는 환자에 대한 사랑, 의사 사회와 교수 사회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웠다. 마지막으로 의과대학 시절 담임선생님이셨던 신경외과 정상섭 교수님(연세의대 신경외과학교실 주임교수 역임, 현 분당 차병원 뇌신경센터장)은 말수도 적고 과묵하시지만 내가 학교를 안 다니겠다고 했을 때 나를 잡아주셨고 누가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관심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나한테 계속 주셨다. 또 학생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 지에 대한 것을 가르쳐 주셨다.
- 7
-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 알코올중독 치료 시작 초기에 인연을 맺게 된 환자인데 40대 약사 분이었다. 그 분은 그 어려운 단주에 성공하신 뒤 지속적으로 단주를 유지하시면서 내가 학생강의를 하거나 외부에서 강의를 할 때 연자로 강연에 참석하신다.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시고 여러 환자와 의사들에게 가르침을 주신다. 처음에는 환자였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치료나 강의에 있어 동료 역할을 해주셨다. 그 외에도 현재까지도 나한테 치료받고 그 힘든 단주를 유지하고 계신 모든 환자분들이 내 임상의 역사이다.
- 8
- 나의 라이벌은?
- 내가 하는 분야의 특성상 어떤 치료 기법을 획기적으로 만들 수 없고 치료 성적이 객관화돼 숫자로 표시될 수 없기 때문에 임상분야에서 라이벌이라는 개념을 갖기는 어렵다. 라이벌을 나에게 자극을 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분야가 아니더라도 우리 교실에 있는 많은 교수님들, 우리 학교에서 내가 자주 대하는, 환자를 진짜 열심히 보고 연구를 열심히 하는 분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라이벌이다. 내가 임상이나 연구에서 게을러질 때마다 내 눈에 띄는 주위 교수님들을 볼 때마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되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되고 자극을 받는다.
- 9
- 의사를 선택한 계기는?
- 증조부 때부터 4대째 환자를 돌봤기 때문에 집안의 분위기는 한번도 내게 직업 선택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게 하였다. 자라서 당연히 의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사를 안 해볼까 하는 생각을 가진 적은 있어도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을 한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아픈 사람을 도와주고 뭐를 하기 위해서,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의사가 된 것이 아니라 의사가 된 다음 무엇을 할건가를 생각했다.
- 10
- 정신과 의사, 이것만은 갖추어야 한다는 자질이 있다면?
- 첫째, 사람들을 좋아해야 한다. 특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을 관찰하며 사람을 이해하는 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공감능력이 있어야 한다. 환자가 흥미 없고 재미없는 주제를 얘기하더라도 그 사람의 감정이 실린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타고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 자기 자신의 감정을 순화하고 안정화하려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나의 마음 상태가 불안정하고 신경질적이면 환자가 불안해지고 그 사람과의 공감이 안 된다. 한쪽으로 쏠리지 않으려고. 이런 자질은 타고날 수도 있지만 기르려는 태도와 자세가 중요하다.
- 11
- 이 직업 정말 잘 선택했구나 싶었던 때는?
- 사람들을 만날 때, 진료와 관련 없는 업무와 관련되어 일을 처리할 때, 내가 정신과 의사라고 하면 일면 경계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솔직하게 접근한다.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편이며 이 때문에 사람들이 내게 접근하고 싶어하는 면도 있다. 이런 점이 이 직업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환자를 진료하는 것 외에도 대인관계나 행정 업무를 할 때에도 정신과 의사라는 것이 자산으로 작용한다. 이성을 만나도 호기심을 가지고 대하는 것 같다.
- 12
- 같이 일을 하며 내게 믿음을 주는 사람은?
- 함께 알코올 의존 연구를 한 제자들이다. 일산병원 이병욱 정신과 과장, 알코올리즘 전문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최문종 원장, KBS 이충헌 기자, 우리 교실에서 지금도 일하고 있는 이은 교수와 정영철 교수가 내 믿음직한 제자이자 동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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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스무 살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은?
- 배낭여행을 해보고 싶다. 특히 인도나 아프리카로 장기 배낭여행을 하고 싶다. 내가 스무 살이던 시절에는 지금보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자유를 느끼기 어려웠다. 그런 환경 때문에 움츠러든 것도 있지만 당시에는 자유를 누리면 내가 흐트러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어서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했다. 지금은 자유롭게 행동하고 나서도 벗어나지 않을 텐데,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있다. 그리고, 몇 가지 운동은 전문가 수준으로 도달해 보고 싶고 ‘몸짱’도 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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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꼭 해내고 싶은 희망이 있다면?
- 병원 경영 걱정 안하고 교과서적이고 휴머니즘에 입각한 병원을 운영하거나 그런 병원에서 일해보고 싶다. 환자 몇 명을 봐야 병원이 망하지 않을지, 의료보험 삭감 당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등에 구애 받지 않고 양심껏, 소신껏 내가 생각하는 환자와 의사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치유를 할 수 있는 그런 의사가 되고 싶고 그런 상황에서 일해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