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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명인(한국인)

[스크랩] 중독치료분야 개척자 남궁기 교수

작성자푸른하늘|작성시간09.10.09|조회수261 목록 댓글 0

의사 남궁기

 

 

 

 

 

스승 아니었으면 포기할 뻔했던 의사의 길

이 느릿한 장면이 없었다면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 정상생활을 하고 있는 수많은 모주망태가 그냥

폐인으로 숨을 거두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알코올중독 치료분야를 정식 개척한 연세대 세브란

스병원 정신과 남궁기 교수가 의사를 그만 두려다 복귀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남궁 교수는 본과1학

년 때 기생충, 혈관 등의 이름을 외우는 ‘단순암기’에 질려 진로를 고민하며 휴학계를 냈다. 휴학 기

간에는 사학과, 수학과 등의 수업을 청강했고 당시 홍익대에서 강의하고 있던 마광수 교수의 수업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복학해서 ‘의사 수업’을 듣다 보니 당시 방황은 치기에 불과했다. 의대 과목에

 단순암기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임상과 관련한 수업은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남궁 교수는 어릴 적부터 의사 외에는 다른 직업을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의대 때 뒤늦게 방

황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집안은 증조부부터 4대가 의술을 펼친 가문. 증조부는 강원 횡성에서 한의

원을 개원했고 할아버지는 ‘횡성의 허준’으로 소문이 났다.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와 민박을 하며

기다렸다가 줄을 서서 진료를 봤다. 남궁 교수의 뇌 한 켠에는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헬리콥터를 타고,

승용차를 몰고 할아버지를 찾으러 오던 기억이 남아있다. 역시 한의사였던 아버지는 “아무래도 양방

 공부를 하는 것이 좋을 듯하구나”라고 권했고, 남궁 교수는 별 고민 없이 의대에 진학했다. 남궁 교

수는 정신과학이 좋아 본과 때 일찌감치 전공을 정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화병, 스트레스, 불안증

 등을 치유하는 명의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인문학과 생물학이 교차하는 교집합이라는 점에 끌렸을

까? 지금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어쩐지 그 길이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됐다.

 

 

의사들로부터 “미쳤다”는 말 들으며 알코올중독 전공 

그는 정신과의 세부전공 중에서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는 알코올중독을 택했다. 전공의 때 강화도 사

람들의 정신질환 양태에 대해 조사연구하면서 알코올 중독과 관련한 논문을 잇달아 썼다. 그러나 알

코올중독에 대한 연구를 계속 하려고 하자 주위에서는 “네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되겠다”고 말렸다.

 당시 알코올중독은 마약중독이나 자살과 마찬가지로 윤리의 문제였지, 병으로 치지도 않았다. 보험

도 적용되지 않았다. 게다가 환자는 인숭무레기(어리석어 사리를 분별할 능력이 없는 사람), 천둥벌

거숭이 천지여서 병실이나 응급실에서 난동을 피우기 일쑤였다. 스승인 이호영 유계준 교수도, 동기

들도 “정신 차리고 다른 길을 가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싶었다. ‘황무지’에서 밭을 일구고 싶었다. 1993년 경기 광

주시의 세브란스정신건강병원이 개원하자 초대원장인 유 교수를 따라가 독학으로 알코올중독에 대

해 공부하면서 알코올중독 환자들을 봤다. 유 원장에게 “잠시라도 좋으니 선진국의 시스템을 보고 오

게 해달라”고 졸라 미국 뉴욕의 연세대 의대 선배 서창삼 박사를 소개받았다.

 

뉴욕에서의 공부 기간은 2개월. 한 시도 허투루 쓸 수가 없었다. 주립병원과 단주모임 등에서 치료시

스템을 보고 성이 차지 않아 각종 중독 환자들이 공동기거하며 재활치료를 받는 숙소에 ‘위장 환자’로

 머물며 치료 시스템과 환자 특성에 대해 톺아봤다. 알코올중독자 재활숙소에 1주일, 마약 중독자 재

활숙소에 1주일 머무는 식이었다. 마약 중독자 재활숙소에서 그곳 의료진에게 “마약중독자 중에는

에이즈 환자가 많다던데…”하고 물었을 때 “당신과 비비대고 있는 환자 대부분이 에이즈 환자”라는

말을 듣고 놀라기도 했지만, 하나라도 더 보고 배우기 위해 끝까지 머물렀다. 남궁 교수는 귀국해서

병원의 알코올중독 치료 시스템을 마련하고 환자를 보다가 3년 뒤 미국에 본격적인 공부를 하러 갔다.

스승은 예일대 정신과 스테파니 오말리 교수. 날트렉손이라는 약이 알코올중독에 효과적이라는 사실

을 입증해서 이 방면의 최고 대가로 평가 받던 의학자였다. 남궁 교수는 오말리 교수 밑에서 2년 반

동안 날트렉손 연구에 매달렸다.

 

남궁 교수는 귀국하자마자 또 다른 알코올중독 치료제 아캄프로세이트의 임상시험을 주관했다. 이

약은 유럽에서 공인을 받았으며 당시 환인제약이 제조판매를 앞두고 국내에서 이 분야를 정식 공부

한 남궁 교수에게 임상시험을 의뢰한 것. 남궁 교수는 유럽 바깥에서 처음으로 아캄프로세이트를

연구한 학자가 됐으며 당시 알코올중독의 양대 치료제를 연구한,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전문가의

위치에 오르게 됐다. 그는 ‘알코올 및 약물남용 전임의 과정’을 개설해서 후학들을 키워냈고 다른 병

원들을 돌아다니며 알코올 관련 질환에 대해 강의했다. 2001년 <알코올 의존, 당신도 치료할 수 있

다>는 책을 발간하면서 알코올 의존을 치유하는 10단계 프로그램을 선보이기도 했다.

 

남궁 교수는 2000~2004년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과장을 거쳐 2004년 신촌의 세브란스병원 정신

과장으로 부임해서 정신과 폐쇄병동을 없애고 일반 병실처럼 만들었다. 정신과 환자에 대한 편견

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입원 환자도 장기입원 대신 7~8일 입원을 시켰고 외래치료 중심으로 진료

시스템을 개혁했다. 입원에 대한 거부감이 줄면서 말기가 아닌 초, 중기 환자가 급증했고 다른 병

원 의사들이 벤치마킹을 하러 올 정도였다. 이런 돌파력, 추진력, 행정력을 병원이 그냥 놔두지 않

았다. 남궁 교수는 2005년 연세의료원 기획조정실 부실장, 2006년 홍보실장을 맡았으며 지난해부

터 사무처장으로 의료원 전체의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남궁 교수는 알코올중독의 기초 연구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보여 왔다. 현재 KBS 의학전문기자로

활약하고 있는 이충헌 박사와 함께 알코올이 뇌의 흥분에 관여하는 물질 글루타메이트의 작용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자기공명분광법(MRS)을 통한 뇌성분 분석으로 밝히는 등 MRS, 자기

공명영상촬영(MRI), 기능성자기공명영상촬영(f-MRI) 등을 통해 뇌와 알코올의 관계를 규명하는

 논문을 계속 내놓고 있다. 그는 알코올에 너무나 관대한 우리 사회의 음주문화를 바꾸는 데에도

열심이다. 궁극적으로는 알코올 치료가 필요 없는 사회, 남궁 교수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다.

 

남궁기 교수가 말하는 알코올 의존


술을 소량에서 중추신경계를 흥분시

키기도 하지만 대체로 뇌의 정상적

기능을 억제한다. 술주정을 하는 것

은 뇌가 흥분됐다기보다는 뇌의 기능

이 떨어져 통제력을 상실한 것이다. 특

히 뇌에서 복합적 기능을 하는 망상계

 , 대뇌피질  등을 억제해서 기억, 인지

, 판단, 주의, 정보처리 등 사고기능과

 반응, 운동조화, 언어 등에 장애를 일

으킨다. 알코올은 중추신경계의 통제기

능을 억제함으로써 흥분, 고양, 공격성

, 충동성 등을 촉발시키고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행동을 하게 만든다. 폭음

으로 인해 생명을 잃는 것은 호흡과 심장

기능을 담당하는 대뇌기관이 기능을 잃

기 때문이다.

 

필름이 자주 끊기는 사람은 치매 일

찍 올 확률 높아
특히 술을 마시고 기억을 잃는 ‘필름

절단 현상’을 간과하면 안 된다. 필름이

자주 끊기는 사람은 치매가 일찍 올 확

률이 높다.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실 때는

 멀쩡하게 보이는 데 다음날 기억이 나

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이런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과 술을 마시다가 그 사

람이 다음날 기억을 할지 못할지 알아

보는 방법이 있다. 자신의 이름이나 직

업,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은 잘 기억

해 내지만 5~10분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대답을 하지 못하면 필름이 끊

긴 상태라고 보면 된다. 장기기억이나

지능은 상대적으로 온전하지만 단기기

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알코올이 대뇌의 해마와 측두엽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기억의 화학적 저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술 한 잔 마시고 푹 자라”는 얘기를 하지만 알코올은 수면을 방해한다. 술을 마시면 평소보다

쉽게 잠들 수 있기는 하지만 그 수면구조(sleep architecture)가 나빠진다. 꿈을 꾸면서 안구를 움직

이는 렘(REM) 수면 과 4기 수면(stage 4 sleep)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자주 잠에서 깨게 된다.

 

술주정은 개인별로 대뇌의 어느 부위가 가장 예민하게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충동 억제 중

추가 알코올에 민감한 사람은 술을 마시면 잘 흥분하고 공격적으로 바뀌어 난폭해진다. 또 통합 기능

부위가 예민한 사람이 취하면 판단력, 기억력, 집중력 등이 떨어진다. 각성 중추가 예민하게 억제되는

 사람은 술만 마시면 잠이 들어버리고 감정 조절중추가 민감한 사람은 주위 상황과 상관 없이 웃거나

우는 것이다.

 

알코올 의존, ‘자기통제력’만으로 치료할 수 없어
알코올 의존 환자는 기분장애, 불안장애, 인격장애, 다른 약물남용 등의 다른 정신질환을 동반하기

쉽다. 가장 흔히 동반되는 정신질환은 우울증이다. 알코올 의존 환자의 1/4~2/3가 일생 동안 이차

적인 우울증(secondary depression)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남자보다 여자 환자에게

서 우울증이 더 많으며 알코올 의존과 우울증을 동시에 갖고 있다면 자살시도의 가능성이 매우 높

아진다. 조울증 환자는 울증 때보다 조증 때 술을 더 많이 마신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또한 높은

 알코올 의존 유병률을 보인다.

 

알코올은 뇌뿐 아니라 온몸을 융단 폭격한다. 간을 공격해서 간염, 지방간, 간경변증을 일으키고 위

염, 설사, 위궤양 등 위장관계장애와 췌장염, 당 대사장애, 심근병증, 혈소판 감소, 빈혈, 근병증, 성

기능 장애, 불임 등을 일으킨다. 알코올은 또 구강, 식도, 위장관, 췌장 등에서 암을 일으키는데 이는

 음주시 흔히 동반되는 흡연과 관계가 있다. 특히 비타민 B가 파괴되면서 신경계가 직간접 손상을

받는다. 말초신경장애는 장갑을 끼거나 양말을 신는 부위(stocking-and-glove)에 특징적으로 나

타난다. 중추신경계 장애로 발음장애, 보행실조, 경련이 나타나기도 한다. 술에 절어서 사면 MBC

PD수첩에서 ‘인간광우병’ 환자로 소개된 아레사 벤슨의 실제 병이었던 베르니케 뇌병증(Wernicke

 encephalopathy)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이 병이 생기면 안구운동장애, 보행장애, 정신착란 등

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는 비타민 B1인 티아민(thiamine)의 투여로 회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계속

술을 마셔서 코르사코프 증후군(Korsakoff syndrome)으로 증세가 악화되면 기억을 하지 못해 횡

설수설 거짓말을 하게 된다. 환자의 1/3은 치료를 받으면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하지만 완전히 회복

되지는 못한다.

 

모주망태는 온갖 사고로 다칠 확률 또한 높다. 음주 관련 교통 사고는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음

주는 교통사고뿐 아니라 다른 안전사고와도 관련이 높다. 음주는 또 가정 폭력, 가족 내 갈등, 부부

문제 등의 가정 문제를 일으키고 지각, 결석, 해고 등 직업적 문제의 원인이 된다. 흔히 알코올 의존

일 때 술을 마시지 않으면 손이 떨리고 괴로워하는 상태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이는 알코올 의존

이 많이 진행된 상태일 뿐, 알코올 의존의 진단과는 거리가 멀다. 알코올 의존의 핵심 증상은 술에 대

한 조절력 상실이다. 일단 술을 한 모금이라도 마시면 그것 자체가 우리 뇌에서 술에 대한 조절력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알코올 의존 환자가 술을 적당히 마시기는 어려운 일이다. 많은 주당들이 ‘절주

’를 외치지만 아예 술을 마시지 않는 이상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알코올 때문에 문제가 있는데도 ‘자기통제력’에만 기대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알코올 사용 장애

환자의 80% 이상이 통원 치료만으로도 효과적으로 치료가 가능하므로 전문의사를 찾는 것이 현명

하다. 많은 환자와 가족이 알코올 의존은 치료가 되지 않는다, 또는 혼자서 술을 끊으면 된다는 생각

으로 병원을 찾지 않는다. 그러나 알코올 의존은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다

른 만성질환에 비해 치료 효과가 더 좋다. 그러나 많은 알코올 의존 환자들이 완치를 이루기 전에 한

번 또는 여러 번의 재발을 경험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알코올 의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뜻하

지는 않는다. 재발을 하더라도 다시 술을 끊으려고 노력하면서 주위의 도움을 얻으면 지긋지긋한 ‘

술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Q&A 남궁기 교수에게 물어보다

  • 1
    내 인생에 자양분이 된 숨겨진 습관은?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결과나 영향을 미리 예측하는 습관이 있다. 일을 하기 전에 전체적인 프레임을 생각해 보고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미리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그 다음에 행동으로 옮긴다. 미리미리 준비하니까 그 일을 성공적으로 끝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고 시간에 쫓겨 하려고 들면 오히려 아무것도 못하게 될 때가 있다.
  • 2
    내게 힘을 주는 경구나 명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성(至誠). 내가 졸업한 용산고등학교의 교훈이다. 교문을 들어서면 지성이라는 교훈 탑이 있다. 학교를 다닐 때에는 그 의미를 모르고 다녔는데 졸업하고 인생을 살면서 그게 내 인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다른 하나는 관용(寬容)이다. 관용이라는 게 남을 이해하려는 것,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이고 독단을 피하는 것이다. 관용이 익어갈수록 내가 남에 대해 거슬리는 마음이 줄어드니까 내 자신이 편해지고 안정이 된다.
  • 3
    슬럼프에 빠지면 어떻게 극복하는지?
    일단은 행동을 멈추고 생각을 한다. 한 템포를 죽이고 전체적인 기승전결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서 그려보고 재조합을 한 다음에 다시 새로운 행동 전략을 세워서 행동으로 다시 옮긴다. 단기간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잠을 많이 잔다. 충분히 자고 나면 많은 일이 해결돼 있다. 일이 저절로 해결돼 있다는 뜻이 아니고 내 마음속의 갈등이나 불안이 많이 정리되어 있다는 뜻이다. 시간을 갖고 나면 슬럼프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거리에 와 있다.
  • 4
    스무 살 때와 지금 내가 달라진 점은?
    스무 살 때는 의사를 하지 말고 다른 분야를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의사하기를 너무 잘했다고 생각한다. 장래에 대한 갈등이 정리되었다는 점이 달라진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관용도 달라진 점이다. 스무 살 때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굉장한 반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받아들인다.
  • 5
    내가 겪은 가장 아픈 실수와 교훈을 들려준다면
    의대 본과 1학년 때 대학을 그만 다니려고 했던 것이다. 다른 쪽으로 과를 알아보고 방황하며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느라고 공부도 소홀했다. 하지만 그런 방황의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갈등 없이 의사의 일을 수행하게 된 것도 같다.
  • 6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내게는 인생에 영향을 미친 세 분의 은사가 있다. 한 분은 이호영 명예교수님(연세의대 정신과학교실 주임교수 및 아주대 총장 역임)이다. 이호영 교수님께 정신과 임상의 거의 모든 것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계준 명예교수님(연세의대 정신과학교실 주임교수 및 세브란스 정신건강병원 병원장 역임)께는 환자에 대한 사랑, 의사 사회와 교수 사회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웠다. 마지막으로 의과대학 시절 담임선생님이셨던 신경외과 정상섭 교수님(연세의대 신경외과학교실 주임교수 역임, 현 분당 차병원 뇌신경센터장)은 말수도 적고 과묵하시지만 내가 학교를 안 다니겠다고 했을 때 나를 잡아주셨고 누가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관심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나한테 계속 주셨다. 또 학생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 지에 대한 것을 가르쳐 주셨다.
  • 7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알코올중독 치료 시작 초기에 인연을 맺게 된 환자인데 40대 약사 분이었다. 그 분은 그 어려운 단주에 성공하신 뒤 지속적으로 단주를 유지하시면서 내가 학생강의를 하거나 외부에서 강의를 할 때 연자로 강연에 참석하신다.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시고 여러 환자와 의사들에게 가르침을 주신다. 처음에는 환자였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치료나 강의에 있어 동료 역할을 해주셨다. 그 외에도 현재까지도 나한테 치료받고 그 힘든 단주를 유지하고 계신 모든 환자분들이 내 임상의 역사이다.
  • 8
    나의 라이벌은?
    내가 하는 분야의 특성상 어떤 치료 기법을 획기적으로 만들 수 없고 치료 성적이 객관화돼 숫자로 표시될 수 없기 때문에 임상분야에서 라이벌이라는 개념을 갖기는 어렵다. 라이벌을 나에게 자극을 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분야가 아니더라도 우리 교실에 있는 많은 교수님들, 우리 학교에서 내가 자주 대하는, 환자를 진짜 열심히 보고 연구를 열심히 하는 분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라이벌이다. 내가 임상이나 연구에서 게을러질 때마다 내 눈에 띄는 주위 교수님들을 볼 때마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되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되고 자극을 받는다.
  • 9
    의사를 선택한 계기는?
    증조부 때부터 4대째 환자를 돌봤기 때문에 집안의 분위기는 한번도 내게 직업 선택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게 하였다. 자라서 당연히 의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사를 안 해볼까 하는 생각을 가진 적은 있어도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을 한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아픈 사람을 도와주고 뭐를 하기 위해서,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의사가 된 것이 아니라 의사가 된 다음 무엇을 할건가를 생각했다.
  • 10
    정신과 의사, 이것만은 갖추어야 한다는 자질이 있다면?
    첫째, 사람들을 좋아해야 한다. 특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을 관찰하며 사람을 이해하는 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공감능력이 있어야 한다. 환자가 흥미 없고 재미없는 주제를 얘기하더라도 그 사람의 감정이 실린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타고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 자기 자신의 감정을 순화하고 안정화하려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나의 마음 상태가 불안정하고 신경질적이면 환자가 불안해지고 그 사람과의 공감이 안 된다. 한쪽으로 쏠리지 않으려고. 이런 자질은 타고날 수도 있지만 기르려는 태도와 자세가 중요하다.
  • 11
    이 직업 정말 잘 선택했구나 싶었던 때는?
    사람들을 만날 때, 진료와 관련 없는 업무와 관련되어 일을 처리할 때, 내가 정신과 의사라고 하면 일면 경계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솔직하게 접근한다.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편이며 이 때문에 사람들이 내게 접근하고 싶어하는 면도 있다. 이런 점이 이 직업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환자를 진료하는 것 외에도 대인관계나 행정 업무를 할 때에도 정신과 의사라는 것이 자산으로 작용한다. 이성을 만나도 호기심을 가지고 대하는 것 같다.
  • 12
    같이 일을 하며 내게 믿음을 주는 사람은?
    함께 알코올 의존 연구를 한 제자들이다. 일산병원 이병욱 정신과 과장, 알코올리즘 전문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최문종 원장, KBS 이충헌 기자, 우리 교실에서 지금도 일하고 있는 이은 교수와 정영철 교수가 내 믿음직한 제자이자 동료이다.
  • 13
    다시 스무 살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은?
    배낭여행을 해보고 싶다. 특히 인도나 아프리카로 장기 배낭여행을 하고 싶다. 내가 스무 살이던 시절에는 지금보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자유를 느끼기 어려웠다. 그런 환경 때문에 움츠러든 것도 있지만 당시에는 자유를 누리면 내가 흐트러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어서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했다. 지금은 자유롭게 행동하고 나서도 벗어나지 않을 텐데,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있다. 그리고, 몇 가지 운동은 전문가 수준으로 도달해 보고 싶고 ‘몸짱’도 돼보고 싶다.
  • 14
    앞으로 꼭 해내고 싶은 희망이 있다면?
    병원 경영 걱정 안하고 교과서적이고 휴머니즘에 입각한 병원을 운영하거나 그런 병원에서 일해보고 싶다. 환자 몇 명을 봐야 병원이 망하지 않을지, 의료보험 삭감 당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등에 구애 받지 않고 양심껏, 소신껏 내가 생각하는 환자와 의사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치유를 할 수 있는 그런 의사가 되고 싶고 그런 상황에서 일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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