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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活束 雜記場

일탈

작성자은방울|작성시간26.06.11|조회수137 목록 댓글 2

남해에서 만난 시간의 물결

서울에서 출발한 큰여동생 부부와 큰딸, 울산에서 달려온 막내여동생 부부, 그리고 부산에서 출발한 큰사위.

큰사위는 고속도로를 두 시간 반이나 달려 하동 옥종의 산방까지 와서 우리 부부를 태웠다. 그렇게 산방의 두 노인은 든든한 운전기사 노릇을 자청한 큰사위의 차를 타고 남해를 향해 길을 나섰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현직에 있을 때 한 달에 두세 번씩 오가던 길이었고, 내 인생의 소중한 한 장면들이 담겨 있는 길이었다.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 남해로 발령을 받아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처음 찾았던 그 길. 다랭이마을로 유명한 남면의 남명초등학교에서 2년을 보내고, 설천초등학교 초빙교장으로 자리를 옮겨 6년을 더 근무했다. 그렇게 남해에서 보낸 8년은 교직생활 45년의 아름다운 마침표가 되었고, 정년퇴임 후 산방으로 돌아온 지도 어느덧 14년의 세월이 흘렀다.

비슷한 시각, 여덟 식구는 두모채 303호에 모여 여장을 풀었다.

막내여동생의 부지런한 손길이 방 안을 한 바퀴 훑고 지나가자 금세 집안 분위기가 났다. 방 세 개와 거실 겸 주방, 그리고 화장실이 딸린 숙소는 내 집만큼 편하지는 않았지만 여덟 사람이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누며 지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각자 준비해 온 음식들을 펼쳐 놓고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저녁에는 반주 한 잔 곁들여 오랜만의 가족 이야기에 밤이 깊어갔다.

다만 김치냉장고의 요란한 소음이 잠을 방해했는데, 그때 큰매제가 나섰다. 역시 맥가이버라 불릴 만했다. 이것저것 살펴보더니 금세 소음을 잡아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는다. 가족 여행에는 이런 만능 해결사가 한 명쯤 꼭 있어야 한다.

이튿날 새벽, 어둠이 채 걷히기 전 홀로 운동길에 나섰다.

여름 성수기라면 사람들로 북적였을 은모래해수욕장은 비수기답게 고요했다. 솔숲 사이로 캠핑카 몇 대와 텐트 몇 동만 보일 뿐 인기척은 없었다. 혼자 해변길을 걷는데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마치 보이지 않는 지휘자의 손짓에 맞춰 규칙적인 박자를 만들어냈다. 그 소리는 적막을 깨우면서도 오히려 더 깊은 고요를 선물해 주었다.

길 건너 상주중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학생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푸른 바다와 산을 품은 그 자리만큼은 학생들의 꿈과 호연지기를 키우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처럼 보였다. 다만 농어촌의 인구 감소를 생각하면 저 아름다운 학교가 앞으로도 오래 남아 있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남해 금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금산은 내게도 추억의 산이다. 아마 1967년쯤 학교 친구들과 처음 올랐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한참을 걸어 올라야 했지만 이제는 자동차로 정상 가까이까지 갈 수 있다.

이날의 목적지는 금산의 보리암이었다.

보리암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는 초여름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은은한 염불 소리가 산중의 고요함과 어우러져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금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상주 앞바다의 죽도는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삼각형 섬처럼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예로부터 남해 금산은 삼남의 절경으로 손꼽혀 왔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 해발 681m의 산으로, 정상에서는 남해의 크고 작은 섬들과 푸른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특히 보리암은 강화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기도처로 알려져 있어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보리암을 둘러본 뒤에는 삼동면 편백림으로 향했다.

입구에는 큰매제 친구가 가꾸고 있다는 4만 평 규모의 편백숲이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 조성할 때만 해도 15억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다고 한다. 곧게 뻗은 편백나무들은 여전히 숲을 지키고 있었지만, 넓은 산을 관리하기에는 사람의 손길이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집은 비어 있었고, 마당 한쪽 작은 텃밭에는 고추만이 묵묵히 자라고 있었다. 무성하게 자란 풀밭은 꿈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말없이 보여 주는 듯했다. 자연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을 지켜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큰 정성과 인내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숙소로 돌아오니 울산의 매제가 직접 낚시해 온 잉어와 붕어로 어탕을 끓여 온것으로 구수한 국물에 여행의 피로가 스르르 녹아내렸다.

숟가락을 들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창밖의 남해 풍경보다도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남해 곳곳을 출장 다니며 지나쳤던 길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던 학교 운동장, 그리고 교장으로서 보냈던 마지막 세월의 기억들이었다.

1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남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일 것이다.

미조로 향하여 내가아는 횟집이 오늘따라 쉬는 날이라 공주식당의 갈치회와 멸치 무침으로 저녁을 끝으로 돌아오는데 카페도 역시 영업을 마무리하는 시간이라 어쩔수없이 숙소로 돌아왔다

하룻밤을 더 묵고 우리 가족들은 또 만남을 뒤로하고 서울과 울산으로 출발해가고 큰딸과 함께 돌아오는길 망운산 자락의 천년고찰 화방사로 향한다
나는 몇번을 다녀온 길이지만 옆지기를 웃한 들림이다
경내를 둘러보고 삼일만에 산방으로 돌아오며 이번 가족 모임을 접는다

젊은 날에는 일터였던 남해가, 이제는 추억을 만나러 가는 그리운 고향 같은 곳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을 가족들과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행복으로 다가온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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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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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최종현 | 작성시간 26.06.11 가족과 함께한 아름다운 추억 오래도록 간직하시고
    멋진 인생 오래도록 이어가시길 기원해드립니다
    행복하세요 ..............
  • 답댓글 작성자은방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2 세월이 갈수록 가족과 함께 할수있는 시간이 몇번이나 남았을까 하는 괜한 마음이랍니다
    종현님께서도 좋은 시간으로 이어가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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