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生活束 雜記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작성자은방울|작성시간26.06.12|조회수156 목록 댓글 4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2007년 3월 1일부터 2013년 2월 28일까지 만 6년 동안 남해 설천초등학교 초빙교장으로 근무하다가 그곳에서 정년을 맞았다. 그렇게 45년 교직생활의 마지막 장을 설천초등학교에서 마무리하였다.

2026년 6월 8일부터 10일까지 가족들과 남해 상주해수욕장에서 2박 3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서울의 여동생 부부와 울산의 막내여동생 부부를 먼저 보내고, 큰사위 차를 타고 돌아오던 중이었다.

옆지기가 문득 말했다.

"여보, 남해에서 8년이나 살았으면서 망운산 화방사는 한 번도 못 가봤네."

그 말에 차를 돌려 화방사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점심시간까지는 아직 이른 터라, 내가 마지막 젊음을 불태웠던 설천초등학교도 잠시 들러 보기로 했다.

옆지기 역시 학교 사택에서 6년을 함께 살았고, 큰딸 부부도 여러 번 다녀간 곳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교문을 들어섰다. 예전보다 조금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정겨움은 그대로일 것이라 생각했다.

교문 옆에 스쿨버스와 주차장 표시가 있어 차를 세웠다.

그런데 교문을 지키던 젊은 여자직원이 작은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 밀고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큰딸이 대신 설명했다.

"아버지께서 이 학교 교장으로 근무하시다 정년퇴임하셨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잠시 둘러보려고 들렀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예상 밖이었다.

사전 신고나 허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수업 중 학교 출입이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교실에 들어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잠시 교정을 둘러보고 싶을 뿐이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규정은 규정이라며 허락되지 않았다.

순간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학교의 내규라는데.

나는 학교 뒤편에 사는 선배님께 전화를 드렸다. 다행히 현재 학교에 잘 알고 지내던 후배가 근무 중이란다 , 통화를 하자 반갑게 교문으로 달려 나와 주었다.

"교장선생님, 어쩐 일입니까?"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또 다른 여자 직원도 나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의 따뜻한 정은 여전했지만, 마음속 씁쓸함까지 지워주지는 못했다.

교문 앞에 서니 2009년 전국 전원학교 지정 기념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내가 직접 준비해 쓴 글씨를 석공에게 부탁해 새긴 것이다.

세월은 흘렀고, 그 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방향을 바꾸어 서 있었다.

마치 나를 향해 말하는 듯했다.

"그대가 근무하던 시절은 이제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요."

학교 뒤 선배님 댁에서 두 노부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후배와도 함께 술잔도 기울였다. 오랜 추억을 나누며 웃음꽃도 피웠다.

그러나 화제는 결국 학교 이야기로 돌아갔다.

"학교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

나는 특권을 바란 적이 없다.

퇴임 교장이라는 이유로 대접받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내 인생 45년을 바쳤던 학교를 잠시 둘러보고 싶었을 뿐이다.

예전의 학교는 마을의 중심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치고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드나들던 공간이었다. 운동장은 동네 사람들의 쉼터였고, 학교는 마을과 함께 숨 쉬었다.

그런데 어느새 학교는 높은 담장은 없어졌지만 보이지 않는 벽은 더 높아진 듯하다.

안전을 위한 조치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세상이 달라졌고 학교도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졌다. 그러나 규정과 안전이 사람보다 앞서는 순간, 학교는 조금씩 공동체의 온기를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농어촌의 학생 수 50명도 되지 않는 작은 학교마저 사람의 발길을 경계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큰딸과 사위는 내 마음을 헤아리며 위로했다.

"아버지, 받아들이기 어려우시겠지만 세상이 달라졌잖아요."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가슴 한켠이 허전했다.

교육행정을 맡아 온 수많은 사람들이 꿈꾸었던 학교의 모습이 과연 이런 것이었을까. 현재는 내가 모르는 한참 후배인 여자교장이 근무하고 있다는데 교장을 찾아볼 마음마져 없었다.

사람보다 규정이 먼저이고, 신뢰보다 확인이 먼저이며, 따뜻한 환대보다 경계가 먼저인 학교.

그것이 우리가 바라던 교육의 모습이었을까.

나는 지금도 설천초등학교 교장실 한쪽 벽에 젊은 시절의 내 사진이 걸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 나는 그 사진을 보러 가지 못했다. 아니 갈려고 생각지도 않았다.

어쩌면 사진 속의 나는 아직도 그 시절 학교를 지키고 있는데, 정작 살아 있는 나는 교문 밖에 서 있었던 것이다.

남해의 학교들이 모두 이런 시스템으로 운영되지는 않는다는데 왜 하필이면 이 학교만 이렇게 되었는지 글로 남기게 되어 조심스런 단어들로 내심정을 표현했지만 앞으로 나는 이 학교를 다시찾지 않게 될것 같다.
나는 6년을 근무했다하여 퇴임하면서 남해 설천초등학교 38회 명예졸업생으로 총동창회부터 졸업증서를 받은 사람인데.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염정의 | 작성시간 26.06.12 왜 이렇게 되었을까
    세월이
    시대가
    사람이...........
  • 답댓글 작성자은방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3 내가요
  • 작성자염정의 | 작성시간 26.06.12 젊은
    패기 넘치던 그 젊은시절 사진......
    입가에
    미소가..............
  • 답댓글 작성자은방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3 그렇게 위로받을려구요 ㅎㅎ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