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 그릇 하나를 깎아내며
문득 홍랑이가 떠올랐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다 끝내 만나지 못하고도
한평생 그 마음 놓지 않았던 여인.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도
마음 하나만은 처음 꽃피던 날 그대로 간직했던 사람.
나 또한 나무 앞에 앉으면
조금은 홍랑이의 마음을 닮아가는 듯하다.
비바람 견디며 살아온 느티 한 토막을 품에 안고
금 가고 옹이 박힌 자리까지 쓰다듬으며
“이 나무도 어디에선가 긴 세월 외로웠겠지…”
혼자 중얼거리게 된다.
칼끝이 지나갈 때마다
나무 속에 숨은 세월이 드러나고
사포질을 거듭할수록
거친 생은 차츰 따뜻한 결로 살아난다.
사람 사랑도 그러하지 않을까.
좋은 것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상처 난 자리까지 오래 바라보아 주는 것.
기다림마저 사랑으로 품어내는 것.
홍랑이가 평생 한 사람을 가슴에 품었듯
나는 오늘도 느티 한 점을 붙들고
나무의 생을 다정히 어루만진다.
그래서 산방의 그릇들은
단순한 목기가 아니라
기다림과 정성과 세월이 담긴 작은 사랑의 그릇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이 느티 그릇에
따뜻한 차 한 잔 담기는 날이면
홍랑이의 애틋한 마음도 함께 피어나
은은한 나뭇결 사이로 오래 머물 것만 같다.
느티그릇
지름 140
높이 50
옻칠로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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