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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活束 雜記場

고사리

작성자은방울|작성시간26.06.18|조회수41 목록 댓글 2

고사리 농사

13년 전 정년퇴임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엄니를 모시고 귀촌해 보니 물려받은 논밭 한쪽이 어느새 쑥과 찔레밭이 되어 있었다.
그 땅 700평쯤에, 실상사 앞 동네에서 어렵게 구해 온 고사리 종근을 심었다.

그때만 해도 꿈은 참 소박했다.
“전답도 묵히지 말고, 시골에서 느긋하게 살자.”
그런데 세상일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만 되던가.

2년쯤 지나자 고사리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우리 부부의 봄철 직업이 정해졌다.
이름하여 ‘고사리 부부’.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사흘에 한 번씩 밭으로 출근한다.
두 늙은이가 허리 굽혀 다섯 시간쯤 꺾고 나면 한 짐이다.
그걸 또 다듬고 삶고 햇볕에 말리면 겨우 3킬로 남짓.
고사리란 놈은 참 신기하다.
사람 허리는 반으로 접어 놓고, 무게는 깃털처럼 줄어든다.

처음에는 나도 열심이었다.
고사리밭 이랑저랑 뛰어다니며 감독도 하고 작업도 했다.
그런데 10여 년 세월이 흐르니 사람도 진화를 하는 모양이다.

지금 내 직책은 ‘총감독’.
하는 일은 옆지가 호출하는 전화 오면 슬그머니 밭에 나가 한 바퀴 돌며 “수고 많네~” 하는 것.
실제 업무는 고사리보다 환삼덩굴 뽑기 놀이가 더 많다.
가끔 호미 들고 서 있으면 도와주는 척은 되는데, 사실은 바람 쐬러 간 베짱이에 가깝다.

반면 옆지기는 여전히 현역이다.
망태 메고 밭을 누비는 모습을 보면 거의 특전사 훈련 수준이다(꼭 이를때는 시어머니를 닮은것 같다).
나는 감독, 옆지기는 실무 책임자.
세상 어느 회사든 실무자가 제일 고생이다.

그래도 올해 성적은 제법 괜찮다.
농협 수매로 40킬로를 넘겨 240만 원쯤 수입이 생겼다.
집에서 먹을 것 남겨 두고, 자식들 나눠 주고, 사돈댁 선물용까지 챙겨 두었다.
앞으로 두세 번은 더 수확할 듯하고, 근고사리도 5킬로쯤은 더 나올 성싶다.

옆지기는 올해도 말한다.
“내년부터는 고사리 농사 안 한다.”

그런데 나는 안다.
내년 4월 끝자락, 산바람 불기 시작하면 또 망태를 어깨에 걸고 슬금슬금 밭으로 나갈 사람이라는 걸.
아마 우리 두 늙은이가 진짜 일손 놓는 날은 저 높은 곳 부름 받을 때쯤 아닐까 싶다.

그날이 내일일지, 10년 뒤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오늘 웃을 수 있으면 웃으며 살아가려 한다.
부디 그날까지는 두 늙은이 큰 탈 없이 지금처럼만 건강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엄니…
이 넓은 전답 힘들게 지켜 자식에게 물려 주시고 떠나셨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서울 강남 땅 두 평만 남겨 주셨더라면
여든 다 되어가는 이 아들과 며느리가 허리 꺾어 가며 고사리 농사는 안 짓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또 어쩌겠는가.
강남 땅 대신 고사리밭을 물려받았으니,
우리는 오늘도 고사리와 함께 늙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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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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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최종현 | 작성시간 26.06.18 new 고사리 꺽는것도 힘드신데 삶고말리고나면 십분에 일이나 되는지 ?
    고생하셨어요
  • 답댓글 작성자은방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6:02 new 사람이 산다는게 그렇고 그런가 합니다
    묶혀 놓고 바라보고만 있는것 보다는 마음 편할것 같아서요 ㅎㅎ
    저세상 가신 엄니에게 효도 하는셈 치고 또 해 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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