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지막 고사리 수확
5월11일 새벽 다섯 시.
산방의 하루는 늘 그렇듯 조용히 문을 열었다. 아침 운동 삼아 산길을 한 바퀴 돌고, 미루고 미루어 두었던 산방 둘레 길섶과 고사리밭 가장자리의 환삼덩굴과 잡초를 예초했다. 예년 같으면 훨씬 많은 일을 했을 텐데 올해는 작업량이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몸은 벌써 힘에 부친다. 예초기 기름은 한참 남았는데 사람 기운이 먼저 바닥나 버렸다.
아침밥을 먹고는 소파에 기대어 바둑 TV를 보며 잠시 쉬고 있었다.
"나 고사리 꺾으러 가요."
옆지기의 한마디가 산방의 평화를 깨운다.
곧이어 들리는 말.
"빨리 따라 나와요."
내가 어느새 그룹 총수 자리를 빼앗기고, 다시 현장으로 소집당한 셈이다. 산방에서는 늘 그렇듯 총감독은 옆지기이고 나는 순순히 따라가는 직원이다.
4월 말부터 시작한 고사리 작업은 오늘로 마침표를 찍는다. 두 달이 넘는 동안 사흘에 한 번씩 밭으로 나가 고사리를 꺾고, 삶고, 말리고, 다시 손질해 농협에 수매를 맡겼다. 스무 번도 넘는 작업을 두 늙은 부부가 함께 해낸 것이다.
오늘은 날씨도 유난히 덥다.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허리는 뻐근하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지겹기도 하다.
하지만 옆지기는 다르다.
한 손에는 낫을 들고 혹시라도 뱀이 나올까 긴 풀을 베어가며 길을 만든다. 허리가 아프니 낫자루를 지팡이 삼아 몸을 의지하면서도 손놀림만큼은 젊은 사람 못지않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고사리가 한 움큼씩 모인다.
반면 나는 하나 꺾고 하늘 한 번 바라보고, 둘 꺾고 산새 소리 한 번 듣는다. 고사리도 영악해서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다. 풀숲에 숨어 보호색을 띠고 있다가 햇빛 각도에 따라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분명 없던 녀석이 뒤돌아보면 또 고개를 내밀고 있다.
작업하다가 고사리 몇 대를 발로 밟기라도 하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수없이 많은 고사리 가운데 몇 개쯤 놓친다고 수확량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쓰인다. 누가 나무라는 사람도 없건만,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그럴 때면 문득 생각한다.
'내 그릇이 좁쌀만 한 건 아닐까.'
하지만 어쩌랴. 한 포기 고사리도 아까운 것이 농사짓는 사람 마음인 것을.
그렇게 올해 고사리 꺾기는 오늘로 모두 끝났다.
작업을 마치고 옆지기에게서 올해 고사리 농사 도와준 품삯으로 30만 원을 받았다. 계산해 보니 옆지기 수입은 200만 원이 훌쩍 넘을 것 같은데 내 몫은 조금 야박한 듯도 하다. 그래도 다행이다. 사실 한 푼 안 줘도 나는 아무 말 못 하는 사람 아닌가. 하하.
산방의 여름은 이렇게 짙어간다.
고사리 농사가 끝나면 곧 고추 농사가 시작된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총감독과 현장 직원으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잔소리 많은 감독과 투덜거리면서도 따라다니는 직원이 함께 일하는 풍경이 아마도 우리 부부의 살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현관 천장에 걸린 벽사봉을 바라본다.
큰 부귀도, 대단한 복도 바라지 않는다. 지금처럼 서로의 곁을 지키며, 아프지 않고, 잔소리도 하고, 투정도 부리고, 함께 밭으로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고요한 산방의 저녁이 내려앉는다.
두 늙은 부부의 하루도 그렇게 익어가고, 또 한 계절이 조용히 영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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