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의 성찰과 구조화.
2026년 6월 8일 월요일
선경 정해균의 독서노트.
◐알아야 좋아할 수 있다.
20세기 최고의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나침반을 통해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침반이 항상 북쪽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보이지 않는 힘에 관심이 생겼다는 겁니다. ‘크리스토퍼 유전자 가위’ 기술의 선구자인 제니퍼 다우드나도 소설 책인 줄 알고 펼친 책 《이중 나선》에서 생명에 대한 호기심이 시작되었다고 하고요…….
우라는 알아야 좋아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게 되면 거기에 더 많은 시간을 쏟으며 파고 들게 되 갰지요. 응용하고 확장하고 새로운 시도를 활 겁니다. 그렇게 점점 더 나아가면 내가 이것을 완벽히 장악하고 손안에서 가지고 놀 수 있는 순간이 옵니다. 탁월해지는 거죠. 바로 즐기는 경지입니다. 즉 알아야 좋아할 수 있고 좋아해야 즐길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알아도 좋아하거나 즐기는 단계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는 앎이 나의 호기심에서 시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흥미나 관심사와는 상관없이 그저 대학에 가기 위해서나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취업하기 위해서 ‘안 것’ 들이 많다 보니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스치듯 생겨난 호기심이라고 해서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쓸데없이 보이는 망상이라 해서 이내 접어 버리지 마십시오. 그것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재밌다면 더더욱 그래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즐길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여러분의 꿈은 현실이 되어 있을 겁니다.
-김준태 지음 《공자가 AI 시대를 산다면》 중에서.
【선경의 독서노트】
논어 제1편 학이(學而) 제1장 첫머리에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學而 時習)” “이 또한 기쁘지 않겠느냐(不亦說乎)”라는 말은 공자의 어록 제1조 제1항에 해당하는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공자께서 2500년후 닥칠 AI시대를 통찰하시고 논어를 읽는 독자들에게 시대를 관통하여 예언처럼 하신 말씀 같이 들립니다.
청대의 학자 황식삼(黃式三 1789-1862)은 논어후안(論語後案)에서 기뻐할 열(說)을 철처하게 이해할 때 우러나오는 기쁨으로 해석했습니다. 송대의 신유학자 정이천(程伊川 1033-1107))은 기뻐할 열(說)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고 즐길 낙(樂)은 외면에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학자의 해석을 따르더라도 논어 학이 제1장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거나 즐겁지 않겠는가’” 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식창출속도가 가속화되어 기존 지식이 금방 낡은 지식이 되어버려 평생학습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지구촌 삶에 적합한 인재는 ‘많이 배운 사람’ 보다는 필요할 때 ‘잘 배우는 사람’ 입니다. 배움이 일상화된 세상을 살아가는데 개체가 새로운 지식을 배울 때 (고통이 아닌) 기쁨(樂)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 세상살이가 순풍에 돛을 단 경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필요할 때 배울 수 있는 능력은 키워드 지(知), 호(好)그리고 낙(樂)의 세가지 프레임으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논어에 긍정 또는 반어법으로 표현된 지(知), 호(好), 낙(樂)의 보석과 같은 언어 프레임을 여기서 살펴 겠습니다.
◐지(知)의 선행 프로세스인 학(學)과 호(好)가 서로 거부할 경우 생기는 부작용.
논어 제 17편 양화(陽貨) 제8장 육은 육폐(六言 六蔽).
인자함을 좋아하되 배우지 아니하면, 그 폐단은 어리석게 되고
好仁不好學, 其蔽也愚
지혜를 좋아하되 배우지 아니하면, 그 폐단은 방탕하게 되며
好知不好學,其蔽也蕩
믿음을 좋아하되 배우지 않으면, 그 폐단은 의를 해치기 되며
好信不好學, 其蔽也賊
곧음을 좋아하면서 배우지 아니하면, 그 폐단은 각박하게 되며
好直不好學,其蔽也絞
용기를 좋아하면서 배우지 아니하면, 그 폐단은 난폭함 이오
好龍 不好學, 其蔽也亂
굳셈을 좋아하되 배우지 않으면 그 폐단은 무모함이다.
好剛不好學 其蔽也狂
◐호모이성(好謀而成)과 종오소호(從吾所好)의 프레임.
♣호모 이성(好謀而成).
호모(好謀)의 반대 말은 무모(無謀)입니다. ‘무식이 용맹이다’ 라 할 때 쓰이는 용맹은 무모의 대표적인 부산물입니다. 이때 의도하는 일이 뜻대로 이루어질 확률은 요행수 보다 훨씬 작은 값입니다. 논어에 언급된 무모의 상징적인 인물은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입니다. 참고로 자로는 논어에서 공자의 제자 중 그 이름이 가장 많이 언급되었습니다(총 42회, 논어의 언급된 공자의 제자는 모두 13명입니다). 호모이성(好謀而成)이라는 사자 성어는 ‘계책을 세워 일을 (꼭) 성사시킨 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호모이성(好謀而成) 은 자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인간적인 약점으로 공자 가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토로한 표현으로 보입니다.
호모이성(好謀而成)이라는 사자 성어의 전후 문맥을 이해하실 수 있는 논어 제7편 술이 제10장을 부분 인용합니다(신동준의 ‘교양인의 논어’, 원문 생략):
“자로가 물었다. ‘선생님은 3군을 지휘하게 되면 누구와 함께 할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무모하게도 범을 맨손으로 때려잡고 황하를 맨발로 건너고자 시도하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과는 내가 3군의 지휘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에 임해 두려워하여(臨事而懼) 계책을 세워 일을 성사시키려는(好謀而成)인물과는 3군의지휘를 함께 할 것이다.”
호모이성(好謀而成)은 임사이구(臨事而懼)의 결과물입니다. 일에 임해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며 두려워하는(臨事而懼)마음이 호모이성(好謀而成)의 밑천입니다.. 임사이구(臨事而懼)의 성찰이 있은 후 일이 꼭 이루어 지도록 사전에 대비책(好謀)을 세우게 됩니다. 호모(好謀)의 반대는 무모(無謀)입니다.
♣종오소호(從吾所好)
종오소호(從吾所好)는 ‘좋아하는 일을 따르겠다’ 는 소신 있는 선택과 집중의 선언입니다. 종오소호(從吾所好)의 표현이 포함된 논어 제7편 술이(術而)제 11장을 인용합니다(신동준 지음 교양인의 논어, 원문생략).
“공자가 말했다. ‘만일 부귀가 사람마다 구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대상이어서 비록 말채찍을 들고 수레를 몰지라도 능히 얻을 수 있는 것이 라면 나 또한 그리 할 것이다. 만일 그럴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따르는(從吾所好) 삶을 살겠다.”
위 인용문에서 부(富)에 대한 공자의 소탈한 마음의 자세를 읽을 수 있습니다. 요지는 돈이 사람을 따르지 않으면 억지로 돈벌이에 집착하기 보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내가 좋아 하는 일을 좇아 즐겁게 살겠다는 자유의지의 표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안빈낙도(安貧樂道)프레임.
안빈낙도(安貧樂道)란 ‘가난속에 편안하고 도를 즐긴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사자성어 입니다.
논어에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취지와 유사한 표현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취지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논어의 장과 그 내용을 요약한 번역문을 아래에 인용합니다 (신동준 번역 교양인의 논어에서, 원문생략).
♣제1편 학이 15장
자공이 스승인 공자에게 물었다.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찌 평가해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가하다. 그러나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는 것은 가난해도 도를 즐기는 것보다 못하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는 것은 부유해도 예를 좋아 하는 것보다 못하다.’”
♣제4편 이인 5장
공자가 말했다. ‘부귀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상이나 정당한 방도로 얻은 것이 아니면 처하지 않으며, 빈천은 모든 사람이 싫어 하는 대상이나 정당한 방도로 버리는 것이 아니면 버리지 않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제15편 위령공 32장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도를 도모할 뿐 먹을 것을 도모하지 않아야 한다. 농사를 지어도 굶주림이 그 경작 안에 있는 위험에 처 할 수 있다. 그러나 학문을 닦으면 봉록이 그 학문안에 있는 행운을 맞는다. 군자가 도를 이루지 못할까 걱정할 뿐 가난해질까 걱정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16편 계씨 제1장
공자가 말했다. ‘구야, 군자는 저 내심 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지 않고 반드시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 놓는 것을 미워한다. 나는 나라를 소유한 제후와 저택을 보유한 경대부는토지와 백성이 적은 것을 근심하지 않고 정사를 고루 펴지 못할까 근심하고, 재정이 빈약한 것을 근심하지 않고 백성을 편안 하게 해 주지 못할까 근심한다.’ 고 들었다.
논어 제 6편 옹야(擁也)제18장에는 지(知), 호(好), 낙(樂)이 위계를 이루면서 아래에서 위로 단계적으로 올라가는 뉴앙스로 쓰여 있습니다. 즉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 하니라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김준태 저자가 앞에서 잘 설명한바와 같이 지(知), 호(好) 그리고 낙(樂)의 프레임은 삼위일체의 동일한 위격으로 서로 동일한 위치에서 상호작용을 하며 서로 발전을 돕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지(知), 호(好), 낙(樂)의 프레임을 한 몸의 구성요소로 생각하고 서로 연결(synchronize)해서 생각의 힘을 구조화 하는데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조적으로 관찰하고 구조적으로 생각하면 내부의 조정 과정 때문에 일시적인 진보는 평면적(일차원적) 관점보다 더딜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구조적 관점의 도입으로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진화의 발판 또는 환경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조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은 시간에 쫓겨 무조건 앞으로 나가려고 서두르는 조급한 사고체계(진보)와 대척점에 있습니다. 구조적인 관점은 주어진 상황에서 나에게 알 맞는 변화를 선별적으로 수용하며 진화를 도모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진화론의 이론에 의하면 결국 진화하는 개체가 도태되지 않고 살아 남는다고 주창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글의 결론은 박용후 지음 “관점을 디자인하라” 에서 가져왔습니다.
“진보에는 목적이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따라서 우열의 기준이 있다. 하지만 진화는 정해진 방향이 없다.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 그것이 진화다. 우리가 스스로 진화를 이루어 갈 때 모두 ‘only one’이 될 수 있다.”
오늘 화두에 대한 독서노트의 생각을 요약정리해 봅니다.
관점의 구조화는 상황이나 사물을 단지 평면이 아니고 입체적으로 볼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여유와 힘은 평소 스스로 부여하는 강한 내적 동기에서 비롯됩니다. 내적동기의 원천은 순수한 흥미, 호기심 그리고 향상심 등입니다. 반대로 외적 동기의 원천은 지위, 명예, 금전 등 세상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공통가치입니다.
사고체계가 관점의 구조화로 지혜로워질 경우 부분보다 전체를 보는 안목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유리합니다. 그리고 너무 주관적이고 독선적으로 흐르기 쉬운 우리 내면의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깰 수 있는 통찰력을 필요할 때 불러 낼 수 있습니다. 또한 통찰력은 사물의 현상 뒤에 숨은 본질에 접근하는데 혜안으로 작용합니다.
한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관점은 그 사람의 생활방식과 행동 방식을 결정하게 됩니다. 살아가는데 관점에 관한 성찰과 구조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