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2. 오전... 요즘은 딸아이가 이사 가면서 맡겨놓고 간 금전수를 돌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처음에는 겉흙이 바짝 말랐을 때 물만 챙겨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작은 새싹 하나가 조심스럽게 올라오더니, 하루가 다르게 연둣빛 잎을 펼쳐 올린다. 아침마다 그 모습을 들여다보는 일이 어느새 내 하루의 즐거움이 되었다.
내일은 부산 해운대, 모레는 서울, 그다음 날은 여수에서 연속 강의가 있다. 자료를 정리하며 분주하게 보내고 있는데, 아내는 아침부터 거울 앞을 떠날 줄 모른다. 오늘은 여고 시절 단짝 친구 네 명이 압구정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정동의 이화여자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들이다.
어느새 반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인생을 살아왔다. 대학 학장을 지낸 친구도 있고, 은행에서 중책을 맡아 일하다 은퇴한 친구도 있으며, 평생 가정을 알뜰히 꾸려온 친구도 있다. 결혼한 친구 둘, 혼자만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친구 둘.
살아온 길은 달랐지만, 친구라는 이름 앞에서는 모두 다시 열일곱 소녀가 되는 모양이다. 그중 한 친구는 무려 50년 만에 다시 만난다고 한다.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며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저런 설렘이 남아 있다는 것이 참 보기 좋았다.
현관문을 나서는 아내의 등을 향해 나도 모르게 말했다.
"커피는 당신이 사~"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잘 다녀오라는 말 대신이었을까. 즐겁게 웃고 오라는 마음이었을까.
살아보니 행복은 거창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화분에서 올라오는 새싹 하나에도 기뻐하고, 오십 년 만에 친구를 만난다는 소식에 함께 설레고, 여전히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정성껏 몸단장을 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 그런 평범한 순간들이 모여 인생을 따뜻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금전수 새싹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한다.
식물은 때가 되면 새잎을 내밀고, 사람은 세월이 흘러도 가슴속 어딘가에 설렘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을.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시들어가는 일이 아니라, 늦게 피어나는 행복을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새싹은 조용히 자라고 있고, 아내는 오십 년 만의 친구를 만나러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생각해 보니 새싹은 화분에서만 돋아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인생에도, 부부의 정에도, 오랜 친구 사이에도, 아직 푸른 새싹은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