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에 걸친 명당찾기
명당탐지기로 명당을 찾는 사람들
충청도가 고향인 김모씨, 그의 조부와 부친은 풍수에 관심이 많았다. 자연히 김모씨는 어려서부터 조부를 따라 다녔는데, 산소에 가는 일이 즐거웠다고 한다. 자신도 조부와 부친의 영향을 받아 신비한 풍수가 재미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명당 집 친구들을 보면 부유한 환경에서 잘사는 것을 보자 부러웠던 것이다.
한편 고향마을에는 갈마음수로 불리는 다른 집안의 선대 묘가 있는데, 조부께서는 무척 부러워하며 그런 묘자리를 찾아 자신들 선영으로 만들고 싶다는 말을 어린 손자에게 자주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조부께서는 좋은 묘터를 찾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선영 한편에 묘를 쓰게 된다. 이에 부친께서는 조부 묘가 좋은 묘자리가 아닌 것을 늘 한탄하시곤 했다. 그래서 틈틈이 여러 명의 지관과 함께 인근 지역을 계속 찾아다녔지만, 끝내 원하는 자리를 찾지 못하고 결국 자신도 부친 곁에 묻히게 된다.
그러자 효자인 김모씨는 조부와 부친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신이 이어받아 명당을 찾으러 다니는데, 그 세월이 무려 17년이었다. 고향 인근에서 이름난 풍수는 모두 찾아다녔으니 3대에 걸친 명당 찾기였다.
그러다가 지인을 통해 노스님을 만나게 된다. 당시 82살의 스님은 기감능력이 뛰어나 인근에서 이름난 풍수로 활동하던 분이었다. 김모씨는 노스님을 차에 모시고 다니면서 점점 그를 의지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차를 타고 산길을 지나는데, 산모퉁이를 돌자 차 안에서 멀리 있는 산을 가르키면서 “저 산 너머에 좋은 자리가 있을 것인데, 기운이 예사롭지 않은 곳이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노스님이 말씀한 곳을 가보니 한 장소를 가리키며 “이곳이 천하명당이니 이 땅을 사서 당장 부친을 이장하도록 하시오.”라고 하신다.
김모씨가 둘러보니 밭으로 쓰던 곳이지만 스님의 말씀이 그럴 듯 할 뿐 아니라 드디어 3대에 걸친 명당 찾기를 자신이 이루었다는 생각에 감격해 스님께 큰절을 올리게 된다.
땅 주인을 수소문해 보았더니 마침 그 마을에 사는 분이어서 우여곡절 끝에 땅을 구해 부친 묘를 이장하기로 한다. 그러나 땅을 팔 때는 묘를 쓰는데 문제없게 하겠다는 말과 달리 마을 사람들이 반대를 해서 이장을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김모씨는 부친의 유해를 수습해 온 상태에서 묘를 쓰지 못하게 되자 사정사정하여 적지 않은 돈을 마을에 발전기금으로 내놓으면서 겨우 부친을 안장하기에 이른다.
묘터가 마을과 가까운 것도 아니고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데도 막무가내로 유세를 부리니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어렵게 이장을 했지만, 김모씨 마음이 편할리 없었던 것이다. 어쩌다 시골 인심이 이토록 각박해졌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몇해가 지나면서 차츰 부친 묘터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다. 전에는 좋게 보였던 산이 불편해 보일 뿐 아니라 마을사람들과 불편한 감정 등으로 명당이라는 생각이 바뀌는 것이다.
그리하여 김모씨는 다른 풍수에게 부친 묘를 감정받지만 전혀 상반된 평가로 좋지 않은 묘터라는 말을 듣게 된다. 초조해진 김모씨는 여러 명의 풍수를 초빙해 감평을 받지만 각자의 의견이 모두 다를 뿐 아니라 산에 대한 설명도 납득할 수 없는 말들 뿐이었다.
결국 김모씨는 자신이 직접 풍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명당탐지기라는 것을 150만원을 들여 구입한다. 초보자도 손에 들고 명당에 가면 저절로 핑글핑글 돌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명당을 찾을 수 있다는 설명에 혹한 것이다.
명당탐지기는 대만에서 유행하던 것으로 관룡자라 불리던 작은 도구였다.
김모씨는 구입한 명당탐지기를 들고 자신이 직접 부친 묘와 조부 묘 등에서 시험해 보기로 한다. 그러나 명당탐지기는 야속하게 조부와 부친 묘에서 전혀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판매처에 말하니 묘터가 명당이 아니거나 아니면 수련이 부족하기 때문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핀잔만 들을 뿐이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김모씨는 병까지 생길 정도였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혹여 자신이 부친 묘를 잘못 쓴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필자에게 연락이 와서 현장을 둘러보기로 한다. 고조부 묘부터 부모님까지 총8기의 묘가 네곳에 따로 모셔져 있는 상태였다. 묘가 분산된 이유는 각각의 장소가 좋은 장소라는 지관의 말을 믿고 큰 돈을 들여 묘터를 샀기 때문이다.
김모씨는 네 곳 중 최소한 한두 곳은 명당이라 확신했던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모두 낙제점을 면치 못하는 곳이었다. 묘 앞으로 물이 길게 빠져나가고, 고압선이 지나고, 경사가 가파르고, 습한 땅에 잡초가 무성하여 묘에 접근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크게 낙담한 김모씨는 17년을 헛살았다는 자책감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이라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풍수는 눈에 보이는 것을 보고 길흉을 판단하는 이성적 학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감과 수맥 등을 운운하는 것은 자신의 무지를 감추고자 하는 경박한 행태에 지나지 않으니 어쩌다 풍수도사 이토록 많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