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대사(1327-1405, 78세)는 조선 최고의 풍수가로 이름난 고승이다.
그의 성은 박씨이고 경상도 합천에서 출생했다. 대사의 어머니는 환한태양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임신을 하여 대사를 낳았는데, 어려서부터 총기가 뛰어나 배움에 있어 대사를 앞서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18세에 송광사에서 출가하였고 26세 때 중국 원나라에 유학가서 인도의 고승 지공선사를 만나 제자가 된다. 그 후에는 고려의 국사 나옹선사로부터 불법을 전수받고 태조 이성계의 왕사로 책봉된다.
법명은 자초이고 호는 무학이다. 무학이란 불교의 수행과정 중 가장 높은 경지를 이르는 말로서 더 배울 것 없다는 의미이다. 무학대사가 풍수에 관여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야사1. 이성계 부친 묘 자리
이성계가 부친 이자춘(1315-1360)의 상을 치를 때 그는 함흥에 있었는데, 좋은 땅을 구해서 장사지내려 하였다. 그러나 좋은 땅을 구하지 못했고 뛰어난 지관도 찾지 못해 장사를 치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의 나무꾼 아이가 산에서 두 스님이 말하는 것을 엿듣게 된다.
“아래 것은 비록 풍수의 이치에 맞기는 하나 장상(將相)이 날 자리에 불과하고, 위의 것은 왕후가 날 자리이네.”
즉 묘터가 상하로 두 개 있는데, 위의 것이 좋다는 말이었다.
나무꾼 아이가 숲속에 숨어서 그 말을 듣고 이성계에게 달려가 말하자 이성계는 그 즉시 말을 달려 두 스님을 찾은 뒤 예를 표하며 정성껏 말하였다.
“제가 지금 부친의 상을 당하였습니다. 좋은 땅을 가려서 모시고자 하는데, 두 분 스님께서 부디 가르쳐 주시옵소서.”
“빈도들은 단지 구름을 떠돌아다니며 놀 뿐이요. 풍수의 술법은 아직 잘 모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이성계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 간곡히 청하자 젊은 스님이 말하였다.
“남의 성의를 어찌 차마 저버리겠소.”
그리하여 두 스님은 이성계와 함께 산으로 올라가 지팡이를 꽂고 말하였다.
“위의 혈은 왕후의 조짐이 있고 아래 혈은 장상의 자리이니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르시오.”
이성계가 말하기를
“위의 것을 갖기를 원합니다.”
나이 많은 스님이 말하였다.
“너무 욕심이 지나치지 않소.”
그러자 이성계가 말하기를
“대체로 사람의 일이란 가장 좋은 것을 얻으려 해도 겨우 하급의 것을 얻게 되는 법이므로 그리 말하였습니다.”
두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원대로 하시오.” 하고는 가버렸다.
늙은 스님은 나옹이고 젊은 스님은 무학이었다.
결국 이성계는 그들이 말한 함흥 귀주동에 부친의 묘를 쓰니 정릉(定陵)으로 불린다.
이때가 이성계(1335-1408) 나이 25세였고, 32년 후에 조선을 개국하고 왕위에 오르니 스님의 예언대로 되었다.
야사2. 왕십리 유래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 도읍지를 찾아 달라고 청했다.
무학대사는 예로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알려진 계룡산으로 내려가 산세를 살폈으나 아무래도 도읍으로는 적당치 않았다. 발길을 북으로 옮겨 한양에 도착한 스님은 봉은사에서 하룻밤을 쉬었다. 이튿날 뚝섬 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니 넓은 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방으로 지세를 살펴보니 새 도읍지가 될만하다고 생각했다.
“땅이 넓고 강이 흐르니 새 왕조가 뜻을 펼 만한 吉地로구나.”
이때 한 노인이 소에게 채찍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이놈의 소가 꼭 무학대사 같구나. 왜 바른길로 가지 않고 굳이 굽은 길로 가려하느냐?”
그 말을 들은 무학대사는 귀가 번쩍 트여 노인에게 달려가 말하였다 .
“노인어른 지금 소에게 뭐라 하시었소?”
“미련하기가 무학대사 같다고 했소.”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요즘 무학대사가 새 도읍지를 찾는다는데, 좋은 곳은 놔두고 엉뚱한 곳만 찾아다니니 어찌 미련하고 한심한 일이 아니겠소.”
무학대사는 노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공손히 합장하며 말하였다.
“제가 바로 그 미련한 무학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이곳이 좋은 도읍지라 보았는데, 노인장께서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좋은 도읍지가 있으면 이 나라 천년대계를 위해 알려주시기 바랍니 다.”
그러자 노인은 채찍을 들어 북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10리를 더 가서(往十) 주변을 잘 살피도록 하시오.”
무학대사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순간 노인과 소는 온데간데없이 사 라지고 말았다.
무학대사가 노인이 말한 곳에서 10리를 더 오니 북악산과 인왕산, 남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땅을 보게 된다. 무학대사는 이곳을 도읍지로 천거하니 지금의 한양과 경복궁 터이다.
그로부터 무학대사가 노인을 만난 곳은 왕십리라 불리게 된다.
야사3. 궁궐 축성
무학대사가 북악산 아래 궁궐의 기초를 정하는 소임을 받고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내고 주춧돌과 기둥을 세우는데, 곧 넘어져 버렸다. 아무리 튼튼하게 세워도 계속 넘어져 기초를 세울 수가 없었다.
무학대사는 영문을 몰라 전전긍긍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멀지 않은 밭에서 늙은 농부가 소를 부려 땅을 갈고 있었는데, 소가 농부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질책하며 말하였다.
“이놈의 소, 미련하기가 꼭 무학대사 같구나.”
이 말을 들은 무학대사는 늙은 농부 앞에 가서 자신이 바로 무학대사임을 밝힌 뒤 어째서 미련하다고 했는지 고견을 알려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농부가 말하기를
“한양의 지세는 학이 날개를 편 형태를 하고 있는데, 궁궐을 세우는 곳은 학의 등에 해당되는 곳이오. 이곳에 기둥을 세우고 건물을 세우려 하니 어찌 그것이 넘어가지 않겠소?”
이 정도의 일은 풍수에 정통한 무학대사가 알고 있을 터인데, 괴이한 일을 겪고 있으니 소를 꾸짖는 말로 풍자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무학대사는 농부의 말대로 했다.
우선 날개에 해당하는 곳에 궁성을 쌓아 학이 날아가지 못하게 했다. 그런 다음에 궁궐을 세우니 공사가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정사1. 계룡산 신도안 터(태조 2년 2월 11일 1393년)
태조가 지리를 살펴 도읍를 세우고자 하여 대사에게 따를 것을 명하였다. 대사가 사양하니 태조께서 말하기를
“세상 사람의 터 잡는 것이 어찌 대사의 눈만 하겠는가.”
임금이 탄 가마가 계룡산 아래 신도의 중심인 높은 언덕에 올라가서 지세를 두루 살폈다.
그리고 왕사 무학에게 물으니 “소승은 능히 알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무학대사는 신도안의 터를 좋게 보지 않았던 것이다.
정사2. 한양으로의 천도 결정(태조 3년 8월 13일 1394년)
임금이 왕사 자초에게 물었다.
“이곳 남경(한양)의 지세가 어떠하냐?”
자초가 대답하였다.
“여기는 사면이 높고 수려하여 중앙이 평평하니 성을 쌓아 도읍을 정할만 합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의견을 따라 결정하소서.”
하지만 당시 궁궐 터를 정할 때 정도전과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차천로(1556-1615)가 지은 오산설림(五山說林)에 전해진다.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고 북악산과 남산을 청룡·백호로 삼아 동향을 하십시오”하였다.
하지만 정도전이 말하기를
“자고로 제왕은 모두 남향을 하고 다스렸다는 말은 들었어도 동향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면서 무학대사 말에 반대한다.
이에 다시 무학대사가 말하기를
“내 말을 듣지 않으면 2백년을 지나서 내 말을 생각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결국 궁궐 경복궁은 정도전의 말대로 북악산 밑에 남향으로 자리하게 된다.
그런데 200년 후인 1592년 임진왜란이 터져 경복궁은 폐허가 되고 조선은 국가적으로 큰 위기를 겪게 된다.
정사3. 건원릉 소점
태조대왕께서 신승인 무학대사와 더불어 친히 壽藏(살아생전에 만드는 무덤)을 가려잡으니 곧 건원릉이 이것이다.
태조께서는 무학대사가 정해준 산에는 후손들이 장사지낼 곳이 무려 20곳에 이르니, 내가 이로부터 근심을 잊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곳의 서쪽 한 가닥 봉우리를 망우리(忘憂里)라 하였다.
정사4. 후릉(厚陵) 선정(철종 6년 2월 4일 1855년)
후릉은 북한 땅 개풍군에 있는 조선 2대 임금 정종과 정안왕후의 능이다.
조선 후기 때 철종임금은 말하기를
“듣건대 후릉(厚陵)은 國初에 무학대사가 잡은 곳이라 하는데, 근래에 이와 같은 地術을 지닌 사람이 있는가?”
영부사 정원용이 말하였다.
“근래의 지사들을 어찌 그와 견주어 논할 수 있겠습니까?”
기타
무학대사는 강회백 묘와 원천석 묘를 정해주었다고 전해진다. 또 여러 대신들의 집터도 정해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무학대사는 조선 초에 풍수에 관한 조언을 많이 하면서 조선 최고의 풍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하지만 무학대사가 정한 곳을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곳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https://youtu.be/xym7OwbdeX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