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에서 말하기를 혈은 산의 꽃이니 나무의 열매와 같다고 했다.(穴者山之花也 如樹之實也)
이 말은 좋은 땅은 반드시 산봉우리에서부터 역동적으로 이어져야 하며, 나무의 꽃과 열매처럼 산줄기 끝에서 혈을 맺는다는 뜻이다. 그 혈은 산봉우리의 기운이 맺힌 것으로 봉우리의 모습이 곧 혈의 역량이 된다.
산 정상의 모습이 장엄하면 장엄한 기운이 맺히고, 수려하면 수려한 기운이 맺히고, 빼어나면 빼어난 기운의 혈을 맺는다.
반면에 봉우리가 추하면 추한 기운이 맺히고, 옹색하면 옹색한 기운이 맺히고, 빈약하면 빈약한 기운이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사찰 중 산 정상에서 이어져 산줄기 끝에 자리한 곳은 해인사, 부석사, 봉정사, 신륵사 등이 있으며, 명동성당 또한 남산의 산줄기 끝 지점이다. 민간의 집으로는 오죽헌, 선교장, 서백당, 육영수 생가, 홍명희 생가. 임청각 등이 있다. 마을로는 하회마을, 양동마을, 남사예담촌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대부분의 명문고택들은 산줄기 끝에 자리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명당을 찾는 첫 번째는 산봉우리를 보고 봉우리의 기운을 살핀 다음, 그 봉우리에서 이어진 산줄기가 잘 이어졌는지 점검하고, 산줄기 끝에 자리를 정하면 실패하지 않는다.
영축산(1,081m)은 경남 울산과 양산에 걸친 명산으로, 낙동정맥의 산줄기에 위치했다. 영축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억새 군락이 아름다우며, 우리나라 불교의 성지인 통도사를 품고 있다.
영축(靈鷲)"은 "신령스러운 독수리"라는 뜻인데, 석가모니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의 영취산(靈鷲山)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축산은 정상이 바위로 이루어졌으며, 네모난 상자처럼 생겨 토형산의 형태다. 다른 말로는 일자문성(一字文星) 또는 어병사(御屛砂)라 해서 극히 귀하게 여긴다. 이런 산이 보이면 왕후장상이 나며, 그 이름을 대대로 떨친다는 영험한 산이다.
영축산 정상에서는 3개의 산줄기가 파생되었다.
첫 번째 줄기는 통도사로 이어지고, 두 번째 줄기는 김무력 장군 묘, 세 번째 줄기는 비로암으로 이어진다.
위에서 생기가 뭉친 혈은 산의 꽃이니 나무의 열매와 같다고 했다. 이 말은 좋은 땅은 반드시 산봉우리에서부터 이어져야 하며, 꽃과 열매처럼 산줄기 끝에 생긴다는 뜻이다.
이때 산봉우리 모습이 곧 혈이 품고 있는 역량이 된다. 산이 장엄하면 장엄한 기운이 맺히고, 수려하면 수려한 기운의 혈을 맺는다. 반면에 봉우리가 추하고 옹색하며 빈약하면 그런 기운이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사찰 중 빼어난 산에서 이어져 산줄기 끝에 자리한 곳은 해인사, 부석사, 봉정사, 신륵사 등이 있으며, 명동성당 또한 남산의 산줄기 끝 지점이다. 민간의 집으로는 오죽헌, 선교장, 서백당, 육영수 생가, 홍명희 생가, 임청각 등이 있다. 마을로는 하회마을, 양동마을, 남사예담촌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대부분의 명문 고택들이 산줄기 끝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좋은 땅을 찾는 첫 번째는 산봉우리 기운을 살핀 다음, 그 봉우리에서부터 산줄기가 잘 이어졌는지 점검하고, 산줄기 끝에 자리를 정하면 실패하지 않는다.
첫째 줄기, 통도사
영축산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통도사이다.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6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불보사찰(佛寶寺刹)로 알려져 있다. 불보사찰이란 부처님 진신사리가 금강계단에 봉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통도사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는데, 금강계단에 봉안되어 있는 진신사리가 부처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곳 대웅전은 현판이 네 개가 있는데, 동쪽에는 대웅전, 서쪽에는 대방광전, 남쪽에는 금강계단, 북쪽에는 적멸보궁이라 되었다. 그중 금강계단은 흥선대원군 친필이다.
영축산 정상에서 이어진 산줄기는 지산마을을 지나면서 고갯마루를 만들고 다시 2~3개의 봉우리를 형성하여 중후한 형태로 이어지는데, 그 산줄기는 어김없이 사리탑 금강계단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통도사 내의 정확한 혈처는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금강계단이며, 그곳에 영축산의 기운이 응축된 것이다. 당시 자장율사는 풍수의 이치에 한 치의 오차 없이 자리를 정한 것이다.
이곳의 물길 양산천을 보면 설법전 앞에서 둥글게 감싸주었는데, 이 현상은 금강계단까지 이른 산줄기가 하천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양산천은 천왕문 앞에서 합수되어 서쪽으로 흐른다. 이때 물 빠지는 수구처에 높은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다. 이 봉우리는 물 빠짐을 막아주는 역할의 수구사로 화표(華表)라 한다. 화표는 그 상류에 길지가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며, 혈은 대지가 된다.
이렇듯 산과 물길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통도사는 영축산의 정기가 뭉친 곳이니, 대웅전에서 기도를 하면 영축산의 정기를 받는 것과 같다.
둘째 줄기, 김무력 장군 묘
영축산의 두 번째 산줄기는 김유신 장군 조부 김무력 장군 묘로 이어진다. 김무력은 금관가야 구형왕의 셋째 아들로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한 후 신라의 장군이 되어 큰 공을 세우면서 가문의 기틀을 세운다.
영축산 정상에서부터의 산줄기 흐름이 중후하면서도 절도가 있다.
묘 뒤편의 상태를 보면 펑퍼짐한 상태지만, 중심 부분이 미세하게 솟아 묘지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칫하면 간과하기 쉬운 용맥인데, 이를 초사회선(草蛇灰線)이라 한다. 초사회선이란 수풀 위를 지나는 뱀처럼 용맥의 흔적이 보일 듯 말듯 미미하게 이어진 것을 말한다. 대개 대혈은 자신의 흔적을 감추기 때문에 겉으로는 오히려 추하게 보인다고 했다.
묘 앞에는 넓은 ‘장밭뜰’이 있으며, 앞산은 웅장한 모습으로 병풍처럼 마주하고 있다. 참고로 장밭뜰은 봄이면 청보리와 유채꽃이 피고 가을이면 메밀꽃이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김무력 묘에서는 좌우에서 발원한 물이 묘 앞에서 합수된 후 600m가량 길게 빠져나간다. 이와 같은 경우 선흉후길(先凶後吉)하거나 또는 고향을 떠난 후에 발복한다고 했다. 당시와 같은 봉건사회에서는 고향을 떠나는 것은 가족과 이별하고 생활 터전을 잃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불리하게 여겼다.
김무력 장군 묘의 물길 탓인지 김무력의 아들 김서현은 당시로서는 변방인 지금의 진천지방 태수로 임명되어 경주를 떠나게 된다. 이때 김서현을 따라 왕실의 여인이 함께 도망친다. 그 여인은 진흥왕의 조카딸로 아버지(숙흘종)가 신분 차이가 난다 해서 결혼을 반대했으나 사랑을 선택하면서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시작된다.
그 여인은 후에 만명부인으로 불리며, 김유신을 낳고 김유신의 여동생 김문희는 김춘추(태종 무열왕)와 혼인해 문무왕을 출생한다.
신라의 영웅들이 김무력 장군 묘에서 영축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것이니 명당 중의 명당이다.
김무력(518~579) - 김서현(564~629 이후) - 김유신(595~673)
셋째 줄기, 비로암
비로암은 통도사의 부속 암자로 고려 때인 1345년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불은 비로자나불이며, 민간의 칠성 신앙을 수용한 북극전도 있다. 비로전 뒤에는 산정 약수가 있는데, 영축산의 정기로 이루어진 약수로 나쁜 마음을 버리고 청정한 마음으로 마시면 모든 병이 낫는다는 글이 있다.
암자는 인위적인 꾸밈이 없어 순수하면서도 정갈한 곳이다. 마치 수줍은 여인네처럼 다소곳한 모습인데, 이곳에 거처하는 스님들의 인품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곳에서는 누구에게나 점심 공양을 하는데, 약수로 지은 밥맛이 좋을 뿐 아니라 나물 반찬이 깔끔한 곳이다.
비로암까지 이르는 산줄기를 보면 영축산 정상 바위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우측 능선이 활처럼 감싸 주면서 제비 둥지와 같은 지형을 이루었다. 우측의 백호가 크게 감싸주었으니 부자 터이고, 여자들에게 유리한 곳이다.
비로암 우측에는 예쁜 봉우리가 굽어보고 있으니 자애로운 어머니가 지켜주는 것 같다. 전면에는 낙동정맥의 봉우리가 멀리까지 보이는데, 그 풍광이 그윽하여 눈이 저절로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필자가 다녀 본 사찰 중 마음을 편하게 하는 최고의 암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 오르고 싶은 곳이다.
올라오는 길에는 소나무 두 그루가 마치 포옹하듯 껴안고 있는데, 사랑나무라 이름하였다.
신비로운 기운을 간직한 영축산은 통도사와 비로암이라는 열매를 맺고 마침내 김유신이라는 불세출의 영웅을 길러낸 영산(靈山)이다.
아! 뉘라서 풍수가 미신이라 하겠는가.
그리고 어찌 세 곳뿐이겠는가.
https://youtu.be/5FjFu_BQMz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