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은 조선 시대부터 모든 민중이 함께하는 다목적 공간이었다. 정치가 바르지 못할 땐 백성들이 상소를 올리던 곳이었고 경사스런 날은 광장에서 흥겨운 공연을 했으며,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일벌백계로 처형의 본보기를 보여주던 곳이다.
젊은이들은 청운의 꿈을 꾸던 곳이고 아이들에게는 놀이터였으며, 여행객들은 인근 피맛골에서 한잔 술에 피로를 풀던 곳이다. 이렇듯 광화문광장은 온 백성이 희로애락을 함께하던 장소로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2002년 월드컵 때는 구름 같은 관중이 모여 응원을 하였고 정치가 바르지 못할 땐 촛불집회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곤 했다.
2023년 10월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해 대폭 보수하여 새롭게 문을 열었다.
광화문광장 초창기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 좌우로 도로가 있었으나 세종문화회관 쪽 도로를 없애고 한쪽으로 도로를 합쳤다.
특히 월대(月臺)를 복원하여 광화문 앞을 확장한 것이 가장 두드러진다. 월대는 궁궐의 중요한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널찍한 단으로 달을 바라보는 곳이라는 월견대(月見臺)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궁궐에서의 큰 행사 때 주로 사용되었다.
광화문 월대는 백성과 임금이 직접 소통하던 곳으로 고종 3년 때인 1866년 만들어졌다. 일제 강점기 때 한양에 전차가 운행되면서 땅속에 묻혀 있었던 월대가 100년 만에 세상에 다시 드러난 것이다.
월대는 길이 약 50m, 폭 30m, 높이 0.7m이며, 가운데 부분은 임금이 다니던 어도(御道)이다. 임금이 경복궁에서 광화문을 나와 이곳 월대에 앉아 백성들과 소통하던 곳이다.
월대 앞부분에 있는 서수상(瑞獸像)은 왕이 정치를 잘할 때 나타나는 상서로운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서수상에는 임금이 정치를 잘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것이다.
서수상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수집하여 호암미술관에 있었으나 국가에 기증하면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광화문 앞 해치는 월대가 복원되기 전에는 담장에 바짝 붙어 있어서 외롭고 사나운 듯한 모습이었으나 50m 앞으로 나오자 익살스럽고 친근한 형상으로 바뀌어 많은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명소가 되었다.
해치는 해태상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관리들이 경복궁으로 들어올 때 말에서 내리는 하마비(下馬碑) 역할이었다. 또 해태는 물을 상징하는 신수(神獸)이기 때문에 경복궁을 관악산의 화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해치가 본래 상징하는 것은 시시비비를 가려 불의를 응징하고 정의를 수호하는 동물이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세운 광화문 앞 해치는 길 양옆에 늘어선 육조의 관아를 지켜보고 있는데, 이는 관료들의 높은 도덕성을 기대하는 염원이 담긴 것이다. 실제로 광화문 육조거리 사헌부 관리들은 관복에 법과 정의를 상징하는 해치 모습의 흉배가 달려있어 청렴결백을 관리의 덕목으로 삼았다.
월대가 생기기 전에는 광화문 앞 도로가 직선이어서 수많은 차가 빠르게 지나 어수선한 곳이었다. 마치 신호에 걸릴까 빠른 속도로 가속페달을 밟곤 했었다. 하지만 월대가 생기면서 직선의 도로가 유선형으로 바뀌자 차량도 조심스럽게 다니게 되었다.
그로 인해 광화문 앞에는 넓은 완충지대가 생겼고 반달 같은 도로는 궁궐을 감싸는 모습이 되었다. 예전의 일직선 도로는 궁궐을 무시하고 지나는 것 같았지만 현재는 월대로 인해 친절한 도로로 바뀐 것이다.
관람객도 예전에는 광화문 출입이 천덕꾸러기처럼 옹색했으나 이제는 정면에서 월대를 통해 기품있게 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
월대가 없을 때는 모두가 각자의 이해득실만 따지며 조급했으나 이제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되었다. 비로소 경복궁도 궁궐로서의 위상을 지키게 되었으니 월대를 복원하자 국격(國格)까지 훨씬 업그레이드된 것 같은 생각이다.
참고로 광화문광장에서는 자하문고개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조선 초 풍수인 윤신달은 그곳이 함몰해 북서풍이 치는 것을 우려한 바 있다. 또 북악산의 머리가 동쪽을 향하고 있는 것도 뚜렷하게 볼 수 있는데, 북악산이 궁궐과 청와대를 외면한 형상이다.
경복궁과 청와대는 주산의 보호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북서풍으로 인해 풍파가 많을 수밖에 없으니 이것이 필자가 그토록 청와대를 옮길 것을 주장한 이유이다.
광화문광장에는 탁월한 지도력의 세종대왕과 불패 신화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자랑스럽게 있다. 광장 지하에는 한민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 두 분의 기념관이 있으니 반드시 둘러볼 것을 권한다.
광장 곳곳에는 특히 어린이들이 많은데, 이보다 좋은 교육의 현장은 없을 것이다.
광화문광장 바로 인근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는 교보문고가 있다. 창업주 신용호 회장은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긴 바 있다. 그리고 피맛골에서는 막걸리와 빈대떡으로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다.
광화문광장을 둘러보면 풍수를 공부할 수 있고 우리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두 분의 발자취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책 속에 파묻혀 자신의 교양을 한껏 고취 시킬 수 있으니 일석삼조의 여행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느 순간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결승에 오르면 광화문광장에 백만 인파가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을 펼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https://youtu.be/oDCxiisaHQ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