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카지노산업 변천사 (1)
카지노사업 탄생부터 위기, 그리고 오해
이기원의
Casino Inside
국내 카지노산업 관련 정보가 폐쇄적으로 유통돼 온 탓에 세간의 오해가 많았다. 그 현실을 개선
하기 위해서 이 땅에 합법적인 카지노사업이 탄생한 1967년부터 복합리조트로 진화해 오고 있는
오늘날까지의 변천사를 정리해 보는 것이 유효하다는 생각에 객관적 시각으로 정리해 봤다.
사행산업이란?
카지노산업은 오늘날 대표적인 사행산업으로 사회적 부작용을 양산한다는 비난과 관광레저 관점에서
각광(스포트라이트)을 동시에 받는 양가성을 갖는다. 따라서 카지노산업 관련 정책은 규제와 육성이란
상반된 제도가 공존해야 하는 쉽지 않은 영역이다.
사행행위는 ‘사행심(요행을 바라거나, 노력 없이 의외의 이익을 얻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라는 인간의 태
생적 심성에 뿌리를 둔 것으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놀이문화의 일종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형태와 명칭은 다양하지만 늘 인간 세상에 존재해 왔다.
사행행위의 사전적 정의가 ‘우연성이나 운에 의해 재산상의 이익이나 손실이 행위’라는 맥락에서, 이러
한 행위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적인 경제활동을 ‘사행산업’이라고 한다면 국내 사행산업에는 카
지노,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소싸움 등이 있다.
미비한 제도적 환경 속에 출범한 카지노산업의 한계
전술한 바와 같이 ‘카지노산업’이란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하는 까닭에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철저한
제도적 안전장치를 전제로 허용돼야 하는 것이 카지노산업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관광 선진국들의 보편
적 현상이다. 이들에게는 오랜 시간 치열한 논쟁을 수반한 숙의 과정이 있었다.
Ⅰ. 카지노산업의 이해
Ⅱ. 산업의 역사(변천사)
Ⅲ. 정책적 고찰
Ⅳ. 국내외 복합리조트 탐방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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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내 카지노산업이 출범했던 과거를 돌아보면, 졸속한 정책
결정에 따른 시행착오가 예견됐던 과거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
다. 즉, 경제개발을 위해 절실하게 필요했던 ‘외화획득’이란 이름으
로 숙의 과정을 생략하고 불완전한 제도적 환경 속에 개문 발차를
했다.
카지노산업의 근거법
‘복표발행 현상 기타 사행행위 단속법’의 제정
과도한 사행행위 내지는 사행산업의 사회적 부작용을 막고자 대부
분 국가에서 이와 관련한 법적 규제 제도를 운영한다. 우리나라 경
우에도 형법 제 23장에서 ‘도박과 복표에 관한 죄’를 규정, 원칙적
으로 사적 도박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나, 예외적으로 정부가 공익
목적으로 허가한 일부 업종(카지노, 경마, 스포츠 토토 등)을 합법
화하고 있다.
국내 카지노 설립의 법적 근거가 된 최초의 법률은 1961년에 사회적
으로 만연된 과도한 사행행위를 금지하고자 제정된 ‘복표발행 현상
기타 사행행위 단속법’인데, 동법을 1962년에 외국인을 상대로 하
는 오락시설로서 외화획득에 기여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
해 이를 허가할 수 있도록 개정함으로써 우리나라에 카지노를 설립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 개정법을 근거로 1963년에 슬
롯머신 사업이 외국인 출입이 많은 관광호텔에 최초로 영업을 개시
했고, 1967년에는 인천 올림포스호텔에 국내 제1호 카지노가 설립
됐다.
그런데 국내 카지노산업은 초기(1967~1969)에 슬롯머신 사업과 동
일하게 내무부 치안국 산하의 경찰조직에서 관리하고 또한 내국인
출입이 허용됐으나, 이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이 부각되면서 1969년
에 전술한 ‘복표발행 현상 기타 사행행위 단속법’의 개정으로 외국
인 전용 사업으로 변경됐다. 동일한 근거 법규가 적용되고 같은 경
찰조직이 관리했던 이런 과거사가 내국인 출입이 줄곧 허용된 슬롯
머신 사업과 외국인 전용 국내 카지노산업이 과거에 절찬리에 방영
된 ‘모래시계’란 드라마에서 보았듯이 유사한 업종으로 세간에 오인
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국내 카지노산업은 초기 2년간만 내국인 출입이 가능했음.
*1994년 관광진흥법 개정 전까지는 국내 카지노에 슬롯머신은 없었음.
초기 카지노가 인천과 서울에 설립된 배경
카지노산업이 탄생한 1960년대 말은 우리나라 총수출액이 10억 달
러 정도에 불과했으며, 반도 국가인 우리나라의 외래객 방문 루트
도 항만과 공항에 한정됐다. 따라서 초기인 1967년에 제1호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입지 선정 시에 자연스레 외항선의 입출입이 빈번한
인천항에 인접한 올림포스호텔이 선정될 수 있었다.
올림포스호텔은 1965년에 상이군경협회 회장인 유화열 씨가 대한
올림포스 호텔(사진 출처_ 인천광역시 중구청)
파라다이스 카지노 워커힐 개장(사진 출처_ 파라다이스 그룹 홈페이지)
인천 올림포스 호텔(사진 출처_ 파라다이스그룹 홈페이지)
124 + Hotel & Restaurant 민국의 관문인 인천항 인근에 민간자본을 투자해서 만든 최초의 대형호텔이었다.
초기 경영난에 봉착한 유 회장은 그 돌파구로 수익성이 좋다는 카지노 사업에 착
안하면서 당시 관광협회 이사였던 전락원 씨의 조력 하에 한국 최초의 카지노 사
업허가를 받았다.
당시 관계 당국을 설득하는 논리로는 첫째, 민간자본으로 만든 대형호텔을 살려
야 한다는 것. 둘째, 카지노 사업 수익의 일부를 빈곤한 6.25 참전 상이용사 가족
의 복지 지원에 쓰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2호 카지노가 허가된 워커힐호텔은 1960년 초에 주한 미군의 휴양시설
로 공기업인 한국관광공사에 의해 설립됐다. 당시에 주한 미군들은 한국에 쓸만
한 오락시설이 부족했다는 이유에서 휴가 등을 주로 가까운 일본으로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에 관광공사는 휴양시설이지만 여러모로 부족했던 여가 시설
을 보완하는 동시에 외화획득에도 기여할 수 있는 카지노 시설의 도입을 추진, 마
침내 국내 카지노 사업의 본격적 도약의 초석을 놓았다. 물론 카지노 사업 경험이
없는 관광공사는 경영 일체를 올림포스 카지노의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전략원
회장에게 위탁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일본 관광객의 폭증으로 성장 궤도 진입
1970년대의 일본은 장기적 경제활황으로 국민소득이 높아짐에 따른 해외 관광 수
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문화는 물론 역사적으로 익숙하면서 동시에 지리적
으로도 접근성이 용이한 우리나라에 일본인의 방한이 ‘깃발부대’란 단체객 형태로
물밀듯이 몰려오는 호황기와 맞물리면서 국내 카지노산업은 날개를 달며 본격적
인 성장기에 진입했다.
전례 없는 호황기를 누리면서 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60년대 말에 2개소에 불
과했던 카지노 사업장이 8개소로 증가하며 양적 확대가 실현됐다.
*1967년 인천 올림포스호텔, 1968년 서울 워커힐호텔, 1971년 속리산 관광호텔, 1975년 제주 칼호텔, 1978년
부산 해운대호텔, 1979년 경주 코오롱호텔, 1980년 속초 설악파크호텔, 1985년 제주 하얏트호텔 개장
제주지역 카지노 규제 완화로 과잉 공급의 부작용 야기
’90년대 초에 시행된 제주지역의 카지노 규제 완화 조치란 무지한 정책집행의 결과
로 단기간에 제주도에 6개의 신규 카지노가 증설됨으로써 공급과잉의 부작용(경
영환경 악화, 불법 영업행위 등)이 생성돼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제주지역 카
지노산업의 고질적 병폐로 남아있다.
카지노산업은 수요와 공급을 적정 수준에서 유지하는 ‘허가 정수제’라는 제도적
장치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돼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과거 정책 당국의 무지
와 정경유착(설)의 결과로 특정 지역의 공급과잉이 현존하고 있다.
*1990년 제주도의 그랜드호텔, 남서울호텔, 오리엔탈호텔, 서귀포 칼호텔,
1991년 제주신라호텔, 라곤다호텔 개장
한중 수교로 중국 고객 신규 유입으로 성장세 가속화
88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한중간 교류가 점증하면서 중국 고객의 신규 유입으
로 국내 카지노산업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게 됐다. 이로써 국내 카지노산업은
고객의 일본 편중 현상이 자연스레 완화되며 중국과 일본이란 양 날개로 비상하
는 호시절을 맞았다. 게다가 1992년에 한중간 정식으로 국교가 수립되면서 중국
발 호경기는 더욱 가속화됐다. 특히 불편한 역사적 배경이 있는 양국 국민 간의 심
워커힐 호텔 더글라스 하우스
워커힐 호텔 아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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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적 대결 양상이 게임 중에 표출되면서 베팅 금액이 경쟁적으로 증
액돼 카지노 매출에 순기능을 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과거 불가피했던 사업 관행의 공론화로 찾아온 위기
지난 4반세기 동안 성장 가도를 쉼 없이 달려온 국내 카지노산업은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 초기인 1993년에 심대한 위기를 맞았다. 과거
에는 신정부가 들어서면 관행적으로 민심 회복 차원의 사회정화 정
책으로 조직폭력 세력의 척결을 단행했는데, 당시 YS 정부는 지역
폭력배들에게 자금을 지원한다는 혐의가 있는 슬롯머신 사업을 타
깃으로 삼아 슬롯머신 영업을 전면 폐지하는 조치를 전격적으로 취
했다. 당시에 알려진 바로는 ‘정덕진-정덕일’ 형제가 주도하는 슬롯
머신 업계매출의 10%를 해당 지역 폭력조직에 배당해 든든한 뒷배
로 삼아 공생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슬롯머신 업계에 떨어진 이 날벼락이 시간이 지나며 파라다
이스그룹이 주도하던 국내 카지노 업계로 비화되며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확전됐다. 당시 각종 미디어의 보도에 따르면, 폭탄을 맞은
슬롯머신 업계에서 관계 혼자만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카지노
업계의 비리를 공론화하면서 카지노산업에 예기치 않은 위기를 촉
발했다는 것이다.
각종 매체의 선정적 고발 기사의 영향으로 당시 사정 당국은 카지
노 업계를 향한 내사와 집중 수사를 통해 주요 카지노 사업자들의
‘탈세’와 ‘외환관리법 위반’이란 불법 사실을 적발하고 관련자들의
유죄 판결과 탈루한 세금의 추가징수라는 의법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로 카지노 사업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사회 전반에 조
성되면서 국내 카지노산업은 절대절명의 위기에 몰리게 됐다.
당시 문제가 된 불법 행위는 해외 카지노산업에서는 합법적으로 시
행되는 카지노 영업 관련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는 제도적 미비로 당
시의 현행법상 불법이었다. 돌아보면 고객 유치를 위해 해외 카지노
사업자와 경쟁이 불가피한 국내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자의반 타의
반’으로 ‘울며 겨자 먹기’식의 편법적 영업을 한 탓에 억울함을 토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위의 사안들을 상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매출 누락에 의한 탈세 건이다. 모든 사업자는 소정의 기간에
발생한 매출액을 의무적으로 국세청에 신고한다. 대다수의 업종들
은 매출 발생 시에 발행하는 영수증 등의 증빙으로 세무 당국에 노
출돼 매출 누락의 여지가 적다. 그러나 특이 업종인 카지노업은 고
객이 신분 노출을 피하기 위해 영수증 발행을 원하지 않는 탓에 사
업자가 임의로 매출 축소를 자행할 여지가 있었다. 불투명한 사업
관행이 만연하던 시절인 과거에 카지노 사업자들이 선의 또는 악의
적 필요에 따라 편법적으로 매출 누락을 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둘째, 외환관리법 위반에 의한 외화 도피 건이다. 전 세계적으로 카
지노 업계에서는 고객 기여 실적과 신용도에 준해 충성고객들에게
적정 금액의 신용대출이 영업 관행으로 예나 지금이나 통용되고 있
다. 그러나 당시의 우리 외환관리법상에는 이 고객 크레딧 제도가
불법이었다.(*물론 지금은 합법화돼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외국
사업자와 무한 경쟁을 해야하는 사업자 입장에서는 편법을 감수하
며 고객에게 신용대출을 해주고 후에 상환을 받아 매출에 반영한
다. 그런데 문제는 해외에서 상환받은 대출금을 국내로 반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유는 신용대출 발생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었
다. 그 결과로 본의 아니게 사업자들의 해외 사무소에 수금한 외화
자금이 잔존한 것이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진실)을 알게 된다면 일반 대중의 카지노산업에
대한 오해가 조금은 풀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