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4대 명재상의 한 사람으로 정승의 지위에 24년간, 그 중 영의정에 18년간 있으면서 농사의 개량과 예법의 개정, 서얼의 천역(賤役) 면제 등 치적을 쌓았으며, 소신이 굳으면서도 원만하고 청렴하여 청백리에 뽑히는 등 숱한 일화를 남겼다.
세종을 보필하며 명정승으로 이름을 떨친 황희는 서얼(庶孼·첩의 자손) 출신에 세종의 왕위 등극을 반대한 인물이었다. 세종은 탄핵 상소가 끊이지 않은 황희를 감쌌고, 황희는 탁월한 사태파악 및 인재 발굴 능력과 함께 국왕과 신료 사이에서 저울추 같은 중용의 정치로 세종에게 보답했다.
황희 정승의 일화
어느 여름날, 시골길을 지나던 황희는 잠시 그늘에 앉아 쉬고 있었다. 때마침 한 농부가 누런 소와 검은 소 두마리를 데리고 일을 하고 있었다. 이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황희는 뙤약볕에서 고생하는 농부가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잠시 쉬었다 하라며 말을 건냈다. 농부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황희는 별 뜻 없이 이렇게 물었다.
"두마리의 소 중에서 어떤 놈이 더 일을 잘 하오?"
그러자 농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황희의 옷소매를 끌고 밭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황희는 뜬금없는 농부의 태도에 어리둥절했지만, 무슨 곡절이 있겠거니 하고 농부를 따라갔다. 밭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이르자, 농부는 황희의 귀에다 대고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누런 놈은 일도 곧잘 하고 시키는 대로 말도 고분고분 잘 듣는데, 검은 놈은 꾀가 많아 다루기가 힘들답니다."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하려는 줄 알고 따라온 황희는 어이가 없어 다시 물었다.
"아니 노인장, 그게 무슨 비밀이라고 된다고 일부러 여기까지 와서 말씀하시오?"
그러자 농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리 미물이라 할지라도 저를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안답니다. 내가 만일 아까 그 놈들 근처에서 이 얘기를 했다면 그 놈들이 다 들었을 것 아닙니까? 어떻게 사람의 말을 짐승이 알아들으랴 싶지만, 나는 내 집일을 애써 해 주는 그 놈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소."
농부의 사려 깊은 행동에 감동을 받은 황희는 그의 일생 동안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조심했다고 한다. 그냥 가볍게 흘려 버릴 수도 있는 이야기를 인생의 근본으로 삼은 것이다.
또한 황희는 공적인 일에는 엄격했으나 개인적으로는 온후하고 자상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와 관련된 일화로, 하루는 어린 종 둘이 다투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황희와 마주쳤다.
민망해진 그 중 하나가 상대방이 잘못해서 싸움이 벌어졌다고 일렀다. 어린 종에게서 자초지종을 다 들은 황희는, "그래, 네 말이 옳구나." 하고 다독거려 주었다. 그러자 다른 종은 주인이 상대의 편을 드는 줄 알고 자신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황희는 그 말을 다 듣고 나서, "그렇다면 네 말도 맞구나." 하고 둘을 타일러 돌려 보냈다. 이때 방 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그의 부인이 타박하기를, "아니, 대감께서는 이 놈도 옳다, 저 놈도 옳다 하시니 어찌 그러십니까? 옳고 그름을 확실히 밝혀 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한 나라의 정승께서 그리도 사리가 분명치 않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하고 말했다.
그러자 황희는 "맞소. 부인 말씀도 참으로 맞소." 하고 대답하여, 그만 부인도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고 한다.
집에서 부리는 어린 종이라 할지라도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황희의 세심한 배려를 엿볼 수 있는 일화라 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젊은 시절 깨달은 삶의 자세를 일생 동안 잃지 않고 지켜온 한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황희의 타인에 대한 배려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일화는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어느 날 황희는 집에 온 손님을 맞아 조촐하게 술상을 차려 놓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린 아이 몇명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며 황희의 상투와 수염을 잡아당기고 상 위에 놓인 음식까지 마구 집어 먹는 게 아닌가! 그러나 황희는 아이들을 나무라지 않고, "아이고, 이놈들 보게. 오냐, 오냐." 하면서, "손님이 계시니 너희들은 나가 놀아라." 하고 아이들을 달래서 내보내고는 별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대화를 계속했다.
손님은 내심, '정승 집에서 아이들을 버릇없이 키우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대감께서는 손자들을 굉장히 귀여워하시나 봅니다." 하고 짐짓 비꼬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황희는 "아까 그 놈들은 우리 집 노비의 자식들인데 나를 아주 잘 따른다네. 결례가 되었다면 미안하이." 하고 대답했다.
황희의 말을 들은 손님은 종의 자식에게까지 친부모처럼 자상한 그의 모습에 진심으로 감복했다고 한다.
또 하루는 당대 명필 중의 한사람인 이석형(李石亨)이 황희의 집에 들러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황희가 책 한권을 꺼내 놓고 새로 표지를 만들었으니 제목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이석형은 몇번 거절을 하다가 황희가 하도 정중하게 부탁하는지라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제목을 써 주었다.
그런데 조금 후에 한 아이가 방 안으로 들어와 저 혼자 놀다가 방금 이석형이 제목을 써 준 책 위에 오줌을 싸고 말았다. 이것을 본 황희는 노여운 기색도 없이 아랫사람을 부르지도 않고, 직접 방바닥과 책에 묻은 오줌을 닦았다. 그러고는 아이의 옷을 벗겨 둘둘 말아 아이의 손에 쥐어 주면서, "괜찮아, 괜찮아. 이제 엄마한테 가서 옷을 갈아 입혀 달라고 하거라." 하며 우는 아이를 달래서 내보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석형이 오히려 안절부절못하면서 어찌할 줄을 모르자, 황희는 미안한 개식으로 이석형에게 사과를 하였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방문 밖에서 여종이 황망한 목소리로 죄를 청하는 것이 아닌가! 황희의 방에서 오줌을 싼 아이는 제 어미가 일하는 틈에 그 방으로 들어온 종의 아이였던 것이다. 황희는 사죄하는 여종에게 오히려, "철없는 아이가 한 일이니 신경 쓰지 말아라." 하고 따뜻한 말투로 위로해 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이석형은 황희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깊어져 그의 앞에서는 항상 머리를 숙이고 예를 다했다고 한다.
사실 황희는 천인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겨 천역(賤役)을 가볍게 해 주려는 방안에 골몰하였고, 면천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이렇듯 귀천을 따지지 않고 타인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그 시대의 일반적인 양반들의 모습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황희는 당시 노비 출신 중에서도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관직에 발탁하기도 했는데, 조선이 업격한 신분제 사회였음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파격적인 인사였던 것이다.
실제로 황희는 자기 집에서 부리던 어린 노비가 학문에 자질을 보이자, 그 아이를 면천시키고 경제적 도움까지 주면서 이르기를, "너는 열심히 공부하면 나라의 기둥이 될 수 있으니, 너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가서 학문을 연마하여라. 그리고 지금부터 너와 나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니, 나중에 혹 만나게 되더라도 절대 아는 체를 하면 아니 된다." 하고 다짐을 하여 내보냈다.
십 수년 후, 그 노비는 과거를 보러 나왔다가 마침 그곳에 시험관으로 나와 있던 황희와 만났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서 황희에게 자신을 밝히고 인사를 하려고 하자, 그를 알아본 황희는 시험관에게 잘 보이려고 인사를 하는 것은 받아 줄 수 없다면서 그를 꾸짖고 뿌리쳐 버렸다. 이것은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의 10년 공부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한 황희의 깊은 뜻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노비 출신의 젊은 선비는 시험에 급제하였으며, 황희는 그를 다로 불러내어 "다시는 나를 아는 체하지 말 것이며, 나도 너를 잊었노라. 그러니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정진하여 오로지 나라를 위한 일에 노력을 다하라." 하고 거듭 당부한 후 돌려보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