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에 가볍고 방탕한 선비가 눈에 먼지(혹은 신의 벌)가 들어간 것을
계기로 마음을 닦아 회개하고, 눈동자 속에 사는 작은 존재들 덕분에
눈을 다시 뜨게 된다는 신비로운 이야기입니다.
长安士方栋,颇有才名,而佻脱不持仪节。
장안의 선비 방동은 재주와 명성이 자못 높았으나,
경박하고 몸가짐과 예의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每陌上见游女,辄轻薄尾缀之。
매번 길거리에서 노니는 여인을 볼 때마다
가볍고 단정치 못하게 그 뒤를 졸졸 쫓아다니곤 했습니다.
清明前一日,偶步郊郭。
청명절 전날, 방동은 우연히 교외의 성곽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见一小车,朱茀绣幰,青衣数辈款段以从。
이때 붉은 말 가슴걸이와 수놓은 휘장을 두른
작은 마차 한 대를 보았는데,
푸른 옷을 입은 여러 명의 하인들이
느릿느릿 걷는 말을 타고 따르고 있었습니다.
内一婢乘小驷,容光绝美。
그 안의 한 여종은 작은 암말을 타고 있었는데
그 용모가 절세의 미인이었습니다.
稍稍近觇之,见车幔洞开,内坐二八女郎,红妆艳丽,
尤生平所未睹。
방동이 조금씩 다가가 몰래 살펴보니
마차의 휘장이 활짝 열려 있었고,
안에는 묘령의 여인이 앉아 있었는데
붉은 화장이 매우 화려하고 고와,
참으로 평생에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미색이었습니다.
目炫神夺,瞻恋弗舍,或先或后,从驰数里。
방동은 눈이 부시고 넋을 잃어, 사모하여 바라보며
차마 떠나지 못하고, 혹은 앞서거니 혹은 뒤서거니 하며
계속 수레를 따라 달렸습니다.
忽闻女郎呼婢近车侧,曰:
“为我垂帘下。何处风狂儿郎,频来窥瞻!”
그렇게 몇 리 길을 가다가 문득 수레 안의 여인이
여종을 마차 곁으로 불러 대고 말하기를,
"나를 위해 휘장을 쳐다오.
어디서 저런 미친 사내놈이 자꾸 와서 훔쳐보는가!"라고
하였습니다.
婢乃下帘,怒顾生曰:“此芙蓉城七郎子新妇归宁,
非同田舍娘子,放教秀才胡觑!”
여종이 이에 휘장을 내리고는 화가 나 방동을 곁눈질하며
말하기를, "이분은 부용성 일곱째 서방님의 새 신부님으로
지금 친정에 가시는 길이다. 시골뜨기 아낙네와는 다르니,
너 따위 수재 놈은 함부로 훔쳐보지 말아라!" 하였습니다.
言已,掬辙土扬生。
말을 마치자 마자 그녀는 마차 바퀴 자국에서
흙을 한 움큼 집더니 방동에게 뿌렸습니다.
生眯目不可开。
방동은 삽시간에 눈이 멀어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才一拭视,而车马已渺。
그가 눈을 비비는 동안,
마차와 말들은 이미 아득히 사라져갔고
그 후 다시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惊疑而返,觉目终不快,
놀라고 또 의아해하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눈이 끝내 개운하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倩人启睑拨视,则睛上生小翳,
사람을 시켜 눈꺼풀을 벌리고 들추어 보게 하니,
검은 눈동자 위에 작은 백태가 생겨나 있었습니다.
经宿益剧,泪簌簌不得止;
하룻밤을 지내자 증상이 더욱 심해져 눈물이 쏟아지며
멈추지 않았습니다.
翳渐大,数日厚如钱;右睛起旋螺。
백태가 점점 커지더니, 수일 만에 동전만 한 크기로 자라났고
오른쪽 눈동자에는 나선형의 달팽이 모양의 꺼풀이
일어났습니다.
百药无效,懊闷欲绝,颇思自忏悔。
백 가지 약이 모두 효험이 없자,
방동은 답답하고 괴로워 죽을 것만 같았고,
스스로 깊이 참회하고자 하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闻《光明经》能解厄,持一卷浼人教诵。
마침 ‘금광명경’을 읽으면
재앙을 풀어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한 권을 구하여 다른 사람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初犹烦躁,久渐自安。
처음에는 마음이 오히려 번잡하고 조급했으나,
차츰 시일이 흐르면서 마음이 서서히 편안해졌습니다.
旦晚无事,惟趺坐捻珠。
아침저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직 가부좌를 틀고 앉아 염주를 굴리며 불경을 외웠습니다.
持之一年,万缘俱净。
이를 1년 동안 지속하니 온갖 세상의 인연이 다 깨끗해졌습니다
忽闻左目中小语如蝇,曰:“黑漆似,叵耐杀人!”
하루는 갑자기 왼쪽 눈 속에서 파리가 왱왱거리는 듯이
작은 말소리가 들려오기를, "여기는 캄캄하기가 칠흑 같으니,
참으로 숨막혀 죽을 것만 같아!" 하였습니다.
右目中应曰:“可同小遨游,出此闷气。”
그러자 오른쪽 눈 속에서 대답하기를,
"우리 함께 조금 나가 노닐며
이 답답한 기운을 내뿜는 것이 좋겠소"라고 했습니다.
渐觉两鼻中蠕蠕作痒,似有物出,离孔而去。
방동은 점차 두 콧구멍 속이 꿈틀거리며 가려워지더니,
마치 어떤 무언가가 콧구멍에서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久之乃返,复自鼻入眶中。
한참 뒤에야 그 물체는 다시 콧속으로 돌아왔고
다시 코를 거쳐 눈동자 쪽으로 움직여갔습니다
又言曰:“许时不窥园亭,珍珠兰遽枯瘠死!”
그들은 눈 속으로 다시 되돌아오자 속삭이기를,
"오랫동안 정원과 정자를 살펴보지 못했더니,
진주란이 그새 시들어 죽어가는구려!" 하였습니다.
生素喜香兰,园中多种植,日常自灌溉,自失明,久置不问。
방동은 본래 향기로운 난초를 좋아하여 정원에 많이 심어두고
날마다 몸소 물을 주었으나, 눈이 먼 뒤로는
오랫동안 내버려 두고 묻지 않았던 터였습니다.
忽闻此言,遽问妻兰花何使憔悴死?
문득 이 말을 듣고는 급히 아내에게 묻기를,
"난초 화분을 어찌하여 시들어 죽게 만들었소?" 하였습니다.
妻诘其所自知。因告之故。
아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고,
방동이 그 까닭을 말해주었습니다.
妻趋验之,花果槁矣,大异之。
아내가 급히 정원으로 가서 살펴보니
난초가 과연 말라 죽어 가고 있었으므로
크게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静匿房中以俟之,见有小人,自生鼻内出,大不及豆,
营营然竟出门去。
그녀는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보려고
방안에 조용히 숨어 동정을 살피고 있었는데,
콩알보다 작은 난쟁이가 방동의 코 안에서 튀어나오더니
부지런히 바깥을 향해 나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渐远遂迷所在。
하지만 난쟁이는 곧 멀어져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俄连臂归,飞上面,如蜂蚁之投穴者。
조금 뒤에 두 명의 난쟁이가 서로 팔을 끼고 돌아오더니
방등의 얼굴로 날아오르는데,
마치 벌이나 개미가 굴로 뛰어드는 것 같았습니다.
如此二三日。
이렇게 들락날락하는 사이 이삼일이 지났습니다.
又闻左言曰:“隧道迂,还往甚非所便,不如自启门。”
왼쪽 눈에 있는 난쟁이가 말하기를,
"다니는 통로가 멀고 굽어 돌아서 오고 가는 것이
심히 편하지 않으니, 차라리 우리끼리 문을 하나
만드는 것이 낫겠소" 하였습니다.
右应曰:“我壁子厚,大不易。”
그러자 오른쪽 난쟁이가 응답하기를, "내 쪽 벽은
너무 두꺼워서 문을 뚫기가 쉽지 않소"라고 했습니다.
左曰:“我试辟,得与尔俱。”
그러자 왼쪽 난쟁이가 말하기를,
"내가 시험 삼아 길을 열어볼 터이니, 만약 성공하면
우리 둘이 함께 문을 사용합시다“라 고 했습니다.
遂觉左眶内隐似抓裂。
이들의 말이 끝나는 순간, 방동은 왼쪽 눈 언저리 안쪽에서
뭔가가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少顷开视,豁见几物。
그렇게 조금 뒤에 방동은 눈을 떠서 바라보니,
시야가 활짝 트이며 책상 위의 물건들이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喜告妻,妻审之,
방동은 기뻐하며 아내를 불러 그 사실을 말하니
아내가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则脂膜破小窍,黑睛荧荧,才如劈椒。
원래 시선을 가로막고 있던 백태가 찢어지며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결과 검은 눈동자가
쪼갠 초피나무 열매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越一宿,幛尽消;
하룻밤을 더 자고 나니 눈을 가렸던 백태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细视,竟重瞳也。
자세히 살펴보니 한쪽 눈 안에 두 명의 난쟁이가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但右目旋螺如故。
다만 오른쪽 눈은 달팽이 모양이 예전과 같았습니다.
乃知两瞳人合居一眶矣。
벙동 부부는 그제야 두 난쟁이가 한 눈 구석에 합쳐서
살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生虽一目眇,而较之双目者殊更了了。
방동은 비록 한쪽 눈이 멀었으나, 두 눈을 가진 자보다
오히려 훨씬 더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由是益自检束,乡中称盛德焉。
이로 말미암아 그는 더욱 스스로를 단속하고 행동을 삼가니,
고을 안에서 덕이 높은 사람이라고 칭송하게 되었습니다.
异史氏曰:
이사씨(저자 포송령 자신을 지칭한다)는 말합니다.
“乡有士人,偕二友于途,
"시골에 어떤 선비가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遥见少妇控驴出其前,戏而吟曰:‘有美人兮!’
멀리서 어떤 젊은 아낙네가 나귀를 몰고 가는 것을 보자,
장난삼아 시를 읊조리기를
‘아름다운 여인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顾二友曰:‘驱之!’
그리고 두 친구를 돌아보며
‘말을 몰아 저 여자를 쫓아가자!’라고 했습니다.
相与笑骋,俄追及,乃其子妇,
서로 웃으며 말을 달려 쫓아가서 보니,
다름 아닌 자신의 며느리였습니다.
心赧气丧,默不复语。
그는 부끄럽고 기가 죽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友伪为不知也者,评骘殊亵。
두 친구들은 알지 못하는 체하며
그 여자의 용모에 대해 외설스럽게 품평을 해댔습니다.
士人忸怩,吃吃而言曰:‘此长男妇也。’
선비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며 더듬거리며 말하기를,
‘이 사람은 내 큰며느리 되는 아이라네’라고 하니,
各隐笑而罢。
각자 속으로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그만두었습니다.
轻薄者往往自侮,良可笑也。
남을 놀릴려다 도리어 자신을 욕보이는 일이 흔히 있는데,
이런 사람이야말로 정말 한심한 부류의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至于眯目失明,又鬼神之惨报矣。
방동 같은 사람은 그러다가 눈이 멀어 실명하게 된 것이니,
귀신과 신령의 참혹한 응보라 하겠습니다
芙蓉城主不知何神,岂菩萨现身耶?
그 수레에 탔던 부용성의 공주는 어떤 신인지 알 수 없습니다.
혹시 중생을 제도하려는 보살의 현신은 아니였을까요?
然小郎君生辟门户,鬼神虽恶,亦何尝不许人自新哉!”
그러나 난쟁이들이 있는 힘껏 문을 뚫어
방동이 다시 광명을 되찾은 것을 보면,
귀신과 신령이 비록 엄하고 매서우나
사람이 스스로 새로워지는 것을
막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일본 설화에 나오는
아주 작고 귀여운 주인공
'잇슨보시(一寸法師, いっすんぼうし)'가 생각났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전래동화 중 하나죠.
잇슨보시는 아이를 간절히 원하던 노부부에게서 태어났지만,
시간이 지나도 키가 전혀 자라지 않아
겨우 3cm(1치)에 머물렀습니다.
잇슨보시는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교토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밥풀을 짓이겨 만든 칼집에 바늘을 꽂아 칼로 삼고
밥공기를 배로 삼고, 젓가락을 노로 저어 강을 건넜습니다.
교토에 도착한 잇슨보시는 재상의 집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 집의 아름다운 딸의 말동무이자 경호원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공주와 함께 절에 가던 길에
사람을 잡아먹는 요괴를 만나게 되었고,
요괴는 잇슨보시를 한입에 삼켜버렸습니다.
요괴의 뱃속으로 들어간 잇슨보시는 가지고 있던
바늘 칼로 요괴 내장을 마구 찔러댔습니다.
고통을 참지 못한 요과는 결국 잇슨보시를 뱉어내고 도망쳐 버렸습니다.
도망치던 요괴가 떨어뜨리고 간 보물 요술 방망이을 얻게 되고
딸이 이 방망이를 흔들며 "키가 커져라! 커져라!" 하고 소원을 빌자,
잇슨보시는 훤칠하고 잘생긴 청년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후 잇슨보시는 그 따님과 결혼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고,
고향의 부모님을 모셔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