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재지의에서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환상과 욕망의 본질을
가장 환상적이고도 철학적으로 그려낸 명작입니다.
영화로도 여러 번 제작되었을 만큼 플롯이 정교하며,
불교의 '일체유심조' 사상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江西孟龙潭与朱孝廉客都中,偶涉一兰若,
강서 사람 맹룡담은 주씨 성을 가진
효렴(孝廉, 과거 시험에 합격한 선비)과 함께
도성 북경에 머물고 있었는데,
우연히 어느 절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殿宇禅舍,俱不甚弘敞,惟一老僧挂褡其中。
절의 전각과 승방이 모두 그리 넓고 웅장하지는 않았으며,
오직 늙은 스님 한 분만이 그곳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见客入,肃衣出迓,导与随喜。
스님은 손님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옷깃을 추스리고 나와
맞이하며, 절 안을 안내하여 구경도 시켜주었습니다.
殿中塑志公像,两壁画绘精妙,人物如生。
불당 안에는 지공(양나라 때의 보지 고승)의 상이 빚어져 있었고,
양쪽 벽에 그려진 벽화는 매우 정묘하여
인물들이 살아 있는 듯했습니다.
东壁画散花天女,内一垂髫者,
拈花微笑,樱唇欲动,眼波将流。
동쪽 벽에는 꽃을 뿌리는 천녀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중에는 머리채를 땋아 내린 한 천녀가
꽃을 만지며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앵두 같은 입술은 살짝 움직이려는 듯하고
촉촉한 눈매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습니다.
朱注目久,不觉神摇意夺,恍然凝思;
주 효렴이 그녀를 오랫동안 주목하여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넋나간 사람처럼 마음을 빼앗겨
황홀하게 생각에 잠겼습니다.
身忽飘飘如驾云雾,已到壁上。
그러자 몸이 문득 구름과 안개를 탄 듯 두둥실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벽 속의 그림으로 빨려 들어갔다.
见殿阁重重,非复人世。
그림 안은 건물이며 전각들이 겹겹이 솟아 있어
인간 세상의 풍경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一老僧说法座上,偏袒绕视者甚众,朱亦杂立其中。
한 노승이 법좌 위에서 설법을 하고 있었고,
한쪽 어깨를 드러낸 채 둘러서서 경청하는 무리가
매우 많았으며, 주 효렴 또한 그들 사이에 섞여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少间似有人暗牵其裾。
잠시 후, 누군가 뒷전에서
자신의 옷자락을 슬그머니 잡아끄는 것 같았습니다.
回顾,则垂髫儿冁然竟去,履即从之,
고개를 돌려 돌아보니, 머리를 땋아 내렸던
그 소녀가 활짝 웃으며 이내 가버리므로,
주 효렴이 발걸음을 옮겨 곧바로 그녀를 따랐습니다.
过曲栏,入一小舍,趑趄且不敢前。
굽이진 회랑을 지나 어느 작은 건물로 들어갔는데,
주 효렴은 주저하며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女回首,摇手中花遥遥作招状,乃趋之。
소녀가 고개를 돌려 손에 든 꽃을 흔들며
멀리서 부르는 시늉을 하자,
그제야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舍内寂无人,遽拥之亦不甚拒,遂与狎好。
방 안에는 조용했고 아무도 없었기에,
주 효렴이 덥석 그녀를 끌어안았으나
소녀도 그리 심하게 거부하지 않아,
마침내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既而闭户去,嘱勿咳。
일이 끝나고 소녀는 문을 닫고 나가며
기침 소리도 내지 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夜乃复至。
밤이 되자 소녀는 다시 찾아왔습니다.
如此二日,女伴共觉之,共搜得生,
그렇게 이틀을 지내다 보니
소녀의 친구들이 모두 이를 눈치채고
함께 주 효렴을 찾아냈습니다.
戏谓女曰:“腹内小郎已许大,尚发蓬蓬学处子耶?”
여자들은 장난삼아 소녀에게 말하기를,
"뱃속의 아이가 이미 이렇게나 컸는데,
아직도 머리를 덥수룩하게 풀고 처녀 행세를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共捧簪珥促令上鬟。
이에 모두들 함께 비녀와 귀걸이 따위의 장식을 가져와
급히 머리를 쪽 지어 올리게 했습니다.
女含羞不语。
소녀는 부끄러움을 머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一女曰:“妹妹姊姊,吾等勿久住,恐人不欢。” 群笑而去。
그중의 한 여자가 말하기를,
"자매들아, 우리 여기 오래 머물지 말자.
누군가 기분 나쁠지도 모르잖아"라고 하니,
무리가 모두 웃으며 떠나갔습니다.
生视女,髻云高簇,鬟凤低垂,比垂髫时尤艳绝也。
주 효렴이 다시 소녀를 바라보니, 머리채가 높이 솟아 있고
봉황 비녀가 낮게 드리워져 있어, 머리를 땋아 내렸을 때보다
더욱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습니다.
四顾无人,渐入猥亵,兰麝熏心,乐方未艾。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자
다시 그녀와 음란한 행동으로 나아갔는데,
어디선가 난초와 사향의 향기가 흘러나와 폐부까지 스며들어
즐거움이 바야흐로 끝이 없었습니다.
忽闻吉莫靴铿铿甚厉,缧锁锵然,旋有纷嚣腾辨之声。
그런데 그때 가죽 장화를 신은 발걸음 소리가 쿵쿵거리며
들려오고, 포승줄과 쇠사슬 소리가 철렁거렸으며,
곧이어 사람들이 웅성되는 소리도 났습니다.
女惊起,与朱窃窥,则见一金甲使者,黑面如漆,绾锁挈槌,
众女环绕之。
소녀가 깜짝 놀라 일어나 주 효렴과 함께 문틈을 통해
몰래 바깥을 엿보니, 얼굴이 칠흙처럼 검고
금빛 갑옷을 입은 신장이 어깨에는 쇠사슬을 걸치고
손에는 번쩍이는 망치를 든 채 서 있었고,
여러 여인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使者曰:“全未?”
신장이 묻기를, "모두 모였느냐?" 하자,
答言:“已全。”
무리가 대답하기를, "이미 다 모였습니다" 했습니다.
使者曰:“如有藏匿下界人即共出首,勿贻伊戚。”
신장이 말하기를, "만약 하계(인간 세상) 사람을
숨기는 일이 있다면 즉시 함께 나와 자수하여,
화를 미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又同声言:“无。”
여인들이 또 한목소리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使者反身鹗顾,似将搜匿。
신장은 몸을 돌려 부엉이처럼 날카로운 눈매로 두루 살피니,
마치 숨은 사람을 수색하려는 듯했습니다.
女大惧,面如死灰,张皇谓朱曰:“可急匿榻下。”
소녀는 크게 두려워하여 얼굴빛이 잿빛이 되었고,
당황하여 주 효렴에게 말하기를,
"급히 침상 아래에 숨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乃启壁上小扉,猝遁去。
말을 마치자 그녀는 벽에 있는 작은 문을 열고
급히 달아나 버렸습니다.
朱伏不敢少息。
주 효렴은 침상 아래 엎드려
감히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俄闻靴声至房内,复出。
얼마 후 장화 발소리가 방 안까지 들려왔다가
다시 나갔습니다.
未几烦喧渐远,心稍安;然户外辄有往来语论者。
얼마 지나지 않아 시끄러운 소리도 점차 멀어지니
주 효림은 마음이 조금 안정이 되었으나,
문밖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오가며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朱局蹐既久,觉耳际蝉鸣,目中火出,景状殆不可忍,
주 효림은 침상 아래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은 지가 너무 오래되어,
귓전에서는 윙윙 소리가 울리고
눈앞에서는 불꽃이 번쩍이는 것 같아,
그 상황이 참으로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惟静听以待女归,竟不复忆身之何自来也。
그저 고요히 귀를 기울이며
소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고,
그러다보니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时孟龙潭在殿中,转瞬不见朱,疑以问僧。
그때 맹룡담은 불당 안에 있다가,
갑자기 주 효렴이 보이지 않자 의아해하며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僧笑曰:“往听说法去矣。”
스님이 웃으며 말하기를,
"그분은 설법을 들으러 가셨습니다" 하였습니다.
问:“何处?”
맹룡담이 "어디로 말입니까?" 하고 묻자,
曰:“不远。”
스님은 "멀지 않은 곳입니다"라고 했습니다.
少时以指弹壁而呼曰:“朱檀越! 何久游不归?”
조금 뒤에 스님이 손가락으로 벽을 튕겨 두드리며
소리치기를, "주 시주님!
어찌 이리 오랫동안 놀며 돌아오지 않으십니까?" 하였습니다.
旋见壁间画有朱像,倾耳伫立,若有听察。
그러자 즉시 벽화 속에서 주 효림의 모습이 보였는데,
귀를 쫑긋 세우고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무슨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어리둥절한 모습이었습니다
僧又呼曰:“游侣久待矣!”
스님이 또 부르기를, "함께 온 친구분께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遂飘忽自壁而下,灰心木立,目瞪足软。
그러자 주 효림이 이내 바람처럼 휙 하니 벽에서
걸어 내려왔는데, 풀죽은 모습으로 나무토막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으며, 눈은 휘둥그레지고
다리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孟大骇,从容问之。
맹룡담이 크게 놀라 침착하게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盖方伏榻下,闻叩声如雷,故出房窥听也。
주 효렴은 방금 침상 아래에 엎드려 있을 때
천둥 같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기에,
그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동정을 살피려고 했던 것입니다.
共视拈花人,螺髻翘然,不复垂髫矣。
이때 주 효림과 맹용담 두 사람이
다시 벽화 속에 그려진 꽃을 든 소녀를 바라보니,
소라 모양의 머리채가 우뚝 솟아 있어
더 이상 머리를 땋아 내린 처녀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朱惊拜老僧而问其故。
주 효렴은 깜짝 놀라 노승에게 절을 올리며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僧笑曰:“幻由人生,贫道何能解!”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환상은 사람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니,
노승이 어찌 이를 풀 수 있겠습니까!”
朱气结而不扬,孟心骇叹而无主。
주 효림은 그 말을 들은 뒤 말문이 막혀
말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고,
맹룡담 또한 충격을 받아 갈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即起,历阶而出。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지나서 절을 나왔습니다.
异史氏曰:
이사씨는 말합니다.
“‘幻由人生’,此言类有道者。
"'환상은 사람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생겨난다'라는
이 말은 참으로 도를 깨친 자의 말씀입니다
人有淫心,是生亵境;人有亵心,是生怖境。
사람에게 음탕한 마음이 생기면
이로 인해 음란하고 더러운 정경이 나타나게 되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기면
이로 인해 온갖 가공할 환영이 생겨나는 법입니다.
菩萨点化愚蒙,千幻并作,皆人心所自动耳。
보살께서 어리석고 몽매한 이를 깨우쳐 주시기 위해
천 가지 환상을 한꺼번에 지어내셨으나,
이는 모두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움직인 것일 뿐입니다
老婆心切,
노승이 그들에게 도를 깨우쳐주려는 마음이 간절하셨으나,
惜不闻其言下大悟,披发入山也。”
주 효렴이 그 노승의 말을 듣고 대오각성하여
머리를 풀어헤친 채 산으로 출가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으니 참으로 아쉬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