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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똥돼지 이야기를.........

작성자도랑|작성시간22.10.28|조회수141 목록 댓글 1

 

 

                          <똥돼지>

 

                                             도랑  

 

 

  내가

새 주인이신 황곡리 유지 박 영감님 댁으로 끌려 왔을 때는

안의 장날  해거름이 무겁게 깔릴 저녁 무렵이었다.

 

 집 뒤 높이 치솟은 오두봉 골짜기 응달은 아직 겨울 잔챙이인 눈 부스러기가 옹그린 체 지난겨울을 설겅설겅 되씹고 있었다.

 

 새봄을 시샘하는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듯한 앙살스런 바람이 손톱 날을 세워 포실 포실한 보리밭 골을 심술궂게 할퀴기도 했다.

 

펑퍼짐한 언덕빼기 비탈 과수원의 복숭아 가지는 바라지게 솟구쳐 올라 가무잡잡한 햇살 젖꼭지를 쪽쪽 빨며 불그레한 꽃망울을 앙증스럽게 영글었다.

 

 여느 때와 같이 안의 장은 일찍 추스르는 장꾼과 장사꾼들 등살에 오후 장은 힘발이 빠져 글렀지만, 장터 어귀 주막집들은 한바탕 북새통이다.

 

거나하게 취한 새 주인이 살팍진 길로 몰고 가는 손수레에, 나는 새끼줄로 앞발과 뒷다리가 꽁꽁 묶여서 실려 가는 게 볼썽사납게도 요지부동이라 성깔이 난다.

 

 몇 몇 장꾼들과 꼬불꼬불 움푹 패인 신작로를 마구잡이로 휘젖으며 몰고 가면서도 머이 그렇게 만족스러운지 싱글벙글하지만 나는 정말 죽을 맛이다.

 

주인 영감은 과붓집에서 몇 배() 걸친 주기(酒氣)가 과했는지 체신머리까지 풀려진 다리가 손수레를 따라 휘청거리는 것이 불안하기 그지없다.

어르신, 그만하면 수놈이지만 잘 사신 거요

한 동네 사는 듯한 아저씨도 흔들리는 몸으로 새 주인 박 영감에게 같은 얘기를 벌써 몇 번이고 되씹는다.

 

 오전 내내 소()전 한 모퉁이에서 옛 주인인 고() 영감과 박영감이 나를 두고 몸값이 서로 엇맞는지 한참 동안 옥신각신했다.

 

몇 번을 번갈아 가면서 애꿎은 내 꼬랑지를 잡고 치켜올렸다 내렸다 하는 통에 빨갛게 불거져 나온 두 눈깔과 꽁지가 몽땅 빠지는 줄만 알았다.

 

  한참 후,

흥정이 끝났는지 정부미 자루에 사정없이 주둥이부터 거꾸로 쑤셔 박고 아구리를 끈으로 꽁꽁 동여맨다.

갑갑하고 불안한 것은 차지하고 이대로 부모 형제 생이별하고 나 홀로 낯 선 곳에서 불귀의 객이 되는가 싶다.

죽을힘을 다해 악을 빡빡 쓰며 날굳이쳐 지랄했더니, 옹기 굽는 가마터 앞 언덕빼기 마루에 올라와서야

아이고 고놈 자슥 되게도 설친다.” 하며 자루만 벗기고는 새끼줄로 다시 손발을 묶어 놓는다.

 

이름 모를 산모롱이를 몇 구비 돌아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딱 벌어진 서낭당을 지나니 게딱지같은 집들이 보인다.

 

다 왔는지 묶은 새끼줄을 풀어놓으니 이제야 살맛이 난다.

 

 본 채는 기와로 지붕을 덮었고, 대청마루가 덩그렇게 높고 넓은 것을 보아 지체가 있는 듯 보인다.

 

뒤 뜰 귀퉁이에 내가 들어간 집은 단층으로 이어졌지만 그런 대로 현대식이다.

지붕은 하얀 스레트로 가지런히 올려져 종전에 살던 통나무집 보담 제법이다.

더구나 바닥과 구시통을 양회로 매끄럽고 오목하게 바른 것이 보기보다 주인 영감이 꽤 깔끔한 성미인가 보다.

 

 짚 북더미 속에서 쳐 박혀 늘어지게 자고 있던 먼저 온 암퇘지 한 마리가 나를 보자 부리나케 쪼르륵 뛰쳐나온다.

 

별로 예쁘지도 않은 긴 주둥이를 연방 씰룽씰룽거리며 주제넘게 내 가슴팍을 콕콕 찔러 본다.

 

무슨 요따위 년이 다 있냐.....”

두렵기도 하지만 한 편, 낯선 이곳에서 동포(同胞)를 만났다고 생각하니 반갑기도 하여 나는 한쪽 구석에서 깔린 눈으로 얌전히 서 있었다.

 

! 너 어디서 왔니?”

똥골, 고 영감 집에서.”

잘 됐다 얘, 앞으로 나와 사이좋게 잘 지내자, 난 똘순이야.”

똘순이는 주인 박영감 칠순 잔치가 있던 경칩 며칠 전에 왔다고 했다.

 

 그 전,

옆방에 살던 거무퉤퉤한 덩치 큰, 아저씨 돼지가 잔치 전 날 끌려나가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히히덕거리는 큰 마당 가운데에서 칼에 찔려 모가지가 선지를 뿜으며 생죽음을 당했다는 똘순이 이야기는 두고두고 소름끼치는 공포였다.

 

  자기는 이제 이 박영감 집 씨돼지로 들어 왔다는 자랑도 의기양양하게 빼놓지 않았다.

또 자기 이름도 아침저녁 죽을 퍼 날라다 주는 주인집 할미가.

요 년, 똘순아-, 잘 묵고 잘 커서 새끼들을 쭉쭉 잘 낳거라.” 라고 불러 줬기에 똘순이가 됐다며 똘순이 이름에 대하여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했다.

 

나보고는 똘똘이라 부르면 어떻냐고 해서 그냥 머쓱하게 고개만 끄떡이었다.

 

헌데

요 똘순이 이년은 항상 주둥이뿐인 빈말이다.

 

  비바람이 불어 날씨가 곤두박질 쳐 어시시한 밤이면, 주인 영감이 듬뿍 안아 넣어 준 짚북더미 속 따듯한 곳을 앙살 맞게도 독차지한다.

또 쌀뜨물에 보리 등겨 몇 바가지로 끼니를 때우다 안의 장날 저녁, 모처럼 비린내 나는 꽁치 대가리라도 몇 토막 섞여 들어오면, 나를 구시통 근처를 얼씬도 못하게 아르렁거린다.

 

'지가 무슨 여왕이나 된 듯이 말이다.......'

 

 마지막 기울던 햇살이 깔깔하게 째리는 초가을 나절 일이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똘순이와 한바탕 자지러지게 뒹굴다 늘어지게 자고 있는데, 갑자기 주인 할망구가 다가왔다.

영감요! 빨리 이리와 보소

와 그라노?”

저기 저 붉은 수놈 말이요, 죽도 잘 안쳐 묵더니 결국 등짜배기 뼈가죽이 말라깽이로 붙었으니 안 되겠지요?.”

나를 콕 찍어 가리키며 하는 말이다.

 

  이게 무슨 마른 날 천둥치는 날벼락인가?.

맛있는 죽 똘순이에게 양보한 게 무슨 죄인가?

 

할망구의 망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이튿날,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은 똘순이와 생이별하고, 잔치 전 날 칼 맞고 비명횡사했다는 옆 아저씨가 살았던 방으로 나는 비몽사몽간에 쫓겨났다.

 

 똘순이 요년은,

까탈과 앙살에 제 주제파악도 못하고 제 잘난 척이 좀 심한 게 흠이었지만,

이제는 속살이 올라, 가슴이 제법 포동통에 봉긋봉긋하고, 엉덩이 또한 오부라지도록 물 끼를 먹어 탱글탱글 쭉 뻗은 허리가 갯벌 무 같아, 미치도록 여간 군침이 도는 게 아니었다.

 

 며칠 후,

주인 영감이 건너편 과수원에서 사정사정 웃전 얼마를 덧 부쳐주고 어렵사리 몰고 온 수퇘지 녀석은, 흰 바탕에 검은 점이 군데군데 엇 바라지게 박힌 점박이였다.

 

볼품떼기 없는 똥배가 곡선 없이 쳐진데다 미련하고 양 눈알이 툭 불거져 나온 게 정말 징글맞게 생겼다.

그런 날탱이 같은 녀석을 똘순이 방으로 바로 몰아넣으니,

똘순이 봄살나는 향기 내음을 맡은 이 녀석은 지 평생이 천지개벽 된 줄 알고 좋아 지랄 환장삐깔이다.

 

 하루 종일 옆방은 시끌시끌 두 연놈이 생 지랄법석이 따로 없다.

와 - 속 터져 미치겠다......

 

밤이 되어도 계속 그 녀석의 날 숨에 헛 거품 무는 소리와 똘순이의 앙칼지고 자지르지는 비명 소리로 뒤엉킨 그 밤이

나에게는 정말로 길고도 긴 일일 삼추의 긴 악몽이었다.

우째 이런 일이........

 

 전 날 밤은,

억세고 매몰찬 똘순이의 결사적 반항으로 점박이 녀석의 저돌적이고도 무지막지하게 뎜벼드는 그 공격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낙동강 방어선 구축은 성공했나보다,

정말 다행이다.

 

나는 안도의 깔딱숨으로 보내 그 긴밤이 어찌 천만 다행이 아니던가

천우신조다..............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또 이게 무슨 날 벼락 치는 막장 같은 망언인가.

 

어르신, 말라깽이 같은 이놈을 오늘 당장 잡아 없애시려고요?”

 

일전에

큰 돼지 아저씨 목을 단 칼에 찔러 죽였다는 험상궂은 그 사나이가 나의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나를 딱 쳐다 보며 내 뱉은 칼같은 비정한 말이다.

 

그렇게 하려고 하네- 안 되겠어......... 지금 당장 저 놈을 처치해버려야지. 매일 돼지죽 만 축내고 있으니 낸들 어찌하겠는가? 할망구 성화도 불같으니 말일세.........”

주인 박 영감의 딱쟁이 떨쳐내듯 매정한 소리가 내 두 귀를 의심했다.

"아-  나의 이 기구한 운명이여~~~"

 

  그때.

 “어르신! 내 말을 믿으세요, 제발....... 내 말을 좀........ 저 뚱뚱한 점박이 놈은, 순 잡종 똥돼지이고, 이놈은 요즘 새로운 신품종인 귀한 듀록이란 놈이예요,  몇 년 전 영국에서 새로 개량 된 랜드레스란 돼지와 함께...........말입니다요~~~.”

 

얼마쯤인가

공포의 시간이 긴 터널처럼 지났다.

 

 

 똘순이 방 문짝이 화들짝하고 콱 열린다.

주인 박 영감의 손짓에 따라 그 험상궂다는 사내는,

지난 밤 지랄 반죽으로똘순이 등을 올라탔다가 내렸다가 온 몸을 휘졌으며 헐떡거리다 지쳐, 결국 똘순이 곁에서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진 그 점박이,  똥돼지라고 불리는 녀석을 발길로 인정사정없이 냅다 걷어차며 거칠게 문밖으로 휘몰아 끌고나갔다.

 

 얼마 후

 “-, -, -.”

돼지 멱따는 비명 소리와 개 짖는 소리,

황곡리 온 동네 꼬마 녀석들의 시끌버끌하고도 왁자지껄한 소리가 저녁연기와 싸잡혀 짜부라지게 들려온다.

 

똘똘아! 똘똘아! 나야 나......., 똘순이야

어떻게 된 영문인지 옆방에 가만히 있던 똘순이 년이 내 방으로 기어 들어와 웅크리며 떨고 있는 나를 자꾸자꾸 톡,톡,톡 알수 없는 향내같은 암내를 풍기며 안겨온다.

 

- 끝 -

 

 원고 분량 : 29매

 

 

* 10월의 마지막 금요일 저녁,

나의 다정한 동호회님들에게~~~ 

 

 

이 <똥돼지> 녀석은

지난 날,

한국 00문학지에 발표된 졸필입니다.............

 

     2022년 10월 28일 밤,

야탑천이 보이는 나의 작은 골방에서........

 

               - 도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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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명수니 | 작성시간 22.10.29 에그머니
    큰일 날뻔 ~~
    다행입니다요

    똘순이 옆에 왔으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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