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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 이런 이야기가 나오다니, 참~~~

작성자도랑|작성시간23.05.27|조회수216 목록 댓글 4

"야-  이 0끼야 똑 바로 서~~~"..

이 말은 군대 조교가 신병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내 담임이 통나무처럼 무방비로 서 있는 나에게 한 무거운 명령이었다.

 

중학교 시절이니

지금 뒤돌아보아도 아물아물 안개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날의  이야기는 내 평생 진주가 아닌 검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다짜고짜 나의 양 볼을 두들겨 팼다,

그냥 꼿꼿히 나의 중심을 잡으려고 애썼다

 

 그 다음

양복을 입어 신사같은 담임선생의 구둣발이 내 복부를 찼다

 

난 

그래도 그 순간 아픔을 참고 꼿꼿히 서 있는데,  이를 구경하던 우리반 친구들의 걱정과 불안스런 표정에서 튀어나온 말이

"00아- 니 코에 피 난다."

이 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는 그만 힘없이  쓰러졌다.

 

헌데

담임은 그냥 

"야 - 이 0끼 꽤병하는 구나" 하며  쓰러져  널부르진  나를 더 잘근잘근 짓밟았다

잠시 후

그제야 분이 좀 풀리는지 ....

긴 복도를 향해 양팔을 해집으며 사라졌다.

 

친구들이 나의 코피를 닦아 주던 기억이 그날의 그  순간을  회색으로 박제된 나의 싸늘한 기억이다

 

난 

그날 아침.

 

엄마가 이런 말을

"야-  미안하다  쌀독에 쌀이 떨어져서  니 밴또(도시락)를 못쌋다,   그러니 이 수제비 덩어리만  하나 싸 줄테니, 배고프지 말고, 꼭 챙겨묵거라~~~  "

 

그날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등교한 허기진 나를 

왜 그렇게,  야비하고도 모질기고 악독하게 그래셨는지....??? 

 

 

 내가 

그날은 <주번>이라는 완장을 찼기에? ....

 

 긴 복도,

며칠 전, 나무 바닥에  연분홍 물감을 칠하고 입혔다,

모든 애들(학생들)이 돌맹이와 양초를 서로 섞어가며 비비고, 칠한  그곳을  뺀대질 했다.(조약돌로 빡빡 문질러  광(光)을 내는 동작)

 

 헌데

<주번>인 내가  양초를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그 양초를 잘게 뿌려떠려 서로 던지면 뒹굴고 장난치고 난리가 났다.

청소는 뒷전이고........   

 

그래서

<주번>인 나만을 세우더니,  다짜고짜 내게 무지막지하게 그런 폭력을......

(가해자는 그냥 단순 순간적 분풀이겠지만,  피해자는 한 평생 앙금으로 남는다....)

 

   그 당시,

 못나서, 엉성하고 어둔하여 상황판단을  잘 못하는 어리석고 띨띨한 내가 결코 아니었다,,,,,,,,,,,,,,,

 

 참, 

이야기가 좀 길어지는군요...........

 

 

 00국민학교 다닐 때, 

6년간을, 

모두 우등상장을 받았다 그러니

담임선생님과 주변으로부터 사랑 받는 착실한 모범 학생이었다

(더구나 4학년 때, 학력 검정 일제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하여 전교생 앞에서  박수까지  받는 일도 있었고,,,,)

 

 6학년 때,

담임선생님(정은략님)께서  직접  쓰주신 원서, 

그 당시 대구 최고의 학교인  경북 중학교에 가라고......

 6명 중 

나만  함격에서 제외 되었다.

 

 그날은 유독 추웠던

12월 4일.

 

 난, 그 전날 

감기 몸살을 몹시앓아  시험치는 날,

시험장도 겨우 걸어 들어갔다.

 

 이어

체력 시험장.............

25점이 만점이다.  

 

 난

철봉대도 못잡고  그냥 주져앉았다.

기본인 5점 밖에 못 받았다.

(혁명정부에서  가장 강한 애들만을 키우기 위에 체육 점수를, 국어 산수 사회 자연 과목과,  똑 같이  25점을 부여했기에,~

그 해의  그날 신체 장애자들이나 환자학생들은,  완전히 체육점수를 받지 못해 결정적인 피해를 .........)

 

 그 당시는

전국이  동시에 같은 문제와 같은 시간에 치루어진  입시 시험 결과는- 

서울 경기중 - 143점(전국최고 합격 컷트라인)

대구 경북중 - 141점

사대부중 및 대구중,  경상중  등이  120~130점 정도였다

 

내가 체육 점수 25점 만점 중에 겨우 받은 점수가 5점,  

이 점수를  추가하니  총점수가...

139점.

(합격점수에서 2점이 부족) 

 

만약

그날  체육시험에서 25점을 다 받았다면?

난 159점이다.

(평소에,  다 만점 받을 수가 있었기에......  턱걸리, 넓이뛰기 , 야구공 던지기.....같은 것이니까....)

 

-각설하고-

 

오늘 

부처님 오신 날.

 

그 당시

내 담임, 송상문님을(당시 29세,  본명을 꼭 밝힌다)...... 

왜?  이 이름이 평생 까끄랍게 안잊혀지는지,,,,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이제 그 이름과  옛날을 잊어버려 주고싶다

그와  나를 위해~

 

그래서   이 글을 ...........

(그 날의 그 순간이,  내 한 평생 가슴 속에 앙금으로 쭉-  남아있었기에.........)

 

창가에 귀한  자비를  향한 비가 내리신다............ 

봉축일!

진짜,  술 맛 땡기게 말이다....

 

ㅎㅎ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좋은 일이, 좋은 일이, 그래서 더 좋은 일이.... 좋은 일이 계속 생기는데

이 어찌 기쁘지 아니 하랴~~~~)

 

 우리 율동의 미학(dance)을 사랑하는 님들........... 

 멋진 시간  되시기를  함께 빌면서.........

 

    2023년  5월  27일  빗방울이 톡톡톡 맑게 떨어지는 석탄일

분당  야탑천이 보이는  작은 내 창가에서 ..........          

 

         - 도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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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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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친절 | 작성시간 23.05.27 지금은 교권이 넘추락?
    그러나 그때는 제자들이
    선생들의 분풀이가 되기도 했다.
    정말 용서 되지 않을 일.
    이제 마음으로 용서 하시고
    내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편안해 질테니까요.
  • 작성자비오 | 작성시간 23.05.28 글을읽으며
    아련한
    추억을 더듬어봅니다
    아픈기억에도
    공감이 충분히 가네요
  • 작성자복사꽃 | 작성시간 23.05.28 그시절 선생님한테 손바닥 회초리로 안맞아본 학생 없겠지요,,,
  • 작성자김민정 | 작성시간 23.05.29 도랑선배님의 가슴 깊은 곳에 그런
    아린 추억도 있멌네요 ㆍ다는 아니지만
    때로는 선생같지 않는 인간들도 많더라구오
    이혼의 아픔으로 제자들에게 분풀이 하는
    선생도 봤습니다 돈봉투에 따라 제자와의
    거리를 두는 선생도 있었습니다
    선생도 선생 나를 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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