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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5일. 옛날 춤추시던 그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작성자도랑|작성시간23.06.25|조회수173 목록 댓글 3

 

 6,25. 직후 유년시절에 일어난 작은 이야기를.....(fiction 化)

 

 

 한국전쟁은 시작부터 일방적으로 끝날 것 같더니만

결국은 두 쪽 모두 코피가 터지고 온몸이 피멍으로 얼룩지더니 무승부로 끝났다.

 

 일곱 살인 승연이가 살던 대구(大邱) 땅 이곳저곳 공터에는, 전쟁 당시 사용하다 폐기된 온갖 군수품들이 그 시대의 사회상처럼 어수선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비행기 연료 탱크, 부서진 장갑차, 박살 난 박격포차, 기름을 담던 찌그러진 드럼통 ...... 등 온갖 전쟁이 먹다 남은 잡동사니 찌꺼기들로…….

그중 바퀴 모두가 없어진 미군 트럭 잔해는 승연이 또래들의 놀이터 본부였다.

(승연이가 살던 집 부근에는 2군사령부가, 저 멀리 앞산 쪽에는 미8군 사령부가 있었다.)

 

 그때 승연이 동네에는 정말 대통령보다 더 대우받는 나이 드신 엿장수 한 분이 매일 엿판(가락엿이 아닌 판 엿)을 손수레에 싣고  경쾌한 노랫가락에 맞춰 춤을 덩실덩실 추시며 온 동네 골목골목을 흥겹고도 신나게 나타났다.

 

 그 엿장수 양손에는 종이 한 장도 자르지 못하는 두껍고 투박진 가위소리가 허공을 향해 마음대로 춤을 추었다….

저  멀리서 그 소리만 들려오면 온 동네 애들은 밥숟가락을 내던지고 마치 귀신에 홀린 듯 혼이 빠져 앞다투어 달려나갔다.

 

 그냥 맨몸으로 뛰어가는 게 아니라.

평소에 주워 모아 고이 숨겨 둔 고철이나 구멍 난 고무신, 빈 병 또는 찌그러진 양은그릇(양재기)……. 등등을 재빨리 챙겨 들고서 부리나케 나갔다.

 

 그런 후, 그 엿장수 앞에 서서

군인들보다 더 꼿꼿한 차렷 자세로 양손을 앞쪽에 함께 모으고, 

90도 각도로 정중하고도 엄숙하게 인사를 올린다….

 

 “각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하며 큰 소리로 말이다…….

 

모든 애들이 자기 조상님 보다 더 진지한 자세로 고개를 숙인다.

그것도 서로들 먼저 그 엿장수한테 알랑거리며 더 잘 보이려고 ……. 

 

똑같은 종류와, 같은 양의 고물을 가지고 갔는데도  그 인사 태도에 따라

엿판을 쳐서 나눠주는 엿의 양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엿장수 손수레 뒤에는 늘 그림 형제의 동화 이야기(하멜른의 쥐잡이꾼)처럼 온 동네 애들의 긴 행렬이 이어졌다.

 

 승연이도 그날 그 엿장수 할아버지한테 가기는 가야 하는데 막상 준비해 둔 고물이 없었다.

옆에 보니

엄마 금반지가 눈에 얼른 들어왔다.

 

어린 마음이지만 이것이면 오늘은 내가 엿 최고로 많이 먹겠구나

하는 희망찬 기대감을 안고서 (젠장 먹고 싶은 맘이 굴뚝인데, 금가락지가 문제여?)

드디어 달려나갔다.......

 미친 듯이 홀리는 달콤한 엿 맛에 그만 본초자오선을 잃고 훗타닥.....

칼루이스, 벤 죤슨(세계적인 육상 선수) 보다 더 빠르게…….

 

 승연이가 가지고 온 금가락지를 본 그 할아버지는 호탕하게 크게 웃으시며

"와 - 너 오늘 진짜 엿감 되는 것 가지고 왔구나" 라고 칭찬이 자자하면서

승연이가 먹고도 남을 엿을 뚝-뚝-뚝- 계속 때어 주는 게 아닌가…….

 

 그날 승연이 입은 그 엿으로 자기 친구들 앞에서 자랑하느라 이빨이 빠지도록 정신없이 벌어졌다.

 

 저녁

엄마는 무엇을 열심히 찾으시다 찌그러져 걱정스런 얼굴로

"야 - 승연아- 너  혹시 엄마 금반지 못 봤냐?" 하고 물었지만

승연이는 시침이를 뚝 떼며

"전혀 못 봤는데요? 금반지라니요?"하고 엉뚱하게 되묻기까지 했다.

 

  승연이 엄마 얼굴이 그렇게 일그러진 모습은 난생처음이다.

 

 저녁밥을 먹는데, 승연이도 양심은 있는지 통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하기야 저녁때 그 많은 엿을 실컷 먹은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때 갑자기

밖에서 누가 대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나갔다 오신 엄마. 

"야- 이놈 00야- 너, 이 가락지 진짜 못 봤다고 했지?" 

 

그 엿장수 할아버지가 집에 찾아옴으로 그날 승연이 소행이 그만 들통나고 말았다. 

“할아버지!

우리 집까지 왜? 찾아오셔서 날 이렇게 입장 곤란하게 만드십니까?

각하! 진짜 너무 하십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승연이 아버지의 표정이 갑자기 까맣게 식으며 폭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보! 여보! 내가 엿값을 쥐여주면서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했더니, 한사코 손사래 치면서 이런 말을 해주고 가셨어요, 글쎄…….

고 녀석! 나중 자라면 큰일 할 녀석이 분명하니 잘 키우시오~~~” 라고…….

 

 

    원고 분량 : 15매

 

   영포 문학지 발간,

   제17호 소설 본문중에서…….

 

                 - 도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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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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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명수니 | 작성시간 23.06.25 오늘이 6,25
    다시는 이런일이 있어서는 안되지요
    대한민국 금수강산 이 나라가 초토화 되고
    죄없는 사람들이 죽는 엄청난 시련이 오기에
    옛 선조님들을 생각합니다

    우리 어렷을적
    엿장수 아저씨는 인기 짱 ~ㅎ

    오늘도
    행복하세요 ^^
  • 작성자비오 | 작성시간 23.06.25 도랑선배님
    글이 항상 제밋습니다
    어릴때 엿장수생각도 나구요
    우리쪽에는 가락엿 구멍치기가 유행했었는데~~암튼 그시절 엿장수인기는
    어딜가나 대단했던것같습니다
    재밋는글 잘보고가네요
  • 작성자김민정 | 작성시간 23.06.25 늘 도랑선배님 글을 읽으면서 동감으로
    즐기고 감탄합니다 ᆢ 어떤 작가님보다도
    훌륭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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