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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드 블라맹크

작성자미션|작성시간19.10.06|조회수260 목록 댓글 0
모리스 드 블라맹크
Maurice de Vlaminck

(1876 ~1958)

모리스 드 블라맹크
(Maurice de Vlaminck)는 1876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플랑드르 출신의 음악가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블라맹크는 10대 후반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독학으로 소묘를 배우고 인
상주의 화가들을 연구했다. 그는 그림에 몰두하기 전에는 바이올린 연주자, 자전거 경주 선수, 군인, 엔지니어, 소
설가 등 이채로운 직업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블라맹크가 화가를 지망하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00년경 앙드레 드랭(André Derain)을 만
나고 부터이다. 이들은 센 강 인근 지역인 샤투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지명을 그대로 붙인 ‘샤투 화파’를 결성했
다. 블라맹크는 1901년 파리에서 열린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회고전을 보고 그의 열정적인 화풍에 매료
되어 강렬한 색채와 휘몰아치는 듯한 붓놀림을 자신의 작품에 적용했다.
1905년에는 마티스(Henri Matisse)의 권고로 ‘앙데팡당’ 전시에 참여했다. 같은 해 가을에는 ‘살롱 도톤(Salo
n d’Automne)’의 야수파 전시에 출품했다. 이 전시에는 마티스와 드랭, 뒤피(RaoulDufy), 루오(Georges Rouaul
t), 브라크(Georges Braque) 등이 함께 했다.




야수주의 화가 중에서 가장 급진적인 성향을 지녔던 그는 굵고 빠른 필치와 두터운 채색, 캔버스에 직접 짠 순색
계열의 색채를 통해 자신의 충동적이고 격정적인 기질이 반영되어 있는 표현력 넘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블라맹크는 “직관이 예술의 기초를 이룬다”고 믿었으며, 단 한 번도 루브르박물관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는 사실
을 자랑스럽게 여길 만큼 과거의 거장들로부터 배우는 것을 경멸했다. 그에게 회화는 자연발생적이고 열정적이
며 매우 신체적인 활동이었다. 그는 화가의 감성에 의해 인지되는 감정이 진정한 주를 이루는 풍경을 화폭에 담았
다.
블라맹크는 1907년부터 아프리카의 문화와 세잔(Paul Cézanne)의 작품을 연구하면서 입체감의 표현에 주력하
기 시작했다. 몽마르트르에 있는 피카소의 작업실 ‘바토 라부아르(세탁선)’에서 피카소와 공동 작업을 하며 명도
가 좀 더 낮은 색채와 입체주의적인 요소가 가미된 작품을 발표했다. 이듬해에는 회색과 흰색, 짙은 청색을 두텁
게 칠한 풍경화로 방향을 바꾸어 어두운 색조 속에 견고한 화면 구성을 보여 세잔의 영향을 엿보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지나치게 주지주의적이라 생각하고 이후에는 본래의 뚜렷하고 철저한 프랑스 표현주의 양식으로
돌아왔다.
블라맹크는 1920년대부터 더 이상의 큰 변화 없이 자연을 대상으로 폭풍에 휩싸인 하늘과 들판, 길의 정경 등을
담은 풍경화와 정물을 즐겨 그렸다. 그는 1958년 뤼에유 라 가들리에르(Rueil–la–Gadelière)에서 생을 마감했다.
 



주요 작품에는 《샤투의 센 강 The River Seine at Chatou》(1906), 《샤투 근처 밤나무 숲 Les Châtaigner
s à Chatou》(1906), 《붉은 나무가 있는 풍경 Landscape with Red Trees》(c. 1906), 《샤투 다리 The Chato
u Bridge》(1906~1907), 《정물 Still Life》(19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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