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위의 식사>의 같은 이름,
다른 화가들의 버전~
다른 화가들의 버전~
조르조네가 그린 ‘전원의 합주’.
판의 고향인 아르카디아를 묘사했다. 허름한 옷을 입은 목동이 화려한 의상을 입은 귀족이 연주하는 현악기 류트
판의 고향인 아르카디아를 묘사했다. 허름한 옷을 입은 목동이 화려한 의상을 입은 귀족이 연주하는 현악기 류트
의 음을 따라 노래를 부른다. 르네상스 시대 베니스에서 그려진 지상낙원은 도시를 떠나 풍요와 음악이 넘치는 전
원생활을 동경하는 귀족들의 삶으로 묘사됐다.
조르조네의 1508년 작 <전원의 교향곡>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다 .
조르조네의 1508년 작 <전원의 교향곡>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다 .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가 1863년 《살롱전》에 출품했던 작품으로 당시에는 <목욕>이란 제목이 붙었다.
벌거벗은 여인과 정장 차림의 두 남성이 전면에, 그리고 목욕을 하는 듯한 포즈의 여인이 숲 속을 배경으로 등장
한다. 이 작품이 처음 출품되었을 때 강한 외설 시비에 휘말려 결국 마네의 이 작품은 낙선하고 말았는데 이에 불
만을 품은 마네는 《낙선전》에 다시 출품했다
폴 세잔이 1873년부터 1878년 사이에 그린 작품들 중에는 <바쿠스 축제(Baccanales)>나 <목가적 풍경(Pastor
ales)> 연작과 같이 전통적 주제를 다룬 것들이 많다. 그 가운데 가장 평화로운 풍경의 하나인 이 작품은 형식적
인 면에서 세잔 특유의 개성을 잘 보여준다. 붓터치는 쉽게 구분이 될 정도로 간결하게 끊어져 있으며, 인물들은
어렴풋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구별된다. 화면 구성은 얼핏 보면 알아보기 힘들지만 곧 잘 드러난다. 즉 화면은 중
앙에 위치한 여인과 교회의 뾰족한 부분에서 이어지는 윤곽선으로 인해 수직축으로 나누어진다. 이 뾰족한 부분
은 액상프로방스에 있는 생 장 드 말트(Saint-Jean-de-Malte) 교회의 첨탑으로 보인다.
세잔이 여러 번 선택하기도 했던 이 주제는 마네(Manet)가 스캔들을 일으켰던 같은 제목의 작품에서 보인 모순
세잔이 여러 번 선택하기도 했던 이 주제는 마네(Manet)가 스캔들을 일으켰던 같은 제목의 작품에서 보인 모순
을 엿보게 한다. 더하여 마네가 동명의 작품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자, 모네 역시 같은 제목의 작품을 제작하여 두
작가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두 작가는 혁신을 추구하는 작가들에게 명성을 얻게 되
었다. 그러나 작품의 주제가 마네와 모네(Monet)의 작품과 비슷하다 할지라도, 세잔이 이런 제목을 언급했는지
는 확실치 않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푸생(Pousssin)의 <바쿠스 축제>와 유사한 배치를 보이기 때문이다. 혹은 젊은 날 함께 했
왜냐하면 이 작품이 푸생(Pousssin)의 <바쿠스 축제>와 유사한 배치를 보이기 때문이다. 혹은 젊은 날 함께 했
던 친구 졸라(Zola)의 언급처럼, 이 작품은 세잔과 친구들에게 액상 프로방스의 자연에서 경험했던 즐거운 일탈
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세잔의 이 작품은 주제 면에서 충분히 흥미롭다. 인상주의의 특성과 함
께 신고전주의의 특성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한 세잔의 노력을 느낄 수 있다.
피카소의 동명 작품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서는 형태가 완전히 바뀌어 외설 시비를 일으킬 것 같지 않다. 또한
등장인물 중 나체의 여인 바로 뒤에 붙어 앉아있던 1명의 남성이 제외되었고 숲 속이라는 장소성을 더욱 강조한
듯 채색되어 있다. 하지만 형태는 완벽히 피카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특히 두 여인의 형태는 극도로 왜곡되
어 있으며, 정장 차림의 남성과 숲의 형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실 피카소가 이전 작품을 소재로 그린 작품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피카소는 이탈리아 여행 후 로마 시대
그런데 사실 피카소가 이전 작품을 소재로 그린 작품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피카소는 이탈리아 여행 후 로마 시대
화풍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나 고흐 등과 같은 작가가 이미 발표한 작품을 비슷한 화풍으로 그리기도 했다. 그렇
다고 그가 이런 작업을 쉽게 한 것은 아니다. 여러 습작을 거쳤고 <풀밭 위의 점심식사>만 하더라도 총 27개의
변형된 동명의 작품이 있을 정도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피카소에 대한 비난을 일으켰다. 하지만 피카소는 이에
개의치 않았으며 곧 입체주의 화가 피카소라는 명성을 쌓아 올린 대표작을 속속 발표했다
모네의 풀밭위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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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자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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