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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멍해 지는 밀레의 '만종(晩鍾)'에 얽힌 이야기

작성자미션|작성시간19.12.20|조회수669 목록 댓글 1
가슴이 멍해 지는
밀레의 '만종(晩鍾)'에 얽힌 이야기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sois Millet
1814 - 1875)
프랑스의 화가로, 프랑스의 지방에 위치한 바르비종파(Barbizon School)의 창립자들 중 한 사람.
                                   
밀레의 '만종'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림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서양그림들중에 밀레의
만종과 이삭줍기는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밀레의 '만종'을 보시게 되면  이러한 숨은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감상해 보시면 좋을듯 싶습니다.

똑같이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들어도 그 배경과 숨은 이야기를 알고서 감상하는 것과 모르고 감상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아는 것 만큼 보이고, 아는 것 만큼 즐길 수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만종〉, 캔버스에 유채, 1859, 55.5×66cm,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프랑스 화가하면 떠오른사람은 밀레이고,
밀레하면 연상되는 작품들이  만종,이삭줍기,
씨뿌리는 사람 등입니다.
〈이삭 줍는 여인들〉, 캔버스에 유채, 1857, 83.5×111cm,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지평선이 보일정도로 커다란 농장을 배경으로 저 멀리에 짚단을 싣고 있는 일꾼들과 말을 타고 이들을 부리는 지
배인인듯한 사람이 보이며, 이들 속에 속하지도 못하고 끼니를 위해 버려진 이삭이라도 주워야 하는 세 여인들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있습니다.
추수때의 풍요와 평화로움을 배경으로 가난한 이들의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오고 있습니다.





빈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삼십 대 자화상〉, 소묘, 1845~1846, 56.2×45.6cm,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이십 대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1841, 63.5×47cm, 미국 보스턴 미술관

이 그림이 전시되자 보수적인 비평가들로부터 이삭을 줍는 세 여인은 '누더기를 걸친 허수아비이며, 빈곤을 관장
하는 세 여신'이라는 악평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에 밀레는 "나는 평생 들 밖에 보지 못했고, 그것을 솔직히 그렸을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비평가들의 악평은 가난한 화가 밀레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을 더욱 더 가중시켰습니다.
결국 물감 살 돈 조차도 없을 정도로 궁핍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아르투스 스테반스'라는 화상이 그림을 인수한다는 조건으로 밀레에게 1000프랑을 지원해
줍니다.
이 1000프랑으로 탄생한 그림이 바로 '만종'입니다.

이 그림은 곧 '반 플라트'라는 사람에게 3000프랑에 팔렸고, 여러사람의 손을 거치다가 미국의 '아메리카 미술협
회'에 팔렸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만종'이 미국에 팔리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직접 나섰을 뿐 아니라 대대적인 모금활동
까지 벌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자나라 미국을 당할 수는 없었고, 이렇게  팔린 '만종'은 미국 각지를 순회하며 미국에 안착하는 듯 했습
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 당시 백화점 재벌이었던 '알프레드 쇼사르'라는 사람이 80만 프랑에 이 작품을
구입한 후 1906년에 루부르 박물관에 기증을 하여 밀레의 '만종'은 프랑스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후 '만종'은 한번도 거래된 적이 없었으며, 지금은 그 값을 매긴다는게 불가능한 프랑스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1000프랑의 지원이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보물이 된 것입니다.
또한 진정한 예술의 가치를 알아본 쇼사르가 없었다면 '만종'은 지금쯤 미국의 어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을 것입
니다.

처음 밀레가 그린 '만종'은 지금 우리가 보는 그림과는 약간 달랐습니다.
기도하는 농부 부부의 발치에 놓인 감자 바구니가
원래는 부부의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를 담은 관으로 그려졌던 것입니다.
이 아기는 긴 겨울동안의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것이었습니다. 죽은 아기가 하늘나라에서라도 평화롭게
지내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기도하는 농부 부부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바로 '만종'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게된 밀레의 친구가 그렇지 않아도 사회 고발적인 그림들 때문에 비평가들로 부터 혹평을 받
고있는 밀레가 걱정이 되어 그림에 아기 시체를 넣지 말것을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밀레는 고심 끝에 아기 대신 감자를 그려넣어 출품하게 됩니다.
그 후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 '만종'은 그저 농촌의 평화로움을 담고있는 그림으로 유명해진 것입니다.
〈폴린-비르지니 오노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1844, 100×80cm, 프랑스 셰르부르 토마앙리 미술관
〈키질하는 사람〉, 캔버스에 유채, 1848, 100.5×71cm,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양치기 소녀〉, 캔버스에 유채, 1864, 81×101cm,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그러나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만 느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그림을 볼 때 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던 그 소년의 이름은 '살바로르 달리(Salvador Dali)'였습니다.
살바로르 달리(Salvador Dali)

그는 '만종'을 볼 때마다 감자 바구니가 마치 관처럼 느껴진다고 했으며, 후에 '만종'에 얽힌 비극적인 실화라는
책까지 출판하면서 감자 바구니가 실은 아기의 시체를 담은 관이라는 주장을 하게됩니다.
사람들은 그의 주장이 얼토당토 않다며 묵살합니다.

그러나, 최근 루부르 박물관측에서 '만종'에 대한
자외선 투사 검사를 시행하여 초벌 그림을 확인한 결과 감자 바구니가 있던 자리에 작은 관이 그려져있는 것을 발
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죽은 아기의 관이었습니다.
그의 투시력은 환각이 아니라
정확한 관찰에서 오는 능력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현실 생활에는 서툴렀지만 그럴수록 더욱 더 삶에 대한 투시력을 갖게 되었다."
달리의 진실한 고백이었습니다.

갈라와 밀레의 만종, 1933, 살바도르 달리 (Gala and the Angelus of Millet, 1933 by Salvador Dali)
캐나다 국립미술관
밀레의 만종의 고고학적 회상, 1935, 살바도르 달리
〈씨 뿌리는 사람〉, 캔버스에 유채, 1850, 101.6×82.6cm, 미국 보스턴 미술관
〈낮잠〉, 종이에 파스텔, 1866, 29.2×41.9cm, 미국 보스턴 미술관
〈낮잠〉, 빈센트 반 고흐, 캔버스에 유채, 1890, 91×73cm,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sois Millet
1814 - 1875)
19세기 바르비종파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화가로, 주요 작품은 <씨 뿌리는 사람>과 <이삭줍기> , <만종>. 농부
의 아들로 태어나 19세에 셰르부르에서 미술을 공부하였으나 이후 파리의 미술계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퐁텐블로
숲의 마을 바르비종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낭만주의, 사실주의적인 풍경화를 확립했는데, 이러한 화풍은 사실적
풍경화라는 프랑스의 풍경화의 기반이 되었다. 그는 웅장한 자연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소박한 농촌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는데 중점을 두어, 1860년대 이후 많은 관심을 받았다. 
바르비종 마을의 들판
명작을 탄생 시킨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넓은  경작지.



현재의 바르비종 마을

바르비종은 관광지화되어 고급 휴양지로 변모 되고  진품은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 관리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백화점 소유주였던 '알프레드 쇼사르'가 80만 프랑에 이 작품을 구입해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한 후 한 번도 거래된 적이 없었던 '만종'은 값을 매긴다는게 불가능한 보물입니다.

바르비종(Barbizon)은 밀레, 루소의 활동무대였습니다.
파리의 아틀리에 틀어 밖혀서 아카데믹한 그림만 그리고있는 어용 화가들과 인연을 끊고 농촌으로 이주해 움직이
는 농민의 모습을 그린 테그드로,루소, 밀레,디어스테라페나 등의 미술혁명가들이
농민과 함께 생활하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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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지 니 | 작성시간 20.02.19 感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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